2021-06-22

과거제 변질을 보라… 능력주의도 결국 신분제

뜨거운 감자 ‘이준석 현상’… 공정한 경쟁, 이렇게 본다
능력주의(meritocracy)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가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을 앞세우고 선거 공천에 자격시험을 도입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기존의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고안된 통치 기술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뜨거운 감자가 된 능력주의를 주제로 세 필자의 긴급 지상 논쟁을 싣습니다.

①최진석(찬성): 가짜 표창장이 公正인가

②노정태(반대): 자칫하면 新계급사회 된다

③임명묵(제3의 의견): 20대에게 ‘공정한 경쟁’은 찬반, 그 이상

/일러스트=양진경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 흑산도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사는 창대(변요한)는 나주 사는 장 진사(김의성)의 사생아. 매일 뜻도 모르는 성리학 경전을 달달 외운다. 과거에 합격하여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유배 온 정약전(설경구)을 만나 물고기에 대해 가르쳐주는 대신 글공부를 한 창대는 드디어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과거를 보고 심지어 소과에 합격한다. 생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과 시험에서는 떨어지고 만다. 나주 목사는 창대를 위로하며 과거 시험의 진실을 알려준다. 대과는 글 솜씨가 아니라 집안의 힘으로 붙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능력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조선의 길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능력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조선은 능력주의 사회였다. 유명무실한 과거제를 앞세워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고 성리학 경전이나 달달 외우던 그 모습이야말로 능력주의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능력주의’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 펴낸 책 ‘능력주의(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책은 2034년을 배경으로 한다. ‘마이클 영’이라는 사회학자가 쓴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다. 1860년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보통교육이 시작된 후, 몇 번의 역사적 변곡점을 거치며 노골적인 계급사회였던 영국이 능력주의를 내세운 위선적인 계급사회로 바뀌는 과정을 풍자하는 책이다.

저자는 능력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짚고 있다고 스스로 설명한다. 하지만 비판의 무게 추는 단점으로 쏠려 있다. ‘능력주의'의 서문을 읽어보자. “나는 능력주의가 얼마나 자만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고, 책을 썼다고 간주되는 저자를 포함해서 스스로 능력주의 체제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만을 드러내려고 했다.”

능력주의가 사실상 신분제로 고착되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개인의 타고난 소질과 노력을 합쳐 ‘능력’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만들고 그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나누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다. 처음 한두 번은 말 그대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능이나 근성 등 소위 ‘공부머리’ 역시 유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 역시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능력주의는 능력주의에 적합한 이들을 선별하고, 그들끼리 맺어지며 재생산하게 함으로써 결국 ‘능력주의자들을 위한 신분제’가 되고 만다.

그래도 음서(고관 자제를 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방식)보다는 과거가 낫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음서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나온 것이 과거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능력주의가 더 나쁠 수도 있다. 음서제가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반면, 과거제는 그 자체가 실력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여겨지기에, 집권 세력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사회의 지배 계층은 훨씬 더 공고하게 군림한다.

조선의 경우가 그랬다. 좋은 집안에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지배 계층이 사람됨의 도리가 담겨 있는 책을 달달 외워 과거에 합격까지 하니 백성들은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권력이 된 능력주의는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인도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답은 조정에서 치르는 과거 시험에 있지 않을 것이다. ‘자산어보'로 돌아가보자. 정약전은 인간의 평등과 구원을 믿는 ‘서학쟁이’다. 서양 배에서 떨어뜨린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탄식을 내뱉는다. 그렇다. 우리는 먼 바다를 향해 돛을 펼쳐야 한다.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과 같은 눈높이에서 제 실력을 드러내고 평가받아야 한다. 능력주의를 넘어서, 법 앞의 평등을 전제로 한 글로벌 자유시장주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노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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