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9

토마토 기르기를 찬미함

가디언을 매일 훑어보긴 하지만, 많은 기사를 정독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사설의 한 코너만은 꼼꼼하게 읽는다. 'In praise of ...'라는 형식으로 반복되는, 무언가에 대한 찬미를 담은 코너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매체는, 매일 어떤 대상을 꼽아 그것을 간략하게 살피고 찬미한다. 이런 여유와 너그러운 긍정이 우리의 진보 진영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토마토 기르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잠깐 여유가 생겨서 번역해보았다. 오역이 발견되면 주저 없이 지적해주시길.

토마토 기르기를 찬미하며


유월은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를 낳았다. 그것은 모든 원예가들에게, 특히 토마토가 익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누구든 그것을 집에서 키울 수 있다. 창문 하나만 있어도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가장 숙달된 전문가라 하더라도 빛나는 태양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매우 환상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집에서 기른 토마토는 슈퍼마켓의 차디찬 보관함에 놓여 있는 딱딱하고 향기 없는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것들을 먹으면 때로 시큼한 플라스틱 조각을 씹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꼭지가 남아있는 채 팔리는, 가장 비싼 것들이라 하더라도, 내용보다 겉보기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정원에서, 혹은 재배 봉투(grow bag: 과일을 익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플라스틱 봉투 "채소를 기를 때 화분 대신 사용이 가능한 흙과 비료를 채운 플라스틱 포대" - 참고 링크)에서 갓 나온 신선한 토마토는 과즙과 향이 꽉 찬 전혀 다른 종류의 작물이다.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렇다. 토마토는 익기 위해 하루 8시간 햇살을 쬐어야 하는 아열대 작물이기 때문에, 성공은 날씨 운이 얼마나 좋으냐에 달려있다. 작년 여름처럼 비가 쏟아지는 것은 재앙의 주문이다. 지금은 묘종을 직접 기를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사람들, 혹은 다른 곳에서 작물을 사온 사람들이 묘종을 바깥에 심어야 할 시기이다. 묘종들은 물, 부드러운 흙, 그것을 지탱해줄 부목을 필요로 한다. 차가운 기후를 제외한다면 가장 큰 적은 토마토 블라이트(tomato blight: 토마토가 걸리는 병)인데,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원예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또 다른 딜레마는 어떤 종을 고를까 하는 것이다. 통통하거나, 작거나, 빨갛거나, 노랗거나, 잡종이거나 순종이거나. 한 마디 덧붙이자면, 가디언의 가정 원예 연재에서는 선골드(Sungold)를 추천한 바 있다. 7월 말이면 첫 수확이 준비되어야 한다. 태양이 계속 빛나준다면, 그럴 것이다.
'In praise of ... growing tomato', The Guardian, 2008년 6월 9일

확성기를 끄고, 구호를 외치자

* 프레시안 [촛불의 소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몇 개의 글이 업데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이 올라오고 있지 않네요. 어조와 노선이 프레시안과 맞지 않아 선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가급적 6월 10일 이전에 공표되어야 하므로, 원칙을 잠시 접어두고 먼저 블로그에 올립니다.

* 프레시안에 기사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확성기를 끄자! 구호를 되찾자!"(프레시안, 2008년 6월 9일 오후 12시 04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현재 촛불시위대는 6월 1일까지 가지고 있던 자발적인 역능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이다. 안국동의 좁은 골목에서 목이 터져라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며, 모두가 모두의 동료였던 그런 촛불시위는 현재 광화문에 없다. 경찰은 6월 2일을 기점으로, 서울 시내의 치안을 전부 포기한 채 오직 청와대만 방어하는 것을 골조로 하는 무대응 전략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월 5일 밤부터 8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72시간 시위'를 기획했다. 전자에 의해 여태까지 마법처럼 먹혀 들어가던 '막히면 돌아가는 전략'은 소용없게 되었다. 한편 후자에 의해, 시민들은 스스로 자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의사를 표현하는 역량을 잃어버린 채,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우리는 '폭력시위로 변질된 촛불시위'라는 착시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경찰의 전략에 대해 먼저 말해보자. 경찰은 현재 대한민국의 치안을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국군 통수권자가 거주하는 특정한 건물 하나를 지키는 것이, 서울 시내에 집결한 150여개 전경 중대의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심지어 교통경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6월 8일, 급기야 경찰은 종로 일대의 교통 통제도 해주지 않음으로써 촛불시위대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을 증대시키는 전략까지 택하고 있다. 이것은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버티고 넘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말마따나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독립문에서 인사동까지, 청와대로 통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전경들이 봉쇄하고 있다. 전경들은 버스 안에 가득 탄 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힘겹게 봉쇄망이 약한 곳을 '뚫어'보면, 그 뒤에는 더 많은 수의 전경들이 새카맣게 진열해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를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청와대가 경찰을 앞세워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회의의 72시간 집회 진행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자발적인 구호가 울려퍼지던 거리에 고출력 확성차를 끌고 나왔다. 예전에 거리시위를 지휘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철수했던 봉고차 수준이 아니다. 대형 트럭에 무지막지한 방송 장비를 때려박아 나왔고, 그 스피커를 통해 '광야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의 민중가요를 틀어댔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인상적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테이프에나 어울릴법한 쿵작쿵작 박자에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얹혀진 그런 노래가 울려퍼졌다. 사회자는 자꾸 사람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려 들고, '... 입니다 그렇지않습니까여러분~!' 같은 말투로 동의를 구하는 데 급급했다. 자유발언이 있긴 했지만 내용은 늘 듣던 그것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미친소 너나먹어',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등 두 주가 넘도록 질리도록 외쳐온 그 말들이 늘어난 테이프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그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는 커녕, 확성차의 엄청난 출력에 짓눌려 '무대'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6월 5일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청와대로 가는 길이 철저히 봉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위대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 뿐 아니라, 종로의 복잡한 뒷골목에도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서 돌파하고자 하는 시도가 현충일 밤에 수 차례 있었다.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 벌어진 충돌이 가장 격렬했다.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직접적인 폭력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도리어 위험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던 것은 경찰 측이었다. 그들은 지하 주차장 옆 좁은 진입로에 백여 명 이상의 전경들을 무리하게 배치함으로써, 새벽 2시경 십여 명의 전경들이 0.5미터 정도 추락하도록 방치하기까지 했다. 시민들은 지휘관에게 안전을 위해 전경들을 일부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측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경들이 대규모 항명을 한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만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경들의 기본권마저도 내팽개치고 있다.

현충일의 밤, 소수의 사람들이 새문안교회 등의 루트를 통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내고자 고분분투하고 있을 때, 대다수의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앉아 야식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집회 문화가 지나치게 투쟁적이었고 엄숙했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서울을 통째로 내주고 청와대만 지키면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작정한 이명박이, 광화문 광장에서 '소풍'중인 국민들을 과연 두려워하긴 할까? 청와대에 불을 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명박에게 돌을 던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앞에서, 가장 잘 들릴 수 있는 곳에서 구호를 외치겠다는 것인데 전경들은 차벽을 쌓고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언제부턴가 그저 구경꾼으로 변해버린 '일반 시민'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보겠다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 투사'의 판타지에 젖어있는 시민들은 제발 꿈을 깨기 바란다. 5월 31일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 문제적인 시각, 모든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구호를 외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고 누가 누구의 명령을 듣는 것도 없었다. 닭장차 위에 올라가 물대포를 맞던 청년이 전경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물병이 하늘을 갈랐다. 연행자가 발생하는 즉시 골목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외쳤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시민들도 분노했다. 5월 31일, 우리가 비폭력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닭장차를 흔들고 밧줄을 걸어 당기고 이쪽 진영으로 떨어진 전경을 향해 험상궂은 표정으로 막말을 내뱉었다. 유리창을 깨고 철창을 뜯어내지 않은 것은, 이 정도만 해도 이명박이 시민들의 분노를 알아줄 것이라는 최소한의 희망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석훈 박사의 표현처럼 이명박은 "귓구멍에 공구리를 쳤"고, 청와대의 문을 꽁꽁 닫아놓은 채 그 안에서 공기업에 투하할 낙하산 인사의 명단이나 고르고 앉아있다. 이 상황에서 절망을 느끼지 않는 '시민'들을 보며 나는 절망을 느낀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가 이렇게 저조하게 된 데에는 대책회의의 확성차량이 큰 역할을 했다. 대책회의는 청계천의 '촛불문화제'에서 진행하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노래를 틀고 구호를 '발사'하며 광화문에 자리잡았다. 문제는 그곳이 바로 전경과 대치하는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동화면세점 앞에 모여 전경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당한 채 표현의 자유를 물리적으로 차단당하던, 하지만 한 사람씩 해산하여 포위망에서 빠져나간 후 가두 행진을 시작한 최초의 '촛불 시위대'는, 자발적인 구호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 결속을 다져나갔다. 의료진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의료진!' '의료진!'을 연호했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6월 7일 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전경들이 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눈에 분말이 들어가 의료진이 필요한 상황이 닥쳐왔다. 시위대는 늘 하던 방식대로 '의료진'을 연호했다. 하지만 그 구호는 후방으로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대책회의의 확성차량에서는 쿵짝쿵짝 신나는 박자와 함께 어린이들이 부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순간 어지러웠고, 구토를 하고 싶었다. 부조리극의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확성차량이 있던 장소는 전방에 가까웠는데, 갑자기 해설자가 마이크를 집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멘트를 날렸다. '현재 분말로 인해 방송 장비에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차량을 후진시켜야 하니 시민 여러분은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잠시 전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후진 기어를 넣고 맹렬하게 후방을 향해 달려갔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이 광화문을 더욱 부조리한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확성차량 주변의 사람들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관람하고 있었다. 전방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촛불시위의 초기, 진중권 교수는 '카메라들의 전쟁입니다'라는 말로 시민들과 경찰들의 상호 채증 전쟁을 묘사했다. 두어 주가 흐른 지금, 거리에는 시위대가 없고 오직 카메라만이 있다. 삶의 문제를 구호로 외치는 사람들 대신, 누군가가 두들겨 맞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그 자리에 온 것만 같은 '일반 시민'들이, 맥주에 닭꼬치를 먹다가 달려나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절망과 피로에서 한 발 벗어나기 위해 소화기 분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으로 향하는 세종로 큰길 위에 오마이뉴스에서 대절해온 방송 중계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고작 100미터 앞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을, '일반 시민'들은 마치 월드컵 중계라도 되는 양 길거리에 앉아서, 역시 관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말을 뒤집어 쓰고 있는 이들에게, '일반 시민'들은 역시 또 하나의 구경꾼들에 불과하다. 저 멀리 기타 반주에 맞춰 '광야에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고작 100미터도 전진하지 않는 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광경을 보며 나는 속이 부대꼈다. 시위대 속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무런 구호도 외치지 않던 이들이, 누군가가 전경을 향해 물병을 던지거나 깃대를 휘두를 때에만 '비폭력'을 연호한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폭력 사태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궁금해졌다. 동행한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간신히 시청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더 버틸 힘이 없었다.

닭장차의 유리를 깨고 창틀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블로그를 차리고 있거나, 포털 사이트에서 글을 쓰는 네티즌들은 그 광경 속에서 프락치를 보고 일반 시민이 아닌 '과격 운동권'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6월 7일 안국동 진입 차도 앞에서, 과격한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과 그들을 말리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들었다. "이건 그저 광장에 모여서,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집단으로 자위하는 것밖에 더 돼요?" "그래도 경찰 차량을 파손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잖아요." "지금 우리가 정당성 따지게 생겼어요?" 잔뜩 격양되어 있던 그 여성은, 동료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박자가 잘 맞지 않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촛불시위대가 아니다. 우리는 생존권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경찰차를 뜯어내는 이들이 프락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들을, 음지에서 매도하기보다는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나는 짐작한다. 과격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뒤에 앉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더욱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과격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책회의는 마이크를 빌려줘야 한다고. 당장 청와대로 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에 과격해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발언을 다른 이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6월 7일 그날 밤, 음악은 쉴새없이 흘러나왔고, 사회자는 전경들을 향해 '5초간 함성'을 '발사'하자고 외쳐댔다. 확성기 차량으로 달려갔다. 지금 구호가 전달이 안 되고 있지 않냐고, 음악을 꺼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구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전경 버스를 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퍼졌다. 폭력 시위가 탄생하던 밤의 풍경이다.

6월 7일 이후 인터넷 여론이 흔들리는 듯하다. 심지어 광장에 나오지도 않는 인터넷 룸펜들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시시덕거리기에 바쁘고, 네티즌 수사대는 버스 위에서 전경을 때리던 사람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반응은 이명박과 경찰이 바라던 바로 그것이다. 시민들끼리 서로 불화하고, 네가 폭력이네 내가 비폭력이네 옥신각신하며 최초의 목표를 상실하는 것. 만약 여기서 이명박 정권의 '틀어박히기' 전략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순수한 한나라당 의석만 해도 과반에서 딱 한 석이 모자라는 18대 국회와 맞물려, 그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온갖 '국책사업'을 벌이고 다닐 것이다. 대운하? 당연히 시행된다. 0교시 수업? 폐지될 리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값싸게 먹을 수나 있게 될까.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이 시위가 이렇게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대책회의에 세 가지를 요구하고 싶다.

첫째. 노래 틀지 말자. 민중가요는 민중이 함께 부를 때 그 의미가 살아나는 노래이다. 지금처럼 확성기를 통해 찌렁찌렁 울려퍼지는 민중가요는, 참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아닌, 그저 구경하는 '일반 시민'만을 양산할 뿐이다.

둘째. 발언대를 개방하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유 발언의 기회를 주자. 특히 촛불시위의 초기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다종다양한 청소년 모임과 대학생 단체 등을 무대로 불러서, '미국산 쇠고기 싫어!'를 넘어서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대학생들은 살인적인 등록금을 논하고, 비정규직은 파견근로자로서의 설움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

셋째. 폭력 시위를 벌이는 이들을 연단에 세워보자. 만약 그들이 프락치라면 그들은 그 무대에 서지도 못할 것이다. 반면 그들이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라면, 광장에 모인 이들은 바로 그런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일 것이다.

또한 시민 여러분께 간곡하게 호소한다. 이미 카메라는 충분하다. 함께 구호를 외쳐달라. 숫자는 예전의 두 배가 넘는데, 목소리는 그 절반도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이길 수가 없다. 구호를 외치자.

5월 31일, 아니 6월 1일 새벽 4시, 옷을 다 말린 나는 친구와 함께 안국동에서 종로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내려오고 있었고 전경들은 올라가고 있었다. 진압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진압이 진행되는 모습을 나는 집에서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로 지켜봐야만 했다. 함께 구호를 외치며 싸우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기 때문에 계속 광장에 섰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이제는 시민들이 다른 시민을 믿지 않는다. 다른 시민이 외치는 구호를 받아 함께 목소리를 드높이는 대신, 그저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찍고만 있다. 그 절망으로 인해 이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사온 비옷이 안국동 돌담길 옆에서 제비처럼 날아다니던 그 순간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그런 기억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감상주의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많은 시민들도, 아직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노정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2008-06-05

2008 촛불시위, 승리의 조건

촛불집회는 진작에 쇠고기에 대한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변화하였고, 이명박 정권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확해지면서, 이 판에서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번져가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말이 포함하고 있는 다의적인 측면이다. 그 말은 결국 이기거나 비겨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 사회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거둘 수 있는 승리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이명박 정부가 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광장에 서지도 않았을 사람들이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후, 여론의 동향을 관찰하다가 미국산 수입육이 냉동되어 있는 창고에 가서 육회 한 접시 비벼먹으면서 기자회견을 했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이 되고 싶었던 남자 이명박은, 정주영의 쇼맨쉽도 못 배웠고 그가 가지고 있던 선천적인 능력과 사람 다루는 기술 또한 전수받지 못했다. 나는 그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는 소원대로 현대가의 일원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명박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예측이 적지 않다. 우석훈 박사는 6월 10일에 100만 명이 모이면 한나라당이 돌아설 것이고 이명박은 하야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예측한다. 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이명박의 정치 생명이 거의 끝났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후 발생할 정치 권력이 어떻게 분점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이합집산, 혹은 이권다툼, 좀 더 심하게는 이전투구 등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은 정치 행위 자체를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속편한 사고방식의 발로일 뿐이다. 정치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정치는 아무리 눈을 감아도 우리 앞에 있다.

돌아가는 판세를 보자. 이명박이 하야를 강요당한 이후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자가 바로 복당 박근혜 여사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것은 죽 쒀서 개 주는 것보다 더 나쁘다. 복당 박근혜 여사의 당내 장악력은 이명박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고, 친박연대를 포함한 범 한나라당 의석수는 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육박한다. 늑대를 쫓아내고 범에게 물리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현재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원내 장악에 실패했다는 것인데, 박근혜는 다르다.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앉아있는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개헌 따위 절대 살아서 보고 싶지 않다.

너무 비관적인 예측인 것 같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을 수 없다. '시민'들의 정서는 아직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밤마다 시위 현장을 지키며 호민관 역할을 자처하는 그들이다. 노회찬과 조승수는 지난주 목요일 밤 광화문 사거리 교보문고 앞에서, 전경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던 십수명의 시민들을 구출해냈다. 구출이라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들은 연좌 시위를 통해 전경의 포위망을 뚫었고, 갇혀있던 시민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특히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중도' 매체들은 오직 시민들의 역동성과 자발성만을 찬양하기에 바쁘다. 진작에 노회찬 심상정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회사원 강유원 박사는 "이번 일로 손, 심, 노는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피식 비웃음을 날린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런 식이다.

나쁜 소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미 FTA를 무리하게 체결해서 결국 일을 이모양 이꼴로 몰아가는 기본 세팅은 참여정부 당시 이미 다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에 대한 반감을 노무현에 대한 호감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 재개는 한미 FTA의 '4대 선결 조건'중 하나이며, 따라서 쇠고기 수입에는 반대하지만 FTA에는 찬성한다는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한미 FTA를 추진한 장본인이 바로 노무현이다. 임종인 전 의원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충분히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적 논의 과정이 있었다면 정당인으로서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적이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국회의원 13명에 대해 우리 당에서 경고라는 징계를 했어요. 당에서 충분한 논의도 안했는데. 이라크 파병·대연정·비정규직법 때도 그랬습니다. 미리 의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야죠.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문제 등은 나로선 양보하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부분은 양보하기 어려워요.”
“쇠고기정국은 개발독재식 정치 심판 과정”(경향신문, 2008년 6월 5일), 강조는 인용자


그 장본인인 노무현의 영상을 보며 일군의 네티즌, 혹은 '시민'들은 집단 자위를 하고 있고, 견인합성체 유시민과 이해찬은 신당을 만들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는데, 손학규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민주당 당권파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흡수하거나 저지할만한 정치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박근혜가 어찌어찌 보궐대선의 승자가 되고, 왕년의 '개혁세력'들이 돌아와 야당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다시 정치적인 입지를 찾는다고 쳐보자. 이것은 말 그대로 'Again 1987'이다. 87년 혁명의 열기 뿐 아니라, 야당 세력이 분열하면서 기껏 직선제 개헌을 한 후 다시 노태우에게 정권을 내어준 민망한 역사마저도 다시 한 번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희극으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촛불시위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이번 시위가 촉발된 기본적인 이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실 이번 사건이 터지게 된 동기는, 외신 기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황당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BBC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식용으로 도축되는 소의 18%가 30개월령 이상이며, 따라서 미국인들이 먹지 않는 30개월령 이상의 소와 그 부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미국 축산업계가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한다. 광우병의 위험을 아직까지도 집회의 주된 동기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축산업계가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런 식의 논의는 한국 사회의 담론 수준을 진전시키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 사태의 본질은 외교부가 농림부의 입장마저 도외시한 채 한미 FTA의 타결을 위해 '퍼주기 협상'을 했다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자매 주간지인 뉴스메이커는 "쇠고기 협상 주무부서는 외교부였다"(뉴스메이커, 2008년 6월 5일)고 폭로했다. 기사를 살펴보자.

외교통상부는 1월 4일 인수위 보고자료 10쪽에서 '가. 한·미 FTA 비준/ 쇠고기 문제'라는 항목으로 '향후 조치 계획'을 보고했다. 여기에서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국제 기준에 따라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라고 전제한 뒤 '미측의 한·미 FTA 비준을 촉진하기 위해 쇠고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되, 이를 한·미 FTA 이행 법안의 미 의회 제출과 연계되도록 추진'이라고 보고했다. . .

농림부가 사료 금지 조치와 FTA 비준의 시기를 연관시켜 언급했다면, 외교부는 단지 쇠고기 문제와 FTA 비준의 관계를 보고했다. 농림부의 인수위 보고서에서는 향후 추진계획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개정은 한·미 FTA와 연계시키지 않고 국민의 식품 안전 확보 차원에서 검토'라고 나타나 있다. 여기에 괄호 표시를 한 후 '그동안의 일관된 한국 측 입장'이라 명시해 놓았다. 농림부의 보고서가 쇠고기 협상이 FTA 비준뿐 아니라 국민건강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과 달리, 외교부 보고서에서는 국민 건강이라는 선결 조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 .

쇠고기 협상은 결국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 없이 대부분 미국 측의 요구 사항 그대로 이뤄졌다. 어느 부처의 주장이 협상과정에서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 FTA 청문회 위원이었던 김종률 의원(통합민주당)은 "이 문건이 아니더라도, 외교부가 실질적으로 협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서울대 음대생이 전경의 군화발에 짓밟힌 사건의 근원적인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단행하신 정부 구조 개편으로 인해 외교부에 지나친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것, 더군다나 청와대 정책비서관이었던 정태인도 모를 정도로 극비리에 한미 FTA가 추진되고 있었다는 것, 그 모든 일이 외교부 내의 극소수 'FTA 마피아'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는 것 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서 카트라이더 놀음에 빠져있는 지금도, 그가 저질러놓은 일들의 영향은 살아있고 그에 따라 지금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줄곧 '광우병 무서워'만 외치는데, 논의의 수준이 그 모양이니까 (내가 지난 포스트에서 논한 바와 같이) 외신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건 국제적으로 보면 한 편의 거대한 헛소동이다. 한국의 정치적 분위기를 밀접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그렇다.

한국인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번 시위가 단지 고기 타령으로 멈춰서는 안 된다. 68혁명도 시작은 교육 문제에 대한 지엽적인 시위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명박 탄핵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까지 파고들어야만 한다.

현 정국의 승리조건을 기존 정당정치의 구조 내에서만 찾으려고 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들 잊고 있을까봐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범 한나라당계 의석이 전체 국회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고, 현재 가장 유력한 보궐대선 주자는 바로 그 정당의 배후 보스이다. 이명박을 권좌에서 몰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 실질적 민주화의 진전을 위하여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7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이 노동 3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시간당 2500원밖에 못 받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제 값의 임금을 받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삼성전자에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다면, 이명박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긴 것이다. 87년 투쟁을 통해 제도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었다면, 2008년 투쟁에서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시위를 통해 87년 이후 최초의 '정치 파업'을 기획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결단을 지지한다. 그것은 그들이 조합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동시에 뜻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에서 보도하는 바와 같이, "이번 총파업의 요구 사항은 쇠고기 저지 외에도 대운하 반대, 물가 인하, 한미 FTA 반대, 공기업 민영화 저지 등의 전사회적 이슈"인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를 외치는 어머니들의 그것과 다른 층위를 구성한다. 비록 지금은 한미 쇠고기 협상 무효화를 핵심 요구로 내세우고 있지만, 나는 민주노총이 그것을 슬그머니 뒤로 미루어두고 범 사회적인 이슈에 집중할 것을 기대한다. 동시에 이랜드 노동조합, 그 외 다양한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하며, 저소득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 또한 쇠고기를 넘어 비정규직 고용 안정화 등을 외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김이태 박사의 희생을 헛되이해서는 안된다. 대운하 건설에 대한 그의 양심선언은 이 촛불시위가 비단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에 멈춰서는 안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정치의 틀만 놓고 본다면 현 정국의 전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바라는 바도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 최장집이 오래 전부터 지적해오는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가 무엇인지 숙고해보자. 답은 간단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착취의 고리를 깨야 한다. 광장으로 뛰쳐나가 이명박을 몰아내고 노무현을 재옹립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노무현도 삼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개 정치인일 뿐이다.

특검의 수사 결과를 보며 가슴을 쳤던 당신이라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삼성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삼성 노동조합 뿐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권력을 시장에 넘긴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시위에서 연이어 외쳐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진정으로 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도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을 몰아내고 쥐새끼를 때려잡고 어청수를 쫓아내고 다 좋다. 하지만 그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승리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군사 독재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 서고 촛불을 켜고 물대포를 맞고 있다. 2008 촛불시위, 승리의 조건은 삼성 노동조합이다. 승리의 조건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승리의 조건은 민영화 저지이며, 승리의 조건은 졸속 체결된 한미 FTA 협상 전면 재검토이다.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나는 광화문으로 향한다.

2008-06-02

관보 게재 유보

지금으로서는, 비가 많이 오니까, 잉크가 다 마른 다음 제본에 들어간다는 정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물론 복당 박근혜 여사에게 급히 연락을 넣어 시급한 민생 현안, 즉 복당을 놓고 정치적 거래를 하고자 하겠지만, 뜻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고시를 철회한다고 했을 때 과연 그 결정이 대중들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석방되지 않은 연행자들이 남아있고 경찰에 의한 폭력 진압 문제가 그대로이긴 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나오던 어머니들은 동력을 잃을 것 같다. 이명박이 고시를 철회한다고 주장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한국 사회 시민들의 수준을 가르는 척도가 될 듯하다.

2008-05-31

5월 30일 가디언에 올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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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outh Korea: A demonstrator sticks a sign on a police bus during a protest rally against the recent South Korea-US agreement on the expansion of US beef imports

Photograph: Jeon Heon-Kyun /EPA



The Guardian, 30.03.08. 24 hours in pictures



30일자 가디언에 올라온 사진.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