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고양이 솔로, 노정태+고양이 가을, 입동, 고세진+고양이 지오, 호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20~30대 싱글남 3명에게 듣는 ‘왜 고양이인가’
“수많은 독신남들이 ‘고양이 옷장’에서 뛰쳐나오기(coming out) 시작했다.” 2008년 10월3일치 미국 <뉴욕 타임스> 기사 중 한 대목이다. 이제 남자의 가장 친한 친구는 골든 레트리버(개의 품종)가 아니라 털 폭신폭신하니 껴안기 좋은 고양이라고 기사는 전했다. 남몰래 자신의 방에 고양이를 들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반려동물의 근황을 트위터라든가 ‘남자와 고양이들’(www.menandcats.com)과 같은 남성전용 고양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는 것 또한 남자들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라고. 그로부터 약 1년여 뒤, 이젠 한국에서도 고양이와 자족하며 지내는 남자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대체 그들은 어떻게 자취남의 궁상을 접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고양이에게 적대적인 사람과는 연애를 떠나서 친구관계조차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흑단처럼 윤기 나는 검정무늬를 ‘간지나게’ 차려입고 있는 턱시도 고양이 ‘솔로’와 3년째 함께 살고 있는 김도훈(36)씨의 말이다. 영화잡지사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방 출신으로, 본가에서는 반려동물로 개를 키운 경험이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남자들이 고양이와 사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는데 서울 올라온 후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여전히 개도 좋아하지만 혼자 사는 처지에서 개를 키우기란 엄두를 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손도 많이 가는데다 홀로 두고 나다닐 수도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까닭에 독립적인 성향의 고양이를 선택하게 된 것.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바로 이런 이유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양이들이 독립적이라고는 해도 김씨의 ‘애묘’ 솔로는 좀 다르다. ‘사실 얘는 강아지가 아닐까?’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애교가 많기 때문. 김씨가 솔로를 처음 만난 곳은 홍대 인근의 어느 골목길. 당시 생후 3개월가량이었던 이 고양이는 운이 좋게도 주위에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도 받았고, 나름 보금자리도 있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솔로에 대한 김씨의 애정도 각별하다. “지인 중에는 저를 ‘대치동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사료나 고양이용품, 심지어 장난감 같은 것도 최고로만 사 주려고 하니까요.” 최근에 이사를 한 김씨는 고양이를 위해 40만원대의 캣타워를 구입했다.
“에라 모르겠다 군대나 가자는 식의 충동도 말려주죠”
반려동물로서의 고양이는 단순히 애정을 주고 위안을 받는 것 이상으로 남자의 삶을 적지 않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칼럼니스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원생 노정태(28)씨는 20대 초반이었던 6년 전, 처음 새침한 삼색고양이 가을이(암컷)를 들일 때만 해도 마음을 쏟아서 보살펴 줄 대상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한창 방황하던 때였는데,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고양이를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사는 남자들은 술도 많이 마시고, 술을 많이 마시면 집에 안 들어가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부터는 밥을 주기 위해서라도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자연스레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죠. 고양이가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처리한다든가 수시로 청소를 하게 된 것처럼 단순히 생활에 관한 부분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인생 계획에서도 충동적인 결정을 할 수 없게 된 부분이 있고요. ‘에라 모르겠다. 군대나 가자’ 같은 식의 생각을 못하는 거죠.”
노씨는 2007년, ‘가을이’에 이어 둘째 고양이 ‘입동이’(암컷)를 들였다. 우연히 아파트 놀이터에서 발견하고 데려온 검정 얼룩고양이 입동이는 당시 생후 3개월 정도였는데, 쉽게 입양되지 않으리라 판단해 직접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보니 혼자 있을 가을이가 외로울 거라는 고려도 있었다. 이 두 마리 고양이에 대한 노씨의 태도는 ‘끔찍한 애정’이기보다는 언뜻 무심해 보일 수도 있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예쁘게 꾸미고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든가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관심이 없어요. 저에게만 예쁘면 된 거죠. 사진을 찍어도 저는 우스꽝스런 모습만 찍게 돼요.(웃음)”
그럼에도 애묘들을 자랑할 때는 입에서 침이 마른다. “우리 고양이들은 표현력이 다양한 것 같아요. 여러 종류의 울음소리나 행동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데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울음소리만 듣고도 애들이 원하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창밖을 보고 싶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 가을이는 특정한 톤으로 울고, 입동이는 그 앞에 가서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거든요. 그런 차이도 재미있죠.”
고등어 무늬의 암고양이 ‘호야’, 친칠라 종의 수놈 ‘지오’와 함께 살고 있는 고세진(35·인터넷 매체 편집국 팀장)씨. 그는 사람이 너무 다가가는 것도, 사람이 너무 외면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 고양이들의 절묘한 거리 감각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마치 ‘밀땅’(밀고 당기기)에 능한 여자와 연애하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는 것. “그렇다고 단지 그 매력 때문에 고양이를 키운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가족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친척 어른들 중에는 재수가 없다느니, 더럽다느니 하시면서 고양이 내다버리라는 분도 계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러죠. ‘제 동생 내다버릴 수 없잖아요?’ 한번 들이고 나면 반려동물도 가족과 같아요.”
하지만 이런 고씨도 과거에는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고양이를 키우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자신도 고양이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 편견을 씻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향의 친척 집에서 다리를 저는 등 성하지 못한 몸으로 태어난 아기 고양이 호야를 보고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우발적으로 입양을 결심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늦게 들어오면 바가지 긁는 소리…참 좋아요”
“과거의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입장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문제. 고씨는 2007년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던 앙상한 고양이 ‘지오’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왔다. 워낙 마르고 지저분해서 씻기고 나서야 그 고양이의 털이 흰색이고, 게다가 품종이 ‘친칠라’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서 주인을 찾았지만 나서는 이가 없어서 결국 고씨가 키우기로 했던 것. 발견 당시 한 살쯤 되었던 지오에 대해 고씨는, 아마도 원 주인이 어릴 때만 예뻐하다가 크고 나니 부담스러워서 버렸을 거라 추측한다. “버림받고 굶주린 탓에 경계심도 크고 식탐도 많아요. 잘 때 호야는 침대로 기어 오는데 지오는 문 앞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거기서 자요. 식사시간에는 호야 밥까지 뺏어먹고요. 그런 모습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죠.”
고씨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퇴근길에 “오늘은 고양이들에게 무엇을 해줄까?”라는 생각이 들 때라고 말한다. “애들이 식탐이 많아서 자율 배식을 하지 않고 정해진 양을 아침저녁으로 나눠서 줘요. 그런데 저도 술 마실 일이 많으니까 새벽에 들어올 때도 있죠. 그런 날이면 호야가 현관에서 날 보자마자 ‘우아앙’ 하고 목청껏 울어요. 배고픈데 왜 이리 늦게 오는 거냐며 바가지를 긁는 거죠. 그런 느낌이 참 좋아요. 그러면 아무리 취한 상태라도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부랴부랴 밥 챙겨줘요.(웃음)”
남자가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방법
이름난 품종 고양이들을 들일 요량이 아니라면 고양이를 입양하는 데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다만 잘 보살피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중요하다. 반려 고양이와 만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 인터넷 동호회 | 노정태씨가 첫 고양이 가을이를 입양한 곳은 다음 카페 ‘냥이네’였다. 각 포털사이트의 주요 고양이 커뮤니티에서는 입양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의 ‘냥이네’ 외에, 네이버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싸이월드의 ‘괴수고양이’, 디시 인사이드의 ‘야옹이갤(냥갤)’ 등이 대표적이다.
⊙ 길거리 | 김도훈씨는 홍대 극동방송국 어귀 골목길에서 솔로를 처음 만나던 순간 ‘이 고양이다’라고 직감했다. 초면인데도 반갑게 다가와 마치 ‘나 좀 데려가 주’라고 말하듯 김씨의 다리에 머리통을 문질러댔다. 이외에 노정태씨나 고세진씨의 경우처럼 길 잃은 고양이의 모습이 측은해 데려온 게 관계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 동물병원 | 기자의 경우. 친구 따라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데리고 있던 유기묘를 입양했다. 사람들이 길에서 어린 고양이를 주워서 인근의 동물병원에 맡기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물병원에 맡겨진 고양이들은, 한달 안에 입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타깝게도 안락사를 시킨다. 동네에 동물병원이 있다면 가끔씩 들러보자.
⊙ 기타 동물구조·보호단체 | ㈔한국동물복지협회 산하의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기관에서도 보호하고 있는 유기묘의 입양을 알선한다. 각 단체들의 인터넷 누리집을 참고하자.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92@gmai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