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6

[북리뷰] '비국민'을 배제하고 '국민'을 앞세우는 그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
얀 베르너 뮐러 저·노시내 역·마티·1만4000원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정치적 으르렁말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위 '퍼주기 공약'을 일삼는다는 비난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뿐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얀 베르네 뮐러는 바로 그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포퓰리즘에 대한 짧은 분량의 개론서를 썼다. 『누가 표퓰리스트인가』를 펼쳐보자.

"이렇게 포퓰리즘 거론이 흔한 요즘--현대 민주주의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불가리아의 정치학자 이반 카르사테프는 심지어 현대를 "포퓰리즘의 시대"라고 부른다--혹시 우리가 포퓰리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닌가 하는 관찰에서 이 책은 비롯되었다."(10쪽)

우리가 20세기 말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이론가'들과 달리, 저자는 길고 현란한 문장으로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최고의 이상("국민이 직접 통치하게 하자!")를 실현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타락한 형태의 민주주의다."(16쪽) 여기서 핵심은 '타락한 민주주의'이다. 포퓰리즘은 예컨대 왕정이나 귀족정 등과 달리 어쨌건 민주주의의 한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타락한 민주주의이며, 역설적이게도 그 타락은 국민주권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앞세워 벌어진다는 것이다.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그 개념 정의상 '완전한' 실현이 불가능하다. 모든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선호에 차이가 있으며,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어떤 사안에서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입는 자의 간극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포퓰리스트들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부정한다.

포퓰리스트가 말하는 '국민'은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33쪽) 존재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는 오로지 자기들만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33쪽)한다. 그 결과, 첫째, 포퓰리스트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진짜 국민'이 된다. 둘째, 포퓰리스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짜 국민'에서 배제된다. 즉 '순수하고 완벽하게 단일한' 국민의 존재를 위해, 누군가가 '비국민'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는 해방 후 지금까지 '빨갱이'나 '호남'을 타자화하는 극우 세력의 그것과 유사해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군사 독재 세력은 '주권자인 국민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는 도덕적 우월성 대신 박정희 신화, 경제발전의 성과를 앞세워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해왔기 때문이다.

얀 베르너 뮐러가 말하는 포퓰리즘적 정치는 오히려 '촛불 시민의 함성'에서 모든 정치적 선택과 행동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오늘날의 풍경과 더욱 잘 맞아떨어진다. 행정부만 바뀌었을 뿐 '기득권 세력'이 존속하고 있으며 그들이 대통령을 '왕따'로 만들고 있다는 식의 피해자 서사가 득세하는 모습 또한 그러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포퓰리즘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일면이다. '포퓰리즘을 추방하자'는 주장은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체성이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조율해나가며 공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이행만이 정답일 것이다. 이 작고 가벼운 책은 그 무거운 고민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되어준다.

2017.06.06ㅣ주간경향 1229호

2017-06-05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는가?

문재인 정권의 전반적인 경향성을 네 글자로 줄이자면 '내로남불'일 것이다. 자신들이 하면 위장전입도 건강보험료 부정도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요컨대 '내로남불'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정규직 일자리 81만개 확충', '원자력 발전소 전면 폐쇄'처럼 요란하게 홍보했던 멋진 정책들도 모두 슬그머니 포기하거나 목표를 과감하게 하향 조정하고 있다. 노래 가사마냥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하지만 국정과제 선정 과정에서 문 대통령 공약 일부는 수정 혹은 폐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기획위는 이미 부처별 1차 업무보고에서 일부 공약을 수정하거나 실제 이행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기업 반발이나 현실적인 제한 때문에 공약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기도 쉽지 않거나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계 통신비 인하(통신 기본료 폐지), 광화문 대통령, 탈(脫)원전·탈석탄발전소, 고교학점제 도입,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대표적 사례다. 국정기획위가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현재 6470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4대강 보 개방 등도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이 일 수 있다.

김채연, 이태훈, 황정수, 박동휘, 이정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1차 업무보고 마무리…폐기·수정 기로에 선 5대 공약", 한국경제, 2017년 6월 4일, (링크).

그러나 어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공포를 느끼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청와대 참모들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조용히 '착하게' 포장하는대신, 이미 들어와 있다고 언론에 보도까지 되었던 미사일 발사대 4기를 문제삼아 국방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분노가 밀려온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미 배치하기로 합의가 끝났고, 당연히 국회의 비준 따위 처음부터 필요 없는 포대 하나를 두고, 신임 정부가 끝없이 어깃장을 놓고 있다. 대한민국에 배치된 주한미군을, 특히 평택 미군기지와 왜관 부산으로 이어지는 미군 보급선을 지키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포대를 놓는데, 수도권의 시민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반론'을 야권에서 끊임없이 생산하다가 급기야는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까지 했다. 미군들이 죽건 말건 한국 정부는 신경 안 쓰지만 미군은 한국인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이런 나라에 정나미가 안 떨어지면 이상한 일 아닌가?

미국의 입장이 '옳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최소한의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은 한국을 향해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 반대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북한을 선뜻 폭격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폭격을 사랑하는 나라가 미국이고, 북한의 핵 시설을 날려버릴 폭탄쯤은 넘쳐난다. 하지만 때릴 수가 없다.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미군의 피해가 당연히 발생하고 대대적인 확전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북한 뿐 아니라 미군의 우발적 행동 역시 막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드는 그 주한미군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보호받으며 주둔하는 한, 대한민국 역시 위 문단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보호받는다. 저러한 식의 '공포'를 북한에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가 '자주국방'을 하면 지불해야 할 비용이 과연 얼마가 될까? 북한의 전면적 공격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이렇듯 많은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골수' 진보 자주파가 아닌 다음에야, 주한미군의 철수에는 대체로 반대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는가?
  2.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와 비용을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가?
  3. 셋째,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할 경우 그 비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설득할 의향이 있는가?

5월 31일 문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 원내총무를 만나 사드 배치에 대해 논의했다. 더빈 의원은 면담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원치 않으면 9억2300만 달러(약 1조300억원)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밝혔"다(링크). 문제는 청와대에서 내놓은 해당 면담에 대한 브리핑에서는 그러한 충격적 발언에 대한 언급이 쏙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더빈 의원이 거짓말로 인터뷰를 한 게 아니라면, 청와대에서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내용을 '보고 누락'한 셈이다.

해당 사안에 대한 언론의 추가 취재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다. 마음을 굳게 먹고 출입기자단과 청와대 관계자의 문답을 읽어보자.

▶기자=“더빈 총무가 그렇게 말한 게 사실이냐”
▶청와대 관계자=“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미국은 한국에 사드 배치를 위해 9억2300만 달러를 지불할 예정인데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가 큰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고 했다”
▶기자=“민감한 발언인데 어제(5월 31일)는 왜 공개를 안 했나”
▶관계자=“(더빈 총무 발언이) 그렇게 중요한가…아, 그냥 미국 시민으로서 국익 차원에서 평범한 질문을 하는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허진, "[현장에서] 더빈 발언을 “그냥 미국 시민 질문”으로 느꼈다는 청와대", 중앙일보, 2017년 6월 2일, 강조는 인용자. (링크).

저 청와대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개 미국 시민'과 만나서 사드 배치라는 안보 중대사에 대해 논의를 한 셈이다. 문재인의 청와대에는 대체 무슨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들어가 있는 것인가?

더빈 의원의 발언이 갖는 심각성을 인식해서 브리핑에서 뺐다면 그것은 의도적 왜곡이며 '보고 누락'이다. 반면 저 설명대로 '일개 미국 시민'이 하는 흔한 소리로 이해해서 언론 브리핑에 소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청와대 외교 안보팀은 그 자리에 앉아있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한국에 불고기와 비빔밥을 먹으러 온 여느 미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미국 국방 예산을 주무르는 장본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청와대는 미국 더빈 의원의 발언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라는 발언까지 대놓고 했다.

세상에 이런 무례한 행동이 다 있나? 한국인들은 조지 W. 부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오래도록 모욕감을 느껴왔다. 그런데 자신들은 미국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상원 원내총무를 '그냥 미국 시민'이라고 부르다니?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사드 배치에 대한 기존의 협의 사항을 잘 지켜나가자고 다시 당부했지만, 문제는 청와대에 있다. 문 대통령과 문정인 외교안보수석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는가? 그래서 이렇게 사드를 놓고 끝없이 어깃장을 놓는 것 아닌가? 나는 그들의 외교적 지향점이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크고 엄청난 사건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미 ('K값'이 무려 1.6이나 나온, 김어준 식으로 말하자면 '부정선거'지만) 합법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런데 그 신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자신이 놓고 있는 외교적 행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일언반구 언급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사이다' 행보만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사드 배치를 취소하고 싶게 만드는 모든 행동을 하면서, 겉으로는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논하고 있다. 이것은 부산으로 도망치면서 서울은 안전하다고 외친 이승만의 거짓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정직함을 요구한다. 청와대 참모진에게 최대한의 업무 파악과 투명성을 요구한다. 그들은 지금, 동맹의 가치를 코 푼 휴지만도 못하게 여기는 최악의 예측불가능한 미국 대통령이 재임한 가운데, 극히 위험한 외교 안보적 불장난을 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 한미동맹의 파기, 중국의 보호 하에 가능한 북한과의 통일을 원한다면, 제발 정직하게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논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혹시 잊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2017-05-31

E. H. 카의 글쓰기 방법론

비전문가들--말하자면 학계에 있지 않은 분들 혹은 다른 학문분야에 있는 분들--은 이따금 나에게 역사가는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작업하느냐고 묻는다. 역사가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가지 단계나 기간으로 나누어 작업한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생각인 것 같다. 우선 역사가는 자신의 사료들을 읽고 그의 노트를 사실들로 채우는 데에 오랜 준비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나서 이 일이 끝난 다음에는 사료들을 치워놓고 노트를 꺼내 든 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으며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 경우에는, 주요한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나 좀이 쑤셔--반드시 처음부터가 아니더라도, 어디부터이든 상관없이--쓰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기를 계속하는 동안 쓰기는 추가되고 삭제되며 재구성되고 취소된다. 읽기는 쓰기에 의해서 인도되고 지시되며 풍부해진다: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어떤 역사가들은 아마도, 마치 어떤 사람이 장기판과 말이 없어도 머릿속에서 장기를 두듯이, 펜이나 종이나 타이프 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 준비단계의 글쓰기를 모두 머릿속에서 할 것이다: 이는 내가 부러워하는, 하지만 흉내낼 수 없는 재능이다. 그러나 나는 역사가라는 이름에 값하는 모든 역사가에게는 경제학자가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라고 부르는 그 두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며, 실제로 그 두 과정은 단일한 과정의 부분들이라고 확신한다. 만일 그것들을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두 가지 이단론들 중의 어느 하나에 빠지게 된다. 여러분은 의미나 중요성을 무시하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거나 아니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을 쓰게 될 것이며,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부류의 글쓰기를 치장하려고 과거의 사실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E. H. 카,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서울: 까치, 2015), 개역판, 44-45쪽.

이 글에서 E. H. 카의 목적은 '사실'의 수집에 집착하는 랑케 식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맥락에 이미 식상해버린 오늘날의 독자, 즉 나는, 순수하게 '작업 방법론'의 측면에서 이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다.

자료를 한도 끝도 없이 모으고, 참고문헌 목록을 영원히 갱신하고, 스스로의 논리를 (완성을 위한 텍스트가 아닌 간단한 메모나 그조차도 없는 망상의 형태로) 반박하고 또 반박하는 등의 행동은, 심지어 석사 논문같은 간단한 관문을 통과할 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다,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기려는 게 아니라면,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 E. H. 카의 말처럼 '좀이 쑤시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말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내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상식적이다. "대부분의 작가와 달리 최초의 구상안에서 빗겨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자료들을 다 모은 후, 읽고, 일일히 손으로 베낀 후, 그것들을 편집하고 원고로 쓰면서 다시 베껴썼다는 토니 주트의 글쓰기 방법론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 이미 완성된 글을 그저 '쓰는' 사람이 존재한다. E. H. 카는 짐짓 겸손한 태도로 본인이 그러한 경우에 속하지 않음을 밝히며, 그 과정에서 '가위와 풀'(오늘날의 표현대로 하자면 '복붙')로 대변되는 랑케의 역사관에 반대했던 것이다.

2017-05-30

문재인 정권, 싸드 불장난을 멈춰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싸드 발사대가 두 대만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국방부로부터 그렇게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네 기가 더 있었기에,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했다고 윤영찬 홍보수석비서관이 발표했다. 5월 30일, 오늘 가장 큰 뉴스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이것은 언론플레이다. 그것도 아주 수준이 낮고 질이 나쁜 언론플레이다. 외교 안보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로 이런 불장난을 하는 문재인 정권을 나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

이렇게 대놓고 집권한지 한 달도 안 돼서 언론플레이부터 하는 청와대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국방부(와 한통속이 된 미국)'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고 여론몰이 하려는 의도는 알겠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면 서서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청문회 정국에서 여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과 그의 주변 인사들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 유포 언론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그것만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백번 양보해서 싸드 발사대가 총 6기 들어왔었다는 것을 청와대가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쳐보자. 그걸 홍보수석을 통해 언론에 대고 발표하는 것은 과연 '대통령'으로서, '청와대'로서, 합당한 행동인가?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싸드 발사대가 총 6기 들어와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2017년 4월 28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28일 군관계자는 "현재 사드의 발사대 4기는 경북 칠곡 왜관의 캠프 캐럴에 보관중이며 성주골프장의 시설공사를 마치는 하반기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링크) 그보다 이틀 전에 나온 다른 뉴스. "이동식 발사대는 요격미사일을 쏘는 발사대로 지난달 6일 사드 장비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했고, 보통 사드 1개 포대는 6기의 발사대를 갖춥니다."(링크)

정리하자면 첫째, 싸드 발사대가 한반도에 총 여섯 기 들어와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둘째, 설령 그 보도를 접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싸드라는 것이 어떤 시스템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1개 포대가 배치된 이상 6기의 발사대가 뒤따라왔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치 '장전된 리볼버 한 정'에는 실탄 여섯 발이 들어있으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말이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바로 이런 차원에서 트집을 잡고 있는 셈이다. 보고가 누락되었다 한들 '아니 어떻게 발사대 네 기가 몰래 들어와 있을수가?'라고 역정을 낸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무능과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조직과 인력들이라면 설령 저런 착오가 있었다 한들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혼동한 사람이 쪽팔리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화를 낸다면 이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싸드 발사대 네 기가 한반도에 몰래 들어와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가짜뉴스'다. 문제는 그 '가짜뉴스'의 출처가 청와대라는 것이다. 싸드는 현재 외교 국방에 있어서 가장 첨예한 사안이다. 그것을 두고 청와대에서 '가짜뉴스'를 유포한다? 그것도 한낱 국내 정치에서 팻감으로 쓰기 위해? 국방부 길들이기 하려고? 국방부를 길들이려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인사권을 활용할 일이지, 이렇게 동맹국과의 신의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수를 써야만 하는 것일까? 문재인과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외교란 무엇이고, 안보란 무엇이며, 국방이란 또 대체 무엇인가?

나는 문재인에게 한 표를 던지지 않은 60%의 국민의 일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서 존중한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과 청와대 역시 국민들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한 외교 안보 이슈를 국내 정치용, 청문회 국면 돌파용, 국방부 길들이기용 카드로 휘두르지 않는 것은 그러한 국민 존중의 첫 걸음이다. 문재인 정권은 안보 불장난을 멈추고 수권세력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17-05-23

[북리뷰] 해방 전후사의 진보적 재인식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주대환·1만7000원·나무나무

진보진영의 이론가 주대환. 상주 주씨인 그는 종친회 모임을 따라가서 집성촌의 묘역에 있는 한 비문을 읽었다. 부부가 함께 묻힌 묘의 비문은 그들의 삶을 "당당하고 정직하고 근면 성실하게 자식을 위해서라면 뼈가 부서지고 살가죽이 갈라져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바"(16쪽)쳤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깨달음을 얻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며 살아온 이들의 평범한 삶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분들은 건국과 동시에 이루어진 농지개혁으로 자기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땅을 갖게 된 자영농 부부는 이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분들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한번 봐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뉴레프트(new left) 대한민국 사관(史觀)입니다."(18쪽)

2008년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출간한 이후 주대환이 붙들고 있는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이다. 좌파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것. 그 세계관의 핵심인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갱신하는 것. 대한민국의 현재를 뒤덮고 있는 불평등을 이겨내기 위한 지적 무기를, 우리의 역사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아닌 사랑과 긍정으로부터 뽑아내는 것.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만든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는 1964년생들이 아직 50대 초반밖에 되지 않"(7쪽)은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보적 사유를 개척하는 것.

주대환은 해방 정국부터 출발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일주했다.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2014년 가을부터 2015년 겨울까지 광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했고, 책으로 엮었다. 그렇기에 이 책,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읽고 이해하기 쉬운 말투로 차분하게 흘러간다. '진보적 세계관'에 친숙한 이들이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

진보의 세계관 속에서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서 민족 분단을 부추긴 악당이다. 하지만 1946년 6월 이승만이 '정읍 발언'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전, "북한에서는 이미 1946년 2월에 사실상 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세우고 김일성이 그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토지개혁을 단행"(333쪽)했다. 분단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북한식 토지개혁은 사실상 온 농민을 국가 소작농으로 전락시킨 반면, 진보 진영이 그토록 비난해온 유상몰수 유상분배야말로 국민의 85%를 자영농으로 만들어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에 가깝지만 진보 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진보적 세계관에 갇힌 그들, 전대협 세대에게는, 현실 정치를 주무르는 힘이 있다. 주대환의 말을 들어보자. "문재인 씨 같은 사람들이 대표를 하고 있지만, 모두 얼굴마담일 뿐이지요. 정치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을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하면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당 내 486, 전대협 세대의 힘입니다. 말하자면 택군(擇君)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입니다."(231쪽) 정권 교체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을 되짚어볼 기회를 얻었다. 이 책은 그 비판적 고찰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2017.05.23ㅣ주간경향 12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