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화성에서 온 안철수, 금성에서 온 심상정의 기이한 연대

 [노정태의 뷰파인더-63] 필요할 땐 양당에 손 내밀고 밀리면 양당 극복?

● 자기 정체도 모른 채 여의도 온 安
● ‘안철수 현상’의 安은 ‘386 우파’
● ‘양보’ 통해 구해낸 건 ‘386 좌파’
● ‘아름다운 양보’ 파행에 이해 구했나?
● ‘새 정치’라는 텅 빈 기표에 현혹
● 민주당 선거법 덥석 문 심상정의 맹신
● 야성·양심 동시에 잃은 진보 정치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2021년 12월 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왼쪽)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회동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동아DB]
2021년 12월 6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두 대선후보가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 지지율은 공히 바닥에 깔린 상태로 정체돼 있다. 같은 해 10월 이후 추세를 보면 안철수는 5% 내외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를 넘긴 적이 없는 심상정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두 사람 모두 2012년 이후 '대선 3수(修)'를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의 성적표를 놓고 보면 두 사람 모두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10여 년 전, 안철수는 단번에 대통령 자리에 오를 듯한 기세로 정계에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됐다. 그러나 그 불씨는 타오르지 못한 채 여러 차례의 변곡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심상정의 정치 이력은 더 길지만 결정적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군소 후보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
회동에서 심상정은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민생정치, 미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여러 정책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안철수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국민은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을까.

안철수가 만든 진보 좌파의 대부

흔한 답안지가 있다. 한국인은 정치인이 참신하면서도 원숙하기를 기대한다. '경력 있는 신인'을 원한다. 그런 유권자의 모순된 태도가 거대 양당 구도를 고착화하고 있다. 정계에 뛰어든 누군가가 경험을 쌓고 나면 국민은 '신선하지 않다'며 손가락질하고 찍어주지 않는다.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 그리고 결선투표가 없는 현행 선거제도 역시 군소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유권자의 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그놈이 그놈'일 뿐인 두 거대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전적으로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기에 이 답변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안철수와 심상정, 두 정치인의 이력과 현주소를 통해 제3당 문제, 혹은 양당 체제 이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던 2011년 무렵,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은 지리멸렬하게 여당에 끌려다녔다. 여당 내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극대화돼 있던 상태였다. 제도권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시민사회 전반에 팽배하게 깔려 있었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행동양식까지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등장해 한국 정치를 바닥부터 들어 엎어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사회 전반에 가득했다.

‘안철수 현상'은 그런 대중심리의 산물이었다. 이는 안철수에 비판적이던 진보언론 '프레시안'에서 2012년에 펴낸 책 '안철수를 생각한다'의 서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철수이기에 기존 정치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의 열망과 기대를 품을 수 있었지만, 안철수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투영될 수 있던 열망이었다는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의 정치적 성공과는 무관한 문제다. 본질은 '안철수 현상'을 만든 유권자들의 열망이다."

이러한 관점은 갓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의 캐릭터와 지향이 그의 정치적 급부상과 큰 관련이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유권자의 열망이 '다른 누구에게도 투영될 수 있었다'고 전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관찰자뿐 아니라 안철수 본인 또는 그를 돕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론조사 1위 후보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지지'를 선언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포기한 행보를 설명하기 어렵다. '새로운 정치' '신선한 인물' 같은 키워드에 '올인'하기 위해 박원순을 띄우고 자신은 대선으로 직행하는 초강수를 뒀던 것이다.

그런데 박원순과 안철수는 공통점을 지니는 인물인가? 세계관, 가치관, 정치적 지향 등에서 서로 공유하는 요소가 많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박원순은 '마을' '공동체' '도시 농업' '골목 재생' 등의 가치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박원순이 시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 결과 공급 절벽이 발생했다. 이를테면 박원순은 2020년 이후 부동산 폭등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오늘날 시민운동은 자생력을 잃고 더불어민주당의 외곽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거센데, 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박원순의 서울시'가 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그렇게 한국 진보·좌파 진영의 새로운 '대부(Godfather)'가 돼가고 있던 셈이다.

2011년 10월 24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오른쪽) 선거캠프를 방문해 박 후보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동아DB]

10년 만에 비호감도 1위 정치인으로

반면 안철수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문격인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무상복지와 선별복지 등을 언급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루는 학생 시절의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그 점은 분명하다. 의대생 시절 자원봉사를 다니던 무렵의 추억이다.

"치료가 안 되는 원인이 약을 제시간에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생각 끝에 진료비를 100원씩 받기로 했어요. 물론 약값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지만 환자들이 자기 돈을 내고 약을 받아 가니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되고 치료율도 쑥 높아지더군요. 그래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공짜가 반드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며, 오히려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아무리 소액이더라도 돈을 내고 참여하게 되면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만족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와 같은 경험을 반추함으로써 2012년의 안철수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복지를 확충할 때도 소득 상위층뿐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은 함께 비용을 부담하면서 혜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적이고 따스한 세상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각자의 책임을 중시하고 최적의 효율적 해법을 찾으려드는 중도 우파의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안철수 스스로가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내주는 선택을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신선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중고 신인'이어서가 아니다. 안철수 스스로가 내렸던 잘못된 결정들 때문이다. 그는 '새정치'라는 텅 빈 기표의 주인공이 돼 돌풍을 타고 단번에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 그 결과, 말하자면 '386 우파'에 해당할 안철수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었고, 사실상 궤멸 상태였던 민주당의 '386 좌파'들에게 정치적 심폐소생술을 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양당 체제는 허물어지기는커녕 더욱 공고해졌다.

지난 10년간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대신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쥐게 됐다. 그러자 안철수는 또 양당 체제 극복을 내세워 국민의힘과 공동전선을 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과 후보단일화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나간 결과, 안철수는 주요 대선 주자 중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2021년 11월 10일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수행한 대선후보별 호감도와 비호감도 조사를 살펴보자. 같은 해 11월 8일과 9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000후보에게 호감이 가십니까, 호감이 가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70.5%가 안철수를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비호감도 1위다.

2011년의 안철수는 민주당의 구세주였다. 지금의 안철수는 경선과 단일화를 통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 자리를 재탈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막상 여론조사를 해보면 민주당 지지자의 69.4%, 국민의힘 지지자의 67.5%가 안철수를 '비호감'이라고 응답한다. 진보 보수 양쪽으로부터 '술 사주고 뺨 맞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철수와 그의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억울한 상황이다. 한데 문제의 원인은 안철수 본인에게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맞춰 정치적 캐릭터를 쌓아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당 체제를 극복하는 대신 양당 지지자들에게 골고루 미움 받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국민은 단순히 못 보던 얼굴 원하는 게 아냐

대체 '새정치'란 무엇인가? 왜 국민들은 새로운 인물과 세력과 정치 구도를 원하는 척하면서, 정작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더 혹독한 평가 기준을 들이대고 까다롭게 검증하다가 결국 두 거대 정당 중 하나를 택하고 마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고객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보여주면 그제야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거야'라고 환호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유권자가 원하는 건 정치에 처음 뛰어든 신인이 아니다. 현재 구도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수 있는, 일관된 태도와 메시지를 지닌 인물.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새 정치'의 본질이다.

노무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은 이미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도 더 된 '중고 신인'이었다. 5공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전두환을 몰아세우며 전 국민적 각광을 받은 후, 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 출마 후 낙선을 거듭하며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를 쌓았다. 이렇듯 일관된 메시지와 그에 기반한 정치적 캐릭터가 잡혔기에 노무현은 청년들도 열광하는 '새정치'의 아이콘이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입문과 동시에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현상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권교체 여론이 팽배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그것을 소화해 줄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몇 가지 논란을 자초했다.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메시지 역시 분명치 않다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만 놓고 보면 그다지 신선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지만 윤석열의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윤석열을 일약 대선주자로 부상하게 한 핵심 메시지인 '정권교체와 심판'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11년과 2012년의 안철수는 본인의 캐릭터와 시대의 요구를 종합한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새정치'라는 추상적 문구에 지배당했다. 안철수라는 사람을 지지하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짧고도 분명한 언어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 하나로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 변호사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와 유사한 함정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새 인물이 등장해 제3당을 앞세워 정국을 뒤바꾸는 일은 좀체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새 정치를 원한다면서 막상 새 인물이 나오면 찍지 않는 유권자의 이중적 태도와 모순 때문이 아니다. 새롭게 정치에 도전하는 이들이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국민은 단순히 못 보던 얼굴이 등장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시대에 맞는 역할과 언어를 원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이미 알던 얼굴이 보여도 개의치 않는다.

정의당, 밭과 농기계 탓하는 농부 신세

2019년 12월 26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이튿날 국회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뉴스1]
문제는 제3당, 특히 진보정당이다. 지난 2017년 말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여 왔던 심상정과 정의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짚어보자. 정의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은 지역구에서 약하고 비례대표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비례 의석이 늘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이 민주당과 손을 잡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숙원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사법개혁' 관련 법안에 협조하는 대신, 군소정당에 이득이라 생각한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통과시키는 '빅딜'이 이뤄졌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린다는 발상을 하지 않는다. 선거법은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법 중 하나다. 당사자 모두의 심사숙고와 합의 끝에 바꿔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우리의 의석수가 부족한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진보 정치 특유의 '맹신'에 빠져 민주당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 총선 정국이 열리자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모두 총선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이 '공짜 의석'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렸고, 정의당은 총 6석의 의석에 만족해야 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비례대표 선출 산식을 두고 "국민들은 세부 내용을 알 필요 없다"고 했던 심상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 의석 몇 개를 더 가져가보겠다고 민주당과 야합했다가 위성정당 꼼수에 막혀 눈물을 흘리던 심상정.

그랬던 그가 정권 심판이 핵심어로 떠오른 이번 대선에서 5% 미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조국 전 법무장관의 편을 들기까지 했으니, 국민의 눈에 심상정의 정의당은 야당이 아니라 정권의 위성정당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야성과 양심을 동시에 잃은 진보 정치는 오늘날 민주화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이건 선거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정치, 양당 체제를 넘어서려는 제3당 스스로의 문제다.

어떤 농부는 밭을 탓한다. 또 다른 농부는 농기계를 탓한다. 유권자의 수준이 낮고 변덕스럽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선거제도가 불공정해 훌륭한 정치인과 정당이 빛을 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일말의 진실이 없지는 않겠지만, 진지한 정치인이나 지지층이라면 함부로 떠올리거나 입 밖으로 꺼낼 내용은 아니다. 시대정신을 포착해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할 줄 아는, 진정한 새 정치의 출현을 국민은 언제나 기대하고 있다.

#안철수 #심상정 #윤석열 #양당체제 #정권교체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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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5

BTS 수상이 소프트 파워? 文의 본말전도 어이할꼬

 

기사 도구 모음

[노정태의 뷰파인더-61] BTS 신화, 가장 나쁜 방식으로 착취

● 케이팝 시대, 어딘가 석연치 않은
●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석권”한다?
● ‘소프트 파워’ 개념 거꾸로 이해한 文
● 强國 조건 다룬 냉철하고 살벌한 이론
● 자유세계 속한 개방적 민주국가에 근간
● 北 향한 비합리적 짝사랑의 소품 취급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9월 14일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임명장 수여식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절로 임명된 방탄소년단(BTS)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뷔, 제이홉, 진, 문 대통령, RM, 슈가, 지민, 정국. [청와대 사진기자단]
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 인근은 교통정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고 지루한 코로나 시국에서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콘서트. 전 세계에서 몰려든 팬들로 인해 LA는 공항부터 북적였고 곳곳에서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덧 익숙해진 케이팝 시대의 풍경이다.

필자는 1983년에 태어나 40년이 조금 안 되게 살았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한국과 한국 문화가 이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던 일은 없었다. 1980년대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미술가 백남준, 작곡가 윤이상, 영화감독 임권택 등 몇몇 특출난 이가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거나 주목받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특정 장르를 넘어 한국 문화가 전반적으로 관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으쓱거리며 인용할 내용 아닌데…

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 BTS. 약 3시간 동안 ‘DNA’ ‘피 땀 눈물’ ‘Dynamite’ 등 20여 곡을 불렀다. [빅히트뮤직 제공]
그런데 마냥 기뻐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한국의 문화적 위상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특히 정치권에서 이상한 해석을 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살펴보자. 그는 BTS가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AMA)'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했다.

문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지난 10월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한 컨퍼런스다. 문 대통령은 "‘소프트 파워' 개념의 창시자인 세계적 석학 '조지프 나이'는, 한국이 유례없는 경제적 성공과 활기찬 민주주의가 결합하여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고 극찬했습니다"라고 썼다.

과연 그럴까? 조지프 나이의 발언에 그러한 대목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달랐다. 컨퍼런스 내용은 문 대통령이 BTS 대신 으쓱거리며 인용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엉뚱한 방식으로 나이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는데, BTS를 여러 행사에 동원해온 문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 볼 때 그 우려는 더욱 커진다.

나이는 미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의 거장이다. '교과서적 거장' 중 한 사람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소프트 파워 이론 때문만이 아니다. 국제정치학의 세 흐름인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중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로 우뚝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는 국제 사회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이해한다. 반면 자유주의는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국제연합이나 국제법 등 우리가 긍정적으로 여기는 제도나 가치관이 미치는 영향에 방점을 찍는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 사회의 본질은 살벌한 약육강식 전쟁터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설령 전쟁을 하더라도 제네바 협약 등을 준수하며 포로를 학살하는 등의 만행은 자제한다. 이는 자유주의가 발현된 사례로 들 수 있다.

‘소프트 파워’ 개념을 고안한 세계적 석학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동아DB]

살벌한 이론으로 케이팝에 박수 치다?

갑자기 국제정치학 개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가 있다.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의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학이고, 국제정치학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결국 날것의 폭력과 전쟁을 다루는 학문이다. 국가 간의 힘, '파워' 싸움이 본격적으로 전쟁이 되기 직전까지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국제정치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소리다. 국제정치학은 곧 '국가의 파워'에 대한 학문이다.

소프트 파워에 대한 오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개념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물론 '하드'와 구분 짓게 해주는 '소프트'다. 하지만 애초에 논의 자체가 '파워'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프트 파워는 케이팝과 한류 드라마에 박수를 쳐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강국이 되는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파워를 가지고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냉철하고도 살벌한 이론이다. 나이의 책 '소프트 파워'(홍수원 옮김, 세종연구원 刊)를 펼쳐보자.

"파워는 날씨와 같다. 모두가 날씨(파워)에 의존하고 또 화제로 삼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파워'에 대한 고민 없이 '소프트'에만 열광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인식을 꼬집기라도 하는 듯한 첫 문장이다. 나이에 다르면 파워는 크게 두 가지 면을 지닌다. 첫째,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능력. 둘째,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능력.

국제정치학은 곧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므로, 파워의 첫 번째 면만큼이나 두 번째 면도 중요하게 다뤄야 마땅하다. 나이를 국제정치학 거장으로 만든 통찰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다른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할 때, 그 방법은 전쟁이나 침략, 혹은 무력을 통한 억압만이 아닐 것이다. 다음을 보라.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위협으로 타인을 강제할 수도 있고 보상으로 유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들을 꾀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들도 바라게끔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나이의 소프트 파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이도 원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적어놓고 보면 이 당연한 소리가 국제정치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줬다는 사실이 외려 놀랍게 느껴질 정도다. 소프트 파워의 성격과 특징에 대한 나이의 설명을 읽어보자.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보는 식

"이처럼 명백한 위협이나 거래행위 없이도 자국의 목표를 받아들이고 따르게끔 타국을 설득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표현할 수 있어도 눈에 보이지는 않는 매력에 따라 타국의 행위가 결정된다면 그것은 곧 소프트 파워가 제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프트 파워는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색다른 통용수단을 활용한다. 즉 공동의 가치와 정당성, 그리고 그런 가치의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소프트 파워는 어떤 나라의 문화 상품이 다른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잘 팔리는 차원의 문화 마케팅이나 세일즈 용어가 전혀 아니다. 서로 다른 나라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공통의 적과 맞서기도 하는 그런 국제관계의 동역학을 일컫는 개념이다.

문 대통령이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나이가 "한국이 유례없는 경제적 성공과 활기찬 민주주의가 결합하여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11월 23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처럼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석권하고, 그것이 국격과 외교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보는 식의 본말전도다. 소프트 파워는 몇몇 음악가나 영상물에서 시작해 국가 단위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파워가 소프트한 '방식'으로 구사되는 상황과 방법을 설명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앞서 나이가 말했던 '공동의 가치', '정당성', '가치 실현에 대한 책임감' 등을 떠올려 보자. 나이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나라들이 같은 이념과 지향을 지니고 협력해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 이론가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많은 부분을 당연히 포함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국가정체성과 이념적 지향, 자유시장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까지 포괄하는 아주 넓은 차원에서 작동하는 개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는 우리가 자유세계에 속한 개방적인 민주국가라는 것에서 나온다. 우리는 북한과 달리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여당과 야당의 경쟁을 보장하는 선거 제도를 통해 정치권력을 형성한다. 국민 스스로 노력해 재산을 형성하고, 이중 일부를 상식적이고 합리적 수준에서 책정된 세금으로 납부한다. 물론 나머지는 온전히 자기 몫이다.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제도와 문화가 한국 소프트 파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공동의 가치' 찾아볼 수 없는 외교 제스쳐

2021년 12월 현재, 미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고 있다. 선수 참가는 막지 않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는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 뒤를 따라 프랑스를 비롯한 EU(유럽연합) 회원국 역시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했거나 검토하고 있다.

이는 단지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힘 싸움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전부터 중국 인권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던 중 공산당 고위직과 관련된 추문을 밝혔다는 이유로 테니스 스타 펑솨이 선수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따르며 국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라면 선수 참여를 막지는 않더라도 대통령이나 총리 등 고위직이 방문해 베이징올림픽을 축하하는 일은 꺼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종전선언의 주체 중 하나인 미국은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하고 있는데, 그 베이징올림픽을 무대 삼아 종전선언을 해야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소프트 파워" 운운한다. 너무도 황당한 소리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동맹국 미국 및 국제 사회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가치'를 업신여기며, '정당성'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 '가치 실현에 대한 책임감'을 무시하는 듯한 외교적 제스처로 점철돼 있을 뿐이지 않은가.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소프트 파워를 키우기는커녕 더 깎아먹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전에 없이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문화생산자들, 특히 BTS의 성공 신화를 돕지는 못할망정 가장 나쁜 방식으로 착취하고 있다. BTS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북한을 향한 비합리적 짝사랑의 소품으로 이용하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는 우스꽝스러울뿐 아니라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이 탁현민의 연출에 따라 BTS를 앞세워 자국민을 굶겨 죽이고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최악의 독재자와 폭압 정권을 옹호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퇴임을 석 달 앞둔 상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더 이상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

#BTS #AMA #소프트파워 #조지프나이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28

'코리아 미스터리'.."한국인 19%, 가족보단 돈이 중요"

 [노정태의 뷰파인더-60] BTS·오징어게임 외에 또 세계 1위 무엇?

● 삶의 의미에서 1순위는 ‘물질적 풍요’
● 전 세계 응답자 38% 가족 꼽았는데…
● 초점 어긋난 SNS ‘재야 고수’의 품평
● 세계를 당황케 만든 ‘돈’ 외치는 나라
● 수험생마냥 설문에 응한 韓日 응답자
●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삶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파트는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화다. 사진은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대한민국이 1등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고 생경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양궁이나 쇼트트랙처럼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게 익숙히 여겨지는 종목의 스포츠 중계가 아닌 다음에야, '한국'과 '1등'이라는 말은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새 세상이 달라졌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로 이름을 올린다. 익숙한 분야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도 한국이 1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지난 11월 18일 미국 퓨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결과는 우리 국민을 큰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전 세계 성인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대한민국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에서 1등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다.

‘물질적 풍요', 즉 '돈'을 1순위로 꼽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이가 적잖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마치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밝히는 사람들'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1등이 좋다고 해도 그런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 희한한 결과를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물질적 풍요 19%, 건강 17%, 가족 16%

조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조사 대상국은 총 17개국이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들이다. 국민들이 '삶의 의미'를 고민할 여유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경제적 풍요를 어느 정도 이룬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삶의 의미를 주는 제1의 가치는 '가족'이다. 전체 응답자 중 38%가 '가족'을 꼽았다. 이어 '직업'(25%), '물질적 풍요'(19%) 순으로 이어진다.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족은 1위에 올랐는데, '삶의 의미'라는 말을 놓고 보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결과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꼽는 답변이 50%를 넘겼다.

반면 한국인들은 삶의 의미에서 1순위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19%). 그 다음은 건강이었고(17%), 가족은 3위에 지나지 않았다(16%). 비록 근소한 차이이긴 하나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것 자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을 제외하면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흔히 한국을 유교적 가치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대표되는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지닌 도덕·윤리 체계다. 정작 한국인들은 가족이 아니라 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니, 상식과 심각히 배치되는 결과 아닌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떠들썩하게 달아올랐다. 언론에서 보도하기 전부터 '재야 고수'들이 달려들어 다방면으로 결과를 검토하고 품평했다. 과연 이 조사를 믿어도 되는 것이냐, 조사 문항이 잘못 짜인 것은 아니냐, 국내 여론조사 업체와의 협력 과정에서 번역이 잘못됐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연이어 제기됐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여론조사는 없다. 하지만 '재야 고수'들의 비판은 초점이 어긋나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초당파적 싱크탱크다. 주로 설문조사에 근거해 미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종종 다른 나라 여론조사 기관과 협력해 국제적 비교 조사를 수행하기도 한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쓰인 연구 결과를 인터넷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편이다. 설문조사 문항 및 조사 방법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고서 말미에 부록을 통해 충실히 전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싱크탱크라는 그 명성에 손색이 없는 행보다.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에서 직접 여론조사를 진행할 수 없어 국내 업체와 협업을 했다. 한국갤럽이 2021년 3월 15일~4월 29일 사이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가중치를 뒀고 오차범위는 ±3.5%포인트. 갤럽은 국내 여론조사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업체 중 하나다. 해외 연구기관과의 협업 경험도 풍부하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조사 결과를 단순 번역 오류 따위로 치부해버리면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일이 되고 만다.

서울 광화문의 한 회사 건물에 야근 근무자들로 인해 환히 불이 켜져 있다. [동아DB]

한국인을 위한 어떤 변명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할 때 '돈'을 외치는 나라. '코리아 미스터리'. 이 결과를 두고 당황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조사를 발표하기 전 퓨리서치센터 내부에서도 진지한 고민과 해석의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총 14페이지로 이루어진 온라인 발표문 중 첫 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왜 이 보고서는 응답의 비율 뿐 아니라 순위에 집중하였는가(Why this report focuses on topic rankings in addition to percentages)"라는 별도의 항목이 등장한다.

애초에 이 설문조사는 여러 선택지 중 오직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았다. 복수 응답을 하고 피조사자가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족도 중요하고, 건강해야 할 것 같고, 경제적 여유도 빼놓을 수 없지요'라고 대답하면, 퓨리서치센터는 그것들을 항목별로 모두 합산한 후 전체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조사했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응답자 중 42%가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중요 요소로 꼽았지만, 스페인에서 물질적 풍요는 1위가 아닌 2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다. 스페인 사람들 중 1위인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이들은 무려 48%나 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1위인 물질적 풍요가 19%, 2위인 건강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한 걸까?

다른 나라 응답자들과 달리 한국과 일본의 응답자들은 복수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국인과 일본인 중 많은 이들은 질문지를 유심히 살펴본 후 신중하게 고민해 정말 딱 하나의 답만 골랐다. 편안하게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주기를 바라고 만들어진 설문조사 앞에서, 마치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마냥 최선을 다해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설문조사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주로 근거로 삼는 대목도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인생에 의미를 주는 요소를 이것저것 두루 택하지 않았다. 빡빡하게 딱 하나만 골랐고, 그러니 근소한 차이로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한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돈 좋아하기는 마찬가지고, 한국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돈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국인을 위한 변명인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경향 거스르는 '아웃라이어'…이게 사는 건가?

국가 단위로 가치관을 조사하고 발표하는 연구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에 시작돼 지금까지 5년 주기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있다. 다수의 국가를 상대로 장시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기에, 퓨리서치센터가 이번에 수행한 단발성 여론조사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자료로 꼽힌다.

세계가치관 조사는 가치관을 두 개의 차원으로 구분한다. '전통·종교 중시' 대 '세속·이성 중시'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생존 중시' 대 '자기 표현 중시'가 또 다른 축을 이룬다. 대체로 많은 국가들은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전통과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과 이성의 세계로 넘어가며, 동시에 생존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잦아들고, 자기표현과 관용, 자선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상식에 부합하는 보편적 트렌드다.

문제는 또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생존을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000달러이던 시절이나 2만 달러이던 시절이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자기 표현 대신 생존을 택한다. 전통과 종교가 아닌 세속과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 또한 여전하다. 세계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세속적이고 잇속을 따지며 생존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세계가치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통계적 경향성을 거스르고 있는, 통계학의 용어를 빌자면 '아웃라이어'(outlier)인 셈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이번 설문조사가 잘못됐다, 혹은 결과가 왜곡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 심정적으로 납득하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의 배금주의적, 생존주의적, 물질주의적 경향은 다른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듯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를 좀 더 꼼꼼히 훑어보면 한국인의 각박한 삶이 드러난다. 외국인들은 직업, 친구관계, 교육과 배움, 자연을 즐기는 삶 등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런 응답지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주요 종교의 등록 신자를 합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 클 정도로 제도권 종교가 성행하는 나라지만, 한국인 중 삶의 의미의 원천으로 종교를 꼽은 사람은 1% 뿐이다. 교회 성당 절을 열심히 다니긴 해도 설문조사 용지를 받아들고 나면, 예수님·부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다는 소리다. 이게 사는 건가?

‘기적은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영국의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 다니엘 튜더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이 나라를 다방면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후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다름 아닌 필자에 의해 번역됐고, 출판사의 판단에 따라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번에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적을 이루었지만 기쁨을 잃은 나라에 살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물질주의 #세계가치관조사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
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27

"고개 들어 다스베이더를 보라".. 586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때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스타워즈'의 안티히어로
다스 베이더가 남긴 교훈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제다이의 희망이었다. 예언에 따르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출중한 재능을 뽐냈다. 라이트세이버(광선검)를 이용한 싸움, 우주선 조종 등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제다이 기사단마저 쑥대밭으로 만든 후 은하 제국 황제의 오른팔이 되고 만다. 다스 베이더가 된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조지 루커스가 만든 오리지널 3부작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 3> 그중에서도 2편인 <클론의 역습>을 살펴보자. 젊고 자신만만한 아나킨은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 제다이 육성 과정은 길고 지루하다. 은하 공화국의 정치는 각자 다른 이해관계와 의견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하다. 아나킨의 연인이 된 파드메 의원은 말한다. “매번 동의가 이루어지진 않아.” 아나킨은 답한다. “그럼 동의하게 만들어야죠.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파드메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한다. “그건 독재처럼 들리는데?” 그러나 아나킨은 진지하다. “결과만 좋다면 상관없죠.” 그 모습을 본 파드메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진다.

일러스트=유현호

이 대화는 마치 4컷 만화처럼 ‘밈’으로 편집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자들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언가 말할 때 헤어밴드를 두른 단발머리 여자가 정색하는 표정을 짓는 바로 그 ‘짤방’ 말이다. 뜨거운 심장을 지닌 젊은이가 결국 악당 다스 베이더가 되고 만다는 점을 놓고 보면 퍽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인 변증법, 그중에서도 ‘안티테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dialectics)은 고대 그리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진리 탐구 방식 중 하나다.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을 놓고 맞붙여서 제3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역시 일종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그 개념을 이어받아 자신의 핵심 원리로 삼았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지문에 등장한 변증법은, 이렇듯 정반합(正反合) 원리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고 예측하고자 했던 헤겔의 철학적 기획이다.

<스타워즈>로 돌아와 보자. 은하공화국은 1000년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제다이 기사단은 개인적 삶과 감정 등을 모두 포기하고 공화국을 지킨다. 이렇듯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헤겔은 ‘테제’(Thesis)라 불렀다. 한자로 표기하면 정(正)이다. 아나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다이 기사는 공화국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자신의 힘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한 정치는 효율적인 중앙집권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을 ‘테제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안티테제’(Antithesis), 반(反)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킨은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경험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공화정의 무능함, 제다이의 허례허식과 엄격한 규칙만으로는 소중한 이를 지킬 수 없다고 절감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영웅(Hero)인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정체성을 버리고 악당(Anti-Hero)인 다스 베이더로 거듭났다. 공화정의 안티테제인 은하제국, 제다이 기사단의 안티테제인 시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막강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안티테제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진테제’(Synthesis), 합(合)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다. 빼놓거나 생략하면 변증법적 운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악당이 없으면 주인공의 모험이 빛나지 않듯, 안티테제가 없으면 테제는 진테제로 나아갈 수 없다.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라는 아나킨에 대한 예언은 그런 의미에서 정확한 것이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인 다스 베이더가 출현했기 때문에 은하계의 역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로 돌아와 보자.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고 현재 50대가 되어 있는 586 세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두환 정권의 본고사 폐지, 학력고사 실시 등의 여파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대학에 들어갔다. 과외 금지는 오히려 불법 과외로 짭짤한 용돈 벌이를 할 기회였다.

캠퍼스에 모인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 김일성을 항일 투사로 과대 포장한 몇몇 조악한 서적을 읽고 ‘과거’에만 탐닉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티테제인 북한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키워나갔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권력 공백을 노리고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국적인 시민 저항에 직면하자 광주를 특정하여 군사력을 동원해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런 모습을 본 당시 대학생들은 대한민국과 한미 동맹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현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할 수 있다면 뭐든지 좋다고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마치 공화국과 제다이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안티히어로가 되어버리고 만 다스 베이더처럼 흑화(黑化)한 것이다.

그러나 안티테제는 어디까지나 안티테제일 뿐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역사의 조연이지만, 안티테제 그 자체가 다음 세상에 속할 수는 없다. 테제와 안티테제, 과거에 속하는 둘이 서로 모순을 폭로해가며 싸우다 보면, 새로운 세대와 사상이 출현하여 진테제를 이루어내는 것이 변증법이다.

586이라는 안티테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의의가 없지 않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형식을 갖추는 데 그들이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티테제는 테제와 서로 모순을 드러내며 대립하다가 진테제에 자리를 내주는, 정반합 운동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그 안티테제인 586 세대 역시,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때 아닐까.

다스 베이더는 어둠의 끝에서 선한 마음을 되찾는다. 아들인 루크를 지켜내고, 황제를 스스로 처리한 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안티히어로의 슬프고 아름다운 결말이다. 대한민국의 안티테제 세대, 586의 변증법적 퇴장을 기대한다.

2021-11-21

'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책임 탓한 이재명의 역사 인식

 [노정태의 뷰파인더-59] 진보파가 미국 철석같이 믿어..냉철한 인식 필요한 때

● ‘외세 대 자주’ 구도 만들려는 의도
● 진중권이 애매한 코멘트 남긴 이유
● 엄밀히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없어
● ‘협정’ 아니라 일본의 외교전·언론전
● ‘순수한 피해자’ 전제한 역사해석
● 말로는 自主 외치지만 의식세계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맞지만 양국 관계에 '작은 그늘'이 있다며, 따지고 보면 분단의 책임도 미국에게 있다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지지율 정체기에 '외세 대 자주' 구도로 대선을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이는 발언이다.

문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응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같은 날 "한미 간 우호협력을 위해 내방한 분에게 과거 역사를 거론하는 것보다 우리 미래를 위한 협력을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발언 내용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자 하는 태도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외교'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거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의미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묵인했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을까? 그리하여 분단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겪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관점은 진보 진영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진중권이 특유의 촌철살인 대신 애매한 코멘트를 남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밀약'이 애당초 없는 두 가지 이유

엄밀히 말하자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따져보도록 하자.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돼갈 무렵, 가쓰라 타로 일본 수상이 필리핀의 초대 총독을 역임한 육군장관 태프트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가쓰라가 태프트에게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할 테니, 미국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해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태프트는 일본에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양국 간 비밀 협정이 체결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필리핀 총독이었을 뿐 미국의 국방·외교 정책을 좌우할만한 자리에 있지 못했다. 애초 그러한 '밀약'을 맺을 권한이 없었다는 소리다. 다만 가쓰라가 워낙 집요하게 물어본 통에,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붙여 '일본이 한국에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태프트는 1905년 7월 29일자로 미국 외무장관 루트(Eligu Root)에게 전보문서(電文)를 보냈다. 일본에서 이러저러한 대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업무 메모였다. 1924년 존스홉킨스대 역사학부 교수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그 메모를 발견하고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막후 협상이 존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발칵 뒤집혔다. 설마 싶었던 내용을 확인했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메모는 '비밀협상'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 오간 대화는 '비밀'이 아니었다. 태프트가 일본을 방문해 가쓰라와 만난 시기는 1905년 7월 27일. 그런데 약 3개월이 지난 10월 4일, 친정부성향의 고쿠민신문(国民新聞)에 대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물론 미국 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20여년 후 데넷의 연구에 의해 그러한 대화가 사실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튼, '협정'은 없었고 '비밀'도 아니었으니 '밀약'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견해는 필자가 독자적으로 창작해낸 게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에스더스(Raymond Arthur Esthus)가 1959년 제기한 반론을 요약한 것이다. 가쓰라와 태프트는 '밀약'을 한 적이 없다. 태프트에게는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었고, 따라서 어떤 외교적 협상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아 한 마디 했고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는데, 놀랍게도 대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태프트나 미국 측에서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던 셈이다.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다!

1905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있지도 않았던 '밀약'이 언론에 대서특필됐을까? 일본이 언론을 동원한 외교전을 펼쳤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지배적 견해다. 러일전쟁에서 이겼는데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확보가지 못할까 두려웠던 탓이다. 이에 일본은 여러 단계에 걸쳐 무리수를 뒀다. 굳이 일본에서 태프트와 만나 조선 지배를 양해한다는 취지의 표현을 끌어낸 후, 그것을 언론에 살짝 흘려 기정사실화하는 수법을 썼다.

이는 마치 마를 캐는 소년이던 서동이 '서동과 선화공주는 밤마다 함께 잔다'는 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부인으로 삼은 것과 유사한 수법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꼽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외국과의 동맹도 전쟁도 피하는 성향을 지닌 '잠자는 거인'에 가까웠다. 조선 지배에 대해 미국의 공식적 지지를 정상적 경로로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을 확보해야 했던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가 다소 뒤엉킬 위험을 감수하고 외교전, 언론전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해외 역사학자들도 두루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는 '몰래 맺은 협정'이라는 뜻을 지니는 '밀약'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했다. 고종이 덕수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벌어졌다는 것. 영국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일본을 지원했고 일본은 러일전쟁을 벌여 개항 50여년 만에 숙적 러시아를 꺾는 쾌거를 이루었다는 것.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입 속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미국은 조선을 지켜줄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를 '순수한 피해자'의 자리에 놓고 역사를 해석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당시는 나약했던 조선마저도 '대한제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시대다. 제국주의의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했다. 지금처럼 국제 질서에도 보편적인 도덕과 당위를 전제하고,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 함께 비난하며 저지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던 20세기 초의 국제 정세를 완전히 오판한 고종이 영국, 혹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을 버리고 러시아의 편에 섰을 때, 러일전쟁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스스로를 '거대한 체스판'의 전리품으로 올려놓은 채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고 말았다.

반일·반미 무기 삼아 역전 노리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일행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의 '가쓰라-태프트 발언'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지지율에서 수세에 몰려 있으니 말이다. 반일·반미를 무기 삼아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특히 지식인들의 반응이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경우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할 소리는 아니다' 같은 식의 반응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기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보 성향을 지니는 사람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반대하거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그렇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너무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20세기 초의 미국은 지금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강국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형상 독립 국가였고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건 말건 찬성할 이유도 반대할 근거도 딱히 없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미국이 한반도에 지나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 왜 100년 전 미국이 식민지도 아닌 조선을 지켜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의 제1조가 근거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던 고종의 논리이기도 하다. 조미통상수호조약 1조에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면 서로 돕겠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으니 미국은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줬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해당 구절은 1858년 청나라가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와 맺었던 텐진조약 중 미국과의 협상문에 들어갔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1894년 청일전쟁에서 미국이 해당 조약을 이유로 청과 군사 협력을 해 청나라를 지켜줬을까?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라고 국제 협약과 동맹 등이 모두 휴지조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약 당사국인 미국은 텐진조약 1조의 '불경공모' 구절을 그저 미사여구로 취급했다. 청과의 조약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 구절을 두고, 미국이 조선에 대해서만은 그 미사여구를 문자 그대로 실천해 주리라 믿는 것은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조선 처지에서 항의할 수야 있겠지만 상대가 흔쾌히 받아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한국의 반미주의자·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말로는 민족 자결, 독립, 자주를 외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뜯어보면 진보 측에서 흔히 비난하는 '친미주의자'들보다 더욱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겼다! 이 주장은 조선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전제하지 않는 한, 혹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오직 미국만은 천사처럼 조선을 지켜주었어야 한다고 단정 짓고 있지 않는 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亡國은 누구의 책임인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묵인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조선 망국의 책임은 결국 조선 스스로에 있었다. 서양과의 접촉 및 근대화가 늦었다. 후발주자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할 지배층은 제 배를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다. 그러면서도 국내 정치의 필요를 위해 국제 정치를 아무렇게나 갖다 썼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건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냉철한 머리로 우리의 객관적 처지와 현실을 파악하여 담대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이재명 #가쓰라태프트 #일제강점기 #반미 #반일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