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3

넷플릭스식 Binge Watch 단상

넷플릭스가 조져놓은 드라마를 둘러싼 문화적 관습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최악은 Binge Watch라고 생각한다.

TV 시리즈는 그런 게 아니다.  

힌국 기준으로 16부작은 1주 2화씩 8주에 보도록 맞춰져 있다.

딱히 기한 없이 흘러가는 연속극도 1주에 한 편 내지는 두 편, 요즘은 잘 만들지도 않는 일일연속극은 1주 5화 1일 1화가 최대치다.

이게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연속'극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의 흐름과 시청자의 인생의 흐름이 함께하는 그 감각. 그것이 영화와 드라마를 가르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영화는 극장이라는 단절된 시공간에 들어가서, 대충 2시간 아무리 길어도 4시간이 안 되는 영상물을 보고 나온다. 영화 감상은 '이벤트'다.

반면 드라마는 TV가 됐건 모니터가 됐건, 익숙한 시공간과 시청 환경에서, 최소 8시간(이면 너무 짧고), 대충 16시간을 함께한다. 이건 '이벤트'가 아니라 '라이프'다.

빈지 와치는 바로 이 '라이프'로서의 드라마를 조져버린다. 하루 날잡고 쫙 정주행하는 그것은 드라마를 보는 자세가 아니다.

갑자기 왜 혼자 급발진하는가?

오랜만에 더 와이어 여전히 시즌 1... 의 8화를 보고 하는 소리임. 걍 무시하세요. 한 화 정도만 더 봐야지...

2023-02-24

독신남 ‘바가지 긁는 고양이’에 빠지다 (한겨레 매거진 esc, 2010년 4월 8일)

 

김도훈+고양이 솔로, 노정태+고양이 가을, 입동, 고세진+고양이 지오, 호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20~30대 싱글남 3명에게 듣는 ‘왜 고양이인가’ 

“수많은 독신남들이 ‘고양이 옷장’에서 뛰쳐나오기(coming out) 시작했다.” 2008년 10월3일치 미국 <뉴욕 타임스> 기사 중 한 대목이다. 이제 남자의 가장 친한 친구는 골든 레트리버(개의 품종)가 아니라 털 폭신폭신하니 껴안기 좋은 고양이라고 기사는 전했다. 남몰래 자신의 방에 고양이를 들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반려동물의 근황을 트위터라든가 ‘남자와 고양이들’(www.menandcats.com)과 같은 남성전용 고양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는 것 또한 남자들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라고. 그로부터 약 1년여 뒤, 이젠 한국에서도 고양이와 자족하며 지내는 남자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대체 그들은 어떻게 자취남의 궁상을 접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고양이에게 적대적인 사람과는 연애를 떠나서 친구관계조차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흑단처럼 윤기 나는 검정무늬를 ‘간지나게’ 차려입고 있는 턱시도 고양이 ‘솔로’와 3년째 함께 살고 있는 김도훈(36)씨의 말이다. 영화잡지사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방 출신으로, 본가에서는 반려동물로 개를 키운 경험이 있다.

“특히 지방에서는 남자들이 고양이와 사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상상해 본 적조차 없었는데 서울 올라온 후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여전히 개도 좋아하지만 혼자 사는 처지에서 개를 키우기란 엄두를 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손도 많이 가는데다 홀로 두고 나다닐 수도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까닭에 독립적인 성향의 고양이를 선택하게 된 것. 그리고 많은 남자들이 바로 이런 이유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양이들이 독립적이라고는 해도 김씨의 ‘애묘’ 솔로는 좀 다르다. ‘사실 얘는 강아지가 아닐까?’라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애교가 많기 때문. 김씨가 솔로를 처음 만난 곳은 홍대 인근의 어느 골목길. 당시 생후 3개월가량이었던 이 고양이는 운이 좋게도 주위에 사는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도 받았고, 나름 보금자리도 있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솔로에 대한 김씨의 애정도 각별하다. “지인 중에는 저를 ‘대치동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웃음) 사료나 고양이용품, 심지어 장난감 같은 것도 최고로만 사 주려고 하니까요.” 최근에 이사를 한 김씨는 고양이를 위해 40만원대의 캣타워를 구입했다.

“에라 모르겠다 군대나 가자는 식의 충동도 말려주죠”

반려동물로서의 고양이는 단순히 애정을 주고 위안을 받는 것 이상으로 남자의 삶을 적지 않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칼럼니스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원생 노정태(28)씨는 20대 초반이었던 6년 전, 처음 새침한 삼색고양이 가을이(암컷)를 들일 때만 해도 마음을 쏟아서 보살펴 줄 대상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한창 방황하던 때였는데,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고양이를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사는 남자들은 술도 많이 마시고, 술을 많이 마시면 집에 안 들어가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부터는 밥을 주기 위해서라도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자연스레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죠. 고양이가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처리한다든가 수시로 청소를 하게 된 것처럼 단순히 생활에 관한 부분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인생 계획에서도 충동적인 결정을 할 수 없게 된 부분이 있고요. ‘에라 모르겠다. 군대나 가자’ 같은 식의 생각을 못하는 거죠.”

노씨는 2007년, ‘가을이’에 이어 둘째 고양이 ‘입동이’(암컷)를 들였다. 우연히 아파트 놀이터에서 발견하고 데려온 검정 얼룩고양이 입동이는 당시 생후 3개월 정도였는데, 쉽게 입양되지 않으리라 판단해 직접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보니 혼자 있을 가을이가 외로울 거라는 고려도 있었다. 이 두 마리 고양이에 대한 노씨의 태도는 ‘끔찍한 애정’이기보다는 언뜻 무심해 보일 수도 있는 파트너십에 가깝다. “예쁘게 꾸미고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든가 남에게 자랑하는 것은 관심이 없어요. 저에게만 예쁘면 된 거죠. 사진을 찍어도 저는 우스꽝스런 모습만 찍게 돼요.(웃음)”

그럼에도 애묘들을 자랑할 때는 입에서 침이 마른다. “우리 고양이들은 표현력이 다양한 것 같아요. 여러 종류의 울음소리나 행동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데 오래 함께 지내다 보니 울음소리만 듣고도 애들이 원하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창밖을 보고 싶어서 문을 열어달라고 할 때 가을이는 특정한 톤으로 울고, 입동이는 그 앞에 가서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거든요. 그런 차이도 재미있죠.”

고등어 무늬의 암고양이 ‘호야’, 친칠라 종의 수놈 ‘지오’와 함께 살고 있는 고세진(35·인터넷 매체 편집국 팀장)씨. 그는 사람이 너무 다가가는 것도, 사람이 너무 외면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 고양이들의 절묘한 거리 감각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마치 ‘밀땅’(밀고 당기기)에 능한 여자와 연애하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는 것. “그렇다고 단지 그 매력 때문에 고양이를 키운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가족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친척 어른들 중에는 재수가 없다느니, 더럽다느니 하시면서 고양이 내다버리라는 분도 계세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러죠. ‘제 동생 내다버릴 수 없잖아요?’ 한번 들이고 나면 반려동물도 가족과 같아요.”

하지만 이런 고씨도 과거에는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고양이를 키우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자신도 고양이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 편견을 씻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향의 친척 집에서 다리를 저는 등 성하지 못한 몸으로 태어난 아기 고양이 호야를 보고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우발적으로 입양을 결심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늦게 들어오면 바가지 긁는 소리…참 좋아요”

“과거의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입장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문제. 고씨는 2007년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던 앙상한 고양이 ‘지오’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왔다. 워낙 마르고 지저분해서 씻기고 나서야 그 고양이의 털이 흰색이고, 게다가 품종이 ‘친칠라’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서 주인을 찾았지만 나서는 이가 없어서 결국 고씨가 키우기로 했던 것. 발견 당시 한 살쯤 되었던 지오에 대해 고씨는, 아마도 원 주인이 어릴 때만 예뻐하다가 크고 나니 부담스러워서 버렸을 거라 추측한다. “버림받고 굶주린 탓에 경계심도 크고 식탐도 많아요. 잘 때 호야는 침대로 기어 오는데 지오는 문 앞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거기서 자요. 식사시간에는 호야 밥까지 뺏어먹고요. 그런 모습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죠.”

고씨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퇴근길에 “오늘은 고양이들에게 무엇을 해줄까?”라는 생각이 들 때라고 말한다. “애들이 식탐이 많아서 자율 배식을 하지 않고 정해진 양을 아침저녁으로 나눠서 줘요. 그런데 저도 술 마실 일이 많으니까 새벽에 들어올 때도 있죠. 그런 날이면 호야가 현관에서 날 보자마자 ‘우아앙’ 하고 목청껏 울어요. 배고픈데 왜 이리 늦게 오는 거냐며 바가지를 긁는 거죠. 그런 느낌이 참 좋아요. 그러면 아무리 취한 상태라도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부랴부랴 밥 챙겨줘요.(웃음)”

남자가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방법

이름난 품종 고양이들을 들일 요량이 아니라면 고양이를 입양하는 데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다만 잘 보살피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중요하다. 반려 고양이와 만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 인터넷 동호회 | 노정태씨가 첫 고양이 가을이를 입양한 곳은 다음 카페 ‘냥이네’였다. 각 포털사이트의 주요 고양이 커뮤니티에서는 입양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의 ‘냥이네’ 외에, 네이버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싸이월드의 ‘괴수고양이’, 디시 인사이드의 ‘야옹이갤(냥갤)’ 등이 대표적이다.

⊙ 길거리 | 김도훈씨는 홍대 극동방송국 어귀 골목길에서 솔로를 처음 만나던 순간 ‘이 고양이다’라고 직감했다. 초면인데도 반갑게 다가와 마치 ‘나 좀 데려가 주’라고 말하듯 김씨의 다리에 머리통을 문질러댔다. 이외에 노정태씨나 고세진씨의 경우처럼 길 잃은 고양이의 모습이 측은해 데려온 게 관계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 동물병원 | 기자의 경우. 친구 따라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데리고 있던 유기묘를 입양했다. 사람들이 길에서 어린 고양이를 주워서 인근의 동물병원에 맡기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물병원에 맡겨진 고양이들은, 한달 안에 입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타깝게도 안락사를 시킨다. 동네에 동물병원이 있다면 가끔씩 들러보자.

⊙ 기타 동물구조·보호단체 | ㈔한국동물복지협회 산하의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기관에서도 보호하고 있는 유기묘의 입양을 알선한다. 각 단체들의 인터넷 누리집을 참고하자.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92@gmail.com·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2022-12-31

독서 목록(2022)

 
1. 220101 - 조던 피터슨, 김한영 옮김, 『질서 너머: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21)
2. 220102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2000년대 편: 노무현 시대의 명암·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11), 전자책, 리디북스.
3. 220108 - 심포 유이치, 권일영 옮김, 『화이트아웃』(서울: 크로스로드, 2021)
4. 220109 - 에마 스토넥스, 오숙은 옮김, 『등대지기들』(경기도 파주: 다산북스, 2021)
5. 220115 -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서울: 생각의힘, 2021)
6. 220116 - 아돌프 로스, 이미선 편역, 『장식과 범죄』(서울: 민음사, 2021)
7. 220116 - 나카야마 시게노부, 이연희 옮김, 『도해 갑자기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법』(서울: AK커뮤니케이션즈, 2015), AK Trivia Books 29.
8. 220122 - 김내성, 『마인』(서울: 판타스틱, 2009)
9. 220123 - 월터 모슬리, 이은정 옮김, 『올해 당신은 소설 쓴다』(서울: 더고북스, 2020)
10. 220123 - 아라이 히사유키, 구수영 옮김,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미스터리 입문』(서울: 내 친구의 서재, 2021)
11. 220129 - 조지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1), 전자책, 리디북스.
12. 220131 - 에리히 프롬, 장혜경 옮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서울: 나무생각, 2016)
13. 220206 - 김종인,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22)
14. 220212 - 박찬용, 『첫 집 연대기』(서울: 웨일북, 2021)
15. 220213 - 펠릭스 데니스, 장호연 옮김, 『빈손으로 시작해도 돈이 따라올 거야(서울: 위즈덤하우스, 2021)
16. 220221 - Phil Knight, Shoe Dog: A Memoir by the Creator of Nike(New York: Simon & Schuster Audio, 2016), Audible.
17. 220224 - 이상희·윤신영, 『인류의 기원: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서울: 사이언스북스, 2015)
18. 220227 - 정찬용,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서울: 사회평론, 2000)
19. 220306 - 필리프 비옹뒤리·레미 노용, 이재형 옮김, 『뉴노멀 교양수업: 10년 후 정치·경제를 바꿀 10가지 핵심 개념』(서울: 문예출판사, 2020)
20. 220312 - 피터 린치·존 로스차일드, 이건 옮김, 홍진채 감수, 『전설로 떠나는 월街의 영웅』(경기도 파주: 국일증권거래연구소, 2021), 3판.
21. 220312 - 김용언, 『여자에게 어울리는 장르, 추리소설』(서울: 메멘토, 2022)
22. 220312 - 복거일, 『한반도에 드리워진 중국의 그림자』(서울: 문학과지성사, 2009)
23. 220313 - 하워드 민즈, 이윤정 옮김, 『헤엄치는 인류』(서울: 미래의창, 2021)
24. 220320 - 로버트 무어·더글러스 질레트, 이선화 옮김, 『왕, 전사, 마법사, 연인』(서울: 파람북, 2021)
25. 220322 - W. G. 제발트, 이경진 옮김, 『전원에 머문 날들』(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21)
26. 220330 - Paulo Coelho, The Alchemist(New York: HarperTouch, 2005), Audible.
27. 220410 - Nir Eyal • Ryan Hoover, Hooked: How to Build Habit-Forming Products(New York: Penguin, 2014), Audible.
28. 220414 - 마이클 폴란, 김현정 옮김, 『요리를 욕망하다』(서울: 에코리브르, 2014)
29. 220416 - 나이절 워버턴, 박준영 옮김, 『그래서 예술인가요?』(서울: 미진사, 2020)
30. 220420 - 애거서 크리스티, 신영희 옮김, 『창백한 말』(서울: 황금가지, 2006),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9.
31. 220421 - 대검찰청 국제협력담당관실,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서울: 대검찰청, 2020)
32. 220422 - 미셸 우엘벡, 이채영 옮김, 『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서울: 필로소픽, 2022)
33. 220510 - Dan Brown, Origin(New York: Doubleday, 2017), Audible.
34. 220515 - 길희성 역주, 『범한대역 바가바드기타』(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10)
35. 220515 - 박효엽, 『불온한 신화 읽기: 『바가바드기타』는 인도를 어떻게 신비화하였는가』(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1)
36. 220521 - 김성모, 『근성론』(피제이로, 2022)
37. 220522 - 마사토끼, 『마사토끼의 만화 스토리 매뉴얼 vol. 1』(서울: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
38. 220522 - 마사토끼, 『마사토끼의 만화 스토리 매뉴얼 vol. 2』(서울: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
39. 220522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박병규·박정원·최이슬기·이경민 옮김, 『영원성의 역사』(서울: 민음사, 2018),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2.
40. 220523 -  Fredrik Backman, A Man Called Ove(New York: Hodder & Stoughton, 2014), Audible.
41. 220529 - 이한우, 『우리의 학맥과 학풍: 한국 현대 지성사의 복원』(경기도 용인: 천년의상상, 2022), 개정판.
42. 220612 - 고원정, 『빙벽 1: 제1부/우상의 땅·상上』(서울: 현암사, 1989)
43. 220616 - 데이비드 굿하트, 김경락 옮김,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서울: 원더박스, 2019)
44. 220627 - 조지 버나드 쇼, 이후지 옮김, 『인간과 초인』(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열린책들 세계문학 e컬렉션, 전자책, 리디북스.
45. 220629 - 박상훈, 『청와대 정부: '민주 정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서울: 후마니타스, 2018)
46. 220701 - 제임스 핀 가너, 김석희 옮김,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서울: 실천문학사, 1996)
47. 220701 - 제임스 핀 가너, 김석희 옮김, 『좀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서울: 실천문학사, 1996)
48. 220701 - 앨런 긴즈버그, 김목인·김미라 옮김, 『울부짖음: Howl 그리고 또 다른 시들』(서울: 1984, 2017)
49. 220703 - 고원정, 『빙벽 2: 제1부/우상의 땅·중中』(서울: 현암사, 1989)
50. 220703 - 고원정, 『빙벽 3: 제1부/우상의 땅·하下』(서울: 현암사, 1989)
51. 220708 -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승진 옮김, 『브레히트, 시에 대한 글들』(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21)
52. 220709 - 박완서, 『나목』(서울: 세계사, 2012), 박완서 소설전집 01.
53. 220723 - 도나 타트, 이윤기 옮김, 『비밀의 계절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7)
54. 220724 - 도나 타트, 이윤기 옮김, 『비밀의 계절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7)
55. 220813 - 정서경·박찬욱, 『헤어질 결심 각본』(서울: 을유출판사, 2022)
56. 220814 - 프랜 리보위츠, 우아름 옮김, 『나, 프랜 리보위츠』(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22)
57. 220918 - 실비아 플라스, 진은영 옮김, 『에어리얼 - 복원본』(서울: 엘리, 2022)
58. 221002 - Pavel Tsatsouline, Power to the People!(Dragondoor, 1999).
59. 221003 - 마이클 샌델, 김선옥 감수, 안기순 옮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서울: 와이즈베리, 2012).
60. 221011 - John Yorke, Into the Woods: How Stories Work And Why We Tell Them(Penguin Books, 2013).
61. 221020 - 피터 자이한, 홍지수·정훈 옮김,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서울: 김앤김북스, 2018)
62. 221020 - 피터 자이한, 홍지수 옮김,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서울: 김앤김북스, 2019)
63. 221021 - 이솝, 천병희 옮김, 『이솝우화: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정본』(경기도 파주: 숲, 2013)
64. 221030 - 마쓰모토 세이초, 김경남 옮김, 『D의 복합』(서울: 모비딕, 2012)
65. 221030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66. 221030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67. 221106 - 헨닝 망켈, 박진세 옮김, 『리가의 개들』(서울: 피니스 아프리카에, 2022)
68. 221118 - 알베르토 모라비아, 정란기 옮김, 『순응주의자』(서울: 문학과지성사, 2021), 대산세계문학총서 168.
69. 221119 - 애니 듀크, 구세희 옮김,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경기도 파주: 에이트 포인트, 2018)
70. 221224 - 페터 하프너, 김상준 옮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인터뷰』(세종시: 마르코폴로, 2022)

표1부터 표4까지 완독한 책의 목록. 올해는 100권은 고사하고 70권에 머물고 말았다. 여러 일이 있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더 많다. 2023년부터는 템포를 높여서 앞질러 가야지.

2022-12-26

[서평] 로널드 드위킨, <신이 사라진 세상>

신이 없더라도, 이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늙은 법철학자의 마지막 질문] 로널드 드워킨의 <신이 사라진 세상>
프레시안Books, 2014년 4월 25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6656 

1.

법대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수능 성적 때문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노닥거린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참으로 형편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수능 점수만 놓고 들어갈 수 있는 학교 중 제일 '좋은' 곳에 원서를 냈다.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런 저런 경로로 입수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는데, 제목이 기억나는 것은 <무한의 리바이어스> 밖에 없다. 일찌감치 백수처럼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생활을 반복했고,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었다.

학교 공부나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민법총칙 교과서에는 스위스가 '瑞西(서서)'로, 오스트리아가 '墺地利(오지리)로 표기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책을 덮어버리고, 당시만 해도 여기저기 퍼져 있던 교내 행사들을 찾아다니며 귀동냥을 하고 술을 마시다가, 그마저도 시들해질 때쯤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그래도 법대에 왔는데 공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법학에 대한 흥미를 북돋워줄 주변 서적들을 찾아 읽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었다.

'단지 법학자를 넘어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되는 인물들이 몇몇 있다. 가령 독일의 형법학자이며 법철학자인 구스타프 라드부르흐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잠언집을 읽어보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통찰'이 담긴 에스프리들이 묶여 있었는데 적어도 당시의 내게는 잘 와 닿지 않았다. 일종의 '진입 장벽'이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하겠다. 왜냐하면 라드부르흐의 법철학, 특히 "극도로 부정의한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라드부르흐 공식' 등은, 나치 시대에 대한 독일 법학계의 평가와 반성이라는 맥락이 있어야 이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치가 '합법적'으로 '불법적' 행위를 저질렀다는, 따라서 그들이 만든 법이 문제였지 법조계는 비교적 결백하다는 항변이 그 이면에 깔려있기도 하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의 말과 법철학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다른 법철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법은 그 법이 통용되는 한 사회 내에서는 보편적인 규범력을 지니고, 따라서 그 법을 해설하거나 법에 기반하여 논리를 전개하는 법학 역시, 대체로 특정 사회의 맥락 속에서 가장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허버트 L. A. 하트의 <법의 개념>(오병선 옮김, 아카넷 펴냄) 같은 책을 읽어서 곧장 이해할 수 있는 한국 법학도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오늘날의 나는 당시의 나를 변호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그의 법철학은 영미법 체계를 해석하면서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흘러흘러 로널드 드워킨이라는 이름을 만났지만, 역시 학부생이던 그 당시에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유일한 책이었던 <법의 제국>(로널드 드워킨 지음, 장영민 옮김, 아카넷 펴냄)은 그저 두껍고 어려웠을 뿐이다.

2.

대학원을 철학과로 진학하고 전공 대상은 칸트로 선정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다. 책을 그냥 쓱 읽어봤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혹은 이해했다고 착각이라도 할 수 있는) 철학자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칸트는 전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인데, 게다가 여러 맥락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드워킨의 마지막 책 <신이 사라진 세상>(김성훈 옮김, 블루엘리펀트 펴냄)도 그렇다. 법학적으로 응용되어 있는 부분을 빼고 나면, 이 책의 논의는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백종현 옮김, 아카넷 펴냄), 이른바 '그룬트레궁'의 그것과 거의 똑같다. 칸트의 핵심적 논지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1) 윤리 법칙은 상대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객관적으로,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2) 그렇게 파악된 윤리 법칙은 이른바 '정언 명령'으로, 그것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정언 명령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고, 느끼는 것이 마땅하다.
(3) 신의 존재는 이러한 윤리형이상학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그 정언 명령의 최종 담지자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할 따름이다.

<신의 사라진 세상>의 논리 전개도 이와 유사하다. "종교적 무신론자들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종교의 과학 영역 그리고 의식을 통한 숭배 의무와 같은 신에 대한 책무를 거부한다"(43쪽)고 할 때, 드워킨은 칸트가 말한 (1)의 논지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어떤 인생을 사는가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잘살아야 할, 빼앗을 수 없는 윤리적 책임감을 안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같은 곳)는 말은, 칸트가 말한 (2)의 논지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신 없는 종교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드워킨의 주장 가운데 '철학적'인 부분은, 사실상 일종의 탄탄대로 위에 놓여있는 셈이다. "우리는 처벌을 내리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심판이 필요하다고 가정해왔다. 하지만 오히려 신이 존재해야만 심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183쪽)고 말할 때, 드워킨은 '신의 요청'에 대한 칸트의 주장, 앞서 우리가 정리한 (3)번 논지를 되풀이하고 있다.

3.

그렇다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직전까지 영미 법철학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던 그는 굳이 왜 이 책을 썼던 것일까? 칸트가 이야기한 윤리형이상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이른바 '전투적 무신론자'들(및 그들을 따르는 지식인들)과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 혹은 그러한 성향의 지식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다.

신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가능하다면, 또한 무엇이 윤리적인 삶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때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면,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그렇게까지 전투적이어야 할 필요는 사실 딱히 없다. 반대로, '전투적 무신론자'들 또한 실은 일종의 종교적인 경외감과 진지함으로 삶을 바라보고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된다면, 유신론자들 역시 그들을 특별히 적개시해야 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드워킨은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이렇다. 그는 철학자이며 동시에 법학자이기 때문에,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신 없는 종교'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현실 속에서 종교가 수행하는 윤리적, 도덕적 기능을 동일하게 구현한다면, 그 또한 종교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드워킨은 자신이 1992년에 쓴 책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종교를 정의한다. "종교는 인간 개인의 삶을 초월적인 객관적 가치와 연결함으로써 더 심오한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이다."(148쪽) 얼핏 듣기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종교를 정의할 경우,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가령 낙태와 같이 기존 종교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 역시, 일종의 '종교적'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상 보호되는 권리가 과연 무엇을 보호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드워킨은 진지한 문제 제기를 하고, 또 답변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신이라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보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신으로부터 파생된 사람들의 윤리적 독립성을 지켜주는 것인지, 드워킨은 묻는다.

가령 내가 우리 집에서 키우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마치 고대 이집트인처럼) 신으로 숭배한다면, 그것은 나의 종교의 자유 중 첫 번째 의미에 해당할 것이다. 반면 내가 종교적 환각 상태를 넘나들기 위해 국가에서 금지한 약물을 복용하고자 한다면, 그럴 때 나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위한 종교의 자유가 아닌, 나의 윤리적 독립성을 위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해야만 한다.

첫 번째 차원에서의 종교는 종교적 광신 등으로 향할 우려가 있다. 또한 국가가 두 번째 차원에서의 종교를 종교의 자유로 보호한다면, 종종 '자신만의 윤리'를 세워나가며 기존의 법과 질서를 어기는 자들을 법으로 지켜줘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섣불리 해답을 내리는 대신, 드워킨은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대신한다. 길게 인용해보도록 하자.

이 두 가지 종류의 믿음은 모두 좀 더 근본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지만, 서로 독립적이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은 깊은 종교적 포부의 영역에서는 유신론자들을 완전한 파트너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유신론자들은 무신론자가 자신들과 똑같은 도덕적,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저히 메울 수 없을 듯 보이는 간극이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은 도덕적,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지 않은 과학적 의견의 불일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도 너무 큰 욕심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174쪽)

4.

미국에서 종교의 자유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장 첨예한 정치적 이슈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낙태와 성에 대한 문제들이 그렇다. 낙태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의료 기관은 환자에게 필요한, 환자가 요구하는 의학적 처치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은 의료 기관의 의무다. 하지만 일부 종교적 성향을 지니는 병원들은 가령 낙태처럼 종교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시술을 거부하고, 그럴 때 자신들에게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미국의 특정 주에서는 종교 단체들이 자신들의 로비력을 발휘해, 동성애 행위(이것은 좀 오래 전 이야기이겠으나), 동성결혼, 조기 낙태 등을 불법화하는 법을 만들려고 시도하거나 종종 성공하기도 한다. 그럴 때 연방대법원은 대체로 위헌 판결을 내리는데, "대법원은 그 판결의 근거를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종교의 자유 보장 조항이 아니라 미국 헌법의 평등한 보호와 적법한 절차의 조항에서 찾아냈다."(171쪽)

대법원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성애와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신의 의지를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문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남성이나 여성 중에서 자신의 욕구가 종교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 헌법의 상태와는 별개로,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윤리적 독립성의 일부로 대한다면, 진보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172쪽)

그러니까 한 쪽은 타인의 생명 및 삶에 대해 함부로 간섭하고 침해하는 법안을 만들면서 종교의 자유를 들이밀고, 다른 한 쪽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저 '평등'과 '적법절차'라는, 다소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헌법 원리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종교와, 종교가 담지하는 진지하고 신실한 삶이라는 가치 자체를 장기적으로 훼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이 로널드 드워킨의 유작이 된 것은, 계산한 것은 아니겠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우며 심지어 아름다운 결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평생토록 진보적(인 입장에 가까운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법학자의 눈으로, 또 철학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해왔다. 단지 해석에서 머무는 것뿐만 아니라, 실용학문인 법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답게, 논의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원제 ‘Religion Without God’을 <신이 사라진 세상>으로 옮긴 것은 좋은 판단인 것 같다. 신이 사라진 세상도 아름답고 윤리적일 것이라는 그의 낙관적 믿음이 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5.

철학을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딴 후 군대에 갔다. 다행히도 카투사가 되었고, 책을 읽을 시간이 있었다. 특히 훈련을 나가면, 나는 통신병이었으므로, 대기 시간이 길었다. 경기도 북부의 어딘가에 있는 탁 트인 벌판에서, 사령부에 인공위성을 통해 인터넷을 연결해놓고, 나는 책을 읽었다. 그 중 하나가 드워킨의 《Life's Dominion》이었는데, 내가 한창 읽어내고 난 후에야 <생명의 지배영역>(박경신·김지미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생명의료법연구소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이 나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내가 읽었지만, 혹은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알아보지 못했던 대가의 문장과 논증을 접하고 새삼스럽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드워킨은 생의 말년에 접어들어 더욱 치열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안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지가 등장했을 때, 그는 특히 《New York Review of Books》 지면을 통해 치열한 반박에 나섰다. 이른바 '오바마 케어'가 통과되고 작동하기 시작한 것에 그가 얼마만큼이라도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실의 문제와 맞닥뜨리고 싸우는 지식인의 한 표상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킨들에 넣어둔 그의 책을 언제 다 읽나 하고 있을 때쯤, 드워킨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설령 그가 더 오래 살았다 한들 내가 그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득 아쉬웠고, 어떤 면에서는 슬프기도 했다.

법학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그 근거가 대단히 부실한 학문이기도 하다. 최종적인 판단의 근거와 권위가, 한국 같은 성문법 국가의 경우 결국은 법조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영미법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법은 왜 법인가? 법이 왜 정당한가? 같은 질문에 대해 통상적인 법학의 범위 내에서는 답하기 어렵다. 법의 정당성과 지엄함은 법 바깥의 세계로부터 출발하고 있고, 종종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것을 끝내 모른척하고 오직 실정법에서 출발하는 법학만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실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드워킨 같은 사람의 책을 읽는다. 철학적인 원칙과 논리에서 출발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법한 논증을 만들고, 그것이 현실의 법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혹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지 유려하게 기술한다.

지적인 기반도 없고, 토대도 약하고, 심지어 판사마저도 걸핏하면 '국민의 법 감정'을 운운하며, 검찰은 국정원과 손을 잡고 무리한 기소를 벌이다가 그들 말에 따르면 '간첩임에 분명한' 유우성 씨를 놓아주는 일이 벌어지는 이 한국의 법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과 이상, 시궁창과 별이 빛나는 밤, 그런 차이가 또렷하다.

칸트의 잘 알려진 문구로 이 서평을 끝내도록 하자.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 드워킨과 나와 당신은, 그런 면에서 모두 같은 별과 같은 도덕률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명복과, 우리 모두의 좋은 삶을 빌어본다.

2022-11-27

유전자 조작 아기를 낳는 것을 진보가 옹호할 수 있는가

마이클 샌델이 쓴 <완벽에 대한 반론>을 읽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책. 명확한 지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괜찮은 논증을, 하버마스로부터 빌려와 잘 썼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더 나은 아이를 '선택'해서 출산하는 행위를 미국의 주류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옹호하는데, 그에 대한 반발이다.

같은 주제를 논하면서 하버마스는 '우리가 아는 자유의 개념은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전제되어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주 멀리 보면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의 연장이고, 가깝게는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던져짐' 개념을 빌려왔던 것의 연속성 위에 있다.

아무튼, 일반적으로 '진보'라 여겨지는 미국의 고학력 리버럴 계층은, 자신을 닮았는데 여러모로 능력이 탁월한 아이를 통해 존재의 유한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매우 큰 듯 하다. 반면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은 '아이는 신이 주신 선물이며 꽝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는 보수적 가치를 옹호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기독교적 가치(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한 죄인이며 죽을 때는 다 똑같다)로부터 벗어난 중국계 이민자에 의해 '글로벌 대리모 서비스 앱'이 출시되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쌓아나가야 한다.

다시 샌델의 책으로 돌아와보면 이 아이러니가 더욱 도드라진다. 20세기 자유주의 철학자의 대명사인 하버마스의 입을 빌어, 21세기에 가장 잘 팔리는 공동체주의 철학자가, 21세기 미국의 '리버럴'들을 공격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201n년이니까요!' 같은 말은 정말 아무 쓸모가 없다.

-2019년 5월 5일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