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소와 감기 걸린 닭에 대한 전 지구적 고찰 (GQ 2008/06)
그것을 인간 광우병이라고 불러도 좋고, 혹은 vCJD라고 해도 상관 없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과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의 정확한 발생 원인 및 감염 경로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확실한 것들을 우선 짚어보자. 첫째,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서 사망하는 질병 중 인간이 걸릴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CJD, vCJD, 그리고 파푸아섬에서 식인 풍습을 가지고 있던 원시인들이 걸리던 '쿠루'라는 풍토병. 둘째, 이 세 가지 질병은 모두 걸리면 수년의 잠복기를 거친 후 100% 사망한다. 셋째, CJD는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 발병 확률은 100만분의 1도 채 안 된다. 넷째, 동물성 사료의 사용을 금지한 이후, 영국에서 CJD와 vCJD의 발병률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세계에서 인간 광우병이 가장 많이 발병한 나라가 영국임을 감안해볼 때, '통계적'으로 보자면 동물성 사료의 사용 금지 이후 광우병의 위험은 상당히 잘 통제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측에서 '끝장 기자회견'과 이후 <MBC 100분 토론>을 통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에 노출되어 있다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값싸고 질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서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어떤 우유 회사가 자기들이 만드는 우유 100만 팩 중 하나에 청산가리를 넣어서 판다고 치자. 그런 경우에도 그것을 먹고 죽을 가능성은 고작 100만 분의 1에 불과하지 않은가? 대체 어째서 우리가 고기 한 점을 먹을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100만분의 1'의 확률이라는 것이, 위에서 말한 CJD의 자연발병률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가 먹는 한우가 순수하게 풀만 먹고 자란 소가 아니라면, 우리는 vCJD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은 매일같이 고기국을 먹고, 소 피를 응고시켜서 선지국을 끓여먹으며, 소의 뼈를 고아서 곰탕을 만들어 먹기 때문에 특별히 더욱 위험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에서는 그런 비위생적인 "Behavior(행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윽박질렀지만, 소의 각종 부산물을 섭취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갈아서 소고기 패티를 만든 후 그릴에 구워 햄버거 빵 사이에 끼우는 것이다.
즉, 소의 살코기가 아닌 부산물을 섭취하는 것이 비위생적인 "Behavior(행태)"라는 정부측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는 타당하지만, '미국분'들도 그렇게 드시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전혀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동시에 그 사실은 유독 한국인들이 광우병에 더욱 위험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례가 되기도 한다. 설렁탕 먹는 한국인들이 광우병에 집단감염될 우려가 있다면, 그건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이 모두 미국산 쇠고기만 먹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미국인들이 먹는 햄버거에 뉴질랜드산 청정우의 살코기만을 갈아 넣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광우병 희생자가 줄을 잇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진작에 미국에서 먼저 발생했어야 한다. 물론 과격한 반대론자들은 '미국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종류의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만 있을 뿐이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하지만 기왕 '정부 탓'을 시작했으니, 여기서는 미국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 쪽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정부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번 쇠고기 협정이 한미 FTA의 조속한 타결을 위한 '미국 퍼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지만, 정부측에서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기 때문에, 심증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물증을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정황만을 놓고 보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이번 쇠고기 협상의 타결에 있어서 상당히 불성실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듯하다. <<경향신문>>은 5월 12일 "사료조치, 美에 백지위임 '제2의 쇠고기 파동' 조짐"이라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광우병 감염우려가 높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선면수입을 허용하면서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 없이 미국에 사실상 '백지 위임'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달 25일 연방관보를 통해 공포한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 내용과 다른 설명을 해놓고는, 그 사실이 폭로되자 "영문 번역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내놓았다.
이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얼마나 높은가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과학적인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인 문제가 다른 층위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뼛조각'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의 통관을 가로막던 정부가,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것을 수입해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YTN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돌발영상>의 소재가 되는 영광을 굳이 떠안고 싶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쇠고기 수입 협상을 둘러싼 의혹들을 모두 '정치적'인 것으로 몰아붙이고, '미친 소 먹고 죽기 싫다'며 거리로 나선 10대들의 '배후'를 캐겠다고 눈에 쌍심지를 켠 정부의 태도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음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의 그러한 대응은 도리어 탈정치적이던 10대들이 정치적으로 결집하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삶이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때에 따라서는 아주 단순한 반발의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의 10대들은 몸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책적인 것에 더욱 가까웠는데,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자들이 있다'는 발언으로 인해 더욱 정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말을 전달하는 농림부 관료들의 화법 또한, 또 다른 차원에서 정치적이며 또한 철학적이기까지 한 논점을 던져준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직접 '확률'의 문제를 들이밀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는 것이다. 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대단히 잘못된 이유는 사안의 본질을 전달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로또 1등 당첨의 꿈을 꾸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제대로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서민적인 마스크를 지닌 탤런트 손현주씨가 가문의 영광을 누리며 팔짝팔짝 뛰는 모습에 서민들은 스스로를 오랫동안 대입해왔다. 그런데 그게 바로 광우병 걸릴 확률이라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닌가. 정부측에서는 '사실'을 전달하는 방법만 알았지 '사태'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절차와 관련된 정치적 논란에서, 정부측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기존의 입장을 뒤엎는 협상을 하면서, 그러한 입장 변화를 국민들에게 전혀 납득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불거진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대응만을 보여줬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바대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10~20년 후 인간 광우병 환자가 속출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식품의 위생 차원을 넘어 식품의 안전까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과잉해석이다.
물론 나는 MBC <PD 수첩>에서 vCJD의 위험성을 경고함으로써 여론을 환기시킨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편이다. 적어도 그들은 1년 전 사설에서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근심하다가 오늘에 와서는 '10대들의 정치적 배후'를 묻던 주요 일간지들보다 훨씬 언론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광우병은 국제적으로 볼 때 상당히 잘 통제되고 있으며, 그 전염성은 HIV(에이즈) 등에 비해 매우 낮다. 정작 지금 세계적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5월 12일 현재 서울 송파구에까지 상륙한 AI, 즉 조류독감이다.
현재로서는 조류독감이 육류 섭취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하고 있으며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만약 그러한 변종이 대기 중에 유포될 경우 한국은 재앙에 가까운 독감 열풍에 휩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광우병 정국'에 심취한 네티즌들은 조류독감이 위험하다는 보도를 소가 닭 보듯 할 뿐이다. 정부에서 '물타기'를 하기 위해 언론에 자료를 뿌리고 있다고 냉소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1918년 전 세계적으로 4000만에서 1억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광우병이 아닌 독감이었음에도, 한국인들은 과학을 불신하고, 언론을 경멸하며,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소의 뇌에 구멍이 뚫리는 것보다 더욱 걱정스러운 일은 객관적인 지식에 대한, 또한 시민들 스스로 구성하는 공공성에 대한 믿음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바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조망해본다면, 질병의 확산과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광우병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조류독감이다. 역시 국제적인 차원에서, 또한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검토해볼 때 지금처럼 미국산 쇠고기에 한국 시장을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20세기가 IT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BT, 즉 생명공학(Bio Technology)의 시대이다. 핸드폰을 팔아 밀가루를 사오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공업 생산품의 가격은 특히 중국의 발전으로 인해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반면, 작년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의 가격은 자그만치 287퍼센트나 치솟았다. 이렇다보니 세계 각국은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농업과 관련된 다국적 기업들이다. 모사익(Mosaic Co.)은 319퍼센트, 포타쉬(Potash Corp.)는 140퍼센트, 몬산토(Monsanto Co.)는 105퍼센트씩 지난해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첨단 산업'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농업이 첨단산업이고, 소 키우고 닭 치는 것이 고부가가치 산업인 시대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검역 주권까지 포기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한국 축산 시장을 무차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하며, 그러한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 또한 우리 아이가 광우병에 걸리게 되지나 않을까 근심할 뿐 근본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국 축산 농가가 모두 쓰러진다면 경쟁자를 물리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업체들은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을 높일 것이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가 졸지에 '비싸고 맛없는 쇠고기'로 돌변하겠지만 그쯤 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순간에도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어 닭장 속으로 날아들어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이렇듯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한국이 가운데 놓인 평면 지도가 아닌, 둥그런 지구본 위에 올려놓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 노정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이 원고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는 여기: https://basil83.blogspot.com/2008/05/blog-post_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