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5

'일반 시민'을 넘어서

집회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다는 발상은 착각이다.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축제를 집회처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간 바와 같이, 축제의 탈을 쓴 집회가 아닌, 집회의 탈을 쓴 축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6월 10일 그 많은 인파가 모이고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군중들 속에서 진짜 '집회'를 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KBS 앞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그 광경을 목격한 몇몇 우익 단체들은 항의 집회를 연답시고 엉뚱하게 MBC에 찾아가 별 짓을 다 했는데, 그러자 대책회의의 차량과 집회 행렬이 길고 긴 행진을 하게 된 것이 13일의 금요일 밤에 벌어진 일의 전말이다.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선 그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행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추산으로 1만여명 이상의 대오를 유지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명박이 물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탈진하지 않고 있다. 기나긴 고난의 행군은 시위가 지나치게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을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편하게 투덜거리던 사람들은 중간에 집에 간다. 여의도에 도착하고 나니 '구호빨'이 예전에 비해 훨씬 잘 먹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축제를 즐기고자 모인 사람들은 반면, 끈덕지게 광화문을 사수하며 적은 인원으로 효율성 있게 놀고 있다. 역시 13일의 금요일 밤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남아있는 깃발은 오직 10대 연합에서 가져온 것 뿐이었는데, 내가 학부 다닐 때 '문선'이라 부르던 그것을 하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이 분열은 매우 긍정적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부산항이 마비될 지경이다. 화물연대가 부산항을 봉쇄하고 있지 않다 뿐이지 사실상 그 기능은 멈췄다고 봐야 한다. '생계형 파업'이라는 말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정치적인 긍정성을 띌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화물연대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예전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럭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몇 개 국가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다 기억나지는 않고, 사진을 저장해 둔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물류가 멈춰버린 결과 슈퍼마켓의 진열장들이 아래 사진처럼 되어버리고 말있다.


(바르셀로나의 한 슈퍼마켓. 레몬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과연 한국의 '일반 시민'들도, 이명박이 순순히 말을 들을리는 거의 없으므로 물류대란의 여파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시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런 파업을 긍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유가 파고 속에서 꽁치가 풍작인 터라 어민들이 울상이라는 기사가 현재 네이버 메인화면에 떠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유럽의 어부들은 EU를 상대로 가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세부적인 차원으로 내려가면 차이가 있지만, 유가 상승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경제 위기는 닥쳐오고 있고, 한국의 정치 세력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명박산성을 재축조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경찰이 광화문의 봉쇄를 터줄 가능성은 그야말로 0이다. 이명박이 시민들의 말을 곱게 들어줄 턱이 없다.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아침 곱게 회사에 출근하는 '일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에게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사실로부터 큰 충격을 받겠지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집회가 다양한 방면으로 분열되는 것과 동시에, '일반 시민'과는 다른 사람들이 자꾸 끼어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종종 눈에 띈다. 어느 '진보 매체'에서 촛불시위의 초창기에 참여자를 묘사하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청바지에 티셔츠, 굽 높은 구두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크로스백을 매고 있는 사람들'. '일반 시민'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철저히 계급적이다. 이는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규정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규정은 '서울말'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역 토착어를 소외시키킨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양'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계급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가 마찬가지 논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차마 그런 말까지 하지 못하지만, 익명으로 찌질거리는 일에 익숙한 일련의 '네티즌'들은, 평화로웠던 촛불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되게 된 원인을 노숙자와 노가다꾼들의 가세에서 찾곤 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 기사에 달린 썩어나는 리플들을 보라. 물론 나도 술냄새 펄펄 풍기는 아저씨들이 꽥꽥 소리지르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반응은 그런 즉각적인 쾌와 불쾌의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다. '알바'를 성토하는 것들을 일단 빼보자. 그러면 의견의 8할은 '사진을 봐라, 20대가 주범이다'이고, 나머지 2할이 노숙자 욕인데, 후자가 직설적으로 노숙자를 '시민'의 범주에서 몰아내고 있다면 전자는 다소 교묘한 방식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자가 사회 하층민에 대한 정치적 배제에서 멈추는데 반해, 전자는 그들의 존재를 아예 인식론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인식론적 차단이 적용되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조선일보 등에 광고가 안 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기뻐하면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이명박이 화주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들 또한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팽팽하게 고조되어 있는 반 정부 시위대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경찰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 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히 칸트의 도덕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칭찬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

그러므로 촛불시위대는 '일반 시민'의 벽을 넘어 노동조합과 적극적인 연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그 벽을 넘어서는 일은, 촛불시위의 물결 속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이 단순히 여러 단체에서 나누어주는 피켓을 수동적으로 받아드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있나 읽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연대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있는 쪽은 그 잘나신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6월 7일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와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하였다.


(노점상을 밝히고 있는, 소주병에 꽂힌 촛불)



(포장마차의 윗부분에 붙어있던 안내문)


서울서부지역 노점상 연합은 6월 7일부터 10일까지, 밤 8시에서 9시에 걸쳐 전등을 소등하고 대신 촛불을 켜놓는 것으로 촛불시위에 대한 연대의 뜻을 밝혔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일반 시민'들은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다. 이것은 폭력과 비폭력 이전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염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혹은 대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며,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에 이 촛불시위를 그토록 가둬놓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이 촛불시위에 승리하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계급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과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시민적 교양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연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나는 아직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조합의 홍보물을 함께 나누어주는 것 정도가 지금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다. 중요한 것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며, 따라서 노동자이다.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이 벽을 넘어 노동자가 되는 날, 승리는 한 걸음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볼이 터져라 오뎅을 먹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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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6월 10일,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 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 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일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를 막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p.s. 폭력에 맞서는 적극적인 비폭력과 무저항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모진 탄압을 당하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젖어있지도 않다. 묵묵히 참고 또 참지만 결코 복종하지 않는, 진짜 비폭력이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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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노찾사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시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가 막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8-06-09

토마토 기르기를 찬미함

가디언을 매일 훑어보긴 하지만, 많은 기사를 정독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사설의 한 코너만은 꼼꼼하게 읽는다. 'In praise of ...'라는 형식으로 반복되는, 무언가에 대한 찬미를 담은 코너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매체는, 매일 어떤 대상을 꼽아 그것을 간략하게 살피고 찬미한다. 이런 여유와 너그러운 긍정이 우리의 진보 진영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토마토 기르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잠깐 여유가 생겨서 번역해보았다. 오역이 발견되면 주저 없이 지적해주시길.

토마토 기르기를 찬미하며


유월은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를 낳았다. 그것은 모든 원예가들에게, 특히 토마토가 익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누구든 그것을 집에서 키울 수 있다. 창문 하나만 있어도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가장 숙달된 전문가라 하더라도 빛나는 태양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매우 환상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집에서 기른 토마토는 슈퍼마켓의 차디찬 보관함에 놓여 있는 딱딱하고 향기 없는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것들을 먹으면 때로 시큼한 플라스틱 조각을 씹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꼭지가 남아있는 채 팔리는, 가장 비싼 것들이라 하더라도, 내용보다 겉보기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정원에서, 혹은 재배 봉투(grow bag: 과일을 익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플라스틱 봉투 "채소를 기를 때 화분 대신 사용이 가능한 흙과 비료를 채운 플라스틱 포대" - 참고 링크)에서 갓 나온 신선한 토마토는 과즙과 향이 꽉 찬 전혀 다른 종류의 작물이다.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렇다. 토마토는 익기 위해 하루 8시간 햇살을 쬐어야 하는 아열대 작물이기 때문에, 성공은 날씨 운이 얼마나 좋으냐에 달려있다. 작년 여름처럼 비가 쏟아지는 것은 재앙의 주문이다. 지금은 묘종을 직접 기를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사람들, 혹은 다른 곳에서 작물을 사온 사람들이 묘종을 바깥에 심어야 할 시기이다. 묘종들은 물, 부드러운 흙, 그것을 지탱해줄 부목을 필요로 한다. 차가운 기후를 제외한다면 가장 큰 적은 토마토 블라이트(tomato blight: 토마토가 걸리는 병)인데,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원예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또 다른 딜레마는 어떤 종을 고를까 하는 것이다. 통통하거나, 작거나, 빨갛거나, 노랗거나, 잡종이거나 순종이거나. 한 마디 덧붙이자면, 가디언의 가정 원예 연재에서는 선골드(Sungold)를 추천한 바 있다. 7월 말이면 첫 수확이 준비되어야 한다. 태양이 계속 빛나준다면, 그럴 것이다.
'In praise of ... growing tomato', The Guardian, 2008년 6월 9일

확성기를 끄고, 구호를 외치자

* 프레시안 [촛불의 소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몇 개의 글이 업데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이 올라오고 있지 않네요. 어조와 노선이 프레시안과 맞지 않아 선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가급적 6월 10일 이전에 공표되어야 하므로, 원칙을 잠시 접어두고 먼저 블로그에 올립니다.

* 프레시안에 기사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확성기를 끄자! 구호를 되찾자!"(프레시안, 2008년 6월 9일 오후 12시 04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현재 촛불시위대는 6월 1일까지 가지고 있던 자발적인 역능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이다. 안국동의 좁은 골목에서 목이 터져라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며, 모두가 모두의 동료였던 그런 촛불시위는 현재 광화문에 없다. 경찰은 6월 2일을 기점으로, 서울 시내의 치안을 전부 포기한 채 오직 청와대만 방어하는 것을 골조로 하는 무대응 전략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월 5일 밤부터 8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72시간 시위'를 기획했다. 전자에 의해 여태까지 마법처럼 먹혀 들어가던 '막히면 돌아가는 전략'은 소용없게 되었다. 한편 후자에 의해, 시민들은 스스로 자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의사를 표현하는 역량을 잃어버린 채,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우리는 '폭력시위로 변질된 촛불시위'라는 착시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경찰의 전략에 대해 먼저 말해보자. 경찰은 현재 대한민국의 치안을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국군 통수권자가 거주하는 특정한 건물 하나를 지키는 것이, 서울 시내에 집결한 150여개 전경 중대의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심지어 교통경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6월 8일, 급기야 경찰은 종로 일대의 교통 통제도 해주지 않음으로써 촛불시위대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을 증대시키는 전략까지 택하고 있다. 이것은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버티고 넘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말마따나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독립문에서 인사동까지, 청와대로 통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전경들이 봉쇄하고 있다. 전경들은 버스 안에 가득 탄 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힘겹게 봉쇄망이 약한 곳을 '뚫어'보면, 그 뒤에는 더 많은 수의 전경들이 새카맣게 진열해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를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청와대가 경찰을 앞세워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회의의 72시간 집회 진행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자발적인 구호가 울려퍼지던 거리에 고출력 확성차를 끌고 나왔다. 예전에 거리시위를 지휘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철수했던 봉고차 수준이 아니다. 대형 트럭에 무지막지한 방송 장비를 때려박아 나왔고, 그 스피커를 통해 '광야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의 민중가요를 틀어댔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인상적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테이프에나 어울릴법한 쿵작쿵작 박자에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얹혀진 그런 노래가 울려퍼졌다. 사회자는 자꾸 사람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려 들고, '... 입니다 그렇지않습니까여러분~!' 같은 말투로 동의를 구하는 데 급급했다. 자유발언이 있긴 했지만 내용은 늘 듣던 그것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미친소 너나먹어',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등 두 주가 넘도록 질리도록 외쳐온 그 말들이 늘어난 테이프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그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는 커녕, 확성차의 엄청난 출력에 짓눌려 '무대'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6월 5일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청와대로 가는 길이 철저히 봉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위대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 뿐 아니라, 종로의 복잡한 뒷골목에도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서 돌파하고자 하는 시도가 현충일 밤에 수 차례 있었다.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 벌어진 충돌이 가장 격렬했다.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직접적인 폭력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도리어 위험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던 것은 경찰 측이었다. 그들은 지하 주차장 옆 좁은 진입로에 백여 명 이상의 전경들을 무리하게 배치함으로써, 새벽 2시경 십여 명의 전경들이 0.5미터 정도 추락하도록 방치하기까지 했다. 시민들은 지휘관에게 안전을 위해 전경들을 일부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측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경들이 대규모 항명을 한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만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경들의 기본권마저도 내팽개치고 있다.

현충일의 밤, 소수의 사람들이 새문안교회 등의 루트를 통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내고자 고분분투하고 있을 때, 대다수의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앉아 야식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집회 문화가 지나치게 투쟁적이었고 엄숙했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서울을 통째로 내주고 청와대만 지키면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작정한 이명박이, 광화문 광장에서 '소풍'중인 국민들을 과연 두려워하긴 할까? 청와대에 불을 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명박에게 돌을 던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앞에서, 가장 잘 들릴 수 있는 곳에서 구호를 외치겠다는 것인데 전경들은 차벽을 쌓고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언제부턴가 그저 구경꾼으로 변해버린 '일반 시민'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보겠다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 투사'의 판타지에 젖어있는 시민들은 제발 꿈을 깨기 바란다. 5월 31일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 문제적인 시각, 모든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구호를 외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고 누가 누구의 명령을 듣는 것도 없었다. 닭장차 위에 올라가 물대포를 맞던 청년이 전경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물병이 하늘을 갈랐다. 연행자가 발생하는 즉시 골목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외쳤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시민들도 분노했다. 5월 31일, 우리가 비폭력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닭장차를 흔들고 밧줄을 걸어 당기고 이쪽 진영으로 떨어진 전경을 향해 험상궂은 표정으로 막말을 내뱉었다. 유리창을 깨고 철창을 뜯어내지 않은 것은, 이 정도만 해도 이명박이 시민들의 분노를 알아줄 것이라는 최소한의 희망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석훈 박사의 표현처럼 이명박은 "귓구멍에 공구리를 쳤"고, 청와대의 문을 꽁꽁 닫아놓은 채 그 안에서 공기업에 투하할 낙하산 인사의 명단이나 고르고 앉아있다. 이 상황에서 절망을 느끼지 않는 '시민'들을 보며 나는 절망을 느낀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가 이렇게 저조하게 된 데에는 대책회의의 확성차량이 큰 역할을 했다. 대책회의는 청계천의 '촛불문화제'에서 진행하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노래를 틀고 구호를 '발사'하며 광화문에 자리잡았다. 문제는 그곳이 바로 전경과 대치하는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동화면세점 앞에 모여 전경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당한 채 표현의 자유를 물리적으로 차단당하던, 하지만 한 사람씩 해산하여 포위망에서 빠져나간 후 가두 행진을 시작한 최초의 '촛불 시위대'는, 자발적인 구호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 결속을 다져나갔다. 의료진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의료진!' '의료진!'을 연호했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6월 7일 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전경들이 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눈에 분말이 들어가 의료진이 필요한 상황이 닥쳐왔다. 시위대는 늘 하던 방식대로 '의료진'을 연호했다. 하지만 그 구호는 후방으로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대책회의의 확성차량에서는 쿵짝쿵짝 신나는 박자와 함께 어린이들이 부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순간 어지러웠고, 구토를 하고 싶었다. 부조리극의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확성차량이 있던 장소는 전방에 가까웠는데, 갑자기 해설자가 마이크를 집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멘트를 날렸다. '현재 분말로 인해 방송 장비에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차량을 후진시켜야 하니 시민 여러분은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잠시 전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후진 기어를 넣고 맹렬하게 후방을 향해 달려갔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이 광화문을 더욱 부조리한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확성차량 주변의 사람들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관람하고 있었다. 전방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촛불시위의 초기, 진중권 교수는 '카메라들의 전쟁입니다'라는 말로 시민들과 경찰들의 상호 채증 전쟁을 묘사했다. 두어 주가 흐른 지금, 거리에는 시위대가 없고 오직 카메라만이 있다. 삶의 문제를 구호로 외치는 사람들 대신, 누군가가 두들겨 맞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그 자리에 온 것만 같은 '일반 시민'들이, 맥주에 닭꼬치를 먹다가 달려나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절망과 피로에서 한 발 벗어나기 위해 소화기 분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으로 향하는 세종로 큰길 위에 오마이뉴스에서 대절해온 방송 중계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고작 100미터 앞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을, '일반 시민'들은 마치 월드컵 중계라도 되는 양 길거리에 앉아서, 역시 관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말을 뒤집어 쓰고 있는 이들에게, '일반 시민'들은 역시 또 하나의 구경꾼들에 불과하다. 저 멀리 기타 반주에 맞춰 '광야에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고작 100미터도 전진하지 않는 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광경을 보며 나는 속이 부대꼈다. 시위대 속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무런 구호도 외치지 않던 이들이, 누군가가 전경을 향해 물병을 던지거나 깃대를 휘두를 때에만 '비폭력'을 연호한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폭력 사태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궁금해졌다. 동행한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간신히 시청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더 버틸 힘이 없었다.

닭장차의 유리를 깨고 창틀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블로그를 차리고 있거나, 포털 사이트에서 글을 쓰는 네티즌들은 그 광경 속에서 프락치를 보고 일반 시민이 아닌 '과격 운동권'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6월 7일 안국동 진입 차도 앞에서, 과격한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과 그들을 말리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들었다. "이건 그저 광장에 모여서,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집단으로 자위하는 것밖에 더 돼요?" "그래도 경찰 차량을 파손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잖아요." "지금 우리가 정당성 따지게 생겼어요?" 잔뜩 격양되어 있던 그 여성은, 동료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박자가 잘 맞지 않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촛불시위대가 아니다. 우리는 생존권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경찰차를 뜯어내는 이들이 프락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들을, 음지에서 매도하기보다는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나는 짐작한다. 과격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뒤에 앉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더욱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과격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책회의는 마이크를 빌려줘야 한다고. 당장 청와대로 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에 과격해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발언을 다른 이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6월 7일 그날 밤, 음악은 쉴새없이 흘러나왔고, 사회자는 전경들을 향해 '5초간 함성'을 '발사'하자고 외쳐댔다. 확성기 차량으로 달려갔다. 지금 구호가 전달이 안 되고 있지 않냐고, 음악을 꺼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구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전경 버스를 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퍼졌다. 폭력 시위가 탄생하던 밤의 풍경이다.

6월 7일 이후 인터넷 여론이 흔들리는 듯하다. 심지어 광장에 나오지도 않는 인터넷 룸펜들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시시덕거리기에 바쁘고, 네티즌 수사대는 버스 위에서 전경을 때리던 사람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반응은 이명박과 경찰이 바라던 바로 그것이다. 시민들끼리 서로 불화하고, 네가 폭력이네 내가 비폭력이네 옥신각신하며 최초의 목표를 상실하는 것. 만약 여기서 이명박 정권의 '틀어박히기' 전략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순수한 한나라당 의석만 해도 과반에서 딱 한 석이 모자라는 18대 국회와 맞물려, 그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온갖 '국책사업'을 벌이고 다닐 것이다. 대운하? 당연히 시행된다. 0교시 수업? 폐지될 리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값싸게 먹을 수나 있게 될까.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이 시위가 이렇게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대책회의에 세 가지를 요구하고 싶다.

첫째. 노래 틀지 말자. 민중가요는 민중이 함께 부를 때 그 의미가 살아나는 노래이다. 지금처럼 확성기를 통해 찌렁찌렁 울려퍼지는 민중가요는, 참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아닌, 그저 구경하는 '일반 시민'만을 양산할 뿐이다.

둘째. 발언대를 개방하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유 발언의 기회를 주자. 특히 촛불시위의 초기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다종다양한 청소년 모임과 대학생 단체 등을 무대로 불러서, '미국산 쇠고기 싫어!'를 넘어서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대학생들은 살인적인 등록금을 논하고, 비정규직은 파견근로자로서의 설움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

셋째. 폭력 시위를 벌이는 이들을 연단에 세워보자. 만약 그들이 프락치라면 그들은 그 무대에 서지도 못할 것이다. 반면 그들이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라면, 광장에 모인 이들은 바로 그런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일 것이다.

또한 시민 여러분께 간곡하게 호소한다. 이미 카메라는 충분하다. 함께 구호를 외쳐달라. 숫자는 예전의 두 배가 넘는데, 목소리는 그 절반도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이길 수가 없다. 구호를 외치자.

5월 31일, 아니 6월 1일 새벽 4시, 옷을 다 말린 나는 친구와 함께 안국동에서 종로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내려오고 있었고 전경들은 올라가고 있었다. 진압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진압이 진행되는 모습을 나는 집에서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로 지켜봐야만 했다. 함께 구호를 외치며 싸우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기 때문에 계속 광장에 섰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이제는 시민들이 다른 시민을 믿지 않는다. 다른 시민이 외치는 구호를 받아 함께 목소리를 드높이는 대신, 그저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찍고만 있다. 그 절망으로 인해 이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사온 비옷이 안국동 돌담길 옆에서 제비처럼 날아다니던 그 순간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그런 기억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감상주의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많은 시민들도, 아직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노정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