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뷰파인더㉒] 세계 20위권 후진국으로의 퇴행
● ‘가짜뉴스 처벌법’ 통과시킨 17개국 명단
● 與 윤영찬 ‘최대 3배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
● 러시아, 말레이시아 관련 규제 연상
● 말레이시아, 與 선거 패배 후 법 폐지
● 독일 최악의 수 ‘네트워크 집행법’
● 韓, 전기통신사업법 등 있어 별도 법 불필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가짜뉴스는 사회의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말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
2007년 집권 이후 독재를 하고 있으며, 올해 예정된 총선은 야당 없이 치르려 하는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정권 역시 2020년 10월 이후 비슷한 취지의 ‘가짜뉴스 처벌법’을 제정한 바 있다. 정부가 ‘쿠데타 세력’이나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인물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기도 하다. ‘가짜뉴스 처벌법’은 독재를 지속하기 위한 이중 삼중의 안전판인 셈이다.
형식적인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는 홍콩 역시 ‘가짜뉴스 처벌법’ 제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가짜 정보를 제작 전파하는 인터넷 정보서비스업체를 대상으로 한화 약 1700만 원에서 1억7000만 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정보 유포에 책임이 있는 개인 역시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벌금의 대상으로 삼는 법이다.
가짜뉴스를 잡겠다며 독재의 칼을 뽑아드는 권력. 불행히도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월 3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가짜뉴스는 사회의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라며 2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하겠노라고 천명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윤영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여당은 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을 더 넓히고자 한다. 인터넷 이용자를 넘어 언론 전체에 확대 적용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그런 법을 2월 중 처리하겠다는 게 대한민국 여당의 당론이다.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민주당에서 내놓은 ‘가짜뉴스 처벌법’은 사실 그리 나쁘지 않다.” “가짜뉴스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걸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면 일종의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런 반론은 엉터리다. 앞서 언급한 2020년의 ‘가짜뉴스 처벌법’ 외에도, 러시아 의회는 2019년 3월 별도의 ‘인터넷 규제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 내용을 뜯어보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가짜뉴스 처벌법’과 다를 게 없다.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공공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가짜정보”를 유통할 경우 최대 40만 루블, 한화로 약 6000만 원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러시아 ‘인터넷 규제법’의 근간을 이룬다. 또 당국이 부정확한 정보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 삭제하지 않을 경우 해당 웹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정부에 주어진다. ‘윤영찬 법안’과 ‘양기대 법안’을 섞어놓은 모양새다.
말레이시아에도 비슷한 법이 있었다. 2018년 4월, 총선을 한 달 앞둔 미묘한 시점에 시행된 말레이시아의 ‘가짜뉴스 처벌법’에 따르면, 가짜뉴스를 유포하거나 작성할 경우 징역 6년 혹은 한화 약 1억3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당시 말레이시아 정계는 국영 투자기업 1MDB와 관련된 비리 문제로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나집 라작 전 총리와 측근들이 그 회사를 통해 45억 달러(한화 약 4조9840억 원)를 받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 ‘가짜뉴스 처벌법’을 만들고, 총리의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확인해주지 않은 뉴스는 가짜뉴스”라고 엄포했다.
이렇듯 ‘가짜뉴스 처벌법’을 만들고 실행하는 국가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은 단 한 곳도 없다. 민주당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요즘 일각에서는 ‘우리도 이제 눈 떠보니 선진국에 살게 되었다’는 식의 담론이 유행하는데, 실상은 ‘눈 떠보니 도로 독재국가에 살게 되었다’로 귀결되고 있는 건 아닐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월 20일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플로리다주로 떠나는 머린원에 탑승하기 전 마지막 환송행사를 열었다. [AP 뉴시스] |
그런데 한국은 이미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막강하기 짝이 없는 감염병 예방법을 갖고 있다. 가짜뉴스와 관련한 유언비어 처벌만을 명분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영장 없이 국민의 동선(動線)을 추적하고 신용카드 및 온갖 개인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보다 조금 더 이른 시점까지 눈길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2018년부터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전임 이해찬 대표 시절부터 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각종 법안을 준비해왔다. 당내에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 아니라 언론의 감시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비판 앞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가짜뉴스라는 말을 유행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그 남자, 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내놓는 언론을 상대로 가짜뉴스라는 손가락질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트럼프 자신이야말로 가짜뉴스의 가장 큰 원천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것만 몇 개 적어 봐도 그렇다. 그는 처음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 자체가 가짜뉴스라고 했다가, 미국까지 퍼져오자 마스크를 쓰면 옮지 않는다는 말이 가짜뉴스라고 하더니,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피해가 발생하자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특효약이라고 떠벌이다가, 심지어 자외선을 쬐면서 소독제를 인체에 주사하면 코로나가 낫는다는 소리까지 했던 인물이다. 가짜뉴스를 의인화하면 도널드 트럼프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문제는 ‘미스터 가짜뉴스’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라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글로벌 유행어처럼 변해버렸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신성한 가치를 무시하는 인물이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앉는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퇴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은 이후 제정된 수많은 ‘가짜뉴스 금지법’의 모델이 됐다. ‘그것 봐라.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선진국 중 하나인 독일에서도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가짜뉴스의 범람을 경계하고 법으로 처벌한다. 그러니 우리도 비슷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독재자들에게 좋은 핑계를 제공해준 셈이다.
‘네트워크 집행법’은 2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SNS가 대상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훼손, 테러 선동, 범죄 단체 모집, 종교 비방, 아동 포르노 등 21개 위법행위와 관련된 게시물에 대해 신고가 들어올 경우 SNS 사업자가 게시물을 검토하고 당사자에게 신고 사실을 통보하며 삭제 등의 처리를 하도록 하는 법이다. 만약 그러한 처리 시스템을 갖추지 않을 경우 최대 5000만 유로(한화 650억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미 말했듯 이 법안은 당시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던 민주주의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독일 내에서도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건, 트위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혐오발언을 쏟아내던 트럼프에게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진저리를 치던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독일 내부의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극우 세력 및 정당이 급부상하고 있었기에 뭔가 ‘특별한 수’를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들어가 보자. 이런 법이 만들어질 수 있던 배경에는 ‘트럼프에게 뺨 맞고 트위터에 화풀이하는’ 심리가 작동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2017년 4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독일 ‘가짜뉴스 처벌법’ 바로알기’라는 칼럼에서 지적하다시피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독일인들이 쓰는 주요 SNS는 모두 미국 회사였다. “독일 법원이 ‘범죄적 내용’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00만유로의 벌금을 물리더라도 고통 받을 독일 사업자는 거의 없”었다.
이유가 뭐가 됐건 독일은 선을 넘었다. 그러자 ‘독일이 하니까 우리도 괜찮다’며 세계의 온갖 독재 국가들이 ‘가짜뉴스 처벌법’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활동 시절인 지난 2011년 12월 22일 당시 김용민, 주진우, 김어준, 정봉주 씨(왼쪽부터).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
자칭 ‘보수 유튜버’라는 사람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을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이 치민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들을 처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한민국이 ‘가짜뉴스 처벌법’ 만들기 경쟁에서 세계 20위권의 후진국으로 퇴행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미 우리에게는 그런 이들을 제재할 수 있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충분하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체 왜 자칭 보수 유튜버들이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걸까? 가짜뉴스를 팔아서 한 몫 벌고 심지어 여당 정치인들이 고개를 조아리는 권력자가 된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방송인 김어준이 만들었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떠올려보자. 이명박의 혼외자식설부터 해서, 입에 담기도 민망한 온갖 혐오발언과 인신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이건 유머다, 소설이다”라는 식으로 면피해왔던 그들의 행태는 어떠했던가. 그것은 오늘날 세계 각국의 극우 유튜버나 SNS 선동꾼들이 하는 짓과 다를 바 없었다.
김어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하자 부정개표설을 퍼뜨리고, 그런 내용을 담아 영화를 만들겠다며 후원금을 받았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그것을 어떤 어마어마한 음모에 의한 ‘사건’으로 포장하면서 유족과 대중의 마음을 들쑤셨다. 자신만이 밝힐 수 있는 어떤 진실이 있는 것처럼 꾸며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돈을 긁어모았다.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포하는 것을 몇 년에 걸쳐 직업으로 삼아왔던 셈이다.
그런 짓을 하던 김어준이 합당한 대가를 치르기는커녕 정권이 바뀌자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체 이 나라에서 무슨 가짜뉴스를 처벌한다는 것인가? 선거를 앞두고 ‘가짜뉴스 처벌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이낙연과 민주당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망가뜨려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놀랍게도, 혹은 전혀 놀랍지 않게도, 권력이 막으려던 ‘가짜뉴스’야말로 진실을 담고 있었다. 여당이 된 야당은 라작 총리와 측근들에 대한 수사 및 처벌을 단행하면서 동시에 ‘가짜뉴스 금지법’을 폐지했다. 그런 법은 언제든 권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자신들의 선의를 믿으라고 국민에게 강요하는 대신, 올바른 제도를 만드는 쪽을 택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상식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결국 유권자가 진실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가짜뉴스를 처벌한다는 명분하에 진실을 찍어 누르는 세상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짜뉴스로 이득을 보는 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선례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현존하는 법과 제도를 통해 가짜뉴스의 폐단을 최소화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왕도를 택할 것인가. 우리에게도 아직 선택의 기회는 남아 있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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