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일벌백계’에서 ‘백벌백계’로●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교훈
● 찰스 페로의 통찰, ‘정상 사고’
● 분풀이 패러다임은 해결책인가
● 중대재해처벌법 우려하는 이유
● 작업중지권 없는 韓 근로감독관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건설 중인 아파트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공사 작업자 중 6명이 실종됐다가 1월 14일 1명이 사망한 상태로 수습됐다. 1월 18일 현재 5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광주=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
대형 건축물, 원자력 발전소, 화학 공장, 비행기, 배 등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떠올려보자. 각각 목적도 제작 방식도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중층적 하위 체계를 결합해 만들어지며, 하위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적당히 뺐고, 적당히 실었으며, 적당히 묶고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은 그 나름의 철저한 관리 감독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할 수 있다. 마치
고도로 복잡한 생명체인 인간이나 동물이 작은 병이나 상처를 입은 채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큰 차질이 없는 상태. 그런 상태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그런 작은 문제가 여러 개 중첩되면 어떨까. 평소 다한증이 있어 손바닥에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발바닥에 작은 티눈이 생겼고, 오늘따라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충혈 되고 침침한 상태라고 해보자. 떼어놓고 보면 별 문제가 아니다. ‘정상’이다. 다만 발바닥의 티눈 때문에 걸음걸이가 어색해진 상태에서, 눈이 잘 안 보여 균형을 잃었는데, 손바닥에 땀이 나 있어서 계단의 난간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넘어진다면 ‘정상적’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크게 다칠 수 있다.
페로의 주된 목적은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냉각수를 거르는 복수 탈염 장치에 불순물이 섞였고, 터빈의 작동이 멈췄다. 흔히 발생하는 ‘정상적’ 상황이었다. 하필 그 상황에 대비한 비상 급수 펌프가 막혀 있었다. 이틀 전 보수 작업을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 지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밸브에 이상이 있을 때 표시하는 램프 위에는, 하필이면 바로 그 때, 서류가 붙어 있었다. 밸브 이상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곧장 대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노심이 과열됐고 미국에서 가장 큰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다. 늘 해왔던 것처럼 짐을 더 싣기 위해 평형수를 적당히 뺐고, 배에 많은 짐을 실었으며, 그 짐을 제대로 묶지 않았다. 하필이면 조류가 거세게 휘몰아치는 수역에서 선박 운항에 서툰 3등 항해사가 키를 잡았고, 짐이 무너지면서 배가 균형을 잃었는데, 하필 그때 배의 조타장치를 움직이는 부품이 관리 소홀로 인해 한쪽으로 쏠린 채 고정되고 말았다. 무게균형이 깨지지 않았다면 적당히 제 자리에서 맴돌았을 세월호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게다가 최고 안전 책임자 선장과 그 아래 고급 선원 다수가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도망쳤다. 그 결과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벌어졌다.
이렇듯 거대한 공장, 발전소, 건설 현장, 기차나 배, 우주선 같은 대형 시스템에는 ‘정상적’으로 처리되면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문제가 수없이 발생하고 또 해결되지만, 때로는 그런 작은 사고가 겹친다. 그러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 찰스 페로는 그와 같은 현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상호작용성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고 한다.”
너무도 친숙한 패턴 반복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월 17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날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
사고 후 전개는 우리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사임했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공사부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와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감리 3명 역시 관리 감독 소홀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문제가 터진 후 ‘책임자’를 찾아서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드높이는, 너무도 친숙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 실종자 수습과 원인 분석이 이뤄지는 중이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고층 아파트 건설 사고 역시 일종의 시스템 사고라는 것이다. 개별적 작업만 놓고 보면 ‘이쯤은 해도 되겠지’ 싶어서 어기는 안전 규칙, 혹은 챙기지 못한 작은 실수와 문제가 중첩돼 거대한 사고로 이어졌으리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단 하나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사고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형 사고에 대해 이전과 같은 방식의 대응만을 반복한다. 책임자 나와라, 누구 잘못이냐, 누구 하나 붙잡아 ‘일벌백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심지어 현장 작업자들이 이른바 조선족이라는 식으로 혐오 발언 성격을 지닌 음모론마저 횡횡한 상태다. 누군가는 잘못을 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은 애꿎은 희생자가 됐겠지만 ‘일벌백계’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된다.
‘일벌백계’는 기본적으로 백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을 처벌해 본보기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99건의 위반 사항을 잡지 않거나 못한다는 소리다. 그런 식으로는 시스템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사항을 100% 철저하게 지킨다 해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수와 오류가 중첩돼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일벌백계’는 사고의 예방이 아닌 사고 발생 후의 분풀이를 위한 패러다임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1월 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우려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앞으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하청이나 재하청이 아닌 원청의 대표자나 책임자 등이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일벌백계’의 세계관에 따르면 대단히 정의로운 일이다. 하지만 건설 및 산업 현장의 인센티브 구조는 그대로다. 원청과 하청의 먹이사슬은 똑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는 사고가 날 경우 대신 감옥에 갈 누군가를 앞세우는 식으로 기업들이 대응하지 않을까. 심지어 ‘일벌백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백벌백계’와 체크리스트
해법은 없을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사고들이 모여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현상, 그것을 어떻게 가능한 한 원천봉쇄할 수 있을까.우리는 정답을 모두 설명했다. ‘일벌백계’를 버리고 ‘백벌백계’로 나가야 한다. ‘큰’ 사고가 터졌을 때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고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때리는 식으로는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한다.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하면 결국에는 ‘큰’ 사고가 터진다. 그러므로 핵심은 ‘작은’ 사고들을 꾸준히 체크하고 예방하며 곧장 수정하고 확인할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는 의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다. 현직 의사면서 ‘뉴요커’의 필자로도 유명한 아툴 가완디는 ‘체크! 체크리스트’에서 그러한 과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현대 의료계의 근본적인 수수께끼가 있다. 지독하게 아픈 환자가 있다. 그 환자를 살리려면 먼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에 따른 직무 178가지를 매일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바로 옆 침대에 있는 환자의 심장이 멎고, 여성 환자의 가슴 개복을 도와달라고 간호사가 찾아오더라도 일의 종류나 성격에 상관없이 178가지 일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인 상황이다. 심지어는 아직도 의료계가 충분히 전문화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툴 가완디의 해법은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확인하며 일하는 것이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확인할 사항을 체크리스트로 만들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기에 앞서 서로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며 그 체크리스트를 검토한다. 그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업무 현장은 훨씬 민주적인 분위기로 변하고, 서로가 상대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사소한 실수가 거대한 실패를 낳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단, 중요한 전제가 있다.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수술실에서 가장 직급이 낮은 간호사에게 체크리스트를 맡기면 권위적인 의사나 간호사는 무시하고 ‘대충 빨리 하자’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체크리스트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부기장이 기장에게 체크리스트에 입각해 좋은 조언을 해도 권위적인 기장이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수술실 막내 간호사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산업안전에 대한 우리의 법과 규정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주요 외국의
하도급 산업안전 체계와 함의’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좋은 제도를 많이 수입해 놓은 상태다. 문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박찬임은 특히 현장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근로감독관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근로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이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작업중지권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있다. 근로감독관은 다만 관계인에게 질문하고 서류를 요청할 권한을 가질 뿐이다(산업안전보건법 제 155조 1항). 수술실의 막내 간호사가 체크리스트를 쥐고 있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어도 의사를 막을 권리는 없는 셈이다. 물론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확충하는 것 말고도 더 좋은 방안이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유의 아파트 붕괴 사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실종자를 찾는 것만이 아니다. 민주적으로 소통하며 지킬 건 지키는 안전한 산업 현장을 이뤄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내려고 대충 넘어가는 악습을 도려내지 않는 한, ‘정상 사고’는 언젠가 재발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