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3

이것 저것

1. 어젯밤 읽은 이코노미스트의 사설 "Twin Twisters". 진정한 시장주의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프레디맥 패니맥에 공적자금을 퍼부어서 부도를 막는 것은 납세자들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이므로, 아예 화끈하게 국유화를 해버린 다음 그걸 되팔아서 비싼 값에 팔고, 정상화된 시장 기능에 그 회사들을 다시 맡겨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화끈하다, 화끈해.

'시장주의'라는 말을 할거면 이정도 강단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 어떤 정책적인 수단도 가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다면, 책이 나오기 고작 사흘 전에 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준의 글을 후다닥 써서 표지에 박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반면 한국의 '시장주의'는... 에휴.


2. 독도 문제 등에서 잃어버린 점수를 되찾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멕시코 피랍사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다지 현명한 방침이 아닌 것 같다. 금전을 노린 단순 납치사건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대응하면, 납치범들 사이에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동시에 긴장이 고조된다. 만에 하나 정치적인 이유로 이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더더욱 정부는 이토록 이른 시점부터 공개적으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높은 사람들의 '액션'은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이지 못한 효과를 낳는다.


3. 아주 오래간만에 알라딘 서재에 서평을 올렸다. 《갖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이충걸, 위즈덤하우스 2008)이다. '독서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오래간만에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전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쉽게 훌훌 읽어넘길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에 실린 글 하나 하나를 읽는 것은 마치 잡지 한 권을 읽는 것과도 같은 감각적 포화 상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것을 '이충걸식 글쓰기'라는 편리한 단어 하나에 우겨넣어버린 후 치워버리지만, 이것은 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의 현란함을 논하는 글쓰기에서, 저자처럼 온갖 명사를 끌어내어,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형용사를 입혀놓은 후, 그 모든 언어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걷게 할 수 있으니, 독자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잡지식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구성하는 방식의 글쓰기이다. 저자는 '잡지에 싣기 좋은 글'을 쓰지 않는다. 대신 그 자체가 잡지가 되어버리는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4. 다크 나이트 보고 온 사람들이 난리다. 부러워라.

댓글 5개:

  1. 저는 정말이지 책이 읽히지 않네요. 자꾸 한계점이 보이는 것 같고, 봐도봐도 까먹고, 난독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고 있어요. 갑자기 왜 이런 거지. 저는 마음이 급하고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모국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본문과는 전혀 상관 없는 푸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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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본문과 무관한 개인적인 푸념을 리플로 달아놓으시는 일은 가급적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책이 읽히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입니다. 자신이 평소에 접하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독서 슬럼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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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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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책을 읽다가 혼자 짜증이 나서 구르던 중,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인 거 같아서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생각해 보니 무안한 행동을 했네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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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책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책으로 푸는 수밖에 없겠죠.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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