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8

'코리아 미스터리'.."한국인 19%, 가족보단 돈이 중요"

 [노정태의 뷰파인더-60] BTS·오징어게임 외에 또 세계 1위 무엇?

● 삶의 의미에서 1순위는 ‘물질적 풍요’
● 전 세계 응답자 38% 가족 꼽았는데…
● 초점 어긋난 SNS ‘재야 고수’의 품평
● 세계를 당황케 만든 ‘돈’ 외치는 나라
● 수험생마냥 설문에 응한 韓日 응답자
●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삶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파트는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화다. 사진은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대한민국이 1등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고 생경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양궁이나 쇼트트랙처럼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게 익숙히 여겨지는 종목의 스포츠 중계가 아닌 다음에야, '한국'과 '1등'이라는 말은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새 세상이 달라졌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로 이름을 올린다. 익숙한 분야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도 한국이 1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지난 11월 18일 미국 퓨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결과는 우리 국민을 큰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전 세계 성인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대한민국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에서 1등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다.

‘물질적 풍요', 즉 '돈'을 1순위로 꼽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이가 적잖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마치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밝히는 사람들'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1등이 좋다고 해도 그런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 희한한 결과를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물질적 풍요 19%, 건강 17%, 가족 16%

조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조사 대상국은 총 17개국이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들이다. 국민들이 '삶의 의미'를 고민할 여유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경제적 풍요를 어느 정도 이룬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삶의 의미를 주는 제1의 가치는 '가족'이다. 전체 응답자 중 38%가 '가족'을 꼽았다. 이어 '직업'(25%), '물질적 풍요'(19%) 순으로 이어진다.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족은 1위에 올랐는데, '삶의 의미'라는 말을 놓고 보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결과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꼽는 답변이 50%를 넘겼다.

반면 한국인들은 삶의 의미에서 1순위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19%). 그 다음은 건강이었고(17%), 가족은 3위에 지나지 않았다(16%). 비록 근소한 차이이긴 하나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것 자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을 제외하면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흔히 한국을 유교적 가치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대표되는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지닌 도덕·윤리 체계다. 정작 한국인들은 가족이 아니라 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니, 상식과 심각히 배치되는 결과 아닌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떠들썩하게 달아올랐다. 언론에서 보도하기 전부터 '재야 고수'들이 달려들어 다방면으로 결과를 검토하고 품평했다. 과연 이 조사를 믿어도 되는 것이냐, 조사 문항이 잘못 짜인 것은 아니냐, 국내 여론조사 업체와의 협력 과정에서 번역이 잘못됐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연이어 제기됐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여론조사는 없다. 하지만 '재야 고수'들의 비판은 초점이 어긋나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초당파적 싱크탱크다. 주로 설문조사에 근거해 미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종종 다른 나라 여론조사 기관과 협력해 국제적 비교 조사를 수행하기도 한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쓰인 연구 결과를 인터넷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편이다. 설문조사 문항 및 조사 방법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고서 말미에 부록을 통해 충실히 전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싱크탱크라는 그 명성에 손색이 없는 행보다.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에서 직접 여론조사를 진행할 수 없어 국내 업체와 협업을 했다. 한국갤럽이 2021년 3월 15일~4월 29일 사이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가중치를 뒀고 오차범위는 ±3.5%포인트. 갤럽은 국내 여론조사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업체 중 하나다. 해외 연구기관과의 협업 경험도 풍부하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조사 결과를 단순 번역 오류 따위로 치부해버리면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일이 되고 만다.

서울 광화문의 한 회사 건물에 야근 근무자들로 인해 환히 불이 켜져 있다. [동아DB]

한국인을 위한 어떤 변명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할 때 '돈'을 외치는 나라. '코리아 미스터리'. 이 결과를 두고 당황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조사를 발표하기 전 퓨리서치센터 내부에서도 진지한 고민과 해석의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총 14페이지로 이루어진 온라인 발표문 중 첫 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왜 이 보고서는 응답의 비율 뿐 아니라 순위에 집중하였는가(Why this report focuses on topic rankings in addition to percentages)"라는 별도의 항목이 등장한다.

애초에 이 설문조사는 여러 선택지 중 오직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았다. 복수 응답을 하고 피조사자가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족도 중요하고, 건강해야 할 것 같고, 경제적 여유도 빼놓을 수 없지요'라고 대답하면, 퓨리서치센터는 그것들을 항목별로 모두 합산한 후 전체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조사했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응답자 중 42%가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중요 요소로 꼽았지만, 스페인에서 물질적 풍요는 1위가 아닌 2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다. 스페인 사람들 중 1위인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이들은 무려 48%나 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1위인 물질적 풍요가 19%, 2위인 건강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한 걸까?

다른 나라 응답자들과 달리 한국과 일본의 응답자들은 복수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국인과 일본인 중 많은 이들은 질문지를 유심히 살펴본 후 신중하게 고민해 정말 딱 하나의 답만 골랐다. 편안하게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주기를 바라고 만들어진 설문조사 앞에서, 마치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마냥 최선을 다해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설문조사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주로 근거로 삼는 대목도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인생에 의미를 주는 요소를 이것저것 두루 택하지 않았다. 빡빡하게 딱 하나만 골랐고, 그러니 근소한 차이로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한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돈 좋아하기는 마찬가지고, 한국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돈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국인을 위한 변명인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경향 거스르는 '아웃라이어'…이게 사는 건가?

국가 단위로 가치관을 조사하고 발표하는 연구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에 시작돼 지금까지 5년 주기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있다. 다수의 국가를 상대로 장시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기에, 퓨리서치센터가 이번에 수행한 단발성 여론조사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자료로 꼽힌다.

세계가치관 조사는 가치관을 두 개의 차원으로 구분한다. '전통·종교 중시' 대 '세속·이성 중시'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생존 중시' 대 '자기 표현 중시'가 또 다른 축을 이룬다. 대체로 많은 국가들은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전통과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과 이성의 세계로 넘어가며, 동시에 생존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잦아들고, 자기표현과 관용, 자선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상식에 부합하는 보편적 트렌드다.

문제는 또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생존을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000달러이던 시절이나 2만 달러이던 시절이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자기 표현 대신 생존을 택한다. 전통과 종교가 아닌 세속과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 또한 여전하다. 세계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세속적이고 잇속을 따지며 생존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세계가치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통계적 경향성을 거스르고 있는, 통계학의 용어를 빌자면 '아웃라이어'(outlier)인 셈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이번 설문조사가 잘못됐다, 혹은 결과가 왜곡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 심정적으로 납득하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의 배금주의적, 생존주의적, 물질주의적 경향은 다른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듯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를 좀 더 꼼꼼히 훑어보면 한국인의 각박한 삶이 드러난다. 외국인들은 직업, 친구관계, 교육과 배움, 자연을 즐기는 삶 등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런 응답지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주요 종교의 등록 신자를 합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 클 정도로 제도권 종교가 성행하는 나라지만, 한국인 중 삶의 의미의 원천으로 종교를 꼽은 사람은 1% 뿐이다. 교회 성당 절을 열심히 다니긴 해도 설문조사 용지를 받아들고 나면, 예수님·부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다는 소리다. 이게 사는 건가?

‘기적은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영국의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 다니엘 튜더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이 나라를 다방면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후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다름 아닌 필자에 의해 번역됐고, 출판사의 판단에 따라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번에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적을 이루었지만 기쁨을 잃은 나라에 살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물질주의 #세계가치관조사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
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27

"고개 들어 다스베이더를 보라".. 586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때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스타워즈'의 안티히어로
다스 베이더가 남긴 교훈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제다이의 희망이었다. 예언에 따르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출중한 재능을 뽐냈다. 라이트세이버(광선검)를 이용한 싸움, 우주선 조종 등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제다이 기사단마저 쑥대밭으로 만든 후 은하 제국 황제의 오른팔이 되고 만다. 다스 베이더가 된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조지 루커스가 만든 오리지널 3부작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 3> 그중에서도 2편인 <클론의 역습>을 살펴보자. 젊고 자신만만한 아나킨은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 제다이 육성 과정은 길고 지루하다. 은하 공화국의 정치는 각자 다른 이해관계와 의견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하다. 아나킨의 연인이 된 파드메 의원은 말한다. “매번 동의가 이루어지진 않아.” 아나킨은 답한다. “그럼 동의하게 만들어야죠.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파드메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한다. “그건 독재처럼 들리는데?” 그러나 아나킨은 진지하다. “결과만 좋다면 상관없죠.” 그 모습을 본 파드메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진다.

일러스트=유현호

이 대화는 마치 4컷 만화처럼 ‘밈’으로 편집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자들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언가 말할 때 헤어밴드를 두른 단발머리 여자가 정색하는 표정을 짓는 바로 그 ‘짤방’ 말이다. 뜨거운 심장을 지닌 젊은이가 결국 악당 다스 베이더가 되고 만다는 점을 놓고 보면 퍽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인 변증법, 그중에서도 ‘안티테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dialectics)은 고대 그리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진리 탐구 방식 중 하나다.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을 놓고 맞붙여서 제3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역시 일종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그 개념을 이어받아 자신의 핵심 원리로 삼았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지문에 등장한 변증법은, 이렇듯 정반합(正反合) 원리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고 예측하고자 했던 헤겔의 철학적 기획이다.

<스타워즈>로 돌아와 보자. 은하공화국은 1000년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제다이 기사단은 개인적 삶과 감정 등을 모두 포기하고 공화국을 지킨다. 이렇듯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헤겔은 ‘테제’(Thesis)라 불렀다. 한자로 표기하면 정(正)이다. 아나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다이 기사는 공화국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자신의 힘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한 정치는 효율적인 중앙집권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을 ‘테제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안티테제’(Antithesis), 반(反)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킨은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경험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공화정의 무능함, 제다이의 허례허식과 엄격한 규칙만으로는 소중한 이를 지킬 수 없다고 절감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영웅(Hero)인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정체성을 버리고 악당(Anti-Hero)인 다스 베이더로 거듭났다. 공화정의 안티테제인 은하제국, 제다이 기사단의 안티테제인 시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막강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안티테제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진테제’(Synthesis), 합(合)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다. 빼놓거나 생략하면 변증법적 운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악당이 없으면 주인공의 모험이 빛나지 않듯, 안티테제가 없으면 테제는 진테제로 나아갈 수 없다.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라는 아나킨에 대한 예언은 그런 의미에서 정확한 것이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인 다스 베이더가 출현했기 때문에 은하계의 역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로 돌아와 보자.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고 현재 50대가 되어 있는 586 세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두환 정권의 본고사 폐지, 학력고사 실시 등의 여파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대학에 들어갔다. 과외 금지는 오히려 불법 과외로 짭짤한 용돈 벌이를 할 기회였다.

캠퍼스에 모인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 김일성을 항일 투사로 과대 포장한 몇몇 조악한 서적을 읽고 ‘과거’에만 탐닉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티테제인 북한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키워나갔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권력 공백을 노리고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국적인 시민 저항에 직면하자 광주를 특정하여 군사력을 동원해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런 모습을 본 당시 대학생들은 대한민국과 한미 동맹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현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할 수 있다면 뭐든지 좋다고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마치 공화국과 제다이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안티히어로가 되어버리고 만 다스 베이더처럼 흑화(黑化)한 것이다.

그러나 안티테제는 어디까지나 안티테제일 뿐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역사의 조연이지만, 안티테제 그 자체가 다음 세상에 속할 수는 없다. 테제와 안티테제, 과거에 속하는 둘이 서로 모순을 폭로해가며 싸우다 보면, 새로운 세대와 사상이 출현하여 진테제를 이루어내는 것이 변증법이다.

586이라는 안티테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의의가 없지 않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형식을 갖추는 데 그들이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티테제는 테제와 서로 모순을 드러내며 대립하다가 진테제에 자리를 내주는, 정반합 운동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그 안티테제인 586 세대 역시,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때 아닐까.

다스 베이더는 어둠의 끝에서 선한 마음을 되찾는다. 아들인 루크를 지켜내고, 황제를 스스로 처리한 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안티히어로의 슬프고 아름다운 결말이다. 대한민국의 안티테제 세대, 586의 변증법적 퇴장을 기대한다.

2021-11-21

'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책임 탓한 이재명의 역사 인식

 [노정태의 뷰파인더-59] 진보파가 미국 철석같이 믿어..냉철한 인식 필요한 때

● ‘외세 대 자주’ 구도 만들려는 의도
● 진중권이 애매한 코멘트 남긴 이유
● 엄밀히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없어
● ‘협정’ 아니라 일본의 외교전·언론전
● ‘순수한 피해자’ 전제한 역사해석
● 말로는 自主 외치지만 의식세계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맞지만 양국 관계에 '작은 그늘'이 있다며, 따지고 보면 분단의 책임도 미국에게 있다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지지율 정체기에 '외세 대 자주' 구도로 대선을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이는 발언이다.

문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응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같은 날 "한미 간 우호협력을 위해 내방한 분에게 과거 역사를 거론하는 것보다 우리 미래를 위한 협력을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발언 내용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자 하는 태도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외교'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거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의미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묵인했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을까? 그리하여 분단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겪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관점은 진보 진영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진중권이 특유의 촌철살인 대신 애매한 코멘트를 남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밀약'이 애당초 없는 두 가지 이유

엄밀히 말하자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따져보도록 하자.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돼갈 무렵, 가쓰라 타로 일본 수상이 필리핀의 초대 총독을 역임한 육군장관 태프트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가쓰라가 태프트에게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할 테니, 미국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해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태프트는 일본에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양국 간 비밀 협정이 체결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필리핀 총독이었을 뿐 미국의 국방·외교 정책을 좌우할만한 자리에 있지 못했다. 애초 그러한 '밀약'을 맺을 권한이 없었다는 소리다. 다만 가쓰라가 워낙 집요하게 물어본 통에,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붙여 '일본이 한국에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태프트는 1905년 7월 29일자로 미국 외무장관 루트(Eligu Root)에게 전보문서(電文)를 보냈다. 일본에서 이러저러한 대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업무 메모였다. 1924년 존스홉킨스대 역사학부 교수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그 메모를 발견하고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막후 협상이 존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발칵 뒤집혔다. 설마 싶었던 내용을 확인했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메모는 '비밀협상'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 오간 대화는 '비밀'이 아니었다. 태프트가 일본을 방문해 가쓰라와 만난 시기는 1905년 7월 27일. 그런데 약 3개월이 지난 10월 4일, 친정부성향의 고쿠민신문(国民新聞)에 대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물론 미국 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20여년 후 데넷의 연구에 의해 그러한 대화가 사실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튼, '협정'은 없었고 '비밀'도 아니었으니 '밀약'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견해는 필자가 독자적으로 창작해낸 게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에스더스(Raymond Arthur Esthus)가 1959년 제기한 반론을 요약한 것이다. 가쓰라와 태프트는 '밀약'을 한 적이 없다. 태프트에게는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었고, 따라서 어떤 외교적 협상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아 한 마디 했고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는데, 놀랍게도 대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태프트나 미국 측에서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던 셈이다.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다!

1905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있지도 않았던 '밀약'이 언론에 대서특필됐을까? 일본이 언론을 동원한 외교전을 펼쳤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지배적 견해다. 러일전쟁에서 이겼는데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확보가지 못할까 두려웠던 탓이다. 이에 일본은 여러 단계에 걸쳐 무리수를 뒀다. 굳이 일본에서 태프트와 만나 조선 지배를 양해한다는 취지의 표현을 끌어낸 후, 그것을 언론에 살짝 흘려 기정사실화하는 수법을 썼다.

이는 마치 마를 캐는 소년이던 서동이 '서동과 선화공주는 밤마다 함께 잔다'는 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부인으로 삼은 것과 유사한 수법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꼽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외국과의 동맹도 전쟁도 피하는 성향을 지닌 '잠자는 거인'에 가까웠다. 조선 지배에 대해 미국의 공식적 지지를 정상적 경로로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을 확보해야 했던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가 다소 뒤엉킬 위험을 감수하고 외교전, 언론전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해외 역사학자들도 두루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는 '몰래 맺은 협정'이라는 뜻을 지니는 '밀약'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했다. 고종이 덕수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벌어졌다는 것. 영국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일본을 지원했고 일본은 러일전쟁을 벌여 개항 50여년 만에 숙적 러시아를 꺾는 쾌거를 이루었다는 것.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입 속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미국은 조선을 지켜줄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를 '순수한 피해자'의 자리에 놓고 역사를 해석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당시는 나약했던 조선마저도 '대한제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시대다. 제국주의의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했다. 지금처럼 국제 질서에도 보편적인 도덕과 당위를 전제하고,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 함께 비난하며 저지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던 20세기 초의 국제 정세를 완전히 오판한 고종이 영국, 혹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을 버리고 러시아의 편에 섰을 때, 러일전쟁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스스로를 '거대한 체스판'의 전리품으로 올려놓은 채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고 말았다.

반일·반미 무기 삼아 역전 노리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일행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의 '가쓰라-태프트 발언'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지지율에서 수세에 몰려 있으니 말이다. 반일·반미를 무기 삼아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특히 지식인들의 반응이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경우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할 소리는 아니다' 같은 식의 반응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기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보 성향을 지니는 사람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반대하거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그렇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너무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20세기 초의 미국은 지금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강국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형상 독립 국가였고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건 말건 찬성할 이유도 반대할 근거도 딱히 없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미국이 한반도에 지나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 왜 100년 전 미국이 식민지도 아닌 조선을 지켜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의 제1조가 근거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던 고종의 논리이기도 하다. 조미통상수호조약 1조에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면 서로 돕겠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으니 미국은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줬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해당 구절은 1858년 청나라가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와 맺었던 텐진조약 중 미국과의 협상문에 들어갔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1894년 청일전쟁에서 미국이 해당 조약을 이유로 청과 군사 협력을 해 청나라를 지켜줬을까?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라고 국제 협약과 동맹 등이 모두 휴지조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약 당사국인 미국은 텐진조약 1조의 '불경공모' 구절을 그저 미사여구로 취급했다. 청과의 조약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 구절을 두고, 미국이 조선에 대해서만은 그 미사여구를 문자 그대로 실천해 주리라 믿는 것은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조선 처지에서 항의할 수야 있겠지만 상대가 흔쾌히 받아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한국의 반미주의자·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말로는 민족 자결, 독립, 자주를 외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뜯어보면 진보 측에서 흔히 비난하는 '친미주의자'들보다 더욱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겼다! 이 주장은 조선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전제하지 않는 한, 혹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오직 미국만은 천사처럼 조선을 지켜주었어야 한다고 단정 짓고 있지 않는 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亡國은 누구의 책임인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묵인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조선 망국의 책임은 결국 조선 스스로에 있었다. 서양과의 접촉 및 근대화가 늦었다. 후발주자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할 지배층은 제 배를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다. 그러면서도 국내 정치의 필요를 위해 국제 정치를 아무렇게나 갖다 썼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건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냉철한 머리로 우리의 객관적 처지와 현실을 파악하여 담대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이재명 #가쓰라태프트 #일제강점기 #반미 #반일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14

이재명 '공짜 용돈'으론 '청년 간병살인' 못 막는다

 [노정태의 뷰파인더-58] 月 50만 원, 부자에겐 용돈·빈자에겐 무의미한 돈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4월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1월 10일, 대구고법에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해)로 4년형을 선고받은 22세 남성 A씨의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항소심 선고를 일주일 앞둔 11월 3일, 탐사보도 전문 매체를 표방하는 '셜록'이 취재하고 '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된 기사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바 있다.

2020년 9월 13일 A씨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한 달에 200만 원 가량을 벌던 아버지에게는 본인의 수술 및 치료비를 감당할만한 재산이랄 게 따로 없었다. A씨의 삼촌이 경제적 짐을 떠안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 소변줄을 차고, 코로 삽입한 줄을 통해 액체형 영양식을 공급받아 연명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청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라도…"

기사에 따르면 A씨는 120kg에 달하는 과체중이다. 취직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몇몇 일자리를 구했지만 자꾸 월급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다가 사장의 눈 밖에 나기 일쑤였다. 해당 기사(‘"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는 아버지의 퇴원 전후로 A씨가 겪은 고초를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읽고 있노라면 A씨가 받은 판결에 대한 반감이 솟구쳐 올라온다. 누가 저 청년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 기사에 힘입어 A씨의 사건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정의당 심상정, 두 대선 후보가 직접 사안을 언급하며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버지가 65세가 아니기 때문에 요양급여도 받지 못했고, 노동 가능한 연령대였으며, 노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도 없었던 탓에 그 외의 복지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사각지대'로 본 이재명은 11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 입장에선 작은 사각지대지만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며,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2심의 결론은 1심과 동일했다. 존속살해죄 유죄. 징역 4년. 마침 이 주제에 대해 원고를 쓰기 시작한 터라 나 역시 보도되는 내용들을 이전보다 훨씬 면밀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2심과 마찬가지로 존속살해죄 유죄라는 판결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병을 앓는 환자의 요양과 간병에 대한 문제의식을 없는 셈 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부터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사건 자체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해보자. 대구고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양영희)는 "이번 사건의 여러 정황과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 등을 비춰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퇴원시킨 다음날부터 피해자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므로 살인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이 존속살해가 아니라 유기치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유기치사는 누군가를 돌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행동할 때, 그리고 그 믿음에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범죄다. 그리 춥지 않은 가을날 술에 적당히 취한 친구가 버스 정류장 앞 벤치에서 잠들었는데, 일단 내 버스를 타기 위해 그를 두고 집에 왔더니, 다음날 친구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경우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존속살해 아닌 유기치사라 부를 수 없어

A씨의 아버지는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두 시간마다 누워 있는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몸에 욕창이 생기는 중증 환자였다. 꼬박꼬박 먹어야 할 약도 매우 많았고, 콧구멍을 통해 삽입된 줄을 통해 영양식을 공급해야만 했다. A씨의 돌보지 않는 행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A씨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돌보지 않은 A씨의 행위는 살인일 수밖에 없다.

만약 A씨가 이 모든 돌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해보자. 그러다가 어느 날 피로 누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깊게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살인이 아닌 유기치사라는 항변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A씨는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지도 않았고, 하루에 세 팩 이상 들어가야 할 영양식을 퇴원 후 사망까지 고작 10팩 제공했다. 대소변 처리 및 자세 바꾸기 역시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이와 같은 사실관계는 A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서술된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의 한 대목이다.

"A씨는 아버지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그 방에 5월 3일 밤 들어가 봤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강도영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 담겨 있다.
"피고인(A씨)는 피해자(아버지) 방에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피해자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환자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자, 즉 A씨의 일방적인 진술일 뿐이다. A씨는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문을 닫고 나온 후, 사망할 때까지 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위는 유기를 했을 뿐인데 살인이라는 결과가 실수로 나온 게 아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 죽을 것을 기대하고, 유기한 것이다. 존속살해라는 법원의 판결은 너무도 당연하고, 정당하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존속살해가 아닌 유기치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죽게 만드는 미숙한 부모,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비슷한 존속살해 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동정심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A씨의 존속살해를 유기치사로 판단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영아 살해와 고려장을 사실상 허용하는 폭력적 전근대 사회로 회귀하고 만다.

진짜 필요한 '억강부약(抑强扶弱)'은 무엇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4월 20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현장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앞서 말했듯 이재명은 이 사안을 두고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취지 자체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이재명은 이 사건에 대한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따로 해법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이재명의 복지 정책과 방향성에 대해 알고 있다. 전 국민에게 '사각지대' 없이 나누어주는 기본소득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 세상에서는 A씨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계산만 해보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월 50만 원인데, 이 액수를 온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매년 312조 원이 소요된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한해 총 예산이 500조원이다. 1인당 매달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직접세와 소비세 같은 간접세를 지금보다 53%씩 더 내야 한다.

문제는 월 30만 원이나 50만 원 같은 현금 복지가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지니느냐에 있다. 신체 건강하고 사회 활동에도 문제가 없지만 딱히 일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에게 매달 50만 원이 생긴다면 그는 신나게 그 돈을 쓰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낼 것이다. 공짜 용돈이 생긴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별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복지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에게 월 30만 원 내지 50만 원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2021년 현재 24시간 입주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은 최소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를 오간다. A씨와 아버지 두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는다 해도 1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현재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퍼부어도 A씨와 아버지의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대신 굳이 '복지'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이들이 매달 공짜 용돈을 받아 즐거운 소비를 한다. 이를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 이야기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복지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구매'다. 가장 큰 경제 주체인 국가가 세금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소외 계층 및 복지 수요자에게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 서비스 등을 구입하고 제공하는 셈이니 말이다. 물론 통상적인 공동구매와 달리 어떤 사람은 평생 돈을 내면서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그와 같은 부의 재분배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부자는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은 더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재명이 좋아하는 구호인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재미, 누군가에겐 무의미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액수의 돈을 현금으로 나눠준다. 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달성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건강한 사람일수록 기본소득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반면, A씨와 아버지처럼 한계에 몰려 있는 이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 A씨의 비극 앞에서 해야 할 일은 현존하는 직간접적 복지 체계를 점검하고 맹점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지, 기본소득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A씨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A씨의 삼촌은 생계 지원과 장애 지원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A씨는 그런 신청을 한 바 없다. 이렇듯 복지 혜택을 거부하며 자신과 주변인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만드는 경우, 어떻게 찾아내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요양병원 시스템은 어떻게 개편 증보돼야 할까? 대선을 넉 달 앞둔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다.

#간병살인 #복지사각지대 #이재명 #기본소득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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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3

中 "요소 수출 안 한다" 통보에도 한 달간 방치.. 짚신 장수보다 못한 정부

 

[아무튼, 주말-노정태의 시사哲]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과
대한민국 요소수 공급대란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우산을 만들었고 둘째는 짚신을 삼았다. 어머니는 근심이 끊일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 장사는 잘되겠지만 짚신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맑은 날이면 짚신 장수야 좋지만 우산은 도통 팔리지 않을 테니 역시 걱정이었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런 어머니에게 어떤 현명한 사람이 찾아와 조언해주었다. 맑은 날이면 짚신 장수 아들의 장사가 잘되는 것이니 좋은 일이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잘 팔릴 테니 좋은 일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나쁜 쪽으로 봤을 때는 어떤 쪽에서 봐도 불행했던 어머니는 생각을 바꾸자 해가 뜨나 비가 오나 행복한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아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이야기다.

좋게 말하면 비판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삐딱했던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상은 그대로인데 긍정적인 면을 본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겠느냐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공부하다 보니, 저 흔한 전래 동화에 경제학의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발견한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가 바로 그것이다.

가정을 해보자. 형제는 근면하게 하루에 14시간씩 7일 동안 총 100시간을 일한다. 첫째는 둘째보다 손재주가 좋아서 한 시간에 우산 네 자루, 짚신 세 켤레를 만든다. 반면 둘째는 한 시간에 우산 한 자루, 짚신 두 켤레밖에 만들지 못한다. 즉, 첫째는 우산뿐 아니라 짚신도 둘째보다 더 잘 만든다. 첫째는 동생이 답답하게 한 시간에 짚신 두 켤레만 만드는 꼴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본인이 직접 우산도 짚신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경우 첫째의 생산량은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100시간 내내 우산만 만든다면 우산 400자루를 만들 수 있다. 반면 50시간씩 나눠서 우산도 만들고 짚신도 만들면 우산 200자루와 짚신 150켤레를 갖게 된다. 우산과 짚신 모두 하나에 한 냥이라고 가정해보자. 첫째는 400냥이 아닌 350냥을 벌게 된다. 손해다. 비록 우산뿐 아니라 짚신 역시 첫째가 둘째보다 더 잘 만든다 해도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우산에 집중할 때 생산량이 높다.

첫째와 둘째 모두의 생산량을 놓고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계산해보셔도 좋겠다. 두 사람이 50시간씩 나눠서 생산하면 우산과 짚신의 전체 가격은 500냥. 반면 형제가 각자 더 잘하는 일에 집중하면 형제는 도합 600냥어치의 우산과 짚신을 생산하여, 첫째는 400냥을 벌고 둘째는 200냥을 벌게 된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짚신 장수가 우산도 만들고, 맑은 날에 우산이 안 팔릴까 봐 우산 장수가 짚신도 만드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상대보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비교 우위 원리는 그 당연한 세상의 법칙을 경제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무인도에 갇혀서 모든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세상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 그런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리카도는 왜 비교 우위 원리를 주장했을까? 1815년부터 영국에서 시행한 곡물법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밀에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밀은 일정 금액 이상으로 팔 수 없도록 했다. 리카도가 볼 때 곡물법은 영국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값싼 외국산 곡물을 수입하는 대신 영국이 비교 우위를 지니는 모직물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그 후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하고 산업화에 집중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거듭났다.

비교 우위 원리가 만능은 아니다. 곡물법에 반대했던 영국인들의 우려가 전적으로 잘못된 건 아니라는 소리다. 어떤 재화는 가격이 낮고 부가가치가 작지만 없으면 곤란해진다. 현재 공급 대란을 겪고 있는 요소수가 대표적 사례다. 요소는 비료의 원료이면서 동시에 화약 재료가 되는 핵심 전략 자원이다.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경제적 효율이 떨어지는데도 요소 공장을 유지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반면 우리는 오직 시장 원리에 따라 요소 공장들이 폐업하도록 방치했다가, 중국에서 벌어진 석탄 공급난의 유탄을 맞아 나라 경제가 마비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시장경제는 때로 오작동하고 실패한다. 그것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부 몫이다. 대한민국호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중국 측 해명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요소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한국에 통보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그 무렵 선제적 대응책을 고심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임기 막바지에 부인을 대동하고 유럽 순방을 하며 로마 교황을 만나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뜬금없는 부탁이나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화물차 333대에 나눠 넣으면 소진되는 요소수 2만 리터를 군용기로 공수한다고 홍보한다. 주중 대사 장하성은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중국 정부에 똑 부러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우산 장수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국민을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분통 터진 어머니가 짚신을 신고 뛰어나와 우산으로 등짝을 때려주는 장면을 상상하게 될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세계시장에 일찌감치 참여했다. 우리가 가진 비교 우위를 최대한 활용했다. 근면하고 손놀림이 빠른 여공들이 경공업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렇게 쌓인 자본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산업을 고도화해 나갔다. 그 결과 우리는 반도체와 문화 상품이라는 최첨단 영역에서 비교 우위를 지닌 경제 강국을 이룰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 낳은 세계 경제사의 기적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국민을 걱정하고 다가올 위험에 대비하는 현명한 정부가 필요하다. 내년 3월, 우리 각자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정부를 선택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