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4

‘이모 타령’ 코미디 청문회보다 심각한 민주당 반지성주의

‘이모 타령’ 코미디 청문회보다 심각한 민주당 반지성주의


[노정태의 뷰파인더] 상상과 선동에 휩쓸린 문재인 5年

● “다수의 힘으로 상대 의견 억압”
● 민중 동원하려는 ‘엉터리 지식인’
● 박지현은 무엇이 못 마땅했을까
● 前 당 대표 이해찬의 ‘노론 음모론’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 10일 윤석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곧장 취임하며 야외 취임식도 생략한 터라, 9년 만에 치러지는 대규모 행사였다. 약 4만여 명의 청중이 모인 앞에서 신임 대통령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취임사를 낭독했다.

행사는 화려하지 않았다. 일각에서 예상한 BTS의 공연도 없었다. 그러나 평범하지도 않았다. 외려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통상적 미사여구로 둘러대지 않았다. 반(反)지성주의라는 과제 앞에 맞서기 위해 자유의 기치를 드높여야 한다는 대통령 본인의 세계관을 분명히 드러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흔치 않은 대통령 취임사였다.

‘그거 내 욕하는 거 아니야?’
윤석열은 대한민국이, 또한 세계가 처한 위기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윤석열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란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망가지고 정상 작동하지 않게 됨으로써,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

새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면, 일반적으로는 여야를 막론하고 박수를 쳐주고 덕담이나 해주며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단독으로 168석(취임식 날 기준)을 지닌 초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퍽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 5월 11일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해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 위기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한 반지성주의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박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겨냥해 “비판 세력을 반지성주의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고 했다. [뉴스1]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우리는 민주당이 못 마땅해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박지현은 5월 11일 당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주의 위기 원인은 반지성주의라 규정하고 비판 세력을 반지성주의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민주당은 ‘반지성주의? 그거 내 욕 하는 거 아니야?’하고 화를 낸 셈이다.

‘발끈하는 걸 보니 찔리나보다’는 식으로 유치하게 굴 생각은 없다. 또한 박지현의 지적에는 일부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 게다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드러났다시피, 민주당의 구성원 중 일부가 심각한 지성의 결여를 보여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반지성주의를 논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거나 중요하지 않다. 반지성주의란 흔히 말하는 ‘무식함’이나 ‘교양 없음’과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반지성주의의 본래 의미를 따지고 들어가면, 한국의 정치 역사상 가장 반지성주의를 심각하게 드러낸 정당은 민주당이며, 그 기간은 지난 문재인 정권 5년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저작권자, 美 역사학자 호스스태터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란 민주주의나 자유주의, 공산주의처럼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용어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용어다. 그 저작권자는 미국의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로, 1970년 세상을 뜰 때까지 컬럼비아대에서 교편을 잡은 인물이다.

호프스태터가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펴낸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이듬해 퓰리쳐상을 수상하게 된 이 책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한 바는 분명하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을 되짚어보며, 다시는 그런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호프스태터에게 미국의 반지성주의란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당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국인의 삶 전반(American Life)에 반지성주의의 싹이 심어져 있고, 특정한 조건과 계기가 맞아떨어지면 그것이 매카시즘 광풍과 같은 형태로 터져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왜일까? 미국은 구대륙 즉 유럽에서 박해 당하던 신교도가 이주해 만든 나라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평범한 일상 언어로 번역하고, 사제가 해석해줘야만 했던 신의 말씀을 보통 사람들이 직접 읽고 해석하는 것이 종교 개혁이었다. 천 년 넘게 이어져온 지적 권위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신대륙 이주민들은 구대륙에 비해 반(反)제도적이고, 영성적이며,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신대륙의 광막한 자연 속에서 원시주의와 신비주의적인 분위기 역시 문화적 풍토의 한구석에 자리매김하게 됐다.

방금 말한 내용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다. 구체제의 모순이 심화하고 대중과 지식인의 괴리가 커질 때, 적절한 반지성주의는 대중과 지식인 양쪽에 건전한 자극을 줄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대중적 에너지를 악용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다.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반지성주의자는 사실 ‘민중’이 아니라 민중을 동원하려는 ‘엉터리 지식인’일 때가 많다.

일본의 양심적, 실천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우치다 다쓰루는 호프스태터의 작업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2010년대 중반 일본에서 급속도로 퍼진 극우 운동을 파헤치는 작업에 돌입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뜻을 함께하는 필자들의 원고를 모아 ‘반지성주의를 말하다’를 펴냈는데, 그 중 직접 쓴 첫 번째 원고인 “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에서 호프스태터의 책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자의 가장 유력한 적은 어정쩡한 교육을 받은 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반지성주의자는 통상 사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종종 진부한 사상이나 알려지지 않은 사상에 홀려 있다. 반지성주의에 빠질 위험이 없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 한편, 한결같은 지적 정열을 결여한 반지식인도 거의 없다.”

이 대목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반지성주의가 지니는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40대와 50대 남성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고학력자이며 사회적으로 명성을 지닌 지식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라 해서 반지성주의에 면역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정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과 그 구성원 및 지지층은 반지성주의에 취약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친일 독재 부역 세력’이라는 프레이밍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다.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다!” 이 또한 민주당이 집권하던 5년을 특징짓는 정치 구호 중 하나다. 국민의힘, 그 전신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등을 ‘친일 독재 부역 세력’ 등으로 프레이밍한 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듯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대중 동원 논리였다.

호프스태터의 논의를 21세기에 이어받은 우치다 다쓰루가 볼 때, 이렇듯 맥락도 시대감각도 없이 과거의 적을 상정하고는 그것을 현재에 이어붙이는 행태야말로 반지성주의와 파시즘의 중요한 징표다. 반대로 지성적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나는 시간 속에서 차츰 진리성이 익어 가는 언명을 가리켜 ‘지성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음모론자들처럼 이것저것 자기 입맛에 맞는 ‘팩트’는 열심히 수집하고 끼워 맞추지만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반지성주의자들은 때로 다수의 지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동시대에 적지 않은 찬동자를 얻는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것을 사회적, 공공적인 가설이라고 못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구조적으로 결여된 것이 있으니, 바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반유대주의자였던 에두아르 드뤼몽의 사례를 제시한다. 에두아르 드뤼몽은 고대 로마 이후 19세기 말까지도 유대인들이 흑막 너머에서 유럽을 지배해왔다는 음모론에 심취했다. 음모론을 퍼뜨리며 대중적 인기를 만끽했다. 유대인들이 유럽을 지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뿐 아니라, 고대와 중세, 근대, 현대는 모두 다른 시대라는 것을 단번에 무시해버리는 ‘무시간성’의 사고방식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미래시민광장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그는 2019년 인터뷰에서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신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과 그 지지층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른바 ‘역사의식’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를 들먹이지만 시간성이 없다. 과거에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른 악당 집단이 있는데 그들이 계속 오늘날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원초적이고 상투적인, 대중소설 같은 상상력에 끌려 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고방식을 우리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2019년 인터뷰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에두아르 드뤼몽이 반유대주의 음모론에 빠져 선동했듯, 이해찬은 이른바 ‘노론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고 있거나, 본인은 믿지 않아도 남들이 그렇게 믿기를 바라고 있다. 민주당의 지도부 또는 지지층 중 목소리 큰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역사 공부를 더 하라’고 손가락질하고 함성을 치는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의 행태다.

국민의힘도 잘 난건 없지만…
국민의힘과 그 전신인 보수정당 역시 반지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힘이 강했을 때, 공산주의를 추종하지 않지만 사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이들을 대거 ‘빨갱이’로 몰았다. 호프스태터가 비판한 매카시즘의 광풍과 다를 바 없던 행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8대 대선 당시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하는 등의 움직임은 있었으나 앞으로도 지속적 반성과 자기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오늘날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다. 그들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6‧25전쟁을 통해 완성된 대한민국을 긍정하지 않는다. 대신 상상 속의 통일된 민족국가를 추구하며 반일 선동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지적 담론을 갱신해야 하는 이유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2-05-13

동맹과 보험

우크라이나가 지금 나토에 가입할 수 없는 이유는 전쟁중이기 때문이다. 나토는 가입국이 전쟁하면 자동 참전하게 되어 있는데, 당장 나토가 러시아와 전쟁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토는 군사 동맹이며, 함께 전쟁을 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나토가 나토이기 때문에 나토에 가입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암보험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보험은 병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정작 병에 걸려 있거나 질병 이력이 있거나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은 보험 가입을 제한당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결론: 한미동맹, 있을 때 잘 하자.

참고기사: "나토 가입, 핀란드·스웨덴은 되고 우크라는 안되는 이유", 뉴시스, 2022-05-13

2022-05-07

‘검수완박’이 개혁? 근현대사 공부부터 하라

[노정태의 뷰파인더] 검찰은 왜 경찰을 감시·견제·통솔했을까

● 사건 당 처리 기간·미처리 사건↑
●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
● ‘원수’ 이토 히로부미의 사법 개혁
● ‘박종철 사건’과 ‘형제복지원 사건’
● 도저한 역사적 흐름에서의 퇴행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 3일 오후 2시. 원래 10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한 차례 연기된 국무회의가 열렸다. 공식적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 퇴임 기념 오찬 때문이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이 기습적 검수완박이 결국 문재인·이재명 지키기 말고는 목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성남 FC 후원금 의혹 등 문재인 정권 및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관련한 사건의 경우 경찰 선에서 덮어버릴 가능성을 만드는 쪽으로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회의 개의 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장혜영 정의당 정책위의장(오른쪽 두 번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물론 의혹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그리고 그에 찬동한 정의당의 진짜 의도를 단언할 수야 없다. 평범한 국민이 받는 피해는 예정돼 있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9월 통과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과 그에 따른 시행령이 2021년 1월 1일부로 시행되면서 국민들은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말이다.

일단 사건 당 처리 기간이 길어졌다. 2017년에는 경찰이 사건 하나를 처리하는데 평균 44일이 걸렸다. 2021년에는 62일로 늘어났다. 기간이 늘어난 만큼 확실하게 마무리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해 경찰은 2011256건의 사건을 접수했는데, 그 중 246900건(12.27%)을 처리하지 못했다. 열 건 중 한 건 이상이 미처리 상태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경찰의 미처리 사건 총량과 그 비중은 2017년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2021년 1월 1일 이후로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뛰었다. 2020년에는 2058268건 가운데 184966건으로 8.98%가 미처리 사건이었던 반면, 2021년에는 2011256건 가운데 246900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단순 계산으로도 6만 건이나 미처리 사건이 늘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단 경찰의 업무 부담이 매우 커졌다. 게다가 검찰은 이전처럼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지 못한다. 대신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만 있다. 지휘와 요구 사이에는 강제성 면에서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경찰은 실제로 업무 부담에 짓눌리거나, 업무 부담을 핑계로 곤란한 사건을 속된 말로 ‘뭉개고’ 앉아있을 수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기적 미래, 한 두 사건의 처리와 달리, 이런 장기적 흐름을 예상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시선을 반대로, 과거로 돌려보자. 검찰이라는 제도, 검사라는 공직자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서 시작해, 근대 사법 제도가 도입되던 무렵,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거쳐 공권력과 시민사회의 관계가 재정립되어 나가던 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수령·이서배 탐학”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는 속담이 있다. 현대 한국인은 저 속담을 실제 권한을 가진 사람보다 그 권한을 대리해 행사하는 자가 더 위세를 떠는 경우가 있다는, 일종의 은유로 받아들이곤 한다. 애석하게도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는 말은 그저 담백한 사실의 표현이었다. 아주 먼 과거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100년을 조금 넘긴 시점만 해도, 한반도의 거주민들은 정말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서운 세상에 살았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났다. 그 전부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었다. 일본이 1906년 설치한 통감부는 조선을 사실상 지배·통치했다. 초대 통감은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 훗날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바로 그 이토 히로부미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대대적 사법 개혁을 단행했다.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가 추진한 사법 개혁이니 좋은 일이었을 리 없다는 단견은 잠시 접어두자. 놀랍게도 통감부가 추진한 사법 개혁은 조선의 기층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것이야말로 이토 히로부미의 ‘큰 그림’이기도 했다. 조선의 사법 제도가 워낙 가혹하면서도 엉망진창이던 탓에, 사법 제도의 근대화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식민 통치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으리라 판단한 이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한국 근대 형사재판제도사’(푸른역사)에서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06년 이후 일본의 통감부 설치와 그에 뒤이은 한국 병합은 군사적 강점에 기초한 침략 행위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한국 민중의 고통과 개혁 열망에 편승한 침략이었다. 갑오개혁기에 이루어진 근대적 개혁 조치들이 아관파천 이후 폐기 또는 수정되었으나 일본의 통감부 설치 이후 다시 복원되고 더욱 강력한 힘으로 시행되면서 한국민들로 하여금 일말의 기대를 걸게 했기 때문이다.”(머리말, 9쪽)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민족 의식’이 형성되기 전이다. 다른 나라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보다 나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조선의 사법 제도가 엉망이고, 갑오개혁을 통해 자기 쇄신을 이루지도 못해서다. 앞서의 책을 좀 더 읽어보자.

“조선 후기 이래 형사재판제도는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왔지만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첫째, 인민의 범죄를 최일선에서 수사하고 재판하는 수령·이서배들의 탐학이 억울한 재판을 야기하고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수령들은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부족하여 재판 과정을 이서배들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형방 아전 등 이서배들이 자의적으로 재판 과정과 판결을 좌우하고 있었다.”(102쪽)

조선 민중이 일제 개혁을 환영하다?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검찰개혁 합의파기 윤석열 국민의힘 규탄’ 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는 말은 은유나 속담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이 그랬다. 뇌물을 바치고 그 자리에 오른 고을 원님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의 내막이나 진상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누가 원님이 되건 형방, 아전, 기타 등등 수령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서배, 즉 양반은 아니지만 관의 일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이 실세였고, 백성을 괴롭히는 주범이었다. 그들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으며 필요와 욕구에 따라 억울한 사람을 잡아 가두고 사건을 뒤틀었다.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일부 암행어사들은 수령의 비리를 고의적으로 눈감아 주거나 아예 그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함께 민에 대한 수탈에 나서기까지 하였다.”(103쪽)

조선의 민심을 얻기 위해 사법 개혁에 나선 통감부는 한국 정부로 하여금 19071223일, ‘재판소구성법’ ‘재판소구성법시행령’ ‘재판소설치법’을 제정하게 했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한데, 비로소 행정과 사법의 분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지방의 행정관인 수령, 즉 원님이 재판까지 했다. 갑오개혁 이후에도 바뀌지 않던 체제다.

일본은 고등고시를 합격한 일본 현직 판검사를 한국에 발령 보냈다. 한국인 중에서도 기존 경력자, 일본에서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한 자, 변호사 시험 합격자, 법관양성소 졸업생 중 재판 사무 경력이 있는 자들을 선별하여 판검사로 임명했다. 판사뿐 아니라 검사라는, 행정부에 소속돼 있지만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근대적 제도가 도입됐다.

조선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앞서 말했다시피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일단 대한제국 스스로가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화 첫 삽을 떴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 못 한 일’을 일본의 손을 빌어 완수한다는 논리 구성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존 시스템이 지닌 문제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다. 가혹할 뿐 아니라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을 결여한 조선의 사법 시스템은 기층 민중이 일제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인 판검사가 한국의 재판기관을 장악해 감에도 불구하고, 군수·관찰사의 불공정한 재판에 피해를 받아왔던 지방민들과 중앙의 상급재판소의 폐해를 목도해 왔던 지식인들은 신재판소 개청, 민형사 재판 관련 신규 법령 실시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표명하고 통감부의 ‘시정 개선’ 사업 중 괄목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444쪽)

오늘날 기준에서 보자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의 관점을 상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활개 치는 폭력과 불의를 국가 권력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때, 심지어 공권력이 불법적 폭력 단체를 감싸고 비호하며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할 때, 국가는 지배 정당성을 급격히 상실하고 만다.

“당시는 우리가 깡패였다”
자유당 정권 말기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으며 민족 의식이 싹텄고, 6·25전쟁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까지 수립된 상황이었으나, 사법 체계는 국민의 생활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자의적이고 엉성했다. 폭력 조직과 경찰의 유착은 심각했다. 흔히 ‘서청’으로 통하는 서북청년단이 북한 실향민을 중심으로 한 반공 폭력을 담당했다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거나 실제로 기여했던 민족주의자들 역시 해방 후 제도권에 흡수되지 못한 채 외곽 폭력 단체를 결성하고 ‘합법적 권력의 불법적 지배’에 기여했다.

일본 호세이대 방문강사인 존슨 너새니얼 펄트는 현대 한국의 역사를 조직폭력 역사와 아울러 고찰한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현실문화)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 책에서 펄트가 인용하는 바, ‘스네이크 김’이라 불리던 방첩대장 김창룡은 다른 조직의 우두머리 고희두를 고문하다가 죽였는데, 그 고희두의 역할에 대해 미군 방첩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고희두는 원남동 동회장이며 민보단 동대문구 단장이고 동대문 경찰서 후원회장이며 사법 보호위원회 회장이었다. 이런 직함은 그의 명함에 적힌 것이다. 고희두는 동대문 경찰서 관할의 청계천변에서 장사하는 노점상 대표였다. 그는 수천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어떤 면에서 동대문과 청계천의 통제권을 장악한 자는 서울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여겨질 수 있다.”(54쪽)

여러 가지 달라진 점이 있지만,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 되는 평범한 국민 처지에서 보면 구한말과 자유당 정권 시절은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1961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역점을 둔 것도 바로 그런 ‘비국가 범죄 집단’을 드러내고 소탕하는 것이었다. 펄트에 따르면 “1961년과 1963년 사이 박정희의 지배 아래 경찰은 조직적 활동으로 범죄 집단의 일원 약 1만3000명을 체포했다.”(54쪽) 대중은 열렬히 환영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이야기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박정희와 군사정권이 발휘한 국가 폭력 체계가 그 자체만으로 정당성을 지닌다는 뜻이 아니다. 민간의 폭력과 어지럽게 뒤섞인 최악의 경우보다는 나은 차악을 대중에게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1960년대 초의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변을 일으켰다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견제 받지 않는다면 당연히 한계가 뒤따른다. 펄트는 자신이 ‘백인 남성’인 이유로 다양한 이들을 만나 솔직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데, 한 전직 경찰 인터뷰 내용이 이채롭다.

“나는 경찰관 응답자에게 왜 박정희의 권위주의 시기와 전두환 정권의 초기에 깡패들이 이용되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꽤 단호하게 ‘당시는 우리가 깡패였다’고 대답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비국가 집단들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즉 외양적 민주주의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질서를 세울 철권이 있었다.”(162쪽)

군인이 권력을 잡고 경찰을 ‘국가의 깡패’로 동원하는 체제는 중산층의 성장 및 민주화운동을 통해 허물어졌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조직이 다름 아닌 검찰이다. 영화 ‘1987’에서 잘 묘사했다시피 군부 정권의 수족과 다름없던 경찰은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했으나, 검찰은 동의하지 않았다. 행정부 소속으로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경찰과 달리, 검찰은 조직상으로는 행정부 소속이나 사법부이기도 하며, 검사 개개인이 1인 기관으로서 권한을 지니고 있다. 박종철 사건이 폭로되면서 철통같던 군사독재도 무너졌다.

2022년 검찰이 빼앗긴 ‘수사개시 권한’ 역시 군사독재 시절의 해악을 중화하는데 적잖은 기여를 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1986년, 당시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의 김용원 주임검사가 사냥을 하러 나왔다가 형제복지원이라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노동 착취를 목격하고, 스스로 사진을 찍어 증거를 수집한 후, 법원의 영장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밝힌 경우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지역 유지로서 경찰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수사 단계부터 특혜를 받으며 온당한 처벌을 피해왔다는 비판이 지금껏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입법 폭주
검찰이 모든 수사를 직접 관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해방 후 70여 년간 한국의 법치주의가 꾸준히, 경찰의 힘을 검찰을 통해 감시·견제·통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다. 한국인들은 공권력이 부당하게 작동하거나 토호 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에 설령 일제에 의해 근대적 사법 제도가 도입되는 상황일지라도 바람직한 개혁이라면 손을 들어주는 편을 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도저한 역사적 흐름으로부터의 퇴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모든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권력의 몽둥이’라는 식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구한말처럼 권력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자유당 정권 시절처럼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의 구분이 애매해지거나, 군사독재 시절처럼 중앙 권력이 경찰 조직을 틀어쥐고 국민을 쥐락펴락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그럴 때 법치주의는 뿌리부터 썩고 만다. 검수완박의 폐해를 최소화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2-04-30

희망 ≠ 고문

문득 드는 생각. '희망고문'이라는 말, 과연 타당할까요.

희망은 고문이 아닙니다. 절망하고 있다고 해서, 혹은 희망을 버린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고통은 어떤 식으로건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차분히 응시하는 자(불교적 용어를 쓰자면 觀하는 자)는 그 고통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택할 수 있을 따름이죠.

'희망고문하지 마' 같은 식의 표현이, 제가 이제 만으로도 30대 말이지만, '우리 젊은이'들을 퍽 나약하고 비겁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한 마디 덧붙여 보게 됩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파친코’가 한국 드라마? 그 태연한 몰염치가 무섭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K-콘텐츠’라고 으스대는 이들에게

● ‘오징어 게임’과 명확히 다른 경우
● 다분히 ‘미국적’인 캐릭터 설정
● 넷플릭스 ‘나르코스’와의 공통점
● 이제와 자이니치를 ‘우리’라고?


드라마 ‘파친코’에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10대인 선자(김민하 분)가 자신의 엄마가 운영하는 부산 영도의 하숙집 방에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앉아 있다. [애플TV+]
‘기생충’ ‘오징어 게임’ 뒤를 이은 또 다른 K-콘텐츠, ‘파친코’. 요즘 언론을 통해 흔히 들을 수 있는 찬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파친코’가 애플TV+의 간판 작품으로 선정·제작·유통되는 것을 ‘우리’의 문화적 승리로 봐도 될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파친코’라는 작품은 그 원작부터 드라마까지, 지금껏 ‘우리’가 갖고 있던 세계관과 다른 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파친코’는 한국 드라마가 아니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원조 한류 드라마와는 비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오징어 게임’과도 다른 경우다. 넓은 의미의 ‘K-컬처’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일본 시장을 버리고 대신 한국을 택했다”며 마치 축구 한일전에 이겼다는 듯한 말투로 ‘파친코’를 다루는 기사를 냈다. 너무도 이상하고 우려스러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파친코’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날 때 그 나라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가 아닌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껏 대한민국이 해외교포, 그 중에서도 ‘자이니치’를 다뤄온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 이야기’조차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파친코’를 좀 더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의 모험
드라마 ‘파친코’ 포스터. [애플TV+]
한국 드라마는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2002년 작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히트를 친 뒤부터 해외에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류’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역수입됐다. ‘대장금’ 같은 경우는 이란에서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어떤 나라의 드라마가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은 한국에서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올라 주연 배우가 광고를 찍기도 했으니 말이다. 즉 2000년대 초의 한류는 이례적이고 반가운 현상이었지만,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확률적으로 생길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맥락이 달라진 것은 미디어 환경 자체가 변화하면서부터다. 넷플릭스는 초창기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하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한 ‘하우스 오브 카드’로 흥행뿐 아니라 비평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곤 콜롬비아의 전설적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약 범죄 수사물 ‘나르코스’를 내놨다.

‘나르코스’에는 잠깐이나마 미국 플로리다와 뉴욕 등이 배경으로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라틴아메리카, 특히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인과 그 밖의 정글을 무대로 삼는 이야기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고 유입됐을 미국인 시청자에게 다소 낯설고 당혹스럽게 느껴질 가능성이 충분했다. 미국과 무관하지 않지만 결국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만드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바로 ‘나르코스’다.

넷플릭스는 왜 그런 모험을 감행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글로벌 콘텐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9년 현재,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3억8000만여 명으로 세계 3위다. 반면 스페인어는 4억8000만여 명의 모국어로 세계 2위다. 게다가 미국 현지에도 남부 지방과 캘리포니아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스페인어 화자가 살고 있다.

넷플릭스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야만 할 운명이었다. 이에 가장 가까운 라틴아메리카를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미국 회사가 콜롬비아 마약왕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그것도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제작하는 이례적인 현상은 그래서 벌어졌다.

부산 사투리로 번역된 미국 정서
드라마 ‘파친코’에서 노년에 이른 선자를 연기한 배우 윤여정의 극중 모습. [애플TV+]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의 글로벌 콘텐츠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특정 지역에서 개발돼 그 지역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가 세계적 호응을 얻기를 기대한다. 한국 시청자를 노리고 한국에서 제작한 작품이지만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며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솟아오른 ‘오징어 게임’이 대표적이다. 그 전에 넷플릭스에서 흥행한 ‘종이의 집’은 스페인 드라마인데, 그 또한 비슷한 경우다.

반면 앞서 언급한 ‘나르코스’나 ‘파친코’처럼 OTT 본사에서 만든 글로벌 콘텐츠도 존재한다. 이는 ‘내수용’으로 만든 작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과는 다른 경우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하며, 해당 지역의 풍토 및 현지인의 정서를 십분 반영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는 ‘미국 드라마’다.

우리는 ‘나르코스’를 콜롬비아 드라마라고 하지 않는다. 콜롬비아 마약왕이 주인공이고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미국인 수사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캐릭터가 스페인어로 대화하지만, ‘나르코스’는 어디까지나 넷플릭스에서 만든 미국 드라마다.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파친코’ 또한 미국 드라마다. ‘파친코’는 애플TV+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일곱 살에 부모와 함께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미국 작가들이 각본을 쓰고, 한국계 미국인 두 사람이 연출한, 엄연한 미국 드라마다.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과 내적·외적 갈등,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 작품이 준수하는 윤리적 기준 등 모든 면에서 미국 영화·드라마 업계의 표준적 작법과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김민하 분)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큰 외동딸이다. 어려서부터 똑 부러지는 성격에 셈이 밝다. 아버지는 딸을 잘 교육시키고 주체적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1900년대 초의 조선인 아버지가 딸을 그렇게 키운다? 현실에서 그런 사례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 시청자들에게 선자의 캐릭터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같은 인물을 직접 연상시킬 수밖에 없다.

선자의 첫사랑이자 첫 아이의 아버지인 고한수(이민호 분)는 어떨까. 일본 야쿠자의 중간 보스 정도 되는 위치를 차지한 조선인이다. 조선인을 경멸하지만 동시에 조선인을 보호한다. 이재에 밝은 현실주의자지만 가슴 속에 뜨거운 한줄기 순정이 있다. 역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빗대어 보자면, 20세기 초 동아시아에 출현한 레트 버틀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한수가 선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온 세상을 다 주겠다고 하지만 선자는 거절한다. 거절의 이유를 나중에 털어놓는 선자의 말. ‘나 자신을 반으로 갈라놓고 살 수는 없데이.’ 부산 사투리로 번역된 대사지만 여기 담긴 정서는 한국보다는 미국 드라마의 그것이다. ‘스스로에게 충실할 것’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 것’ 같은, 실로 미국인다운 건전한 태도가 담겼다.

K-콘텐츠’라고 으스댈 일 아니다
‘파친코’는 미국 시청자에게 퍽 친숙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 설정과 구도 위에 이야기와 주제가 전개된다. 실제로 ‘파친코’의 작가와 제작진은 시즌 1을 만들 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대부 2’의 이야기 구조를 적극 참고했다고 한다. ‘대부 2’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이야기지만 의문의 여지없는 미국 영화다. 마찬가지로 ‘파친코’는 조선에서 건너가 오사카에 뿌리를 내린 재일교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미국 드라마다.

‘파친코’를 여타 다른 한국산 콘텐츠와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파친코’는 역사의 격변 속에 태어난 디아스포라, 자이니치(재일 조선인)를 다룬 대하물이다. 6화에서 수십 년 만에 고향 부산에 찾아온 선자는 한국의 공무원에게 스스로를 ‘특별영주권자’라고 한다. 해방이 오기 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닌 ‘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살아간 자이니치의 현실을 반영한 설정이다.

우리, 즉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들은 재일교포, ‘자이니치’를 ‘우리’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엄연한 사실이다. ‘파친코’와 마찬가지로 오사카의 자이니치를 다룬 영화 ‘피와 뼈’는 국내 관객들에게 싸늘하게 무시당했다. 그런데 그 자이니치의 이야기를 미국 OTT 업체가 큰 예산을 동원해 드라마로 만들자, 이제 와서 ‘우리 이야기’라고 거들먹거리는 것은 염치없는 일 아닐까.

이는 마치 주한미군의 자녀인 혼혈인들이 한국에 있을 때는 ‘튀기’라고 조롱하다가, 하인즈 워드가 NFL 스타가 되자 ‘우리의 핏줄’로 인정하며 호들갑스럽게 환영하던 모습마저 연상시킨다. 한국과 일본의 점이지대에서 힘겹게 살아간 재일교포의 이야기, 그 귀중하면서도 쓰라린 역사적 경험에 대해 모른 척으로 일관하더니, 재미교포의 소설을 미국 기업이 드라마로 만든 걸 보면서 ‘K-콘텐츠’ 운운한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의 보수 정치는 재일교포 단체들을 ‘간첩의 온상’ 쯤으로 취급하며 정치적 필요에 따라 착취했다. 한국의 진보 정치는 자이니치를 감성과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며 보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소설 ‘파친코’의 그 유명한 첫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는 말을, 마치 일본에 대한 규탄으로 받아들이며 ‘국뽕’의 소재로 삼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자이니치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은 일본만큼이나 그들을 ‘망쳐놓은’ 역사의 일부다. 우리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며 건설적 방향으로 손을 내밀어야지, ‘그래, 이것이 우리 민족의 힘이며 K-콘텐츠’라고 으스댈 일이 아니다.

‘우리’가 얽매어 있는 동안 자이니치는…
한반도의 역사는 한반도 내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조선의 왕가가 국권을 일본에 넘긴 후 벌어진 역사적 질곡 속에서, 한반도 거주민은 들어가고 나가고 섞이며 살아왔다. 단일민족의 허구, 일본을 향한 끝없는 피해자 의식, 스스로의 야만성을 드러내기 위한 알리바이로 동원되는 근현대 역사관에 ‘우리’가 얽매어 있는 동안, 애플이라는 다국적 기업은 자이니치들의 험난한 삶 속에서 매력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디아스포라의 스토리텔링을 발굴했다. 이런 상황 에서 무슨 ‘K-콘텐츠’를 운운한단 말인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 또한 그 ‘역사’의 일부다. 그런 자기객관화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파친코’ 같은 작품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민족주의적 세계관과 원한 감정으로만 얼룩진 역사의식을 넘어, 세계에 통할 수 있는 보편적 감성과 스토리텔링을 고민할 때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