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2

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일벌백계’에서 ‘백벌백계’로

●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교훈
● 찰스 페로의 통찰, ‘정상 사고’
● 분풀이 패러다임은 해결책인가
● 중대재해처벌법 우려하는 이유
● 작업중지권 없는 韓 근로감독관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건설 중인 아파트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공사 작업자 중 6명이 실종됐다가 1월 14일 1명이 사망한 상태로 수습됐다. 1월 18일 현재 5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광주=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대형 참사는 ‘정상적’ 사건이다. 사회학자 찰스 페로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소개된 책 ‘Normal Accident’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 사고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뒤흔든 바 있다.

대형 건축물, 원자력 발전소, 화학 공장, 비행기, 배 등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떠올려보자. 각각 목적도 제작 방식도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중층적 하위 체계를 결합해 만들어지며, 하위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적당히 뺐고, 적당히 실었으며, 적당히 묶고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은 그 나름의 철저한 관리 감독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할 수 있다. 마치 고도로 복잡한 생명체인 인간이나 동물이 작은 병이나 상처를 입은 채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큰 차질이 없는 상태. 그런 상태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작은 문제가 여러 개 중첩되면 어떨까. 평소 다한증이 있어 손바닥에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발바닥에 작은 티눈이 생겼고, 오늘따라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충혈 되고 침침한 상태라고 해보자. 떼어놓고 보면 별 문제가 아니다. ‘정상’이다. 다만 발바닥의 티눈 때문에 걸음걸이가 어색해진 상태에서, 눈이 잘 안 보여 균형을 잃었는데, 손바닥에 땀이 나 있어서 계단의 난간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넘어진다면 ‘정상적’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크게 다칠 수 있다.

페로의 주된 목적은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냉각수를 거르는 복수 탈염 장치에 불순물이 섞였고, 터빈의 작동이 멈췄다. 흔히 발생하는 ‘정상적’ 상황이었다. 하필 그 상황에 대비한 비상 급수 펌프가 막혀 있었다. 이틀 전 보수 작업을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 지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밸브에 이상이 있을 때 표시하는 램프 위에는, 하필이면 바로 그 때, 서류가 붙어 있었다. 밸브 이상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곧장 대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노심이 과열됐고 미국에서 가장 큰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다. 늘 해왔던 것처럼 짐을 더 싣기 위해 평형수를 적당히 뺐고, 배에 많은 짐을 실었으며, 그 짐을 제대로 묶지 않았다. 하필이면 조류가 거세게 휘몰아치는 수역에서 선박 운항에 서툰 3등 항해사가 키를 잡았고, 짐이 무너지면서 배가 균형을 잃었는데, 하필 그때 배의 조타장치를 움직이는 부품이 관리 소홀로 인해 한쪽으로 쏠린 채 고정되고 말았다. 무게균형이 깨지지 않았다면 적당히 제 자리에서 맴돌았을 세월호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게다가 최고 안전 책임자 선장과 그 아래 고급 선원 다수가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도망쳤다. 그 결과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벌어졌다.

이렇듯 거대한 공장, 발전소, 건설 현장, 기차나 배, 우주선 같은 대형 시스템에는 ‘정상적’으로 처리되면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문제가 수없이 발생하고 또 해결되지만, 때로는 그런 작은 사고가 겹친다. 그러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 찰스 페로는 그와 같은 현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상호작용성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고 한다.”

너무도 친숙한 패턴 반복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월 17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날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1월 11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건설 중인 아파트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23층부터 38층까지 무너져 내렸다. 공사 작업자 중 6명이 실종됐다가 1월 14일 한 명이 사망한 상태로 수습됐다. 1월 18일 현재 아직 5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사고 후 전개는 우리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사임했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공사부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와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감리 3명 역시 관리 감독 소홀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문제가 터진 후 ‘책임자’를 찾아서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드높이는, 너무도 친숙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 실종자 수습과 원인 분석이 이뤄지는 중이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고층 아파트 건설 사고 역시 일종의 시스템 사고라는 것이다. 개별적 작업만 놓고 보면 ‘이쯤은 해도 되겠지’ 싶어서 어기는 안전 규칙, 혹은 챙기지 못한 작은 실수와 문제가 중첩돼 거대한 사고로 이어졌으리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단 하나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사고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형 사고에 대해 이전과 같은 방식의 대응만을 반복한다. 책임자 나와라, 누구 잘못이냐, 누구 하나 붙잡아 ‘일벌백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심지어 현장 작업자들이 이른바 조선족이라는 식으로 혐오 발언 성격을 지닌 음모론마저 횡횡한 상태다. 누군가는 잘못을 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은 애꿎은 희생자가 됐겠지만 ‘일벌백계’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된다.

‘일벌백계’는 기본적으로 백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을 처벌해 본보기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99건의 위반 사항을 잡지 않거나 못한다는 소리다. 그런 식으로는 시스템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사항을 100% 철저하게 지킨다 해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수와 오류가 중첩돼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일벌백계’는 사고의 예방이 아닌 사고 발생 후의 분풀이를 위한 패러다임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1월 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우려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앞으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하청이나 재하청이 아닌 원청의 대표자나 책임자 등이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일벌백계’의 세계관에 따르면 대단히 정의로운 일이다. 하지만 건설 및 산업 현장의 인센티브 구조는 그대로다. 원청과 하청의 먹이사슬은 똑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는 사고가 날 경우 대신 감옥에 갈 누군가를 앞세우는 식으로 기업들이 대응하지 않을까. 심지어 ‘일벌백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백벌백계’와 체크리스트
해법은 없을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사고들이 모여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현상, 그것을 어떻게 가능한 한 원천봉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답을 모두 설명했다. ‘일벌백계’를 버리고 ‘백벌백계’로 나가야 한다. ‘큰’ 사고가 터졌을 때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고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때리는 식으로는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한다.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하면 결국에는 ‘큰’ 사고가 터진다. 그러므로 핵심은 ‘작은’ 사고들을 꾸준히 체크하고 예방하며 곧장 수정하고 확인할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는 의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다. 현직 의사면서 ‘뉴요커’의 필자로도 유명한 아툴 가완디는 ‘체크! 체크리스트’에서 그러한 과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현대 의료계의 근본적인 수수께끼가 있다. 지독하게 아픈 환자가 있다. 그 환자를 살리려면 먼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에 따른 직무 178가지를 매일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바로 옆 침대에 있는 환자의 심장이 멎고, 여성 환자의 가슴 개복을 도와달라고 간호사가 찾아오더라도 일의 종류나 성격에 상관없이 178가지 일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인 상황이다. 심지어는 아직도 의료계가 충분히 전문화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툴 가완디의 해법은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확인하며 일하는 것이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확인할 사항을 체크리스트로 만들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기에 앞서 서로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며 그 체크리스트를 검토한다. 그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업무 현장은 훨씬 민주적인 분위기로 변하고, 서로가 상대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사소한 실수가 거대한 실패를 낳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단, 중요한 전제가 있다.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수술실에서 가장 직급이 낮은 간호사에게 체크리스트를 맡기면 권위적인 의사나 간호사는 무시하고 ‘대충 빨리 하자’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체크리스트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부기장이 기장에게 체크리스트에 입각해 좋은 조언을 해도 권위적인 기장이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수술실 막내 간호사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산업안전에 대한 우리의 법과 규정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주요 외국의 하도급 산업안전 체계와 함의’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좋은 제도를 많이 수입해 놓은 상태다. 문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박찬임은 특히 현장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근로감독관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근로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이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작업중지권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있다. 근로감독관은 다만 관계인에게 질문하고 서류를 요청할 권한을 가질 뿐이다(산업안전보건법 제 155조 1항). 수술실의 막내 간호사가 체크리스트를 쥐고 있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어도 의사를 막을 권리는 없는 셈이다. 물론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확충하는 것 말고도 더 좋은 방안이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유의 아파트 붕괴 사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실종자를 찾는 것만이 아니다. 민주적으로 소통하며 지킬 건 지키는 안전한 산업 현장을 이뤄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내려고 대충 넘어가는 악습을 도려내지 않는 한, ‘정상 사고’는 언젠가 재발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아무튼, 주말] 코로나 패닉에 던져진 확률 퀴즈… “백신 접종, 살아남는 데 정말 유리할까?”

[아무튼, 주말] 코로나 패닉에 던져진 확률 퀴즈… “백신 접종, 살아남는 데 정말 유리할까?”

[노정태의 시사哲]
몬티 홀의 ‘세 개의 문’과
백신 효과의 상관관계

퀴즈. 세 개의 문이 있다. 그중 하나를 열면 최신형 자동차가 있지만, 나머지 두 문 뒤에는 염소가 있다. 3분의 1의 확률로 당첨, 나머지 3분의 2는 꽝인 셈이다. 여러분은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러스트=유현호

가상의 수학 문제가 아니다. 1963년부터 40여 년간 방송된 미국의 TV 쇼 ‘거래를 합시다’(Let’s Make A Deal)에서 수없이 반복된 상황이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몬티 홀은 퀴즈를 맞힌 참가자에게 상품을 뽑으라며 질문을 던졌다. “1번 문을 원하십니까, 2번 문 아니면 3번 문?” 참가자가 문 하나를 고르면 정답을 아는 몬티 홀은 능청스럽게 참가자가 고르지 않은 문을 하나 택해서 보여준다. ‘꽝’이다. 몬티 홀은 다시 묻는다. “지금 선택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바꾸시겠습니까?”

얼핏 생각해보면 굳이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듯하다. 꽝 하나가 제거되었지만, 아무튼 내가 원래 택한 문은 정답이거나 오답일 것이고, 그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처음 선택을 바꿨다가 꽝을 뽑게 되면 얼마나 후회막심이겠는가. 그래서 수많은 출연자들은 처음 고른 선택지를 바꾸지 않았다.

미국 최고의 IQ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던 칼럼니스트 메릴린 사반트가 볼 때, 선택지를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몬티 홀이 세 개의 문 중 하나가 오답이라는 걸 보여줬다면 참가자는 선택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어째서일까? 몬티 홀의 개입으로 인해 단순한 확률 문제가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건부 확률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제하에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뜻한다. 몬티 홀은 오답을 하나 제거하면서 참가자에게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건은 확률의 조건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차분하게 따져보자. 참가자가 처음에 오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2, 정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1이었다. 그런데 몬티 홀이 등장하여 오답을 ‘골라서’ 제거해줬다. 그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3분의 1의 오답 가능성을 몬티 홀이 대신 가져가준 것과도 같다. 따라서 참가자가 새로운 선택을 하면 오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1이다. 세 개의 문 중에서 하나가 오답이라는 것을 미리 아는 상태에서 나머지 오답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답을 택할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3분의 2로 늘어난다.

곧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거래를 합시다’ 시청자 중 메릴린 사반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1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 1000명가량이 수학이나 공학 등을 전공한 ‘이과인’들이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확률, 특히 조건부 확률은 많은 경우 우리의 직관과 상식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티 홀 문제는 수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전제 조건이 달라졌다면 확률도 달라진다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백신 맞아도 코로나 걸리잖아, 그럼 대체 백신을 뭐 하러 맞는 거야?” 요즘 많은 곳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완전히 틀리는 말은 아니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위험성은 전혀 달라진다. 편의상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에 걸려 죽을 확률을 50%라고 해보자. 반면 백신을 맞을 경우 10%만이 죽는다. 이 경우, 50명이 백신을 맞았지만 10명은 백신을 맞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코로나 사망자는 총 10명이 나오는데, 그중 5명은 백신 미접종자, 5명은 백신 접종자가 된다.

그렇다고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백신 미접종자의 사망률은 여전히 접종자보다 다섯 배나 높으니 말이다. 다만 백신 접종자의 전체 숫자, 즉 모수(母數)가 다섯 배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망자 수가 같게 보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백신을 맞아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 사망에 대한 전제 조건이 달라지고, 조건부 확률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은 오답의 가능성을 미리 줄여주는 몬티 홀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백신을 맞는다 해도 운이 나쁘면 돌파 감염되어 ‘꽝’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확률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뀐다.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돌아다니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대신, 종이와 펜을 놓고 찬찬히 숫자를 따져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수학적이면서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 백신 회의론과 백신 거부 움직임이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도 벌써 2년째에 접어들고 있으니 다들 상당히 지쳤을 법도 하다. 방역패스의 필요성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더라도 합리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자영업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 또한 지우기 어렵다. 방역패스에 대한 법원 판결로 인해 혼란은 더욱 가중될 듯하다.

코로나 백신은 급하게 만들어낸 최신작이다. 다른 백신에 비해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백신의 효과는 조건부 확률 같은 직관적이지 않은 개념을 통해 바라봐야 온전히 이해 가능하다. 국민 정서와 눈높이를 감안한 과학적 설득을 꾸준히 해나가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을 못 본 체하며,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라 자화자찬하더니, 해외 순방을 빙자한 외유를 즐기고 있다.

일부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다 못 해 백신을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지난 18일 발표된 조선일보·TV조선 여론조사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정부의 방역 관리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사 대상자 중 절반이 넘는 54.1%가 ‘아니요’라고 대답한 것 또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3월 9일 수요일, 우리는 새로운 몬티 홀 문제를 풀게 될 예정이다. 선택지를 둘로 줄이면 조건부 확률에 따라 정답을 맞힐 가능성이 높아질까? 몬티 홀 문제처럼 선택지를 바꿔야 하나? 정치는 수학이 아니라 생물이니,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금물. 다시 한번 ‘꽝’을 뽑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다.

2022-01-17

미군 부대에서 눈 치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미군은 눈 안 치운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미군도 눈 치운다. 내가 해봐서 안다. 여차하면 소대장 중대장도 삽 들고 나와서, 커다란 제설차가 다니지 못하는 구석구석 다 치운다.

나는 '미군은 사람 고용해서 치우는데~' 같은 소리에 담겨 있는 발상이 싫다.

'내가 군대에 가서 눈이나 치울 사람이 아닌데 개고생했다'는 식의 억울한 자의식이 싫다.

미군이건 한국군이건 중공군이건, 아니 군인이 아니어도, 눈이 오면 치워야 한다. 눈을 치워야 길이 뚫리고, 길이 뚫려야 전쟁을 하건 일을 하러 가건 할 거 아닌가.

'나는 군대에서 눈을 치워서 억울했다'는 소리,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못난 소리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남자들에게 조용히 속으로 -1점을 부여한다.

나는 뒷짐지고 에헴 할테니 너희가 다 해라, 이런 식의 종놈 부리고픈 양반 근성이 드러나는 못난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군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내가 하거나, 명확한 보상을 제공하며 남에게 정확하게 지시해야 한다. 떼떼거리는 못난 소리 그만들 하자.

2022-01-15

이재명 ‘탈모 밈’ 윤석열 ‘멸콩 밈’은 흥겨운 헛발질

 [노정태의 뷰파인더] 그들은 아이젠하워가 아니거늘

● 李 ‘심는다’, 尹 ‘멸치와 콩’
● 새로운 유형의 자기 복제자
● 지지층만 즉각 반응한 ‘챌린지’
● “성향이 원래 그런 사람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8일 서울 동작구 이마트 이수점에서 멸치와 콩을 사고 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 제공]
선거는 일종의 흥행 사업과 유사하다. 유행어를 만들고 히트시키는 쪽이 재미를 보게 마련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고사하고 TV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기 전부터 그랬다. 미국의 전직 장군 아이젠하워는 ‘아이 러브 아이크(I Love Ike)’라는 입에 착 붙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밈’에 힘입어 그는 정치 경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이겨내고 1952년 대선에서 이겼다.

입에 착 붙는 구호가 선거를 좌우하는 모습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반복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는 거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돌파하더니 미국 대통령직을 꿰찼다. 바야흐로 ‘밈 정치’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4일 공개한 유튜브 영상에서 한 말이다. 탈모인들의 수요를 노린 ‘소확행’ 공약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인터넷에서 탈모는 신체 현상이기에 앞서 하나의 밈이다. 즉 ‘이재명은 심는다’는 말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것을 의도하고 내놓은 공약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월 8일 인스타그램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과 함께 “장보기에 진심인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문제는 그 밑에 달린 해시태그다.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 #윤석열”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듯하지만, 네티즌 반응은 달랐다. ‘멸치’와 ‘콩’의 앞 글자를 따면 ‘멸콩’, 즉 ‘멸공’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윤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운영하는 ‘AI 윤석열’은 그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다. ‘달파멸콩’, 가족과 함께 하는 좋은 주말 보내세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내 ‘멸공 밈’에 정국이 휩쓸려 들어갔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 밈의 흥행이 과연 정치적 성공에 도움이 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직접 출연해 화제가 된 15초 분량의 ‘탈모 공약 동영상’. [유튜브 캡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밈’의 개념부터 파악해보자. 독자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그 책,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된 신조어다.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생명체란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증식을 위해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기계’라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볼 때 자기 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것은 유전자(gene)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문화 속에도 유전자와 유사한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누군가가 창발적으로 떠올린 후 다른 이들이 따라함으로써 살아남고 전파되는 새로운 유형의 자기 복제자. 그것이 바로 ‘밈(meme)’이다. 그리스어에서 모방을 뜻하는 어근인 미멤(mimeme)을 적당히 편집해 gene과 운율을 맞춰 만들어낸 신조어다. 즉, ‘밈’ 자체가 일종의 밈인 셈이다. 도킨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어떤 밈은 그리 널리 퍼지지 못하고 금세 잊힌다. 설령 널리 퍼졌다 해도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가요 차트를 점령한 수많은 유행가가 그렇다. 어떤 노래는 사람, 때로는 국가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애국가라던가, 혹은 대한민국 건국 전부터 사람들에게 불렸던 아리랑 같은 노래를 떠올려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밈은 ‘생각의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명 활동을 하지 못한다. 허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숙주가 될 생명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퍼뜨린다. 밈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두뇌와 그로 인한 문화가 없다면 밈은 존속할 수 없다. 어떤 밈은 다른 밈보다 전파력이 크고 때로는 수백 수천 년을 살아남는다. 신이나 종교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만들고 퍼뜨리는 밈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자가 서로 경쟁하듯 밈 또한 경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두뇌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밈의 성공은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가정하자. 그 밈을 전달하려는 것 이외에 사용된 모든 시간은 그 밈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하여 같은 날 공개되는 수많은 노래, 개봉하는 영화, 방영하는 드라마 등이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집중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멸공 챌린지’의 이면
오늘날 밈의 작동 방식은 한층 더 바이러스와 가까워졌다. 제도권 언론이 중심이던 시대에는 소수의 밈이 대량으로 복제됐다. 지금은 다량의 밈이 상대적으로 적게 복제된다. 대신 그 과정에서 복제자들, 즉 밈을 퍼다 나르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밈을 복사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면서, 한 두 마디 코멘트를 붙이거나 때로는 밈 자체를 변형시킨다. 네티즌들이 각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멸치와 콩을 보여주며 ‘멸공 챌린지’에 참여했던 것 또한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후보와 극적인 재결합을 이룬 후, 국민의힘은 ‘밈 정치’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이준석 스스로가 ‘멸공 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긴 했지만, 그 외의 메시지를 볼 때 그러한 방향성은 뚜렷해 보인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메시지를 내놓았던 것도 그렇고, 그 후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단문을 제시한 것도 그러하다. 구체적인 내용과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전파할 수 있도록, 아주 짧은 밈으로 승부하는 전략이다.

온라인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열렬하게 ‘멸공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딱 한 줄에는 40분 만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한 줄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등장할 만큼 윤석열의 밈이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수세에 몰려 있던 윤석열의 선거 운동이 공세로 돌아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1월 10일까지의 조사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지지율 역시 반등했거나 하락세를 멈춘 듯하다. 윤석열과 손잡은 이준석의 ‘밈 정치’, 과연 대성공일까.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했듯 밈은 바이러스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강할수록 치명도가 약해진다. 독성이 강해 숙주를 빨리 죽이는 바이러스는 널리 퍼질 수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독한 바이러스라고 해도 여러 차례 변이를 거치며 전파되다보면 치명률은 줄어들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떠올려보자. 초기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았지만 오미크론은 그렇지 않다. 전파력은 매우 빠르지만 초기 변이에 비해 치명률과 사망률이 많이 약화됐다. 숙주를 타고 옮기는 자기 복제자의 숙명이다.

밈 또한 마찬가지다. 밈은 정신에 퍼져나가는 바이러스다. 원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질적 집단 내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밈은, 그 외의 집단에 잘 전파되지 않는다. 때로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육체에 전파되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다.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그 치명률 혹은 독성을 줄여야 한다.

이준석이 멸공 밈의 확산에 제동을 건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같은 지지자들 내에서 보면 흥겨운 놀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국민의힘 기존 지지층을 넘어서는 유권자들에게는 그 설득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멸공 챌린지 참여자들을 두고 “성향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인 코멘트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를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해야지 특정 계층만 갖고 선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진행된 2022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이 러브 아이크’가 전부는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아이 러브 아이크’는 아이젠하워의 승리에 도움이 됐지만 공화당이 밈 하나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하워에게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라는 아우라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20년간 이어진 민주당의 통치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우월한 구도와 인물의 힘이었다. 트럼프의 경우도 다른 방향에서 짚어봐야 한다. 트럼프가 다양한 밈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건 맞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유권자로부터 230만여 표를 더 얻었다. 승자독식제에 기반한 선거인단제라는 미국 특유의 대통령 선거 제도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탈모 밈’으로 반전을 꾀했던 이재명의 선거운동 역시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일각에서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 지닌 재정 문제를 지적하자 밈의 정치가 급속히 약화됐다. 윤석열의 밈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멸공 논란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도 표심을 멀어지게 한다. “원래 그런 사람들”끼리 열광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면 ‘굴러온 돌’들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밈의 정치학이 가지는 한계다. 일종의 ‘인사이더 조크’로 작동하기에 ‘우리 편’과 ‘남의 편’의 경계선을 그어버린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특히 남자 유저들이 많은 커뮤니티의 분위기만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인터넷 밈은 선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편’끼리 서로 기를 살리는 데 적격이다. 그러나 인터넷 밈에만 의존해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국민 전체에 소구력을 지니는 대안과 구호를 끌어내고,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득해 나가는, 그런 선거를 보고 싶다.

2022-01-14

왜 한국인들은 군인을 싫어할까

한국 사회 전반의 군인 멸시는 굉장히 뿌리 깊은 것이고 여자들 탓만 하는 게 이상하거든요. 제가 카투사 있을 때 미군 중에도 저한테 물어본 놈이 있었습니다. 왜 너희 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 군인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고.
 
일단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던 나라라서 실은 군대를 업신여기는 게 아니라 겁내는 거다. 그리고 온 남자들이 다 군대에 갔다 오면서 각자의 나쁜 기억을 갖고 오고 그걸 다 떠들다보니 전반적 인식이 더욱 안 좋다, 뭐 이정도 설명을 했는데 그래도 잘 납득하지는 못하더군요.

사실 우리가 미국식 군인 땡큐 문화를 당연한 표준처럼 여기는 게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뭐가 됐건 겉으로는 예쁜말 고운말로 포장하는 문화적 풍토가 있죠.
 
반면 우리는 뭐든 일단 까고 냉소하는 게 디폴트. 군필자들이 군대에 대해 좋은 이야기 안 하는데 군대 안 갔고 갈 일도 없는 사람들이 군인을 존중하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미국인들처럼 땡큐 해피 원더풀 알러뷰 같은 소리 입에 달고 살지도 않는 한국인들이 군인에게만 땡큐 할 리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다가...
 
저도 한 사람의 군필자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천은 '나의 군 생활을 욕하지 않기', '내가 군대에서 배웠던 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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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에서 어떤 분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