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에 가보니
오늘자 칼럼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너무 뜨거워서,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11월 27일 경향신문, '판'에 실린 내 칼럼의 전문을 보시죠.
[판]미분양 아파트에 젖소를
입력: 2008년 11월 26일 17:45:41
건설사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거나, 부도설에 휩싸이거나, 부도설 ‘루머’를 퍼뜨린 이를 찾아내 처벌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추운 초겨울이다. 전 세계가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수출로 먹고 살았던 우리나라의 미래도 덩달아 암울해졌다. 우리에겐 결국 콘트리트 덩어리, 입주도 하지 않은 미분양 아파트만 한가득 남게 될 운명이다. 이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파트 미분양 사태를 해결하면서 수입 에너지를 국산 에너지로 대체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면서 동시에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묘안을 이 지면을 통해 공개하고자 한다. 심지어 이 기획은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으리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해법은 이런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를 개조해서 집약형 목장으로 만들고, 소와 돼지 등 가축의 배설물로 바이오매스(Biomass) 발전기를 돌린다. 말하자면 판교 신도시 아파트에서 젖소를 키우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도시와 농촌을 뒤섞는 것, 로컬푸드를 넘어 도시 내 농업으로 나아가는 것은 일종의 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다. 식량이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도시인들은 같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오클라호마의 농장에서 도축된, 어쩌면 육골분 사료를 먹고 자랐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30개월령을 넘겼을 수도 있는, 아무튼 미국산 쇠고기는 트럭을 타고 배를 타고 냉동창고를 거쳐 부산항에 내려 다시 트럭을 타고 서울의 대형 마트에 도착한다. 그동안 석유를 계속 태우고, 대기 중에는 이산화탄소가 마구 방출된다.
이럴 경우 지구 온난화도 문제지만, 석유 공급이 끊길 경우 항구에서는 식량이 썩고 도시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쿠바에서 실제로 그랬다. 옛 소련이 대주는 석유에 쿠바는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오일쇼크 당시 소련의 지원이 뚝 끊겨버린 것이다. 이건 유가환급금 24만원을 쥐어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후 쿠바는 정책적으로 도시 내 농업을 장려했고, 지금은 많은 도시 사람들이 텃밭을 가꾸며 식량 자급률을 높여가고 있다. 올림픽에서 쿠바의 야구는 은메달에 그쳤지만 식량정책의 건전성은 금메달감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예선 통과가 어렵다.
바이오매스를 통한 발전 또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취약한 구조를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윤데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가축들의 분뇨와 퇴비 등을 모아 메탄가스 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그 마을의 전기계량기는 거꾸로 돈다. 전기 소비량보다 발전량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다양한 대체에너지원 가운데 바이오매스는 그 경제성과 친환경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유가가 올랐다는 핑계로 정부는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계획을 세운 바 있는데, 그보다는 미분양 아파트에서 소와 돼지와 닭을 치고 그 배설물로 발전을 하는 쪽을 권하는 바다.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뜯어 불 때고’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는 내가 직접 이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어볼까 했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문제이기 전에 정치적 문제, 정치적 상상력의 문제다. 19세기 말부터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꾸고 세계 제1의 축산대국으로 거듭난 덴마크와 같은 그런 상상력과 추진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 사업은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다”던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 “소도 생명체인데 10년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던 김성이 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혹은 “격한 감정을 스스로에게 드러내셨던” 유인촌 문화부 장관 등을 담당자로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노정태|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이 글을 쓰기 시작한 9시 45분 현재까지 확인된 리플은 총 두 개. 본디 이 코너에 리플이 거의 달리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폭발적'인 반응입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이런썩을님 의견
제목 :이런!~젠장할 기사가뭐이래~@~
아파트에 젖소를 키우자고 에너지때문에 정신없는기자일세~@
그리고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이산화탄소 까지 생각하는 기자가 있네
나원참 어이가없어서 기사를 쓸려면 그럴뜻하게 쓰시길 바랍니다
완전 엉뚱발랄하게쓰시네 기자 자격이 없네요
생각해보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차들 이산화탄소 까지 생각하면 타고 다니지말아야하고 말타고 다녀야하고 기자양반아 당신은 차타고 다니는지 궁금하군요
그렇다면 경향신문에 차몇대있는지 보고 이산화탄소를 생각하시오
그리고 아파트에 젖소라니 나원참 젖소똥 태워서 에너지 발상은 탁월하지만
그냄세 소음은 어떻게 할것인지 생각해보고 기사쓰시길
그리고 미국산30개월이상인지 미만인지 그것은 당신이 생각할일아닌거 같은데
글을 이상하게비꼬는거 같아서 ....................
아무튼 기사를 쓸려면 제대로 알고 생각해보고 내보내시길바랄뿐입니다
배나 자동차를 움직일려면 기름을써야하고
당신같이 움직일려면 밥을먹어야 합니다
아무튼 이번기사는 아닌거 같네요
그시간에 대책위원회가서 제대로 알고 기사쓰시길바랍니다
2008.11.26 18:55:50
정말넘하삼님 의견
제목 :정말 이건 아니잖아~~~
아침에 출근하다 이글을 봤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경향신문 이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신문을 보는 이유는 새로운 정보나 좋은 지식을 얻거나 미쳐 생각못해던 다른 좋은 의견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미분양 아파트에 젖소를 키우고 축분을 모아 발전을 한다........이런
상상력이 기발하신건지 생각이 없는것인지...
더욱이 큰돈을 벌어볼까 한다고요
이보세요 기자님 현재 시골에서 아주 한적하고 지가가 낮은 시골에서 Bio-Methane Plant를 하나 짖는데 얼마나 많은 자금과 얼마나 많은 민원문제와 인허가 문제, 경제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것도 아파트에서라니요....그것도 큰 돈을 벌수 있다고요.....
다음부터는 생각좀 하시고 글을 올려 주세요
정말 어렵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이런 농담으로 서민들 더 화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2008.11.27 13:07:19
이 두 개의 리플을 달아주신 독자분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점은 여러 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 각각에 대해, 답변이 길어질 것 같으므로 번호를 붙여서 대답해보도록 하죠.
1. 아파트는 도시, 젖소는 농촌
'아파트에서 젖소를 키우자'라는 주장을 했던 이유는, 그게 '그림'이 그려지는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기자 글쟁이 환경운동가 지사들이 '로컬푸드가 좋다', '농촌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한들 그런 말이 여러분의 귀에 와 닿기나 하던가요?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잠시 논의를 우회할 테니 조금만 집중해서 읽어주세요.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공화국'은 과연 서울만의 문제일까요? 그것은 본질적으로,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던 도시와 농촌간의 빈부 격차 문제가 대한민국의 특수성 속에서 증폭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 수도였다면 '부산공화국'이 되었겠죠. 전주였다면 '전주공화국'이 되었을 테고요.
중요한 것은 어떤 도시가 문제냐가 아니라, 도시 그 자체와 농촌의 격차가 문제라는 겁니다. 도시의 농촌 수탈 문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된 일입니다.
도시는 자신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 농촌을 수탈해야 했다. 도시가 농촌에 공급할 수 있는 물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는 생산 기능을 갖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갖춘 곳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생산물들은 대부분 도시 안에서 소비되어버렸다. 도시는 농촌으로부터 생산물과 사람(=인재人才)들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도시와 농촌의 관계는 언제나 일방적이었고, 도시는 농촌을 수탈함으로써만 문명을 생산하고 이를 성벽 '안쪽'에 집적할 수 있었다.
25쪽, 《서울은 깊다》(전우용, 돌베게 2008)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도시는 지방으로부터 '식량'을 얻어오고, 대신 행정 등 서비스를 공급해 왔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된 후로는 도시에서 지방으로 공산품이 공급되죠. 하지만 도시와 지방간의 삶의 질 차이는 지금도 역력하고,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서울공화국'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분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세요. 서울만이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보편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이 문제를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관찰해 보세요. 농촌에서 대량으로 식량을 생산해서 도시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로컬푸드를 넘어 도시 내 농업으로 나아가는 것은 일종의 세계적 트렌드"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도시 속에서 농업을 하는 방향'으로 도시에 의한 농촌 수탈, 그리고 도시 내의 식량 공급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도시에서 가축이 추방된 것은 1세기가 갓 조금 더 지난 일입니다.
19세기만 해도 런던에는 닭, 소, 돼지, 말 등이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그 배설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서 위생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만한 과학적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요. 저는 이것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러면 '아파트에서 젖소를 키우자'라는 주장을 통해 기본적으로 제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논의가 '서울'이니 '판교'니 하는, 너무도 협소한 단어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구도로 이 문제를 바라봐 주세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아파트에서 젖소를 키울 수도 있는 상상력이 요구됩니다.
2. 먼 거리를 돌아서 오는 것들
유기농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은 이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로컬푸드'라는 개념에는 다들 어딘가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짐작컨대 이런 것일 겁니다. '로컬푸드'는 궁극적으로, 운송 수단에 들어가는 석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까요.
"식량이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도시인들은 같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오클라호마의 농장에서 도축된, 어쩌면 육골분 사료를 먹고 자랐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30개월령을 넘겼을 수도 있는, 아무튼 미국산 쇠고기는 트럭을 타고 배를 타고 냉동창고를 거쳐 부산항에 내려 다시 트럭을 타고 서울의 대형 마트에 도착한다. 그동안 석유를 계속 태우고, 대기 중에는 이산화탄소가 마구 방출된다."
1킬로그램의 쇠고기를 먹기 위해 10리터의 석유가 운송 과정에서 소비된다면, 우리는 분명히 지구 온난화에 일조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비용이 더 '싸니까' 전 세계에서 식량을 운반해와 가공식품을 섞어 음식을 만들죠. 하지만 이 모델은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식량을 장거리로 운송해오면, 그 과정에서 '배달사고'가 날 위험이 커집니다. 이 사진은 제가 지난번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인데, 스페인에서 트럭 운전사들이 파업을 하던 당시 슈퍼마켓을 찍은 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도시인들은 석유를 불태우지 않고서는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요.
석유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공급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지금,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가 먹을 것들을 우리가 사는 곳과 더 가까운 곳에서 얻어내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파트에서 젖소를 키우는' 거죠. 젖소 뿐입니까. 듣자하니 타워팰리스 주민들은 일조량이 너무 많아서, 여름이면 수백만원씩 에어컨비를 쓴다던데, 그런 더위와 일조량은 사람이 아니라 식물에게 더 좋을 겁니다. 아파트에서는 젖소를, 타워팰리스에는 논두렁을. 하하.
거푸 강조하지만 저는 지금 세계적으로 다가오는 위기에 맞서기 위해, 도시와 농촌을 뒤섞자고, 특히 도시가 농촌으로 확장해나가는 편을 택하지 말고, 그 반대로 농촌을 도시 안으로 흡수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지금은 '비현실적'일 수 있죠.
하지만 북극 얼음이 다 녹아버린다는 발상 또한 20년 전에는 '비현실적'이었습니다.
3. 온난화에 맞서는 몇 가지 방법
지구 온난화는 딴 게 아닙니다. 대기중에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퍼져버렸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평균 기온이 높아지는 게 온난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기중'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안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거죠. 잘 기억하면서 논의를 따라가 주시기 바랍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게 왜 온난화를 야기하는 걸까요? 이걸 이해 못해서 '바이오매스는 메탄 60%에 이산화탄소 39%인데, 바이오매스를 쓴다고 온난화가 방지된다니'라는 소리를 하던 분도 있던데,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은 온난화의 메커니즘을 정말 하나도 이해 못하는 겁니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드리죠. 그림판으로 그렸습니다.
그림 1. 이게 인간이 화석연료를 쓰기 전까지 지구 대기 내 탄소가 순환하던 모습입니다. 대기 중에서 불을 떼고 똥을 싸고 방귀를 뀌어도, 그것은 대기권이라는 '닫힌 계' 안에서 순환하므로 이산화탄소의 총량은 일치합니다. 따라서 CO2에 의한 온난화도 발생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그림 2. 이제 인간이 '땅 속에 묻혀 있던' 화석연료를 꺼내 쓰기 시작합니다. 이러면 대기권은 '닫힌 계'가 아니게 되죠. 외부로부터 다량의 탄소가 유입되었습니다. 그것이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고, 열 배출이 안 되어서 지구는 점점 더워집니다.
그림 3. 이 시점에서 바이오매스를 활용한다고 해봅시다. 기술을 발전시켜서 외부 에너지 유입 없이 곧장 바이오매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림 1.에서 봤던 것처럼 대기권을 다시 '닫힌 계'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대기중에 뿌려진 이산화탄소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지금처럼 온난화 대책을 세우면서 동시에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요.
일단, 아무리 바이오매스가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지금처럼 줄창 석유만 쓰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게다가 기술은 끝없이 발전하고, 특히 정부는 안정적인 연구 지원을 통해 기술의 갭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따가 설명하겠지만 '국가에서 나서서 주도적으로' 해줘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겁니다.
만약 기술이 더 발전하여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추가적인 화석 연료 없이 돌아갈 수 있다면, 지구는 한결 '쿨'해질 겁니다. 적어도 지금의 온난화 추세를 누그러뜨리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늦지 않은 시점에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4. 문제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제가 주장하는 내용은, '바이오매스 개발에 정부의 돈이 더 들어가야 한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보셨으면 하시겠지만, 저는 '도시'와 '농촌'이라는 두 개의 보편적 집합과, 그것의 구분이 낳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이 글을 썼습니다.
도시가 더는 확장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반대로, 도시에 농촌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파트를 몇 채 더 짓고, 세금을 올리고 내리고 이런 문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칼럼에 적힌 '아파트에서 목축을, 도시에서 농사를' 이라는 컨셉이 제 머리 속에 떠오른 건 한 달이 넘은 일입니다. 지면이 빨리 안 돌아와서 공개를 못 하고 있었죠.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정치적 상상력'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경향닷컴에서 리플을 달아주신 두 분의 독자께서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정부에서 허가를 안 해주고, 집이 외양간으로 변해서 기분이 나쁘고, 등등 말씀은 다 옳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 자체를, 지금부터 바꾸거나, 바꾸는 상상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구체적일수록 좋지요. 구체적이지 않은 상상은 상상이 아닙니다. 구호에 불과합니다.
진보신당에서 유가환급금을 모아 태양열 발전소를 짓겠다는 발상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멋지죠. 2010년만 되더라도, 지금 쓸데없이 보이는 그런 짓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정치적 의제'인지 드러날 겁니다. 제가 '물의'를 빚어버린 이 칼럼도 그렇고요.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서울공화국'이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좀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그 문제를 바라봐 주세요. 그러면 '도시'가 보이고, '농촌'이 보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땅 속에 있어야 할 석탄과 석유가 불타올라 대기중에 뿌려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려 주세요. 지금은 바이오매스가, 통상적인 에너지에 비해서는 비효율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그렇게, 필요를 앞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저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토건족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토건족 비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시민들이 앞서서 한 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저는 저널리스트로서, 비록 환경문제나 그에 수반하는 경제 문제 등에 대해 학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어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만,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에 기대어 우리 사회의 담론 지형에 조약돌을 하나 던지고 싶었습니다.
기사보다 몇 배 긴 설명문이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