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4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결정적 차이
빈의 중앙묘지에 가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묘지가 있다. 젊은 예술가들과 관광객들은 지금도 끝없이 그들의 위대한 음악에 꽃을 바친다. 하지만 베토벤이 영면을 취하고 있는 그의 묘지와 달리, 모차르트의 묘지는 일종의 기념탑에 가까운 것이다. 모차르트가 실제로 매장된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모든 빈 시민들의 슬픔 속에, 수천 명의 군중의 눈물과 함께 묘역에 들었다. 반면 모차르트는 아내의 냉대와 세상의 멸시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고작 15세. 둘 다 천재적인 재능과 초인적인 노력을 겸비한, 전형적인 ‘아웃라이어’이다. 그런데 왜 이리 두 사람의 말년은 확연히 차이가 났던 것일까? 독일의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유작 <모차르트-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통해 그 이유에 대해 한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
당시는 귀족과 왕족 등 구 지배세력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동시에 시민계급의 힘이 성장하고 있던 일종의 전환기였다. 만년의 베토벤은 곡을 완성하는 즉시 대기하고 있던 출판업자에게 넘겨 악보를 출판했으며 그것을 통해 수입을 얻고 대중들과 직접 접촉했다. 반면 모차르트는 출판업자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요즘 말로 ‘초대권 손님’이었다.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 손님들을 초대한 귀족이나 왕족이었다. 그런데 <피가로의 결혼>을 상연한 이후 귀족과 왕족들은 모차르트를 괘씸하다고 여기기 시작했고 그의 연주회에 발길을 끊었다. 우리가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봐 온 모차르트의 비참한 삶은 바로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높으신 분들’의 눈 밖에 나버렸다는 것, 그리고 시민사회의 후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모차르트가 날개를 꺾인 이유였던 것이다. 예술은 정치적이다. 하지만 예술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모차르트가 좀더 오래, 좀더 많은 작품을 써주었더라면 인류의 문화가 얼마나 더 풍성해질 수 있었을까. 그러나 2009년의 대한민국에서, 모차르트와 인류의 문화에 대한 고민은 사치에 불과하다.
3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정식으로 해체했다. 이미 몇 차례의 해고가 있었고, 그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지만, 대통령이 바뀐 후 새로 취임한 이소영 국립오페라단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그는 “규정에 없는 합창단을 운영할 수 없다”며 해체를 통보했고, 결국 4월은 합창단원들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야 말았다.
국립오페라단은 2002년 합창단을 만들고 단원을 뽑으면서 언제나 ‘상임화’를 약속해왔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다. 그 희망이 없었더라면, 또한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없었더라면, 한국 최고 수준의 성악가들이 문자 그대로 ‘88만원 세대’로 살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부는 언제나 기대를 배신했고, 이제는 아예 합창단을 없애버렸다. 그 빈자리는 1년 계약직으로 충당하겠다고 한다.
18세기의 빈에서와 마찬가지로, 21세기 서울에서 벌어지는 예술가의 비참함 역시 ‘높으신 분들’의 입김과 무관하지 않다.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합창단 전임 단장은 노무현 정권의 유력 인사였던 문성근의 형수이다. 진작 합창단을 상임화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부는 계속 그들을 비정규직으로 유지했고, 결국 현 정부의 ‘노무현 지우기’와 함께 합창단은 소멸하고 말았다.
우리는 합창단원들에게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공연해달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모차르트의 비참한 삶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매주 수요일 문화부 앞에서는 시위 겸 콘서트가 벌어진다. 황사 섞인 모래에 성악가들의 성대가 상하고 있다. 이 카나리아들이 피를 토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화부는 당장 협상에 나서라.
<노정태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2009-04-13
용산의 오줌
나는 몇 천원을 아저씨에게 쥐어주고 차에서 내렸다. 횡단보도까지 가기 위해서는 삼각지역 쪽으로 약간 올라가야 했다. '그 현장'에 꼭 다시 가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가던 길이었을 뿐이고, '그 현장'이 워낙 교통의 요지에 있을 뿐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건, 버스 전용차선 위에 놓여 있는 정류장에 가기 위해서건, 그곳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용산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은지 벌써 석달 째. 하지만 정부는 책임 있는 자세를 결코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라고 흔히들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쫓기는 사람들, 구석으로 몰려 있는 자들,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촛불소녀처럼 귀엽고 예쁘장하고 '쿨'할 수가 없다.
눈보다 코를 통해 그곳이 그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장까지 10미터도 더 남아있었지만, 오래도록 쌓여온 소변의 지린내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결국 침을 뱉고 오줌을 갈기고 똥을 뿌릴 수밖에 없을 터이다. 가진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합판을 대충 못으로 박아 만든 '화장실'은 전경 버스의 타이어쪽을 향해 있었다. 전경 버스에 오줌을 싸는 사람의 양 옆을 가려주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그 곳에는 '연대'해주는 '촛불시민'도 없었고, 심지어 경찰 병력도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버스 한 대 정도의 전경들이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족들은 의자에 줄줄이 앉아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과 '삶'은 결코 같지 않았다. 남편이 생명을 빼앗기자 아내는 삶을 잃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짓뭉개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국가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딸의 삶 또한 제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 두 문장에 과거형 시제를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차마 '연대'라는 단어를 쉽게 꺼낼 수가 없다. 그 '화장실' 앞을 지나 횡단보도로 향하며, 용산 참사 유족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어떤 훈수쟁이는 '더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용산의 시민이여...'라고 지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용산 참사를 기억합시다! 블로거들이 연대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나는 차마 '연대'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내가 그 암모니아 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이른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연함이, 자연스러움이 부끄럽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늘과 내일 있을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희망'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모금액 전액이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이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가진 것은 오줌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 행사가 열린다. 용산의 슬픔은 퀴퀴하게 썩어가고 있는데, 쾌적한 공연장에서 춤과 노래를 즐긴다니. 이것이 모순된 행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앞에 주어지는 재현된 고통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무언가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용산 참사'가 주제인 공연을 보는 것은, 껄끄럽겠지만, 나쁜 일이 아니다.
용산의 그 '화장실'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부끄럽고,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콘서트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불편함은 결코 당장 해소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를 거북하게 하는 진실 그 자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희망'
* 공연정보
23일: 이승환, 이상은, 오! 브라더스, 윈디 시티, 흐른
24일: 블랙홀, 브로콜리 너마저, 갤럭시 익스프레스, 킹스턴 루디스타
관람료: 1일 2만원
* 공연 수익금 전액은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
(02)749-0883, 후원 계좌:하나은행/159-910003-67004(예금주-문화연대).
2009-04-08
돌출 행동을 수습하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다보면,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건이 전개되기 십상이다. 특히 모종의 정치적인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고 여기는 집단의 경우, 그로 인한 갈등은 쉽게 커지고 종종 조직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기까지 한다. 그 집단이 어떤 정치적 '선'을 추구하는 단체라면, 게다가 내부에서 구성원을 통제할만한 적절한 권위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단체라면, 돌출 행동으로 인한 위험을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디앙에 기고된 목수정의 글이 공개되면서 벌어진 파장을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돌출 행동'으로 설정해보자. 여기서는 글이 공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글을 보낸 목수정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지, 아니면 레디앙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하는지 등 세부적인 '팩트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만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하겠다.
정명훈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목수정의 글이 레디앙을 통해 공개되면서, 레디앙 독자의견,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그리고 이글루스(외의 다른 블로고스피어에서 이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에서 목수정은 극심한 반대 여론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반대 의견들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목수정이 괜히 정명훈을 건드린 탓에 합창단원들의 복직이 더욱 힘들어졌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의 초점이 합창단에서 목수정으로 옮겨지면서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진보 블로거'들은 이 사안에 대해 입을 다물고 넘어가기로 작정한 듯하다. 목수정을 옹호하자니 여론에 휩쓸릴 것 같을 뿐더러 논거를 만들어주기도 쉽지 않고, 옹호하지 않자니 같은 당원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이런 입장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캡콜드님 같은 경우 목수정의 행동 원인을 '지사정신'으로 단정하고, 자신은 언제나 그것을 비판해 왔으며, 굳이 연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내용의 포스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전략, 잠잠해질 때까지 입을 다무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는 전략은 과연 현명한 전략일까? 그 지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미국 민권운동의 대부, 사울 알린스키가 바로 그 소수 중 한 사람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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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소위 급진주의자들 중 다수가 보여주는 정치적 무감각과 기회상실의 한 예가 시카고 7인의 재판*중에 일어난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주말 동안 전국 각지로부터 온 150여 명의 변호사가 호프만 판사가 내린 변호사 4인에 대한 구속조치에 항의하는 연방정부 빌딩 앞의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시카고로 모여들었다. . . . (중략) . . . 10시경이 되자 성난 변호사들은 연방정부 건물 주변을 행진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는 수백 명의 급진주의적 학생들, 몇 명의 흑표범단원들 그리고 백여 명 이상의 푸른 헬멧을 쓴 시카고 경찰들이 모여들었다.
정오가 되기 직전에, 시위 중이던 변호사들 중 40명 정도가 입구 옆의 유리벽 옆에 붙어 있던, 연방정부 건물 내에서의 그와 같은 시위를 금지하는 켐벨 판사의 서명이 들어간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피켓을 들고 연방정부 건물 현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변호사들이 진입하자마자, 검은 판사복을 입고 연방 보안관, 속기사, 법원 서기를 동행한 켐벨 판사가 로비로 내려왔다. 그들 자신이 한 무리의 경찰과 연방 보안관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성난 변호사들에게 에워싸인 켐벨 판사는 바로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재판에 착수하였다. 그는 시위대가 즉시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들을 모욕죄로 고발하겠다고 선포하였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는 이번에는 그들의 모욕죄가 재판정에서 일어났으므로 즉결처분을 틀림없이 내릴 것이라 경고하였다. 하지만 그가 이 사실을 공표하자마자, 군중 속의 한 목소리가 "켐벨 판사는 엿이나 먹어라"고 외쳤다.
잠시 동안의 긴장된 침묵 후에 군중의 환호가 이어졌고, 경찰들은 눈에 띄게 어색해졌으며, 켐벨 판사가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변호사들 역시 로비를 떠나서 보도에 있던 시위대에게 돌아갔다.
-제이슨 엡스타인, 《거대한 음모의 재판》The Great Conspiracy Trial, Random House, 1970
시위 중이던 변호사들은 전국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더없이 좋은 기회를 자기 손으로 버리고 말았다. 그 상황에서 판사로 하여금 논쟁을 계속하도록 만들고 사건의 쟁점이 유지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중 속의 한 목소리가 "켐벨 판사는 엿이나 먹어라"고 외친 후에 ①변호사들 중 한 명이 켐벨 판사에게로 걸어나가 그들은 개인에 대한 욕설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②모든 변호사가 한목소리로 "켐벨 판사는 엿이나 먹어라"고 함께 외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방법 중 그 어떤 것도 실천하지 않았다. 이는 주도권이 그들에게서 판사에게로 넘어가도록 하였고, 변호사들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pp. 43-45] 사울 D.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박순성 박지우 옮김 (서울: 아르케, 2008)
* [역주] '시카고 7인의 재판(The Chicago Seven Trial)'은 시카고 시 반전시위 주동자들과 관련된 재판을 가리킨다. 베트남 전 반대 시위가 확산되자 상원이 1968년 4월 반폭동법(Anti-Riot Act)을 통과시킨 가운데, 1968년 8월 시카고에서 개최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에 맞추어 급진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조직 전개되었다. 이 사건으로 일곱 명(처음에는 여덟 명이었으나, 한 명은 제외됨)의 급진주의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은 1969년 9월에섯 1970년 2월까지 진행되었으며, 다섯 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후 1972년 11월 상소심 판결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http://www.law.umkc.edu/faculty/projects/ftrials/Chicago/chicago7.html 참조.
(위 원문자 번호는 인용자가 붙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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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수정 사건과 '진보 블로거'들의 대응
이 사례와 현재 목수정 사건의 차이가 있다면, 돌출 행동으로 인해 야기된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군중의 환호'가 있느냐 아니면 '군중의 야유'가 있느냐 뿐이다. 참, 차이가 하나 더 있다. 법정에 진출했던 변호사들은 군중 속으로 돌아간 후 '켐벨 판사는 엿이나 먹어라'라고 외친 누군가를 찾아내 추궁하거나 훈계를 하거나 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의 '진보 블로거'들은 목수정 끌끌끌, 목수정을 지금 왜 옹호하고 그러시나, 노정태님 실망이에요~ 이러고 있다.
여기서 도출된 교훈을 우리의 사례에 대입해보자. 레디앙에 실린 목수정의 기고문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파장이 커졌을 때, 목수정은 다시금 진보신당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또한 '서울시향 음악감독 정명훈은 엿이나 먹어라!'라며 소리를 꽥꽥 지르고 나섰다.
알린스키에 따르면, 이렇듯 누군가 돌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며 침묵을 지키는 것은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두 손을 모아 쥐고 '주님, 저 팩트 골룸들에게 속히 신선도 높은 일용할 떡밥을 주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전략은 그 하이에나들에게 새로운 먹이를 주지 않을 수 있도록, 관련자 전체를 통제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효율적인 것이 된다. 촛불시위 당시 청와대를 틀어막고 있으면서도 정부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명박의 입을 막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적인 정당 내에서 그러한 행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온라인에 글을 쓰는 것을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게다가 맞으면서 참는 모습은 결코 기존의 지지자들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왕 이명박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때의 경험을 좀 더 되살려보자. 현재 이명박의 지지율은 30%대로 나온다. 반면 촛불시위 당시에는 10% 이하로도 떨어졌다. 왜 그때에는 그렇게 지지율이 떨어졌을까?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이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진압과 함께 성장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사태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촛불시위 당시 이탈했던 20%는,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던 것이다.
'진보신당 당원이 어떻게 잠재적 유권자를 조롱할 수가 있나'고 많은 이들이 내 지난 포스트를 보고 따지듯이 물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당하는 진보신당, 진보신당 당원이 당 이름까지 들먹였는데 아무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그따위 진보신당, 댁 같으면 찍어주고 싶겠는가? 완전 호구 집단으로밖에 안 보이지 않을까? 이것은 '정당정치' 이전의 논리이다. 인간의 집단은 이런 식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내가 국외자였다면, 목수정이 다구리당하도록 방치하는 이따위 정당에는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물론 이 입장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팩트 골룸들이 지칠 때까지, 실컷 물고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참고 버티겠다는 전략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매저키즘적이며, 결정적으로 진보신당의 지지자 확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목수정을 찍어내라, 진보신당 찍어주마'라고 외치는 자들을 지지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여기서 '올바름'이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의 문제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진보신당은 당원들의 행동을 일일이 미시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돌출 행동의 발생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에 속한다.
따라서 인민재판을 즐기는 자들, 비정규직 문제의 기초도 모르면서 일단 맘에 안 드는 캐릭터가 나오면 까고 보는 '소비자'들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해가 되는 수가 있다. 견인합성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을 빌자면, '쉰 밥 먹고 체하는 수'가 있다는 말이다.
둘째, 목수정이 다구리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진보신당의 모습은, 앞으로 소수자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충성도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미안한 말이지만, 소수자 운동은 오래 하면 할 수록 '쿨'해질 수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소외된 자신을 끝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이 억압의 주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과 맨몸으로 부딪쳐야만 하는 일이 바로 소수자 운동이기 때문이다.
목수정이 이번에 보여준 '비매너'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출 행동'을 한 누군가를 당원들이 전혀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듯 경험적으로 확인되면, 소수자들은 움추려들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모든 열린우리당 지지자 출신 진보신당 당원들을 폄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소수자 운동 당사자들이 돌출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들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휘두르게 내버려둔다'는 전략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학적인 행동을 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털릴 때까지 털리겠다,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 이런 식의 대응은 당위적으로도 또 전략적으로도 옳지 않다.
게다가 이번 사안의 경우, 진보정당의 운동을 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돌출 행동에 대한 '잘못된 이론화'까지 등장한 것이 큰 문제였다. 나 자신도 목수정의 문제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온라인 대중들이 젠더 혐오증에 걸려있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것을 교정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몸으로 겪어서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 폭력적인 반감을 일종의 '귀찮은 부탁에 대한 거절 모델'로 치환시킨 sonnet님의 설명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야만보다 더 나쁜 것은 오직 단 하나, 이성으로 포장된 야만 뿐이다. 사태가 이쯤 꼬였다면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3. '정치적'인 것과 '정치인적'인 것
'진보신당 표 떨어지는 소리 들리네요' 같은 익명의 리플, 그 대중적인 반감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해야 할 말을, 옳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이지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흔히 말하는 '노빠'들과 '노빠 혐오자'들이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목수정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이 상황에서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 글자가 빠졌다. 목수정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가장 '정치인적'인 행동이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인식에 바탕하여 정치 행위를 펼쳐나갈 카리스마 있는 정치가라는 최장집 교수의 견해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나 소나 다 정치가인 양, 정치인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완전히 글러먹은 짓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흔히 말하는 '노빠'진영과 '노까'진영의 타협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블로거들이 목수정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데에 그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울 알린스키는 말한다. 침묵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며, 약한 개들은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다 같이 짖어야 한다고.
그게 사실 아닌가? 진보신당은 약한 개들의 무리이다. 그러므로 더욱 한 마리씩 짖다가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목수정의 기고에 문제가 있었건, 레디앙의 게재에 문제가 있었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 내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것이 전제가 되었을 때, 진보신당의 전체적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은 두 가지일 것이다.
'목수정 씨가 다소 무례하게 서명을 요구했다고 정명훈 씨가 받아들였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음악계의 문제에 정명훈 씨가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진보신당의 차원에서 같은 요구를 그에게 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반드시 당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도 없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전면적이고 전폭적인 발언의 포문을 열어젖히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 블로거'들은 입을 닫았다. 입을 닫고 손을 씻고, 뒷짐을 지고 한참 이리 저리 걸어다니다가 '어어, 목수정 저러면 안 되지,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운동 하루 이틀 하나?' 같은 훈수를 찍찍 내갈기기 시작했다. 혹자는 '훈수를 두지 말자, 그리고 이러이러하게 하자'며 일종의 재귀적(再歸的) 훈수를 두기도 했다. 훈수 두는 거라면 노빠들이 빠질 수 있나. 젓가락 숟가락 들고 이 케이스에 덤벼들었다.
진보신당 당원들은 언제나 노빠들이 '집권하려면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훈수를 두는 행위에 치를 떨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보신당 당원들이 서로 훈수를 두고 있다.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바이러스에 걸려 있는 꼴이다. 이 사안에 대해 진걱모, 즉 '진보신당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유독 극심하게 창궐한 이유는 딴 게 아니다. 입을 다물고 눈을 돌리고 비를 피하는 전략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미 저들은 물기 시작했고 피 맛을 봤다. 피 맛을 보게 냅두면 냅둘수록 하이에나를 쫓아내는 일은 더욱 힘들어진다. 멍청한 개들은 '쟤만 잡아먹고 물러가겠지, 우리는 살 수 있겠지'라고 말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다. 인정하자. 그 전략은 틀렸다.
합창단을 위한 전면적인 홍보전을 펼칠 요량이었더라도 '참는 자가 이기는 자' 전략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쇠는 뜨거울 때 때려야 하고 떡밥은 쉬기 전에 먹어야 한다. 내가 마지막 희생자가 될 것이고, 이제 온라인 대중들은 다른 떡밥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정말 합창단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홍보 행위를 하고 싶었다면, 목수정으로 인해 이목이 집중되었던 그 때, 목수정을 내버리지 않으면서 그 논의를 진행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정치적'인 행위이며, 빨갱이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평화통일론을 내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천재성이 드러난 것도 바로 그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였다. 반면 '정치인적'으로 행위하는데 여념이 없는 '진보 블로거'들과 전직 노빠들은, 공교롭게도 이명박과 같은 생각을 한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
4. 엎질러진 물, 돌출 행동의 수습
돌출 행동이 벌어진 시점에서 그것을 없던 일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숲에서 곰을 만났을 때, 먼 거리에서 쫓아내지 못한다면, 절대 도망가지 말고 싸우라는 내용이 미국의 국립공원 안내 표지판에 써있다고 한다. 곰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어떤 수를 써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그 곰을 쫓아내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게 '대중적인 반감'으로 인해 반드시 실패하기만 하는 전략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목수정이 이른바 '뉴비 비호감'이라면, 비호감 중의 비호감, 비호감계의 모차르트, 강의석의 경우를 반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작년 국군의 날 강의석이 탱크 앞에 시원하게 벗고 곧휴를 드러내며 과자로 만든 총을 쏘고 '군대?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라는 퍼포먼스를 저질렀을 때, 진보신당 계열 블로거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의석의 사진을 올려놓으며 '나는 강의석의 퍼포먼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강의석 본인이 워낙 비호감일 뿐더러, 한국 남성들의 군대 문제에 대한 정서적 저항감도 매우 극심해서, 욕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충분히 'damage control'이 되었다. 상대방이 살살 봐줘서가 아니라, 이쪽에서 확실히 세게 나갔기 때문이다.
'강의석의 저러한 행동은 평화 운동에 도움이 안 되고...'같은 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묻혔고, 강의석은 살아났다. 50000쯤 먹을 욕을 24380 정도만 먹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강의석같은 역사와 전통의 비호감이 저지른 극도의 비호감질도 이토록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할진대, 어찌 목수정같은 극히 알려지지도 않았던 사람의 입장에 대한 옹호가 불가능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강의석을 옹호하던 사람들 모두 강의석을 결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을텐데?
돌출 행동이 저질러지면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한다. 혹자는 목수정을 고문관에 비유하기도 하더라만, 어차피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고 고문관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목수정을 옹호하면서도 합창단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넘어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나 또한 이 사태에 개입한 시점이 너무 늦었다. 우리는 모두 틀렸다. 나는 이 말을 함으로써, 알량하게도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잠을 자고자 한다.
2009-03-26
시장이라는 사회적 제도
하지만 복거일의 주장은 큰 맹점을 지니고 있다. 시장은 결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재화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회적 제도에 비하면 진입 장벽이 낮은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나는 노씨니까, 전주 이씨의 제삿상에 끼어들 수는 없다. 하지만 전주 이씨 문중의 누군가가 땅을 팔겠다고 내놓았다면, 충분한 돈이 있을 경우 나는 입찰할 수 있고 시장 원칙에 따라 가장 높은 값을 부른 후 낙찰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전적인 시장 질서를 전제하고 있을 때, 혹은 구시대의 다른 질서와 시장 질서를 견주어볼 때에나 성립할 수 있는 논리이다. 모든 것이 단일한 시장 질서하에 편입되어버린 현대(적어도 20세기 이후)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런 주장은 맞지 않다. 1960년대까지 미국의 흑인들은 같은 돈을 내고도 다른 버스 좌석에 앉아야 했다. 당신이 노숙자라면 5000원을 낸다 해도 강남역 인근의 해장국집에서 해장국을 먹을 수 없다. 입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시장이 오직 돈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무차별적이고, 따라서 '수구적 가치'와 대립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시장 그 자체가 '구분짓기'의 요소를 충분히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그 사실을 경험적으로 늘 확인하면서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베블런이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시장 질서가 '평평한 세계'를 만들어준다는 믿음에 결정적인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본성상 자신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싶어하면서도, 그 외의 타인들과는 구분짓고 싶어한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장 질서를 이용하여 시장 질서의 무차별성과 평등성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태원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걸어가면 한남동이 나온다. 한남동에는 다들 알다시피 재벌가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개별적인 저택들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시장 가격'이라는 것이 애초에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정도 규모가 되는 저택들은 철저히 1:1로 매매된다. 따라서 '누가 집 내놓았다더라'는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돈이 있어도 그것을 살 수 없다.
부촌은 그냥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품위'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타워팰리스 거주자들은 로또파와 비 로또파로 나뉘어 반상회도 따로 갖는 것이고, 성북동에서는 갑자기 돈을 번 누군가가 저택을 구입하려 하자 그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던 주민들이 돈을 모아 문제의 주택을 공동으로 구입해버린 일도 벌어졌던 것이다. 시장 질서는 다른 질서에 비하면 무차별적일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평평한 세계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또 사회적 강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인에게는 1등석을 팔지 않는다'는 차별, 혹은 '너같은 졸부는 우리 동네 주민이 될 자격이 없다'는 차별, 이런 차별에 대해 '나도 돈 있다'고 항변하는 것은 우습고 치졸한 일일 뿐이다. 젊은 시절 잘 나가던 변호사 모한다스 간디가 바로 그런 소리를 했다가, 두들겨 맞고 아까 맞은 데 또 맞고 각성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마하트마 간디로 거듭났다. 시장 원리는 무차별적일 수 있고, 그래서 돈 있는 내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그 시장을 운영하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구별짓고 차별하고 멸시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장 원리 내에서, 혹은 시장 원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시장 원리 또한 사회적 질서의 일부분이다. 시장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가격을 형성하고 매매하는 것까지 사회가 간섭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시장에서 매매될 수 있고 없는지, 또 그 규칙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등은 전부 시장에 내재된 법칙이 아니다. 그러한 규칙들은 외부로부터 주어진다.
'흑인은 같은 값을 지불하더라도 다른 칸에 앉아야 한다'는 것은 인종차별일 뿐이라고, 즉 시장 원칙에 반하는 사례일 뿐 시장 원칙의 적용 그 자체는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가격에 다른 상품을 제시받는다 해도 거래가 꾸준히 성사되고 있는 이상, 그 경우에도 시장은 '작동'하고 있는 것이며, 시장 원리는 그 이상의 도덕적인 원칙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한다.
'같은 돈을 냈으니까 나도 같은 칸에 앉겠다'는 주장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경우 '시장 원리'에 따라 해법이 도출되었다면, 같은 값을 낸 흑인에게 같은 자리에 앉게 해주는 버스 회사가 등장하여, 그 버스 회사의 버스만 흑인들이 타고 다녀서, 차별적인 좌석제를 유지하는 버스 회사가 망해버리거나 정책을 변경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애초에 법적으로 흑인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차별의 벽이 무너진 것은 시장 원리 때문이 아니었다. 로자 팍스라는 꼬장꼬장한 여성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들을 이끌고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로자 팍스가 처음 내세운 것은 시장 원리에 따른 평등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이들의 가슴을 뒤흔든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평등이었다.
수구세력과의 대결을 위해서 '진정한 시장주의'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익숙하면서도 식상한 것이다. 그런 주장은 이미 재작년 말에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실컷 써먹은 레퍼토리를 변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명박은 '노무현 정권 심판'을 위해 시장주의를 내세웠고, 지금 시장주의 타령하는 분들은 '이명박 정권 심판'을 위해 시장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상황은 몹시도 희극적이다. 두 정치 세력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사회상을 뒤에 감춰둔 채 시장의 입을 빌려 말하려고 들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도구일 뿐이다. 망치가 못을 박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듯, 시장 또한 재화를 효율적으로 교환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도덕적 망치'를 기대할 수 없듯, '건전한 톱'을 바랄 수 없듯,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또한 형용모순일 뿐이다. 정치적인 문제, 도덕적인 딜레마, 사회적인 갈등은 그 자체의 논리 내에서 합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글루스에는 '수구세력 vs. (진정한) 시장세력'의 대립구도를 상정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한 주장의 근본 동기가 결국 '한미 FTA를 졸속 추진한 노무현 옹호'임을 뻔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거짓 대결 구도는 그저 한숨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국산 망치가 도덕적일 수 없듯이, 미제 망치도 쿨할 수 없다. 한미 FTA의 동기는 '시장을 통한 수구 견제'라는 노짱의 심모원려가 아니다. 외교부의 특정 세력에게 포위된, 준비되지 않은 집권 세력의 휘둘림이 그 사태의 본질에 더욱 가깝다.
미국산 시장주의를 도입하여 한국의 덜 된 시장질서를 교정한다는 발상은 우습고도 한심할 뿐이다. 이미 삼성은 한미 FTA의 실질적인 설계자인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사장급인 글로벌 법무책임자로 영입한 상태이다. 한미 FTA를 통해 재벌을 어떻게 견제하겠다는 건가? 재벌 중의 재벌인 삼성은 이미 다 빠져가날 구멍을 만들어놓은 상태인데. 삼성이 하면 다들 한다. 다른 곳에서도 외교부 전직 직원들의 몸값을 한껏 올려놓고 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백 번 양보해서 '노짱의 심모원려'를 사실로 인정해준다 해도, 그것이 실패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지 말자는 말이다.
시장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지하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각은, 순진할 뿐 아니라 이념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런 발상이야말로 이념적이다. 어떤 이념도 택하지 않겠다는 이념,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낮게 보는 이념, 노동자가 제 몫을 찾는 것을 어떤 식으로건 폄하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념,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시장 원리'를 드높여 강조하는 분들의 이면에 깔린 이념이다. 미국 경제 위기로 인해 '글로벌 스탠다드'가 바뀌고 있는 이 시점에,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시장의 세계화가 아니라 사상의 세계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2009-03-13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문제적 개념 - 의회 불신의 난감한 산물…외부 여론이 방향타돼야
여야간의 합의로 ‘사회적 논의기구’가 만들어졌다는 말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대로 기술해내지 못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여야는 서로 합의하지 않은 채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었다.’
3월 13일 오전 2시 현재까지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해 합의된 것은 세 가지 뿐이다. 첫째,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라는 이름을 붙인다. 둘째, 한나라당에서 10명, 민주당에서 8명, 선진과창조의모임에서 2명을 추천한다. 셋째, 100일 후에 없애버린다. 첫째와 둘째 조항만을 놓고 보면 이게 ‘사회적 논의기구’인지 친목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세 번째 조항이 더해지면서, 게다가 그 친목회는 시한부 친목회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 친목회의 어깨에 언론관련법 등 쟁점법안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것이다.
▲ 13일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김우룡, 강상현 위원장이을 비롯한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 위원장, 나경원 한나라당 간사, 전병헌 민주당 간사, 이용경 선진과창조모임 간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여의도통신 |
민주당이 잠시 ‘야성’을 되찾았다가 ‘이성’을 회복한 후, 2월로 넘어온 국회에서 언론관련법 등의 처리에 대해 내놓은 해법이 다름 아니라 이것이다.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서 공론을 모은 후, 100일 후에 표결처리한다. 민주당은 ‘공론을 모은다’에 방점을 찍었겠지만, 한나라당은 ‘표결처리’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그 기구의 성격과 지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합의되지 않은 ‘논의기구’만이 덩그러니 튀어나와 버렸다.
이 논의기구의 성격을 둘러싸고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극명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한겨레의 경우 ‘사회적 논의기구’의 역할이 자문기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조선일보는 주호영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기고문을 통해 그 성격을 ‘자문기구’로 한정한다는 입장을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 스스로는 여야의 합의를 ‘거대여당의 자승자박’이라는 식으로 한층 더 낮게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선일보가 싫어한다고 해서 정당성을 역으로 추출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 또한 자승자박을 범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적 논의기구’가 그저 자문기구에 머무를 뿐이라면, 그 협의 내용에는 구속력이 없으므로 한나라당은 무시하고 표결에 임하면 그만이다. 반면 ‘사회적 논의기구’의 결정 내용에 국회의원들이 따라야 하는 강제성이 부가된다면, 그것은 국회의원을 통한 국민의 의사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되므로 위헌 소지가 매우 높아진다.
▲ 13일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방송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이 위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여의도통신 |
정치적인 계산을 뒤로 접어두고,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만 본다면 그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고작 20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에 의해, 국회의원이 양심과 신념에 따라 법안에 동의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좌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았다’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국회의원의 표결권이 침해되는 것은 곧장 국민주권이 침해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령 그것이 미디어법 관련 악법에 대한 것이어도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사회적 논의기구’ 결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것은 그런 면에서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런 기구가 국회의원의 결정권을 좌우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내 초헌법적 기관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해서 고작 100일간 시간을 끄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도 우스운 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손쉬운 길은 일종의 음모론을 채택하는 것이다. 어차피 합의는 결렬되게 되어 있으므로, ‘왜 너희들은 사회적 협의기구의 견해도 존중하지 않느냐’며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특성을 고려해본다면, 과연 그 ‘전략’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같은 음모론적 입장에서 따져보자. 홍준표 원내대표를 포함한 한나라당의 소속 의원들은 진작부터 ‘사회적 논의기구는 자문기구일 뿐’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어차피 결렬될 협상’에 대한 고려는 이쪽 뿐 아니라 저쪽에서도 하고 있다. 상대를 그렇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유의미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재 구성된 ‘사회적 논의기구’의 면면보다는, 그것이 배제하고 있는 사람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사회적 논의기구’는, 정치인에 대한 혐오, 정치적 합의 과정에 대한 폄하, 정치적인 것 자체에 대한 거부라는 우리 시대의 경향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미 국회 자체가 ‘사회적 논의’를 위해 구성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또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 그 구성원에서는 정치인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능 마비를 이보다 더 절실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과연 또 있을까? 토론도 다른 사람이 하고, 합의도 다른 사람이 하고, (민주당에서 암시하는대로) 표결권도 다른 사람들이 좌지우지한다면, 대체 국회의원은 뭐하러 뽑는단 말인가? 격투기 보려고 4년에 한 번씩 투표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의회민주주의가 이렇게 파행적으로 운행되는 것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인의 참여를 막고, 이른바 ‘시민사회’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보니, 변모씨 같은 인물이 그 20인의 원로원에 한 다리 끼어들게 되는 비극적인, 아니 희극적인 상황마저 연출되고 있지 않은가. 뉴라이트 국회의원 신지호는 그나마 ‘싱크탱크’를 운영해오기라도 했지, 변희재는 대체 뭘 했다고 국회에서 이 중요한 논의를 하게 된단 말인가.
무슨 말이냐고? 한나라당에서 변희재를 ‘사회적 논의기구’의 패널로 추천했다, 이런 말이다. 만약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면, 그 권한의 20분의 1은 변희재가 갖게 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예로부터 민중들은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인다’라고 말해왔다.
우리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를 비난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응원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난감함을 우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에 따라 여론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지금 시민사회가 내놓을 수 있는 정치권에의 대답은 그 정도가 아닐까 싶다.
노정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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