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5

유발 하라리는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찬양하지 않았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를 하긴 했다. 하지만 한국'만'을 논한 것도 아니고, 예찬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유발 하라리가 Financial Times에 기고한 칼럼 중 한국이 등장하는 대목을 직접 읽어보자.

Asking people to choose between privacy and health is, in fact, the very root of the problem. Because this is a false choice. We can and should enjoy both privacy and health. We can choose to protect our health and stop the coronavirus epidemic not by instituting totalitarian surveillance regimes, but rather by empowering citizens. In recent weeks, some of the most successful efforts to contain the coronavirus epidemic were orchestrated by South Korea, Taiwan and Singapore. While these countries have made some use of tracking applications, they have relied far more on extensive testing, on honest reporting, and on the willing co-operation of a well-informed public.

“Yuval Noah Harari: the world after coronavirus | Free to read”, Financial Times, 2020년 3월 20일. https://www.ft.com/content/19d90308-6858-11ea-a3c9-1fe6fedcca75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공히 거론되고 있다. 또한 이 세 나라 모두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국민들의 동선을 추적하였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대만, 싱가포르는 대륙 중국과 이스라엘에 비해 훨씬 인권을 존중하며 검역 및 격리 절차 등을 수행하므로, ‘상대적’으로 낫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내용을 한국 언론은 이런 식으로 번역하여 전달하고 있다.

반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들의 협조로 감염 확산을 저지한 성공적인 사례로는 한국을 들었다. 하라리 교수는 “한국은 일부 접촉자 추적시스템을 이용하긴 했지만, 광범위한 검사와 투명한 보고, 정보를 잘 습득한 대중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존했다”고 지적했다.

박형기, 박혜연, 박병진, “유발 하라리-폴 크루그먼 등 세계적 석학 “한국 배워라””, 뉴스1, 2020년 3월 22일. https://news.v.daum.net/v/20200322120107853

이것은 의도적인 왜곡 보도의 사례로 기록되어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한국인들의 국뽕을 충족시켜주며 밥벌이를 하는 ‘영국남자’ 같은 캐릭터가 아니다. 왜 우리의 언론은 멀쩡한 한 사람의 학자를 한국에서 국뽕 장사하는 외국인 유튜버 수준으로 전락시키는가.

통탄할 노릇이다. 이번 COVID-19 감염증 사태로 인해, 한국 언론의 수준이 점점 더 깊게 곪아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2020-03-24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배우는 이유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코로나 대응’에서 배울 게 없는 나라도 있다.

대만, 뉴질랜드 등이 그렇다.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차단하고, 귀국하는 자국민의 건강 관리와 동선 추적을 제대로 해낸 그 나라들은, 미국이나 유럽 입장에서 볼 때 배울 게 없다. 걸리지도 않은 병을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지금처럼 100명 넘는 사망자에 8천여 명의 감염자가 나오도록 사태를 키우지 않았다면, ‘세계가 보고 배우는’ COVID-19 대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것이다.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막는 것. 돌아가야 할 사회 기반이 제대로 작동하게 함으로써, ‘아무 일 없는 일상’을 지켜주는 것.

반대로 기업은 없는 문제도 만들어서 해결책을 팔아먹는 집단이다. 멀쩡히 다들 3.5파이 이어폰 잘 쓰고 있는데, 애플에서 ‘유선 이어폰은 적폐다’라고 손가락질하더니, 이어폰 구멍을 없애고 ‘혁신적’인 에어팟을 팔아먹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한국 정부의 COVID-19 대응은, 국가로서 수준 미달이다. 없어도 되는 문제를 키우거나, 문제가 커지도록 방치한 후, 허둥지둥 처리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걸 외국에서 참고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정말 좋은 나라, 국민을 진정 보호하는 나라는, 그런 문제가 아예 생기도록 하지 않는 나라다. 대만이나 뉴질랜드처럼.

2020-03-21

해외 언론이 한국의 방역에 깜짝 놀라는 진짜 이유

간단하다. 외국 언론은 상대적으로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다. 해외 언론이 한국의 방역에 깜짝 놀라는 진짜 이유는 그러므로, 그 언론이 자리잡고 있는 국가의 방역을 비판하기 위한, 헐리우드 액션이다.

마치 '엄친아'와 '엄친딸'이 완벽한 존재인 것과 비슷하다. 엄마 친구의 아들 딸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애여서가 아니라, 내 새끼 잘 되라고 혼내기 위해 엄마들은 자기 친구의 아들 딸을 세상 최고의 모범생이자 효자 효녀인 것처럼 칭찬한다.

외국 언론의 기사에서 한국이 바로 그 '옆집 걔'다. 외국 언론은 우리가 실제로 어떤 나라인지 진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실제로 진심어린 예찬을 보내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국 언론은 왜 이렇게 '해외 언론이 한국 방역에 깜짝 놀라 엄지척을 했다'에 집착하는 걸까? 상대적으로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방역 대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런 문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취재하는 대신, '국뽕팔이'에 도움이 될 요소들을 긁어서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해외 언론의 찬사'를 보면, 한국 언론의 수준에 화가 난다.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견인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러나 지금 언론이 하는 짓들은 어떤가. 국민을 '나랏님의 멋진 모습' 앞에 따봉 날리는 청맹과니 박수부대로 길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해외 언론이 한국의 방역에 깜짝 놀라' 같은 저질 기사가 계속 나오는 한,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반면, 그 나라의 주요 언론을 아무리 뒤져도 한국처럼 이 와중에 이런 재앙을 소재로 국뽕팔이를 하는 기사가 보이지 않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다.

단적인 비교를 해보자. 뉴욕타임스에 '세계가 깜짝 놀라는 미국의 COVID-19 검사 속도' 같은 기사가 나오나? 안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뉴욕타임스'를 지향한다는 수많은 진보 언론은 그딴 기사를 하루가 멀다하고 내보낸다. 그 정도면 모를까, '미국인들은 사재기를 한다네요 우리는 안 하는데~' 같은, 불과 한 달 전의 현실을 까맣게 잊은 듯한 국뽕 기사도 최근 쏟아져 나왔다.

이게 우리의 수준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가 칭찬하는 한국'을 여태까지도 찾아 헤매는, 이 와중에도 그러고 있는, 그게 바로 우리 언론의 수준이고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 되려면 멀었다. 그런 면에서라면, 사회 엘리트의 건강한 정신과 판단과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여전히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20-03-19

마트 사재기, 우리도 했었다.

'미국, 유럽인들은 왜 사재기를 할까,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한국인들은 안 그러는데?' 같은 소리 하면서 국뽕 빠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우리도 그짓 다 했다.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2월 23일자 기사를 보자.

대량 구매 행렬은 대구에 이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22일 경남 창원시 마산구의 한 마트에서도 라면, 생수 등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섰다. 같은 날 창원구 진해구의 한 온라인 카페에는 마트 내 유제품 판매대가 텅텅 빈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 서초구 코스트코 양재점에서도 매장 개점 이후 한 시간 만에 생수 수백 세트가 동났다. 서초구 거주자 박모 씨는 “서울도 이제 사재기 붐이 이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마스크나 생활용품 구매에 수백만 원을 쓰는 경우도 있다. 지난 주말 회원 수가 190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 온라인 커뮤니티 ‘파우더룸’에 ‘코로나19 때문에 100만 원을 썼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밖으로) 최대한 안 나갈 수 있도록 비상식량, 비누, 세정제, 마스크, 생활용품 등을 사 놓았더니 100만 원이 넘었다”고 했다. 이에 다른 회원들은 “나는 200만 원을 썼다” “남 일 같지가 않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실제로 온라인 주문이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G마켓에 따르면 20일 즉석밥과 라면 매출은 일주일 전인 13일 대비 각각 54%, 80% 늘었다. SSG닷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월 20일부터 2월 20일까지 식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8% 증가했다.

"마트 먹거리 매대 ‘텅텅’…코로나19 확산에 ‘사재기’ 행렬 잇따라", 동아일보, 2020년 2월 23일

다들 좀 최소한의 품위를 갖고 살면 좋겠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불안하면 일단 주변 사람들 보고 따라한다. 주변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러 가면 나도 사러 가야 안 불안하다.

미국인들이 사재기를 하는 것은 대체로 미국인들이 집이 넓고, 넓은 지역을 점유해서 살기 때문에 한국처럼 모든 것을 온라인 배송으로 해결하는 게 만만치 않아서, 즉 '생필품 서플라이' 그 자체가 하나의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 역시 한국처럼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마트에 직접 가서 우르르 사고 있을 뿐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당신도 사람이다. 외국 네티즌들이 한국 약국 앞에 마스크 사겠다고 줄 선 거 보면서 낄낄거리면 기분 좋겠나? 정말이지, 너무도 천박하다.

마트 사재기, 우리도 했다. 한 달도 채 안 된 일이다. 윤리의 많은 부분은 기억력에서 나온다. 기억을 좀 하면서 살자.

2020-03-18

[캠페인] 지금, 세계문학전집을 읽읍시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소설이 아주 잘 팔렸습니다. 특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프랑스 출판의 기틀을 닦은 가스통 갈리마르 평전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영화와 연극의 관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독일 점령 시기에는 책이 왕이었다. 또한 라디오 파리, BBC와 같은 라디오 방송은 프로그램도 재밌지 않았고 정치색이 지나치게 강해서 프랑스 사람들은 책을 더욱 즐겨 찾았다. 파리에서나 지방에서 책이 지루함과 박탈감과 우울을 이겨 내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진 덕분에, 종이 공급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출판사들은 원만하게 사업을 꾸려 갈 수 있었다. <가스통 갈리마르: 프랑스 출판의 반세기>, 303-304쪽.

사회 활동의 제약이 있고, 가슴은 답답하고, 불평을 함부로 털어놓으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그런 상황. 그럴 때 2차 대전을 겪던 프랑스인들은 소설을 읽었습니다. 두껍고, 재미있고, 검증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말이죠.

21세기의 인류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일전에 Financial Times에서 본 보도에 따르면 COVID-19 발병 이후 중국의 모바일 게임 업체들의 주가가 대폭 올랐다고 합니다. 다들 스마트폰 게임 아니면 유튜브, 혹은 SNS에서 뇌를 벅벅 긁으며 도파민을 쥐어짜거나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에코 체임버에 갇힌 채 답답해하며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일반적인 모습 같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책이 있으니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책장에도, 괜히 사두고 안 읽는 '세계문학 고전'이 한 두 권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그걸 읽을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사실 꼭 '세계 문학의 고전'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책보다는 한참 전에 나온 책, 시간의 검증을 버텨낸 책, 그리고 어디에나 흔히 있는 책을 우선 권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책을 읽고 있을 때만은, 지금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과 '거리두기'가 가능한 그런 책 말이죠. 그럼 당연히 세계문학전집에 속하는 이런저런 소설들이 1순위로 거론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만 줄창 권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사회적으로 거리를 둬서, 그럼 뭐 어쩔 건가요? 아이들은 시간이 남아 PC방에 가고 거기서 또 집단 감염이 됩니다. 어른들은 예수가 아니라 이웃을 만나고 싶어서 교회를 가고 또 집단 감염이 됩니다.

인문주의자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 단 하나,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책을 읽자고 권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책과의 거리 좁히기' 입니다. 냉동실에 꽁꽁 얼어있는 식재료를 이번 기회에 털어 먹듯이, 책장 위에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고전 소설들을 꺼내어, 읽읍시다.

사족) 저는 W. G. 제발트의 책 중 <아우스터리츠>는 두 번, <토성의 고리>는 한 번 읽었는데, <현기증/감정들>은 사놓고 아직 안 봤군요. 지금이 그것을 읽을 때인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도 각각 나름대로 '아 이거 읽어야지 언젠가'의 리스트를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 언젠가에 적합한 시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