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8

광우병 논란과 한국의 농업

광우병 논란을 가만히 짚어보면 가장 중요한 논점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내 축산 농가가 망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 차이를 보이지만, 축산 농가를 살리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여론의 관심은 주로 광우병의 공포로 인해 거리에 선 10대들에 맞춰져 있다. 요컨대 문제는 국민 건강과 식품 안전이며, 그 다음은 이명박 정부의 통상 주권과 협상력의 부재라는 식이다.

이러한 종류의 찬성과 반대는 모두,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면, 지금처럼 농가의 붕괴 현상에 대한 대책 없이 수입 장벽을 열어도 좋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인식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인 흐름을 거스르고 있으며, 국가 경제를 놓고 볼 때에도 타당하지 않고, 결국 국가 경쟁력 재고에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진정 21세기형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핸드폰을 팔기 위해 농촌을 죽이는' 박정희식 개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지난해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의 가격은 287퍼센트, 옥수수는 149퍼센트 상승하였고, 그 외 커피, 완두콩, 콩, 쌀 등 기본적인 곡물들 또한 그러한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식량 가격이 이처럼 천정부지로 오르는 이유에는, 확실한 것 하나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하나가 있다. 중국 내 육류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가축을 기르기 위한 사료 소비가 대규모로 늘어났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바이오디젤용으로 옥수수를 대량 소비함으로써 식량 가격 폭등에 일조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재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중이다. 아무튼 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덕분에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인 태국은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더구나 WSJ에서 운영하는 Marketwatch의 보도에 따르면 태국은 OPEC과 유사한 형태의 농업 카르텔을 구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이 그 구성원인데, 태국과 베트남은 세계 1, 2위의 쌀 수출국인 만큼 실제로 구성된다면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한국에서 먹는 자포니카와 동남아에서 기르는 안남미가 다르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식량 가격이 오른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미국에서 최근 가장 큰 주가 상승률을 보여주는 기업들이 농업 기업이라는 사실 또한 많은 것을 시사한다. theStar.com의 보도에 따르면, 모사익은 319퍼센트, 포타쉬는 140퍼센트, 몬산토는 105퍼센트씩 지난해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전례 없는 호황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원인이 뭐가 되었든지간에, 세계 경제의 기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애플의 상품과 마케팅이 방증하는 바와 같이, IT는 첨단 산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 산업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2008년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서 세계 각국이 가장 주목하는 산업은 다름아닌 농업인 것이다.

광우병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미국 소의 안전성'과 '통상 주권'에만 머물러있는 현실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안타깝다. 현재 돌아가고 있는 국제적인 추세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농촌을 이런 식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고 싶다면 한국의 축산 유통 구조를 개편해야지, 무턱대고 미국산 쇠고기의 문호를 열어젖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국제적으로 사료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값 또한 앞으로는 결코 싸지 않을 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농업 정책,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백하지 않은가.

광우병 논란의 양쪽 방향을 두루 살펴봐도, 우리의 '국민 감정'은 어디까지나 농촌을 황폐화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의 가까운 친구들 중에도 '소수가 희생해서 온 국민이 값싸게 먹을 수 있다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이미 공업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닥쳐올 농업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농촌을 죽이고 도시를 살리는' 박정희식 근대화의 2000년대 버전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작고 강한 농업'이 필요하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내의 실정과 지역적 상황에 최적화된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느냐 마느냐 여부를 떠나서, 한국의 농업을 이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

2008-04-30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Many political words are similarly abused. The word Fascism has now no meaning except in so far as it signifies "something not desirable." The words democracy, socialism, freedom, patriotic, realistic, justice have each of them several different meanings which cannot be reconciled with one another. In the case of a word like democracy, not only is there no agreed definition, but the attempt to make one is resisted from all sides. It is almost universally felt that when we call a country democratic we are praising it: consequently the defenders of every kind of regime claim that it is a democracy, and fear that they might have to stop using that word if it were tied down to any one meaning. Words of this kind are often used in a consciously dishonest way. That is, the person who uses them has his own private definition, but allows his hearer to think he means something quite different. Statements like Marshal Pétain was a true patriot, The Soviet press is the freest in the world, The Catholic Church is opposed to persecution, are almost always made with intent to deceive. Other words used in variable meanings, in most cases more or less dishonestly, are: class, totalitarian, science, progressive, reactionary, bourgeois, equality.
George Orwell,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1946)

언어와 정치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할 듯하다. 오늘 하루 종일 붙잡고 읽었는데,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에세이를 읽고 나면 그의 소설을 찬양하는 것은 유치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2008-04-24

신임 스페인 국방장관

최근 본 사진 중 가장 간지나는 것은 바로 이것.


4월 14일 취임한 스페인의 신임 국방장관 Carme Chacon의 모습. 37세, 임신 7개월. 멋지다.

2008-04-23

중산층은 생각하지 마

이런 노래를 들었다.



Hey girl what's wrong with your principles?
When you say that you're a vegetarian
Well, I've seen you eat meat a couple of times but
I swear I won’t tell anyone.

And how about the affection for me after I've been
Walking through hell for you?
What the hell did you expect me to do?

I still think that you're a bitch, talking Motherfucker
You’re the worst cock sucker
Swore that you were true to me
Yeah - in my dreams, in my dreams

Ah - I just won't rub it in...

Hey girl what's wrong with your principles?
When you say that you're a vegetarian
Well, I've seen you eat meat a couple of times but
I swear I won’t tell anyone.

And how about the affection for me after I've been
Walking through hell for you?
What the hell did you expect me to do?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다니엘 시레라(Daniel Cirera)의 노래라고 하고, 제목은 Motherfucker fake vegeterian ex-girlfriend라고 한다. 이택광 선배의 블로그에서 잘 들었는데, 위아래로 달린 노래에 대한 코멘트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예전에 가투 몇 번 나갔던 경력을 자랑 삼아, 술자리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걱정하고, 집에 돌아오면 과감하게 교육과 부동산을 위해 보수주의자로 변신하는 한국의 신흥 중간계급들에게 한번쯤 들려줘야할 노래"라는 것이 이택광의 언급이고, 그 밑에서는 젱가님이 "들으면 들을수록 한국 중간계급 또는 지난 10년 개혁세력의 행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다고 응수한다. 나는 이런 시선이 너무도 불편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연애 이야기 아닌가. 중산층, 혹은 상류층 젊은 여성의 허위 의식과 마찰하는 노동 계급 출신 남성이 부르는, 제 아무리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해도 결국은 찌질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 노래를 들으면서, 한국 중산층과 '개혁정권 10년' 등을 떠올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약이다. 바로 그런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이야말로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노동계급적인 삶의 본질이 존재로서 드러나고자 하는 것을 은폐한다는 인상마저 든다(하이데거를 방금 읽은 티가 난다).

노동계급의 남성이 중산층 여성과 이성으로 만나면서 겪게 되는, 그 부대끼는 느낌을 이렇게 간단하게 '한국 중산층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로 치환하는 과정을 되짚어보면, 결국 그 과정에서 이 노래의 진정한 주인공이어야 할 누군가가 또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찌질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틈을 주지도 않고, 비평가는 '중산층'을 위한 노래로 이 곡을 해석하면서 결국 그들에게 이 좋은 노래를 헌정해버린다. 곡이 지니고 있던 최초의 에너지는 온데간데 없고, 결국 남는 것은 그 흔하고 상투적인 '중산층의 허위의식 비판' 뿐이다.

그들에게 소비자로서의 능력과 의사가 있기 때문에, 중산층을 소재로 삼는 작품들은 넘쳐난다. 다만 그중에서도 중산층을 바라보는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온전히 내는 무언가는 제법 드물게 나오는 편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노래는 그 드문 사례 중 하나이다. 그럼 대체 왜 여기서, 이렇게도 간단하게 '한국 중산층'에 대한 비아냥이 마치 노래 전체의 주제인양 등장해야만 할까? 전 여자친구를 저렇게 욕하는 바로 저 화자의 심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을까? 너무도 뻔한 귀결이지만, 갑자기 펄프를 듣고 싶어졌다. 커먼 피플의 주제 의식도 이 노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산층의 허위의식'은 90년대에도 있었고 80년대에도 있었고 2010년대에도 계속 있을 것이다. 그것에 진저리를 내는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서까지 중산층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비평적 상상력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She came from Greece, she had a thirst for knowledge
She studied sculpture at Saint Martin's College
That's where I caught her eye
She told me that her Dad was loaded
I said "In that case I'll have rum and coca-cola
She said "fine"
And then in 30 seconds time she said
"I want to live like common people
I want to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I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I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like you"
Well what else could I do?
I said "I'll see what I can do"
I took her to a supermarket
I don't know why
but I had to start it somewhere
so it started there
I said "pretend you've got no money"
but she just laughed
and said "oh you're so funny"
I said "Yeah
Well I can't see anyone else smiling in here
Are you sure
you want to live like common people
you want to see whatever common people see
you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you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like me?"
But she didn't understand
she just smiled and held my hand
Rent a flat above a shop
Cut your hair and get a job
Smoke some fags and play some pool
Pretend you never went to school
But still you'll never get it right
'cos when you're laid in bed at night
watching roaches climb the wall
if you called your dad he could stop it all
yeah
You'll never live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You'll never fail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watch your life slide out of view
and then dance and drink and screw
because there's nothing else to do
Sing along with the common people
Sing along and it might just get you through
Laugh along with the common people
Laugh along although they're laughing at you
and the stupid things that you do
because you think that poor is cool
Like a dog lying in a corner
they will bite you and never warn you
Look out
they'll tear your insides out
'cos everybody hates a tourist
especially one who thinks
it's all such a laugh
yeah and the chip stain's grease
will come out in the bath
You will never understand
how it feels to live your life
with no meaning or control
and with nowhere left to go
You are amazed that they exist
and they burn so bright
whilst you can only wonder why
Rent a flat above a shop
Cut your hair and get a job
Smoke some fags and play some pool
Pretend you never went to school
But still you'll never get it right
'cause when you're laid in bed at night
watching roaches climb the wall
if you called your dad he could stop it all
yeah
You'll never live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You'll never fail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watch your life slide out of view
and then dance and drink and screw
'because there's nothing else to do
I want to live with common people like you.....

뮤직비디오 버전에서는 이탤릭 표시한 부분이 빠져있다. 대단히 직설적으로, 이 노래는 중산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중산층 여자를 바라보며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는 노동계급 남자의 것임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그 부분. 마침 그게 온전하게 다 들어있는 버전을 발견하여 보너스로 덧붙여 놓는다. 코난 오브라이언의 토크쇼에 출연한 윌리엄 샤트너가 부르는 커먼 피플. 데니 크레인 같지가 않다.

2008-04-15

정치적 반목, 정책적 연대

"[여야 전수조사]한나라-대운하, 親李도 39명만 찬성"(경향신문, 2008년 4월 15일)

"[여야 전수조사]민주-한·미FTA, 8명 빼곤 결국 ‘찬성’"(경향신문, 2008년 4월 15일)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 한반도 대운하는 박근혜의 화려한 승리와 함께 좌초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정책적 쟁점으로 전락한 한·미FTA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총선은 그 과정도 최악이었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도 최악으로 기록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왜 한나라당이 찬성합니까?"라고 강기갑이 질문하던 그 순간, 이미 한국 사회는 돌아오기 힘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시 지역 출신으로는 천정배 당선자가 사실상 유일하게 반대했다. 결국 18대 국회의 민주당 당선자들 중에서 이념적·가치적으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셈이 가능하다"니, 정말이지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