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주류 교체? 꼰대 교체!

이번 총선을 ‘주류 교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꼰대 교체’가 더 맞는 표현입니다. 왜 꼰대냐고요?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시죠. 1992년 총선,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역감정을 유발시켜서 총선에서 이겨먹겠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민주자유당이 이겼죠. 왜냐? ‘우리편’이니까 옳건 그르건 찍어준다는 꼰대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운하, 김남국, 최강욱,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울산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이라던가, 팟캐스트 여성 모욕 발언이라던가, 이런 게 국민들에게 다 알려진 상태에서도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올드 꼰대들이 주춤한 사이, 뉴 꼰대들이 묻지마 투표를 해서 아니겠습니까?

왕년의 꼰대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빨갱이들은 안 돼, 김대중이는 안 돼, 뭐 그런 것 말이죠. 그들은 그런 소리를 찍찍 내뱉고는 다짜고짜 1번을 찍으러 갔습니다.

지금의 꼰대들과 다를 게 없죠. 새누리당은 안 돼, 쟤들은 수꼴이니까 안 돼, 안철수도 안 돼고 심상정도 안 돼고 다 안 돼, 아 몰라 나는 청와대가 선거개입했다는 증거가 수두룩해도 문재인한테 힘을 실어줄 테야…

한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째 나라 수준이 1992년과 다를 바 없을까요. 황운하가 국회의원 당선되는 2020년이, 정형근이 국회의원 당선되던 1996년과,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저는 제가 이런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힘을 가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줄 알았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최근 뼈저리게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웃으며, 힘내서 살아봅시다.

2020-04-18

인류를 위한 일회용품

가령, 한 여고생은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문제를 인식했지만, 같은 반의 친구들 중 같은 문제를 인식한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E-Participation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 통해 사실은 플라스틱 빨대를 만드는 기업들이 2~30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 이익을 창출하려는 기업가가 아니라 소셜 기업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B형 간염의 바이러스가 대만의 큰 고민거리였고 ,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 식기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사라졌고,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강현숙, 오주영, "[인터뷰] 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2)", 2020년 4월 10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뉴노멀’이 도래했다는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것은 ‘뉴’도 아니고 ‘노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최근 수십년간이 비정상이었을 따름이다.

투표장에서 비닐장갑을 나눠주는 것이 환경오염이라고 근심하던 분들이라던가,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주여…)라던가, 온갖 이슈들 속에서 문득 이런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재미있어서 적어두고 혼자 보기 아까워서 블로그에도 올린다.

오드리 탕: 공무원의 역할

우선 공무원이 책임져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첫번째는 확실성이다. 상수도와 인터넷이 끊김없이 제공되도록 하는 것도 확실성이다. 두번째는 정의와 균등함이다. 모두는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며 사회정의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한다. 세번째는 민주주의 의지에 대한 반영이다.

공무원의 역할은 민주주의 의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뀔 것이다. 10년 뒤에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대신 직접적으로 민주주의적인 행동을 할 것이며 더이상 디지털 장관 같은 역할이 필요없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머신러닝과 자동화 등이 공무원들이 하는 업무 중 ‘확실성’과 관련된 업무들을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10년 후 공무원의 역할은 공공의 가치를 찾아 사회정의가 유지되도록 하는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지위가 다르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공공의 가치를 구성원들이 찾아내고 관련 규범을 만드는 데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역할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현숙, 오주영, "[인터뷰] 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3)", 2020년 4월 10일.

‘디지털 시대와 공무원의 역할’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텍스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축에 속한다. 공무원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며 왜 해야 하는가? 기술 발전에 따라 그 일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어떤 식으로 존속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품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

2020-04-16

아직 개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2004년 총선, 노회찬이 소수점 차이로 김종필을 꺾고 국회에 입성했던 그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이 급성장하여, 마치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리버럴 파티를 압도하고 보수당과 양당 구도를 이루는 미래를 꿈꿨다.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아무리 원숙했다한들, 정의당이 된 민주노동당이 NL 주사파 주류가 떼어준다고 꼬여낸 비례 의석 몇 개에 눈이 팔려, 원칙이고 뭐고 다 갖다바치며 공수처같은 악법에 동의할줄은 몰랐을 것이다.

개표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찌되건, 이미 내 피는 식었다. 내가 현실 정치에서 희망을 보던 나날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2020-04-13

중국 자본주의와 코로나 19

2003년 사스도 그렇고 이번 바이러스 대란은 중국이 무책임한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 이미 경제적 기반이 있는 부농들이 일반적인 농업을 선점하자 빈농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그 대책으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아무 생각 없이, 현존하는 모든 동식물을 천연자원으로 간주하여 채집 수렵 매매를 원천적으로 허가합니다.

그래서 특히 내륙의 밀림과 맞닿은 우한시 등이 야생동물 밀렵(도 아니죠 사실) 거래의 천국이 되었고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겁니다.

이건 제 뇌피셜이 아니라, 중국계 미국인 학자를 인터뷰한 미국 언론 Vox의 보도 내용입니다.

"How wildlife trade is linked to coronavirus", Vox, 2020년 3월 6일.

중국이 '서구 자본주의' 국가처럼, 야생동물 밀렵을 금지하고 매매를 엄금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10여년 단위로 새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은 없었겠지요. 공산주의를 빙자한 극단적 자본주의의 인류적 민폐라고 봅니다.

좋은 시장경제, 바람직한 시장경제라면 시장에서 매매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후자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자칭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는 양자의 구분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그냥 돈이면 다 되는 아수라장인 셈.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이런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아무거나 영리활동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니, 온갖 야생동물을 잡아서 비위생적으로 유통하는 시장이 생겨버린 겁니다.

저는 이번 판데믹의 전개를 보며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회복 능력'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는 논의가 매우 불편합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건 2년 후면 인류 전체 인구의 60%가 감염되면서 끝납니다. 스페인 독감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 경우도, 최악이라 해도, 그렇게 끝납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지배할 것이고, 인류는 화석 연료를 활활 태울 것이며,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의 작동 원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바이러스 앞에 죽어나가는 선진국 시민들'을 보면서 뒤틀린 만족감을 느끼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정리해보겠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는 자연의 복수가 아닙니다. 통제되지 않은 중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더 잘 제어되는 시장질서와 경제 윤리, 그리고 원시림과 야생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 하는 '서구적 자연 관리' 개념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