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4

조국에는 ‘조란다 원칙’, 구치소선 인권 참사

 [노정태의 뷰파인더⑮] 박범계 첫 임무, 尹 향한 공세 아닌 방역

●세기의 피고인 에르네스토 미란다
●인권의 역사는 범죄자 인권 보호의 역사
●경멸할만한 자의 인권도 똑같이 보호
●現정권 고위층 권리만 보호하나
●秋, 尹 공격할 사이 교정시설 난장판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대규모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해 1229일 한 수용자가 “살려주세요”라고 쓴 문구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뉴스1]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 범인과 경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마주 선다. 총격전이 오가고 범인을 체포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경찰이 범인을 향해 뭔가 읊어준다.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고, 어쩌고저쩌고…. 

그 유명한 ‘미란다 원칙’이다.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때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하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 등을 알려줘야 한다. 

‘미란다’는 누구일까. 때는 1963년 3월. 당시 21세이던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는 18세 소녀를 납치하고 강간한 혐의로 체포돼 있었다. 2시간여 심문을 거친 끝에 죄를 자백했다. 그는 “자백이 임의로 위협이나 면책의 약속 없이 내가 하는 진술이 나에게 불리하게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의 법적 권리들을 충분히 알고서 취해졌다”는 내용이 담긴 진술서에 서명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미란다의 태도가 달라졌다. 미국 연방수정헌법에 규정된 피의자의 권리를 제대로 고지 받지 못한 채 체포되고 심문받아 자백했으니 무효라고 주장했다. 사실이었다. 경찰은 미란다에게 연방수정헌법 제6조에 따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미란다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진술서에 서명했다. 

애리조나 주법원은 진술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절차상 하자가 있었지만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며, 진술서에 적힌 내용을 보고 최종적으로 서명했으니 결국 동의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렇게 내려진 단기 20년 장기 30년의 징역형을 애리조나 주 대법원도 확정지었다.

미란다 원칙의 탄생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966년 6월 13일, 5대 4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되는 자백이 불법 증거이며, 따라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연방대법원은 미란다가 피고인에게 반드시 주어져야 할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고, “이러한 피고인의 권리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 그 진술은 증거로 허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미란다 원칙이 탄생한 순간이다. 

적잖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이야기다. 미란다는 결백한 양심수도, 존경받을만한 인권변호사나 법조인도 아니었다. 그 혐의가 명백한 강력범죄자였다. 하지만 오늘날 미란다 원칙은 인권 보호의 역사에 빛나는 한 이정표가 됐다. ‘나쁜 놈’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현대 문명의 상징이 됐다. 

우리는 흔히 ‘인권 보호’라는 말을 들으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권의 보호를 떠올린다. 착한 사람, 선량한 시민을 지키는 게 인권 보호라고 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인권의 역사는 언제나 범죄자 인권 보호의 역사였다. 

1215년, 영국 귀족들은 존 왕에게 흔히 ‘마그나 카르타’라고 부르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국왕의 권리를 법적으로 제한했고, 국왕이 귀족의 재산을 침해하거나 귀족을 처벌하려 할 때 여러 제약을 부과하는 게 골자였다. 귀족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 왔을 때도 대비했다. 마그나 카르타 제39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자유민은 같은 신분의 사람들에 의한 적법한 판결이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아니하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아니하고, 추방되지 아니하며, 또한 기타 방법으로 침해당하지 아니한다. 왕은 이에 뜻을 두지 아니하며, 이를 명하지도 아니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은 지체 높은 귀족이나 왕족만을 뜻하는 표현이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정당한’ 절차에 따라 스스로를 재판하겠다는 이야기다. 애초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리만을 지킬 생각이었다. 이에 왕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귀족뿐 아니라 중산층의 힘도 커졌다. 귀족들이 왕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법으로 요구할 수 있다면, 중산층과 평민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1628년 의회는 찰스 1세에게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을 들이밀었다. 신체의 자유, 조세법률주의 등 중요한 인권 개념이 더욱 넓게 확장됐다. 이후 168912월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제정됐다. 영국은 사상 최초의 입헌군주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중산층과 시민이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정치적 바탕이 됐다. 영국은 이렇게 근대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한국식 민주주의’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늘어나면서 방역 및 교정당국이 서울동부구치소 직원과 수용자를 대상으로 4차 전수조사를 하기로 한 지난해 1230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직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지난번 ‘뷰파인더’ 지면에서 다뤘던 내용을 떠올려보자. 소설가 이인화는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대왕이 노론으로 대표되는 양반들을 꺾지 못해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의 길을 걷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 이덕일 역시 유사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 이는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에 빗대면서 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세력을 노론에 대입한다.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공통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 ‘왕권이 강화되고 신하, 귀족 등의 권리는 축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범죄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과 제도 및 관습은 개혁의 걸림돌이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는 인권 타령은 잠시 접어두고 더 중요하고 숭고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온 나라가 힘을 모아야 한다.’ 박정희가 주창한 ‘한국식 민주주의’에 가까운 세계관이다. 

실제 역사는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인권의 토대에는 영국의 귀족들이 왕을 협박해 서명하도록 만든 문서가 자리 잡고 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당할 그날에 대비해, 왕이 자신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온갖 법적 장치들을 넣었다. 

그런 것들이 정교화 되고, 축적되며, 중산층과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산된 과정이 인권의 역사다. 인권의 보호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지체 높은 귀족, 존경할만한 중산층뿐 아니라, 미란다처럼 여성을 납치하고 강간한 강력범죄자까지 법에 의해 엄격한 보호를 받게 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란다의 범죄를 옹호하지 않았다.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체포, 수사, 재판받을 권리’라는 추상적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수호했다. 사회가 가장 경멸할만한 자의 인권마저도,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이의 인권과 같은 기준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실로 당연해 보이지만 준수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현대 법치국가의 근본 원리다. 

한국 역시 미흡하게나마 같은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경찰이 피의자를 때리고 윽박지르며 수사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 게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묘사된 ‘가학수사’는 희화화된 측면이 있을지언정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수위를 낮추었다고 봐야 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경찰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수사로 인해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사망했다. 그 후 경찰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피의자를 심문하지 못하게 됐다. 세상이 뒤집히면서 얻어낸 건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뿐만이 아니었다. 

구치소와 교도소 재소자들의 인권 역시 점차 개선됐다. 신영복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잘 묘사돼 있다시피 한국의 수용 시설은 인격적 대우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한국사회는 민주화 이후에서야 재소자의 인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교도관이 재소자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 오늘날의 기준이 확립됐다. 

대한민국은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이 손바꿈을 하면서도 그와 같은 경향은 꾸준히 유지됐다. 하지만 최근의 몇몇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우려스럽다. 가장 취약한 계층과 계급,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보호받아야 할 인간의 권리가 아닌, 오직 현 정권 고위층의 권리만을 보호하는 듯한 경향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서울 동부구치소’라는 난장판
지난해 1231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정시설 코로나19 집단감염 현황 및 대책 브리핑’을 열고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확진자 집단감염 발생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뉴스1]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왔다. 형이 확정된 후에도 구치소에 수감되는 경우가 없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구치소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가 갇혀 있는 곳이다. 우리와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지닌 사람들이다. 대단히 온정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겠으나, 적어도 생명과 안전, 건강이라는 기본적 요소는 지켜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하는 일에만 혈안이 돼 있었을 뿐, 본인이 책임진 시설에서 어떤 난장판이 벌어지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국·정경심 부부의 재판 과정 또한 우리가 민주화 이후 경험해온 현실과는 사뭇 달랐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이른바 ‘잡범’들의 인권은 보호하되 ‘범털’들은 검찰 수사 및 언론 취재 등을 통해 그 치부를 밝혀 여론의 심판을 받게 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잡음이 터져 나오고 때로는 비극적 결말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민사회가 정치 권력을 통제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달랐다. 피의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고 비공개로 출석해 8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으면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으로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지만 대부분의 경우 잘 사용하지 않는다. 형량이 높아질 수도 있고 구속영장 청구 사유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7년 3월 22일 오전 9시 7분, 조국이 쓴 트윗에서 잘 묘사하고 있는 바와 같다. “피의자 박근혜, 첩첩히 쌓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와 ‘아니다’로 일관했다. 구속영장 청구할 수밖에 없다. 검찰, 정무적 판단하지 마라.”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은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보장되는 권리다.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란다 원칙’이 그러한 권리를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계층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달리, ‘조란다 원칙’은 그저 조국 본인 및 현 정권 관계자들의 인권만을 챙기는 얌체 짓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1966년으로 되돌아가보자. 미란다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다시 재판정에 섰다. 저지른 범죄가 엄연히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자백을 증거로 쓸 수는 없게 됐지만, 많은 범죄자가 그렇듯 그는 자신의 범행을 여기저기 떠벌이고 다녔다. 미란다와 동거하던 여성이 증인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 후 1972년 가석방된 미란다는 1976년 칼에 찔려 죽었다. 술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다가 시비가 붙었는데 사태가 커졌다. 미란다를 살해한 혐의를 받은 용의자는 미란다 원칙을 내세워 묵비권을 행사했다. 경찰은 그의 범행을 입증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석방됐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형사 피의자, 수형시설 수감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눈감아준다는 말과 전혀 다르다. 정확하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 범죄를 수사하고 재판해 처벌해야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선다. 

드러날 범죄는 드러나고, 처벌받을 자는 처벌받게 돼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란다 원칙에 의해 풀려났다 해서 미란다의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새로운 증거를 통해 결국은 처벌받았으니 말이다.

진보 정권 시절의 인권
20201223일 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 등 의혹을 받고 있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정 교수는 총 14명에 달하는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남편은 형사소송법 교수였다. 그럼에도 결국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500쪽이 넘는 판결문이 그의 범죄를 자세히 보여준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재판 역시 비슷한 경로로 진행될 전망이다. 

경찰은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주취 폭행,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의혹 등의 사안에서 여당 및 집권 세력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검토했듯 피의자의 인권을 존중하며 수사하는 것과, 피의자의 범죄를 덮어주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미 현 정권에서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데, 더 이상의 퇴행이 벌어져서는 안 되겠다. 

인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가장 약한 자들,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의 인권 역시 우리의 인권과 동등한 잣대로 보호받아야 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총장에 대한 부질없는 정치적 공세를 삼가고, 동부구치소를 비롯한 수형 시설의 코로나19 방역 상황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 진보가 정권을 잡았는데 사회 전체의 인권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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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와 헌법의 수호자: 헌재가 국민의 일반 의지를 대변하는가?

어쩌다보니 2009년 10월에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을 찾았습니다. 당시 맥락은 이렇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미디어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는데, 합법적인 투표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그 법을 헌재에 제소했는데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법학을 배웠던 사람으로서 의문을 품었습니다. 절차적 흠결이 명백함에도 왜 이런 법을 합헌이라고 결정하는가? 국회의원을 국민이 뽑았다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소위 '민주적 정당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헌재는 '헌법적 정당성'을 따져야 하는 기구 아닌가?

제가 여기서 제시한 논제는 이후, 2020년 말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검찰농단 검찰장악 시도를 했던 문재인 정권에 의해 반복됩니다. 문재인 정권 및 그 지지자들은 '민주적 통제'라는 말로 자신들의 법치주의 파괴를 정당화합니다만, 과연 그게 '민주적'이냐, 이 질문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쓴 글을 찾아서 공개하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연찮게 발견한 것을 혼자 보고 묵히기 아까워 이곳에 올립니다.

 

 

헌법재판소와 헌법의 수호자
헌재가 국민의 일반 의지를 대변하는가?
노정태/칼럼니스트 | 승인 2009.10.31 12:07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45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올바른 답을 찾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학 교수였던 칼 슈미트가 던진 질문은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안팎으로 엄습해오는 헌법적 위기 앞에서 그는 물었다. “누가 헌법의 수호자인가?

당대 최고의 헌법학 교수 중 한 사람이었던 한스 켈젠이 그 ‘떡밥’을 물었다. 칼 슈미트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헌정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협이 다가올 때, 그것을 지켜내야 할 최종적인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헌법의 수호자’라는 시적인 단어는 대단히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스 켈젠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 떡밥을 있는 그대로 물지 않고, 대체 헌법의 수호자라는 게 뭐냐, 의회가 법을 만드는 것,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을 심판하는 것, 행정부가 행정 작용을 통해 국민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 등이 모두 헌법 수호활동이다, 라는 식의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논쟁은 명확한 결론 없이 끝나버렸다. 칼 슈미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이야말로 헌법의 수호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루소의 정치 이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었고, 국민의 ‘일반 의지’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자만이 헌법의 수호자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기껏해야 각 지역에서 당선된, 혹은 정당대표로 올라온 국회의원 개개인은 헌법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의회 전체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의회의 견해는 분열되어있고, 당파적인 갈등으로 얼룩져 있지 않은가. 헌법적 위기의 순간에 그들이 과연 인민 전체의 ‘일반 의지’를 대변할 수 있을까? 의회는 ‘결단’을 내릴 수 없다. 칼 슈미트는 고개를 저었고, 그것은 독일 국민들의 일반 정서를 반영하고 있었다. 결국 독일인들은 그들의 ‘일반 의지’의 대변자로, ‘헌법의 수호자’로, 히틀러 총통을 옹립한다.

‘헌법의 수호자 논쟁’의 전후 과정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민주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손쉽게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국민의 뜻’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라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문제가 도출된다. 대체 그 ‘국민의 뜻’이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그 ‘일반 의지’를 과연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비록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 뜻’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을 투표라는 과정을 통해 누군가 혹은 어떤 기관이 대표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얼핏 생각하면 그것은 ‘대표성의 원리’에 따라 적절한 민주주의 이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와 완전히 다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개별적인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뜻에 반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승인을 받은 헌법 기관이지만, 국회의원은 기껏해야 지역구 주민 수십만의 주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가령 이명박 대통령은 이정희 의원보다 곱절로, 아니 따따블로 ‘대표성’을 지니는 인물이 되어버리고, 따라서 그의 말은 더 많은 국민의 의지를 담아낼 것이며, 정당하다. 이런 결론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회 전체도 마찬가지이다. 의회는 단일한 의사를 표현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즉 본래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분열성으로 인해, 한 사람이므로 단일한 대통령보다 ‘국민의 뜻’을 덜 반영하게 된다. ‘대표성의 원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그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왕을 뽑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당연히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민주주의에 필요한 모든 정당성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우리가 ‘내 맘대로 산다, 그것이 나다’라는 식의 단순한 주장만을 반복하며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없듯, 민주주의 또한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한다’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의 ‘일반 의지’에 따라 선출된 헌법의 수호자였다.

흔히들 사람들은 사법부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칭하곤 한다. 대통령도 선거로 뽑고 국회의원도 선거로 뽑지만, 판사는 임명되고 승진하는 별개의 직급 구조를 가진 집단이다. 반면 의회는 전통적으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간주되어왔다. 헌법재판소가 의회의 결정을 함부로 뒤엎는 것은 당장은 속 시원한 일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옳지 않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미디어법에 대해 절차는 위법하지만 무효로 선언할 수 없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는 바로 그런 입장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고전적인 민주주의 모델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의회가 국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기관이라는 것은 영국의 의회주의가 갓 시작할 무렵, 그리고 아메리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무렵을 지배했던 헌법관이었다. 당시에는 행정권을 ‘왕’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왕이 뽑은 상원은 귀족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결국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만한 집단은 하원 뿐이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반화된 현대 사회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의 말을 인용해보자.

시민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더 이상 헌법 이론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정부 내의 특별한 대행 기관인 하원만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이제 정부 전반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염두에 두지, 그 한 부분에 대한 권리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강조는 인용자. 189쪽, 『절반의 인민주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국민들은 그가 한나라당에 의해 탄핵당할 때 ‘아, 우리 국민들을 대변하는 헌법기관인 국회가 권력자인 대통령을 끌어내었구나, 나의 일반 의지가 실현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은 그와 정 반대였다. ‘내가 뽑은 대통령한테 네깐 놈들이 뭐하는 짓이냐’는 분노의 파도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러한 헌법적 인식이 타당하냐 그르냐를 떠나서, 국회나 대통령이 그들이 지닌 대표성만으로 모든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미디어법과 관련한 사항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헌재가 인정한 바와 같이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은 대리투표를 했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겼으며 입법 절차를 전혀 지키지 않았다. 특히 대리투표의 경우, 적어도 필자가 아는 바에 따르면, 87년 민주화 이후 이렇게 명백한 대리투표 현장이 발각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므로 그들이 만든 법은 정당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의 국회 격투기를 더 봐야만 하게 생겼다. 문을 뜯어 부수고 야당 의원들을 패대기치는 것도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니만큼, 절차적으로 타당하지 않더라도 무효화할 수 없는 입법 행위의 일부가 된다고 추인해버렸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는 누구인가? 어떤 헌법기관이 최종적인 헌법의 수호자로 작동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그래도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헌법 수호 기관으로 활동해야 하며 그러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나는 칼 슈미트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의 헌재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노정태/칼럼니스트  mediaus@mediaus.co.kr

2020-12-31

독서 목록(2020)

  1. 20200110 - 아툴 가완디, 곽미경 옮김, 『어떻게 일할 것인가』(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2. 20200114 - 라종일, 『세계의 발견』(서울: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9)
  3. 20200114 - 라종일, 『낙동강』(경기도 파주: 형설라이프, 2010)
  4. 20200117 - 매슈 워커, 이한음 옮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5. 20200118 - 이영훈 외, 『반일 종족주의』(서울: 미래사, 2019)
  6. 20200119 - 도야마 시게히코, 장은주 옮김, 『지적 생활 습관: 죽는 순간까지 지적으로 살고 싶다』(서울: 한빛비즈,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7. 20200120 -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이영래 옮김, 『모두 거짓말을 한다』(서울: 더퀘스트,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8. 20200121 - 제임스 클리어, 이한이 옮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서울: 비즈니스북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9. 20200124 - 카렐 차페크 글, 요재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정원가의 열두 달』(서울: 펜연필독약, 2019)
  10. 20200124 - 김웅, 『검사내전』(서울: 부키,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1. 20200129 - 발타자르 토마스, 이지영 옮김, 『비참할 땐 스피노자』(서울: 자음과모음, 2013), 전자책, 리디셀렉트.
  12. 20200201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김정훈 옮김,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서울: 자음과모음, 2013), 전자책, 리디셀렉트.
  13. 20200206 - 스티븐 프레스필드, 류가미 옮김, 『최고의 나를 꺼내라!』(서울: 북북서, 2008)
  14. 20200208 - 다니엘 핑크, 김주환 옮김, 『드라이브』(서울: 청림출판, 2011)
  15. 20200208 - 발타자르 토마스, 김부용 옮김, 『우울한 날엔 니체』(서울: 자음과모음,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6. 20200209 - 롤프 도벨리, 장윤경 옮김, 『뉴스 다이어트』(서울: 갤리온, 2020)
  17. 20200209 - 다니엘 핑크, 이경남 옮김, 『WHEN 언제 할 것인가』(서울: 시공사,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8. 20200211 -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조지 오웰』(서울: 마농지, 2020)
  19. 20200223 - 윌리엄 골딩, 이덕형 옮김, 『파리대왕』(서울: 문예출판사, 1983)
  20. 20200223 - 알베르트 슈바이처, 권혁준 옮김, 『나의 어린 시절』(서울: 정원출판사, 2006)
  21. 20200224 - 마사 너스바움, 조계원 옮김, 『혐오와 수치심』(서울: 민음사, 2015)
  22. 20200225 - 존 로크, 공진성 옮김, 『관용에 관한 편지』(서울: 책세상), 전자책, 리디북스.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68.
  23. 20200227 - 게오르그 카이저, 장영은 옮김, 『칼레의 시민들』(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0)
  24. 20200301 - 루 버니, 박영인 옮김, 『노벰버 로드』(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19)
  25. 20200302 -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서울: 북돋움, 2012)
  26. 20200302 - 김동조,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5)
  27. 20200307 - 마이클 모부신, 이건, 박성진, 정채진 옮김, 『마이클 모부신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서울: 에프엔미디어, 2019)
  28. 20200308 - 장강명, 『댓글부대』(서울: 은행나무, 2015)
  29. 20200312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편(개정판, 전2권):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30. 20200315 - 엠제이 드마코, 신소영 옮김, 『부의 추월차선』(서울: 토트, 2013)
  31. 20200321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편(개정판, 전2권):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32. 20200321 - Pavel Tsatsouline, Kettlebell Simple & Sinister: Revised and Updated Edition(StrongFirst, 2019), 2nd edition, Kindle.
  33. 20200327 - 김동조,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서울: 아웃사이트, 2020)
  34. 20200404 - 프랑코 모레티, 이재연 옮김, 『그래프, 지도, 나무: 문학사를 위한 추상적 모델』(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20)
  35. 20200411 - 이소룡, 홍석윤 옮김, 『물이 되어라, 친구여 - 이소룡 어록』(서울: 필로소픽, 2018)
  36. 20200419 - 아서 코넌 도일, 이경아 옮김, 『주홍색 연구』(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6)
  37. 20200424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38. 20200429 - 버튼 루셰, 박완배 옮김, 『의학탐정』(서울: 실사구시-실학단, 1998)
  39. 20200430 - 리사 샌더스, 장성준 옮김,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40. 20200430 - 히포크라테스, 여인석·이기백 옮김, 『히포크라테스 선집』(경기도 파주: 나남, 2011)
  41. 20200503 - 팀 마샬, 김미선 옮김, 『지리의 힘』(서울: 사이, 2016)
  42. 20200506 - Christopher McDougall, Natural Born Heroes(New York: Knopf, 2015)
  43. 20200508 - 마이클 코넬리, 한정아 옮김, 『배심원단』(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20)
  44. 20200510 - 다니엘 디포, 정명진 옮김,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서울: 부글북스, 2020)
  45. 2020051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46. 20200520 - Jerry Saltz, How to Be an Artist(New York, Riverhead Books, 2020)
  47. 20200524 - 애머런스 보서크, 노승영 옮김,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언가에 관한, 책』(서울: 마티, 2019)
  48. 20200526 - William Ewart Fairbairn, All-in Fighting(Naval and Military Press, 2012), Kindle.
  49. 20200530 - 앨런 무어 글, 데이비드 로이드 그림, 임태현 옮김, 『브이 포 벤데타 30주년 디럭스 에디션』(서울: 시공사, 2020)
  50. 20205031 - 엔도 히데키, 김소윤 옮김, 『인체, 진화의 실패작』(서울: 여문책,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51. 20200531 - 바바라 스톡 글·그림, 이예원 옮김, 『반 고흐』(경기도 파주: 미메시스, 2012), 전자책, 리디셀렉트.
  52. 20200605 - 로버트 그린, 이수경 옮김, 『마스터리의 법칙』(경기도 파주: 살림, 2013), 전자책, 리디셀렉트.
  53. 20200612 - 마딕 마틴·제임스 V. 하트·사이드 필드 외 지음, 셰리 엘리스·로리 램슨 엮음, 안희정 옮김, 『시나리오 쓰기의 모든 것』(서울: 다른, 2016)
  54. 20200614 - 사이먼 하비, 김후 옮김, 『밀수 이야기: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서울: 예문, 2016), 전자책, 리디셀렉트.
  55. 20200621 - 미치코 가쿠타니, 김영선 옮김, 정희진 해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경기도 파주: 돌베게, 2019)
  56. 20200630 - 제프리 슈워츠·레베카 글래딩, 이상원 옮김, 김학진 감수, 『뇌는 어떻게 당신을 속이는가』(경기도 고양: 갈매나무, 2012)
  57. 20200701 - 김성종, 『최후의 증인 上』(서울: 새움, 2015)
  58. 20200702 - 김성종, 『최후의 증인 下』(서울: 새움, 2015)
  59. 20200704 - 김성종, 『제5열 上』(서울: 남도, 1992)
  60. 20200704 - 김성종, 『제5열 中』(서울: 남도, 1992)
  61. 20200704 - 김성종, 『제5열 下』(서울: 남도, 1992)
  62. 20200706 - 마쓰모토 세이초, 김경남 옮김, 『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 세이초, 반생의 기록』(서울: 모비딕, 2019)
  63. 20200708 - 이재찬, 『영양만두를 먹는 가족』(서울: 네오픽션, 2020)
  64. 20200718 -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옮김, 『노르웨이의 숲』(서울: 민음사, 2013)
  65. 20200718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서울: 문학사상, 2009)
  66. 20200718 -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서울: 현대문학, 2016)
  67. 20200719 - 사이토 미나코, 나일등 옮김, 『문단 아이돌론』(서울: 한겨레출판, 2017)
  68. 20200719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69. 20200719 - 마쓰모토 세이초, 김경남 옮김, 『점과 선』(서울: 모비딕, 2012)
  70. 20200726 - 테오도어 W. 아도르노, 폴커 바이스 해제, 이경진 옮김, 『신극우주의의 양상』(서울: 문학과지성사, 2020)
  71. 20200802 - 프레더릭 포사이스, 강혜정 옮김, 『자칼의 날 1』(경기도 파주: 국일출판사, 2006)
  72. 20200802 - 프레더릭 포사이스, 강혜정 옮김, 『자칼의 날 2』(경기도 파주: 국일출판사, 2006)
  73. 20200809 - H. P.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서울: 황금가지, 2009)
  74. 20200812 - 이언 매큐언, 한정아 옮김, 『속죄』(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3)
  75. 20200815 - 줄리언 반스, 송은주 옮김, 『시대의 소음』(경기도 파주: 다산북스, 2017)
  76. 20200816 -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우석훈 해제, 『386 세대유감』(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77. 20200816 -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서울: 민음사, 2015)
  78. 20200817 - 조국백서추진위원회,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서울: 오마이북, 2020)
  79. 20200818 - 김고명,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고 싶습니다』(경기도 고양: 좋은습관연구소,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80. 20200818 - 질 볼트 테일러, 장호연 옮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경기도 파주: 윌북,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81. 20200822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서울: 동아시아,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82. 20200823 - 볼테르, 이효숙 옮김, 『미크로메가스』(서울: 바다출판사, 2011)
  83. 20200827 - 로드 던세이니, 정보라 옮김,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서울: 바다출판사, 2011)
  84. 20200830 - Victor M. Koga, 스포츠서적 편집실 엮음, 『자기 방어술』(서울: 일신서적, 2005)
  85. 20200830 -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옮김, 『러셀 서양철학사』(서울: 을유출판사, 2019), 전면개정판.
  86. 20200902 - 데이비드 A. 케슬러, 이순영 옮김, 『과식의 종말』(서울: 문예출판사, 2010), 전자책, 리디셀렉트.
  87. 20200905 - James Sallis, Drive (Orlando, Florida: Harcourt, 2005)
  88. 20200917 - 오승은, 임홍빈 옮김, 『서유기 제1권』(서울: 문학과지성사, 2003)
  89. 20200926 -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최완규 옮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서울: 시공사, 2012), 전자책, 리디셀렉트.
  90. 20201011 -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소설가의 각오』(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1999)
  91. 20201016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60년대 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92. 20201019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서울: 을유문화사, 2015), 전자책, 리디셀렉트.
  93. 20201025 - 애거서 크리스티, 김남주 옮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서울: 황금가지, 2002),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94. 20201025 - 애거서 크리스티, 신영희 옮김, 『오리엔트 특급 살인』(서울: 황금가지, 2002),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95. 20201028 - 박성희 『아규멘테이션: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사회의 논쟁법』(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4)
  96. 20201029 - 애거서 크리스티, 권도희 옮김, 『비뚤어진 집』(서울: 황금가지, 2004),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97. 20201029 - 애거서 크리스티, 공보경 옮김, 『커튼』(서울: 황금가지, 2004),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98. 2020110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60년대 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99. 20201107 - 스튜어트 네빌, 이훈 옮김, 『벨파스트의 망령들』(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20)
  100. 2020111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60년대 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101. 20201114 -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이경식 옮김, 『결핍의 경제학』(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4)
  102. 20201126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103. 20201217 - 티모시 페리스, 박선령·정지현 옮김, 『타이탄의 도구들』 (서울: 토네이도,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104. 2020122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105. 20201227 - 리처드 리브스, 김승진 옮김, 『20대 80의 사회』(서울: 민음사, 2019)
  106. 20201228 - 폴 바비악·로버트 D. 헤어, 이경식 옮김,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107. 20201228 - 헤너 코테·크리스티안 룬처, 박종대 옮김, 『직장 내 살인사건』(서울: 지식트리, 2012)
  108. 20201229 - 마크 에임스, 박광호 옮김,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서울: 후마니타스, 2016)

2020-12-30

[朝鮮칼럼 The Column] 실력 없는 권력은 제풀에 무너진다

 

‘킵 캄 앤드 캐리 온’ 구호로 단결 나치 폭격 이겨낸 영국
코로나 버티는 국민의 안정 요구, 文 정권은 ‘독재 면허’로 여겨
윤석열 승리가 보여준 희망… 결국 소신·양심이 이길 것

2차 세계 대전 시기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인근 건물 옥상에서 한 영국 병사가 독일 공습을 감시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차 대전이 눈 앞에 닥쳐온 1939년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평상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New York Times Paris Bureau Collection
2차 세계 대전 시기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인근 건물 옥상에서 한 영국 병사가 독일 공습을 감시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차 대전이 눈 앞에 닥쳐온 1939년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평상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New York Times Paris Bureau Collection

1940년 9월, 영국 런던. 헤르만 괴링이 이끄는 나치 독일 공군이 폭격을 시작했다. 영국 본토가 외적의 공격을 받은 것은 874년 노르만족의 침공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밤이 두 달 넘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10월 10일, 인상적인 기록 사진 한 장이 남았다. 완전히 무너지고 박살이 난 건물 잔해 위에서 우유배달부가 우유를 배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 평범한 영국인들이 전쟁을 하는 방식이었다.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것을 감지한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의 문구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곧 전쟁이 터졌고, 독일군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에는 폭격을 당해도 해가 뜨면 희망찬 하루를 시작했다. 청소부는 청소를 하고 집배원은 편지를 배달하며 우유배달부는 우유를 날랐다. 학생들이 무너진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총리 처칠은 런던을 떠나지 않은 채 지하 벙커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일치단결한 영국인들의 뚝심 앞에 나치의 기세가 꺾였다. 굴하지 않는 의지,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잊혔던 구호 ‘킵 캄 앤드 캐리 온’은 2000년 영국의 한 서점을 통해 재발견됐다. 빨간 바탕 위에 영국 왕관과 흰 글씨로 이루어진 심플한 포스터가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지금도 수없이 재생산·패러디되고 있다. 가령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워싱턴 DC의 한 지하철역에 ‘킵 캄 앤드 워시 유어 핸즈(평상심을 유지하고 손을 씻어라)’라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세상 모든 말이 그렇듯 ‘킵 캄 앤드 캐리 온’ 역시 발화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사납고 거친 적과 맞서는 이들이 스스로를 다독이고자 되뇌는 담담한 투쟁의 구호일 수도 있지만, 권력자들은 ‘입 다물고 네 할 일이나 하라’는 뜻으로 저 말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그랬다. 정부는 바이러스의 진원인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모기를 잡는 꼴이었다. 마스크가 동나고 손 세정제가 품절됐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동요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약국 앞에 줄을 서고 냉장고에 쌓인 식재료를 먹어치우며 1차 유행을 견뎠다. 의료진의 헌신적 자원봉사 속에서 특히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 록다운’으로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났다. ‘킵 캄 앤드 캐리 온’의 힘으로 이겨낸 것이다.

총선을 치르며 무언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국민은 위기 국면 속에서 일단 여당에 힘을 더 실어주었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원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그 상식적인 판단을 ‘독재 면허’로 받아들였다. 병상을 확보하고 백신을 구해야 할 시간에 자기 꿍꿍이에 몰두했다. 공공 의대를 설립한다며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했고,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으며, 자신들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자르려고 난리를 쳤다. 국민이 백신을 요구하자 도리어 화를 내기까지 한다. ‘닥치고 마스크나 써!’

여러모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백신이 개발되며 다른 나라에서는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물량을 제대로 확보해 놓지 않았다. 정권에 해로운 수사는 모두 덮어버리고 반대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180석의 힘으로 온갖 악법을 밀어붙여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올겨울은 여러모로 길고 혹독할 것이다.

대체 저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답을 제시했다. 비정상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기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실력 없는 자들은 직업윤리에 충실한 전문가를 이길 수 없다. 침착하게 버티면 제풀에 무너진다. 소소한 삶 속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소신껏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결국은 이긴다.

새해에는 또 어떤 ‘깜짝 쇼’가 벌어질까. 걱정되지만 두렵지는 않다. 킵 캄 앤드 캐리 온.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힘이다. 평상심을 지키는 평범한 시민을 권력은 굴복시킬 수 없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신문을 읽고 우유를 배달하고 사랑을 나누었던 영국인들처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2020-12-28

[신동아] 정조대왕이 공수처까지? 이해찬·고민정의 판타지

정조대왕이 공수처까지? 이해찬·고민정의 판타지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28. 10:01 수정 2020. 12. 28. 17:04
[노정태의 뷰파인더⑭] 盧는 사도세자, 文은 정조?

●‘그림자 정부’ 있다는 ‘노론 음모론’
●실제는 정조와 노론 국정 동반 운영
●거악과 싸우는 ‘외로운 주인공’ 설정
●음모 맞서고자 민주적 절차 족쇄로 여겨
●공수처와 나치 게슈타포 설치 근거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누가 한 말일까. 소설가일까. 대중적 역사책을 쓰는 작가의 말일까. 혹은,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대학생의 발언인가. 아니다. 대단히 성공적인 이력을 밟아온 거물 정치인의 발언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야기의 맥락은 이렇다. 이해찬 하면 떠오르는 '20년 집권론'의 논리와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는 '시사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한 말이다. 민주당이 20년을 연이어 집권한다 해도 그것은 지난 200년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바로 그 사람, 이해찬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법률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어떤 정당의 대표가 집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다. 일부러 단기 집권만 하겠다고 할 정당도 없으니, 20년이건 200년이건 목표를 잡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해찬의 말은 단순한 선거 전략이나 목표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그는 12월 10일 페이스북에 "과거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은 개혁 군주 정조의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면서 "하지만 정조는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논하며 쓴 게시물이다. 

이렇듯 여당과 청와대, 더 넓게 보자면 그 지지층은 하나의 역사적 판타지를 공유하고 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의 죽음에는 노론의 책임이 있다. 독살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째, 노론이 정조를 죽인 것은 정조가 개혁군주고 그가 추진하는 정책이 노론의 기득권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셋째, 노론은 이후 200년이 넘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기득권을 지켜왔다. 노론은 곧 영남이고 영남은 친일파이며 오늘날까지도 재벌, 언론, 군대, 관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막후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 혹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이루고 있으며, 정권을 빼앗겼어도 여전히 공고하다. 

이런 사고방식을 '노론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노론 음모론'은 음모론이다. 실체가 없는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노론 음모론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조 독살설부터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노론의 정조 독살을 입증할 수 있는 직·간접적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노론이 정조를 독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증거도 세상에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입증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최신 자료에 따르면 정조와 노론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런 모습을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끝없이 대화하고 협상하며 국정을 동반 운영했다. 2009년 세상에 공개돼 2016년 대한민국 보물 1923호로 지정된 정조 어찰첩이 그 진상을 보여준다.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가 정조와 주고받은 비밀 편지 모음집에 따르면, 심환지는 정조가 가장 신뢰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신하였다. 정치뿐 아니라 개인적 고민, 심지어 건강 문제까지 의논했다. 하나로 묶여서 공개된 297통과 그에 포함되지 않은 50여 통을 비롯해,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는 350통에 달한다.

정조와 심환지 사이의 비밀편지

2009년 2월 9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김문식 단국대 교수, 안대회·진재교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 중 일부를 공개했다. [동아DB]
그 중 가장 유명한 한 대목을 읽어보자. 정조는 심환지에게 은밀히 말했다. "내가 사류(士流)의 두목이니, 지금 사류의 전형을 구한다면 형편상 경을 먼저 꼽을 것이다. 경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은, 서야(徐也)에게보다 열 배가 넘는다." 조선은 선비들의 집단적 의지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이며 자신은 그 선비들 중 우두머리일 뿐이고, 그러니 정조를 대신해 심환지가 '군기반장' 노릇을 해줘야 한다는 미안한 부탁을 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조선은 양반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임금 역시 양반 위에 군림한다기보다 양반들의 집단적 이해관계 속에서 추대되는 대표자에 가까웠다. 왕은 결혼, 관리 등용, 때에 따라 벌이는 숙청 등을 통해 신하들의 세력을 적절히 키우고 억눌러가며 자신의 입지를 지켰다. 

정조 말기에 이르러 노론 벽파가 노론 시파를 밀어내고 힘을 키운 것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음모론에 심취한 이들은 노론 벽파가 단독으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임금을 가지고 논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는 정조가 노론 벽파 그 중에서도 핵심 인물인 심환지를 '키워준' 것이다. 

그러니 노론이 정조를 밀어내고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식의 사고방식 역시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는다. 18세기 말에 이르면 사색당파로 대표되는 기존의 붕당 체제는 형해화됐다. 왕실의 인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도정치 시대가 열렸다. 

일부 역사가들은 세도정치가 시작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영조와 정조라고 지적한다. 탕평책을 내세워 임금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당파 간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의 해석이겠지만, 적어도 노론 음모론에 비하면 현존하는 사료와 건전한 상식에 부합한다. 

노론이라는 '당파'는 사라졌어도 그 '후예'들이 한국을 지배한다는 주장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노론 음모론은 재벌, 언론, 군대 등 소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노론의 후예가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재벌로 초점을 맞춰보자.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본인의 집안이 기호남인 계열임을 뿌듯하게 밝힌 바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은 빈농의 자식으로 아버지의 소 판 돈을 밑천 삼아 굴지의 기업을 일궜다는 사실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노론 세력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그들은 너무도 은밀하게 세상을 지배하는 나머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이덕일에서 '60일, 지정생존자'까지

역사학계에서는 그 누구도 노론 음모론을 진지한 학설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거의 통설에 가까운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을 대중적으로 처음 각인시킨 이인화의 1993년 작 '영원한 제국'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후 1995년 영화화되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누렸다. 

그 후 노론 음모론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역사학자 이덕일이다. 이덕일은 1998년 '사도세자의 고백'을 펴낸 후 '누가 왕을 죽였는가'(개정판: '조선왕 독살사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등의 저서를 통해 노론 음모론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2009년 발견된 정조 어찰첩도 그의 '신념'을 꺾지는 못하고 있다. 

노론 음모론은 역사 학설이라고 볼 수 없다. 음모론이다. 거대한 악이 있고, 그 악에 맞서는 외로운 주인공이 있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반을 먹고 들어가는 설정이다. 대중문화와 대중역사저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중 사이에서는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다.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방영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작품 속 대통령 양진만을 "노론 이후 처음 정권교체를 한 대통령"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대중적 상상력을 쉽게 자극한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명료한 선악 구도다. '보이지 않는 거악'과 '피와 살을 지닌 주인공'을 대립시킬 수 있으니 감정이입 또한 쉽다.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하는 '개혁군주' 정조가 있고, 그를 사사건건 반대하다 급기야 암살해버리는 '기득권층' 노론이 있다는 식이다. 현 정권의 '묻지마 지지자'들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도세자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조처럼 개혁의 칼을 뽑아야 한다는 식의 서사를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음모론은 음모론일 뿐이다. 음모론을 세계관 삼아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민주적 원칙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음모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서사를 믿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서사는 음모와 맞서기 위해 민주적 원칙과 절차 따위는 무시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정치적 당위를 '거악'과의 투쟁에서 찾는 정치 집단은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음모론의 시대

사회학자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한다. 그 중 하나가 '통치 음모론'과 '저항 음모론'이다. 통치 음모론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음모론이다. 반면 저항 음모론은 탄압받는 약자와 소수자가 부족한 정보력을 극복하고 폭압적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동원하는 담론적 무기가 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통치 음모론은 악이고 저항 음모론은 선인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저항 음모론이 지나치면 아무리 저항해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조직된 악을 상정하게 된다. 외려 투쟁 의욕이 꺾일 수 있다. 게다가 음모론을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는 권력자는 당연히 스스로를 핍박받는 약자의 위치에 놓고 저항 음모론을 펴게 마련이다. 

역사에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두 권으로 이뤄진 두꺼운 책이다. 허구가 가미된 히틀러 본인의 성장담 위에 유대인과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뒤덮여 있다.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손잡고 순수한 독일인 아리안 민족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막기 위해 민주적 절차나 당위성을 잠시 접어두고 독재를 해야 한다는 게 '나의 투쟁'의 골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같지 않은가. 그렇다. '유대인과 공산당'을 '노론과 친일파'로 바꾸면 이해찬과 고민정이 말하는 노론 음모론과 다를 바 없다. 유대인, 공산주의자, 친일파, 노론 등 뭐라고 이름 붙여도 상관없다. 그 '거악'과 맞서기 위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타협과 협상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절차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당은 노론, 친일파, 기득권, 그러니까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공수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거다. 비밀국가경찰 게슈타포를 설치할 때 나치가 동원한 논리를 쏙 빼닮았다. 

180석의 의석을 손에 넣은 뒤에도 200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노론 기득권을 운운하는 이해찬, 그런 사상을 자연스레 공유하는 고민정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이들은 역사 소설이나 대중역사서를 읽고 흥분한 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음모론을 자신들의 정치 동기로, 혹은 정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거론하고 있다.

노론 200년과 딥 스테이트

현 정권이 음모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실로 우려스럽다. 단지 정조 독살설이나 노론 음모론뿐만 아니다. K-방역 자화자찬에 정신이 팔려 미국, 영국, 일본이 확보한 코로나19 백신을 한국만 못 갖게 된 현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백신 접종 후 안면 마비 등 부작용에 대한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안전성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 나섰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 정권 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전자파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을 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을 앞장서 유포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음모론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야당이던 시절에는 그런 행위를 '저항 음모론'이라고 둘러댈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대선에서 이겼고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더는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전직 당 대표가 '노론 200년'이라는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다. 대선에서 진 트럼프가 '딥 스테이트'의 부정선거에 당했노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세상은 음모로 돌아가기엔 너무도 크고 복잡한 곳이다. 오늘날의 대통령보다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임금, 정조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여기저기 밀서를 써서 보냈고 치열하게 '정치'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정조 독살설과 노론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이야말로 그런 '정치인 이산'을 지워버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환상을 투영할 수 있는 얄팍한 비운의 영웅 캐릭터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미래의 역사를 올바로 만들어가기 위해, 음모론과 작별해야 할 때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