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3

폴 크루그먼 노벨 경제학상 단독 수상

저질 폴빠인 제게 너무도 기쁜 소식.

"Princeton's Paul Krugman Wins Nobel Economics Prize"

게다가 '단독 수상'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우왕!

크루그먼 본좌님 감축드리옵니다.



추가: 한림원에서 노벨상을, 뒤늦게 혹은 너무 빨리 준 취지는 이런 게 아닐까. "크루그먼 교수님,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칼럼 많이 써 주시기 바랍니다. 상금도 몰빵해서 드릴게요."

금융위기와 안티고네, 금산분리, 그 외

1.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해 국법과 대결하는 안티고네, 와 사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In a bleak new sign of the growing economic crisis, hard-up families are having to wait more than two months before receiving Government money for funerals.

Organisations representing undertakers accused the Government of putting them in an ‘impossible’ position by dragging their feet over burial costs for poor families.
("Bodies of the dead not being buried in echo of Winter of Discontent as effects of credit crunch spread across Britain", DailyMail, 13th Oct. 2008)

가난한 가족들은 정부에서 장례 보조금이 나올 때까지 두 달 가량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는 보도인데, 이것을 보도한 매체가 데일리 메일인 만큼 덥썩 믿거나 하긴 좀 그렇다. 블로그에 이 기사를 인용한 폴 크루그먼도 '내 아내가 영국에서 오래 살았고 아직도 타블로이드를 즐겨 본다'고 눙치고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로의 위기 확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영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국이 이토록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2.

국제적으로 대규모 은행 국유화가 단행되면서 주식시장이 안정되고 환율이 돌아오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눈에 띤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 일이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이명박이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이 "아침부터 재수있을 권리"를 박탈하고, 정부는 금산분리를 사실상 해제하는 법안을 떡하니 제출하고 앉아있다.

신자유주의의 기조를 완전히 뒤흔드는 '은행 국유화'에 대해,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른 어제 그제 오늘 정도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한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이미 7월부터 논의되고 있었던 해법 중 하나다. 내가 지난번에 블로그에서 잠시 소개한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Twin Twisters"에서, 이코노미스트는 프레니와 페니에 돈을 퍼주지 말고 그것들을 아예 국유화한 다음 운영을 정상화하여 비싼 값에 되팔라고 주문한 바 있다.

서방 세계의 '은행 국유화'를 보며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익명으로 기사가 나가는지라 이렇게 노골적인 주장을 대놓고 펼칠 수가 있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은행 국유화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상화'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정상'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된 바가 없다.

문제는 이 씨발 대한민국의 경우, 국유화 -> 정상화 -> 민영화의 세 단계 중 두 번째 것이 쏙 빠져있는 그 무언가를 금융위기 해법이랍시고 정부가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은행 중 대다수는 정부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을 '정상화'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중과 공유하여 그 정상 상태에 대한 사회의 논의를 수렴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의사를 모으기는 커녕, 그냥 지금 달러 짤짤이로 돈 왕창 번 대기업들에게 갖다가 넘기겠다, 이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꼴이다. 금산분리 철폐는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3.

요즘 내가 그 개념을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국제적 위기'를 핑계삼아 금산분리를 철폐하려 드는 이것은 그야말로 '쇼크 독트린'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앞서 나는 현재 (자본주의의) '정상성'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 허공에 붕 떠버렸다는 것을 지적했다. 진보진영은 이 '쇼크' 속에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퍼부어줄 수 있는가? 한국과 그 외 여러 나라들에서 동시에 이 질문은 던져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내용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Yes, we can'(워우워우예~) 이후 큰 사회적 진통을 겪게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이번주 시사인 설문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개혁세력'들이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 공백을 진보정당이 채워넣지는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지난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행복'이라는 테마를 가져갔다면, 이번에는 미리부터 '공공성'을 밑밥으로 뿌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웰빙 투게더' 는 어떨까.

담론적인 차원으로 들어와보자면,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또 한국 사회의 담론이 이렇게 비정상이고 저렇게 잘못되어 있고 운운하는 차원을 넘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정상성'이라는 것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개념적 생산과 쟁취의 과정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품고 있다. 지배계급이 쇼크 독트린을 무기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쇼크 독트린이 횡횡하는 속에서, 'shock proof'인 정보의 공유와 지식의 무장을 통해 그것과 맞서고, 공공성의 영역을 새롭게 획득하는 게 아닐까.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 말하는 것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게 아니고, 공기업 선진화가 '공공의 이익'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대체 그 '공공성'이라는 게 뭐냐고. 여기서 어떤 긍정적인 서술을 내놓아야 한다.

2008-10-10

경제 잡담

서강대학교 학보사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신문이 언제 나왔다는 건지 따로 연락이 없어서, 이미 나왔다고 가정하고 이번 글을 쓰기 전에 일단 전문을 게재한다. 나는 이 글을 9월 24일에 썼다(이사를 앞두고 급히 쓴 것이므로 문장이 거칠고 호흡이 가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 )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고?
서강대학교 학보, 2008년 9월 24일 작성, 노정태.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현 지식경제부 장관인 강만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목전에 두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휩싸여 있긴 해도,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철저하게 반박된 사례 중 가장 모범적인 것에 속한다. 강만수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믿어보자고 했지만, 그 환자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사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고 있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위기를 단지 '유동성 위기'로만 서술하고,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논하지 않는 국내 경제신문과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절반의 사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지라 일컬어지는 이코노미스트는, "What Next?"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현 경제 위기의 여러 국면들을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가격 버블이 거의 다 꺼졌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8월의 실업률은 6.1%까지 치솟았고, 산업 생산량은 전월 대비 1.1%나 하락하였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2001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이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그다지 'OK'하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더욱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9월 21일 뉴욕 타임즈의 칼럼을 통해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시장 위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주택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모기지 대출의 상환이 어려워졌다. 2. 따라서 주택 보유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 회사에 유동성 위기가 닥쳐왔다. 문제는 버블이 발생하는 동안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3. 보유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회사들은 빚을 갚을 수가 없다. 4.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금융 회사들은 파산하거나 우량자산을 매각하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 회사들이 우량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므로, 우량자산은 그 가치보다 헐값에 매각되고, 그런 매각만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른바 '디리버레지(deleverage)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크루그먼이 비판하는 바는, 현재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내놓은 구제금융 투입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제가 단지 '2 단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을 호도하고,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본질적인 위기인 주택 버블 붕괴를 도외시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거품이 낀 집을 담보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럴 헤저드라고 부르건,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 부르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집값은 떨어졌고, 빚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언론들이라고 해서 미국의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로부터 국내의 경제에 미칠 여파 등을 분석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는 대신, 흔히 말하는 '보수신문'들은 미국 금융권의 위기를 오직 '유동성 위기'인 것처럼 몰아갔다. 반면 '진보적, 개혁적 신문'이라 불릴만한 매체들인 경제를 경제 자체로 다루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거대 담론을 추출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줬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념은 현실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팩트에 기반하여 현재의 위기를 넘겨낼 수 있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영국의 가디언은 "소비 심리의 위축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존경 받는 언론에는 확고한 견해와 함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더 확고한 사실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에는 후자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10월 9일 한국은행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대체 한국은행이 무슨 심산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는가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있지만, 아무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보다 더 심한 물가 상승의 압박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도 금리 인하가 단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금 무서운 것은 불황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전반적인 불황에 접어들고 있고, 한국도 거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그것은 미국 시장의 축소와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요일에 발간된 IMF의 World Economic Outlook을 인용하여, 미국에서는 9월 159000만명이 실직자가 되었고, 이것은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자동차 판매는 16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는데, 이것은 자동차를 구입해야 할 사람들이 신용불량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자동차 판매 촉진을 위해 한국에서 투자자 제소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설 땅이 없다(정확히 말하자면, 없어야 한다). 올해의 나머지 기간들은 더 나빠질 것이다.

전 세계 GDP의 25%를 충당하는 미국 경제가 이렇다보니, 세계 경제 또한 마찬가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대상으로 수출하는 나라들은 전부 곤경을 겪을 수밖에 없고, 설령 직접적으로 미국과 거래하지 않는다 해도 '미국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에 부품을 공급하던 경제 주체들(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이런 저런 기업들)은 2차적인 여파에 휩쓸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용된 기고문을 썼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펀더멘털이 어쩌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어떻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내 학자금 대출이 대단히 높은 금리이면서도 고정금리로 묶여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배가 아플 일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를 놓고 볼 때, 지금 한국 경제에 더 큰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압박이기 때문에 나는 그 결정에 찬성한다.

무선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한 후 나름 대청소를 하고 맥주 한 잔 걸치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한중일 합치면 1조 6000억 달러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던 이명박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던 블로거들이다.

일단 이명박이 하는 말은 다 틀렸다. 그건 EU처럼, 단일화폐는 바라지 않더라도, 중앙은행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국제 기구가 있어야 겨우 가능한 소리이며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국제정치는 '남자 어린이'의 정서로 움직인다. 곧죽어도 가오잡아야 하는 세계에서, '내 친구(그나마 상대방은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는)가 부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음...(사이버 모독죄가 곧 신설될 예정이라서)

2채널의 리플을 퍼와 '씁쓸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비판한 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대강 이렇다. 국가를 운영하는 기구로서의 정부를 긍정하는 것과, 그 정부를 담당하고 있는 현재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비록 재경부장관이 강만수이고 대통령이 이명박이지만, 그래도 정부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정부를 이명박이 수반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동시에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대학생들에게 떠안긴 김대중과 비교해보자. 김대중의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정책 같기는 하다. 반면 공적자금을 퍼부을 일이 산적해있는 이 시점에 종부세를 낮추고 재산세를 낮추겠다는 강만수와 그 강만수를 안 자르고 있는 이명박은, 그냥 미친 거다. 설령 11월 이후 물가가 폭등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술에 포함된 '교육세'와 담배에 붙는 세금은 오를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미리 사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클린턴 시절의 호황을 이어받지도 못했으면서, 부시보다 더 심한 정책을 진행중이다.

그러니 이명박을 까는 것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비판은 옳지 않다. 물론 전직 노빠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명박을 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명박을 까는 행위의 옳지 않음을 곧바로 입증해주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택 버블 붕괴 이후에 닥쳐올 실물경제의 불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물가상승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므로, 가능한 한 물가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향으로 임금을 인상하거나 고용을 안정화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자 하는 노력이 병행되는 가운데, 환율을 잡건 뭘 하건 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경향에서 그저께 1면에 보도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궁리나 하고 있고, 최저임금을 낮추겠다는 소리를 국정감사에서 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 이게 진짜 뉴스다.

최소한의 성장을 위해, 최대한의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명박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문제다. 김대중은 생색이라도 낼 줄 알았고 경제학원론을 이해하기나 했지, 이명박은 그저 모든 외부에서의 비판을 주님이 내려주신 시련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대단히 낮다. 그러니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의무에 가까운 그 무언가가 된다.

우석훈이 '정운찬을 경제부장관에 앉히면 시장이 안정된다'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명박이 이명박임을 거부한다는 말과 똑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촛불시위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어야 겨우 그정도의 변화를 얻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 의석 배분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하는 꼴을 볼 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명박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국정감사만큼 병맛나는 국정감사가 있긴 했나? 당내 정치 차원에서 뭐라고 하건, 노회찬이나 심상정 둘 중 하나는 의석을 가졌어야 했다.

공개된 공간에 잡담을 쓰면 나중에 후회하는 법이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일단 쫙 쓰고 올려두기로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1. 나는 2009년 한국 경제가 불황을 겪을 것 같다고 본다. 2. 그 책임을 전부 이명박과 강만수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현 정부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3. 따라서 '국가의 기능'을 옹호하기 위해 이명박을 비판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일단 여기까지.

경제 잡담

서강대학교 학보사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신문이 언제 나왔다는 건지 따로 연락이 없어서, 이미 나왔다고 가정하고 이번 글을 쓰기 전에 일단 전문을 게재한다. 나는 이 글을 9월 24일에 썼다(이사를 앞두고 급히 쓴 것이므로 문장이 거칠고 호흡이 가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 )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고?
서강대학교 학보, 2008년 9월 24일 작성, 노정태.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현 지식경제부 장관인 강만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목전에 두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휩싸여 있긴 해도,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철저하게 반박된 사례 중 가장 모범적인 것에 속한다. 강만수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믿어보자고 했지만, 그 환자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사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고 있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위기를 단지 '유동성 위기'로만 서술하고,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논하지 않는 국내 경제신문과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절반의 사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지라 일컬어지는 이코노미스트는, "What Next?"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현 경제 위기의 여러 국면들을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가격 버블이 거의 다 꺼졌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8월의 실업률은 6.1%까지 치솟았고, 산업 생산량은 전월 대비 1.1%나 하락하였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2001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이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그다지 'OK'하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더욱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9월 21일 뉴욕 타임즈의 칼럼을 통해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시장 위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주택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모기지 대출의 상환이 어려워졌다. 2. 따라서 주택 보유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 회사에 유동성 위기가 닥쳐왔다. 문제는 버블이 발생하는 동안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3. 보유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회사들은 빚을 갚을 수가 없다. 4.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금융 회사들은 파산하거나 우량자산을 매각하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 회사들이 우량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므로, 우량자산은 그 가치보다 헐값에 매각되고, 그런 매각만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른바 '디리버레지(deleverage)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크루그먼이 비판하는 바는, 현재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내놓은 구제금융 투입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제가 단지 '2 단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을 호도하고,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본질적인 위기인 주택 버블 붕괴를 도외시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거품이 낀 집을 담보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럴 헤저드라고 부르건,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 부르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집값은 떨어졌고, 빚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언론들이라고 해서 미국의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로부터 국내의 경제에 미칠 여파 등을 분석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는 대신, 흔히 말하는 '보수신문'들은 미국 금융권의 위기를 오직 '유동성 위기'인 것처럼 몰아갔다. 반면 '진보적, 개혁적 신문'이라 불릴만한 매체들인 경제를 경제 자체로 다루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거대 담론을 추출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줬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념은 현실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팩트에 기반하여 현재의 위기를 넘겨낼 수 있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영국의 가디언은 "소비 심리의 위축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존경 받는 언론에는 확고한 견해와 함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더 확고한 사실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에는 후자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10월 9일 한국은행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대체 한국은행이 무슨 심산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는가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있지만, 아무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보다 더 심한 물가 상승의 압박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도 금리 인하가 단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금 무서운 것은 불황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전반적인 불황에 접어들고 있고, 한국도 거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그것은 미국 시장의 축소와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요일에 발간된 IMF의 World Economic Outlook을 인용하여, 미국에서는 9월 159000만명이 실직자가 되었고, 이것은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자동차 판매는 16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는데, 이것은 자동차를 구입해야 할 사람들이 신용불량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자동차 판매 촉진을 위해 한국에서 투자자 제소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설 땅이 없다(정확히 말하자면, 없어야 한다). 올해의 나머지 기간들은 더 나빠질 것이다.

전 세계 GDP의 25%를 충당하는 미국 경제가 이렇다보니, 세계 경제 또한 마찬가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대상으로 수출하는 나라들은 전부 곤경을 겪을 수밖에 없고, 설령 직접적으로 미국과 거래하지 않는다 해도 '미국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에 부품을 공급하던 경제 주체들(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이런 저런 기업들)은 2차적인 여파에 휩쓸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용된 기고문을 썼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펀더멘털이 어쩌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어떻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내 학자금 대출이 대단히 높은 금리이면서도 고정금리로 묶여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배가 아플 일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를 놓고 볼 때, 지금 한국 경제에 더 큰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압박이기 때문에 나는 그 결정에 찬성한다.

무선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한 후 나름 대청소를 하고 맥주 한 잔 걸치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한중일 합치면 1조 6000억 달러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던 이명박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던 소수의 블로거이다.

일단 이명박이 하는 말은 다 틀렸다. 그건 EU처럼, 단일화폐는 바라지 않더라도, 중앙은행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국제 기구가 있어야 겨우 가능한 소리이며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국제정치는 '남자 어린이'의 정서로 움직인다. 곧죽어도 가오잡아야 하는 세계에서, '내 친구(그나마 상대방은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는)가 부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음...(사이버 모독죄가 곧 신설될 예정이라서)

2채널의 리플을 퍼와 '씁쓸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비판한 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대강 이렇다. 국가를 운영하는 기구로서의 정부를 긍정하는 것과, 그 정부를 담당하고 있는 현재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비록 재경부장관이 강만수이고 대통령이 이명박이지만, 그래도 정부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정부를 이명박이 수반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동시에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대학생들에게 떠안긴 김대중과 비교해보자. 김대중의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정책 같기는 하다. 반면 공적자금을 퍼부을 일이 산적해있는 이 시점에 종부세를 낮추고 재산세를 낮추겠다는 강만수와 그 강만수를 안 자르고 있는 이명박은, 그냥 미친 거다. 설령 11월 이후 물가가 폭등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술에 포함된 '교육세'와 담배에 붙는 세금은 오를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미리 사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클린턴 시절의 호황을 이어받지도 못했으면서, 부시보다 더 심한 정책을 진행중이다.

그러니 이명박을 까는 것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비판은 옳지 않다. 물론 전직 노빠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명박을 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명박을 까는 행위의 옳지 않음을 곧바로 입증해주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택 버블 붕괴 이후에 닥쳐올 실물경제의 불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물가상승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므로, 가능한 한 물가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향으로 임금을 인상하거나 고용을 안정화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자 하는 노력이 병행되는 가운데, 환율을 잡건 뭘 하건 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경향에서 그저께 1면에 보도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궁리나 하고 있고, 최저임금을 낮추겠다는 소리를 국정감사에서 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 이게 진짜 뉴스다.

최소한의 성장을 위해, 최대한의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명박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문제다. 김대중은 생색이라도 낼 줄 알았고 경제학원론을 이해하기나 했지, 이명박은 그저 모든 외부에서의 비판을 주님이 내려주신 시련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대단히 낮다. 그러니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의무에 가까운 그 무언가가 된다.

우석훈이 '정운찬을 경제부장관에 앉히면 시장이 안정된다'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명박이 이명박임을 거부한다는 말과 똑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촛불시위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어야 겨우 그정도의 변화를 얻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 의석 배분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하는 꼴을 볼 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명박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국정감사만큼 병맛나는 국정감사가 있긴 했나? 당내 정치 차원에서 뭐라고 하건, 노회찬이나 심상정 둘 중 하나는 의석을 가졌어야 했다.

공개된 공간에 잡담을 쓰면 나중에 후회하는 법이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일단 쫙 쓰고 올려두기로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1. 나는 2009년 한국 경제가 불황을 겪을 것 같다고 본다. 2. 그 책임을 전부 이명박과 강만수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현 정부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3. 따라서 '국가의 기능'을 옹호하기 위해 이명박을 비판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일단 여기까지.

2008-10-07

쇼크 독트린, 미국 사회의 계층, 50대와 경제 위기

1.



나오미 클라인이 콜버트 레포트에 출연했다. 단련된 말빨이 있어서인지 호락호락하게 휘둘리지 않는 모습이다. 제법 이른 시점에 출연했던 폴 크루그먼이 쩔쩔맸고, 나중에 나온 도킨스도 표정 관리하느라 애먹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이지 큰 발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외수와 황석영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사실이 문득 기억난다. 물론 그 각각의 방영분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으므로, 언급은 자제한다.

4분 넘어설 시점에 스티븐 콜버트가 던지는 질문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결국 어떤 주식을 사라는 거죠?' 나오미 클라인을 몰아붙이기 위해 꺼내들었지만, 어떤 면에서 진실의 일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주식 호황을 타고 '자산을 통한 재산 증식'의 맛을 본 것은 대단히 중요한 현상이다.

20대의 보수화가 더욱 심해진 배경에도 이런 것이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집이나 땅을 살 정도까지는 일단 돈을 '모아야' 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첫 월급을 타자마자 바로 펀드에 가입하고 수익률을 비교하며 CMA 통장을 발급받은 후 40대가 되기 전에 몇 억을 '먹을지' 고민했다. 적금과 펀드의 차이는 수익률에만 있는 게 아니다.


2.

뉴욕타임즈는 'Class Matters'라는 특집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사회 내의 계층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계층 분리가 희박해졌다는 최근의 발상은 헛된 꿈이며, 고소득층에서는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넓어지고 있지만 소득을 통한 계층 분화는 한층 더 공고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 내에서의 계층 분화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뉴욕타임즈가 플래시로 만들어놓은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내용을 읽기에 앞서서 일단 부러움이 앞선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저서들을 보면 각주의 절반 이상이 신문, 잡지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체에 대한 신뢰도, 정보의 질과 양이 사회적 담론의 수준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3.

로버트 라이히는 최근 블로그에서 "Early Boomers and the Economic Mess"라는 포스트를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이른 베이비 붐 세대가 전후 공백의 이점을 다 누렸고, 싼 값에 집을 샀으며, 뒤이어 성장하는 세대들의 수요 확대로 인한 집값 상승의 단맛을 톡톡히 봤으며, 심지어는 주식시장에도 값이 뛰기 전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55세 이상의 그들은 바로 지금, 미국을 휩쓸고 있는 경제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부시가 방한하던 날 택시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택시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58년 개띠들이 다 죽고 나면 집값은 떨어질 겁니다.' 58년 개띠들이 말하자면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될 것이다. 로버트 라이히와는 달리 그 택시기사는 집값이 떨어져 50대가 위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50대가 죽고 난 다음에야 집값이 빠지고 거품이 걷힐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현재 국면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낙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라이히의 한탄은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