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31

2013년 독서 목록

2013년 독서 목록

  1. 20130103 -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레 미제라블 4』(서울: 민음사, 2012)
  2. 20130103 - 빅토르 위고, 정기수 옮김, 『레 미제라블 5』(서울: 민음사, 2012)
  3. 20130105 - Albert O. Hirshman,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 Political Arguments for Capitalism before Its Triumph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4. 20130114 - Paul Krugman, End This Depression Now!(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2)
  5. 20130128 - Tyler Cowen, The Great Stagnation(New York: Dutton, 2011)
  6. 20130207 - 고종석, 『해피 패밀리』(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7. 20130207 - 고종석, 『제망매』(서울: 문학동네, 1997)
  8. 20130210 - Daniel Drezner, The Theories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Zombie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
  9. 20130221 - Pavel Tsatsouline, The Naked Warrior (St. Paul, MN: Dragon Door Publications, 2003)
  10. 20130221 -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 1』(서울: 솔, 1999), 개정증보판. 1986년 초판 발행
  11. 20130222 -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 2』(서울: 솔, 1999), 개정증보판. 1986년 초판 발행
  12. 20130223 - 데이브 히키, 박대정 옮김, 임근준 해설, 『보이지 않는 용』(서울: 마음산책, 2011)
  13. 20130328 - 매튜 A. 크렌슨, 벤자민 긴스버그, 서복경 옮김,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서울: 후마니타스, 2013)
  14. 20130409 - 마쓰시타 기와, 황선종 옮김,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서울: 더숲, 2013)
  15. 20130422 - 패트릭 콜린슨, 이종인 옮김, 『종교개혁』(서울: 을유문화사, 2005)
  16. 20130427 - 우병현, 『구글을 가장 잘 쓰는 직장인 되기』(경기도 파주: 휴먼큐브, 2013)
  17. 20130601 - 브라이언 본, 토니 해리스, 임태현 옮김, 『엑스 마키나 디럭스 에디션 01』(서울: 시공사, 2013)
  18. 20130601 - 브라이언 본, 토니 해리스, 임태현 옮김, 『엑스 마키나 디럭스 에디션 02』(서울: 시공사, 2013)
  19. 20130613 - 폴 크루그먼, 박세연 옮김,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경기도 파주: 엘도라도, 2013)
  20. 20130707 - 사사키 아쓰시, 송태욱 옮김, 『일본, 현대, 사상』(경기도 파주: 을유문화사, 2010)
  21. 20130707 - 정유정, 『28』(서울: 은행나무, 2013)
  22. 20130709 - 커트 보네거트, 박웅희 옮김, 『제5도살장』(서울: 아이필드, 2005)
  23. 20130714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시지프 신화』(서울: 책세상, 1998)
  24. 20130726 - 재레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어제까지의 세계』(서울: 김영사, 2013)
  25. 20130910 - 주대환, 『대한민국을 사색하다』(서울: 산책자, 2008)
  26. 20131001 - 마이클 더다, 김용언 옮김, 『코난 도일을 읽는 밤』(서울: 을유문화사, 2013)
  27. 20131002 - 버트런드 러셀, 장성주 옮김, 『인기 없는 에세이』(서울: 함께읽는책, 2013)
  28. 20131004 - 커트 뷰식, 스튜어트 이모넨, 최원서 옮김,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서울: 시공사, 2011)
  29. 20131005 - 앨런 무어, 데이브 기본즈, 정지욱 옮김, 『왓치맨 1』(서울: 시공사, 2008)
  30. 20131005 - 앨런 무어, 데이브 기본즈, 정지욱 옮김, 『왓치맨 2』(서울: 시공사, 2008)
  31. 20131006 - 데이비드 맥컬레이, 장석봉 옮김, 『땅속 세상』(경기도 파주: 한길사, 2004)
  32. 20131007 - 마크 밀러, 존 로미타 주니어, 정지욱 옮김, 『킥애스 2 전주곡: 힛걸』(서울: 시공사, 2013)
  33. 20131007 - 고바야시 히데오, 유은경 옮김, 『고바야시 히데오 평론집』(서울: 소화, 2003)
  34. 20131008 - 마크 밀러, 존 로미타 주니어, 정지욱 옮김, 『킥애스 1』(서울: 시공사, 2013)
  35. 20131008 - 마크 밀러, 존 로미타 주니어, 정지욱 옮김, 『킥애스 2』(서울: 시공사, 2013)
  36. 20131014 - 프란츠 카프카, 김영옥 옮김,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서울: 문학과지성사, 1998)
  37. 20131028 - 김사과, 『천국에서』(경기도 파주: 창비, 2013)
  38. 20131030 - Paul Auster, Hand To Mouth (New York: Picador, 1997)
  39. 20131031 - 김사과, 『테러의 시』(서울: 민음사, 2012)
  40. 20131031 - 김사과, 『풀이 눕는다』(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9)
  41. 20131114 - 안토니오 타부키, 김운찬 옮김, 『플라톤의 위염』(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42. 20131115 - 마리 노이라트, 로빈 킨로스, 최슬기 옮김, 『트랜스포머: 아이소타이프 도표를 만드는 원리』(서울: 작업실유령, 2013)
  43. 20131128 - 조지 F. 케넌, 유강은 옮김,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서울: 가람기획, 2013)
  44. 20131209 - 마이클 R. 캔필드 엮음, 에드워드 O. 윌슨 외 지음, 김병순 옮김, 『과학자의 관찰 노트』(서울: 휴먼사이언스, 2013)
  45. 20131212 - 박홍수, 『철도의 눈물』(서울: 후마니타스, 2013)
  46. 20131225 - 박해천, 『아파트 게임』(서울: 휴머니스트, 2013)

* 이 독서 목록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책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특별한 기준 없이 채워넣은 것이다.

* 이 독서 목록을 통해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참고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이 독서 목록에는 '논객시대'를 연재하면서 읽은 책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걸 넣자니 너무 목록이 불어난다는 생각 때문에 안 적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자의적인 기준을 도입하고 나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책이면 일단 포함시킨다는 기준과 충돌하게 되었으며, 한 해 100권은 읽어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 폴 오스터의 Hand To Mouth는 예비군 훈련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겨우 읽어낼 수 있었다.

* 내년 예비군 훈련에는 또 무슨 책을 들고 가야 하나.

* 2013년의 출판계는 스스로 이슈를 생산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습이었다. 시장 규모는 줄어들고, 독자들은 떨어져나가고 있다. 특히 정치, 사회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책을 사는 사람들의 성향이 거의 뻔히 보이는 지경인데, 이것은 출판계를 넘어서 한국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는,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2013-12-18

[2030콘서트] ‘학대하는 어머니’ 박근혜·최연혜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진보 진영은 국가를 너그러운 부모에, 보수 진영은 엄격한 아버지에 비유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약자에게 너그러운 복지 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후자는 엄격한 법 집행과 질서에 방점을 둔다는 것이다. 과연 이 이론이 맞는 것인지, 무려 7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직위해제시켜 놓은 후,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은 파업 노동자들을 두고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위해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철도파업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곰곰이 짚어보면, 박근혜 정부와 국토교통부, 최연혜 사장의 태도는 ‘엄격한 아버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엄격한 아버지가 엄격한 것은 자식을 사랑하고 더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 국토부의 입김하에 철도공사가 수행하는 법인 분리는 철도공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만성 적자를 더욱 증가하게 만들 뿐이다. 철도파업에 대응하는 정부는 눈물을 머금고 회초리를 든 엄격한 어머니가 아니다. 소금밥을 먹여가며 아이를 학대하고 죽게 만드는, 친권을 박탈당해 마땅한 아동학대범 어머니인 것이다.

정부는 철도공사의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었으므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철도공사가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핵심은 기업들이 이용하는 화물열차의 운임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멘트나 철광석, 석탄 등을 실어나르는 열차는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요금을 받고 있다. 마치 가정용 전기 요금을 올리면서도 대기업에는 산업용 전기를 헐값에 마구 퍼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듯 구조적으로 적자를 강요해놓고는, 많은 수의 신규 승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서발 KTX를 따로 분리해, 안 그래도 적자를 끌어안고 있는 기존의 철도공사와 경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과연 ‘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적자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흑자가 날 만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따로 떼어준 채, ‘경쟁’을 하라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게다가 정부의 해명과 달리 수서발 KTX는 본질적으로 주식회사다. 이 때문에 정관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국내 재벌 및 해외 투기 자본에 조각조각 팔려나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을 등에 업은 철도공사는 스스로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이익은 남에게 주고, 손해는 고스란히 떠안으며, 숙련된 기술자들을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다. 철도는 어차피 경쟁체제를 만들 수 없는, 자연독점이 성립하는 분야라는 것을 우리는 아무 경제학 원론 책이나 펼쳐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원리’를 존중한다는 그들은 꼭 이럴 때에만 시장 원리를 모른 척한다. 세계적인 운영 능력을 자랑하지만 덩치가 부족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우리의 철도를, 또 한 번 반토막 내려고 덤벼든다. 그것이 바로 수서발 KTX의 법인 분리이며, 철도 민영화의 시작이다.

이러니 ‘엄격한 아버지’가 아니라, ‘학대하는 어머니’ 모델을 우리는 떠올릴 수밖에 없다. 철도공사 사장은 불과 1년 전 자신이 신문 칼럼에서 했던 말을 고스란히 뒤집고 민영화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정부는 철도공사더러 적자를 해결하라면서 흑자 노선을 빼앗아가고 적자를 더욱 키울 것을 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영화가 아니라는데 정부를 신뢰하지 않느냐’며 국민들을 다그치고, 검찰은 냉큼 철도노조 간부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국민들은 잘해보겠다는데, 노동조합은 회사를 더욱 크고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데, 사장과 정부와 대통령이 나서서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 중국은 신의주, 평양, 개성을 잇는 고속도로 및 고속철도 개설권을 북한으로부터 따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 철도의 덩치를 더 키워서 북한을 넘어 세계로 향하게 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의 ‘학대하는 어머니’들은 철도를 자본이 뜯어먹기 좋도록 토막 내버릴 심산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지배계급은 늘 그래왔다. 이 나라를 작고 힘없이 끌려가는 노예 상태로 전락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려 들었다. 이번 철도파업은 그런 의미에서 철도노조만의 것이 아니다. ‘학대하는 어머니’를 이겨내기 위한 우리 모두의 싸움인 것이다.


입력 : 2013.12.17 20:35:31 수정 : 2013.12.18 01:54:5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172035315&code=990100&s_code=ao051#csidxa534af27f3279839fe0795dd375ff9a

2013-11-26

[2030콘서트] 군대 이야기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전해들었다. 입대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던, 논산훈련소를 거쳐 의정부에 있는 KTA(Katusa Training Academy)에서 훈련받고 있던 때의 일이었다. 몇십 미터 앞에 축소 표적지를 깔아두고 M16A를 쏘아대고 있을 무렵, 훈련소의 교관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DMB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꺼냈고, TV를 틀었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속보를 나와 다른 훈련병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했다고. 우리도 당장 역습을 해야지, ‘의도 파악’은 대체 왜 하고 있느냐고. 그는 중사 계급의 직업 군인이었다.

당시 교육받은 바에 따르면, 만약 그대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훈련소의 병력은 일단 전부 어딘가로 옮기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긴긴 기간을 무조건 현역병으로 군에 복무를 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끔찍한 결과를 바라지 않았기에, 하염없이 북한의 ‘의도 파악’을 하며 즉각 보복성 공격을 가하지 않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한·미동맹의 규약에 따라 미군들의 군복을 입고 있던 나는, 전쟁이 나면 이것보다 안전한 옷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편하게 군생활 하러 들어와서, 남들이 전방에서 포탄 맞고 죽고 다치는 모습을 보며, 기껏 한다는 게 나의 보직 걱정이었다는 부끄러움이 찾아온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의 일이었다.

신문 칼럼에 대고 무슨 개인적인 군대 추억을 늘어놓느냐는 불만이 서서히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군대 추억담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공유하는, 말하자면 ‘기억의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설령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고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당분간 대한민국의 군대는 징병제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휴전선 이북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중국과의 국경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군대’는 여전히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조금만 더 추억의 페이지를 넘겨보자. 전방에 위치한 미군 2사단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늘 서먹서먹한 나와 달리 내 후임으로 들어온 어린 친구들은 미군들과 금세 잘 지냈고, 심지어 동두천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도 같이 다녀왔다고 했다.

그 미군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왜 한국인들은 군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손가락질하고 놀리는 거지? 미국에서는 군인을 보면 모두 고맙다고 하고, 도넛과 커피 등을 공짜로 주기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대답했다. 한국은 1987년 이전까지 군인들이 통치하던 나라였거든. 그리고 모든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가. 그래서 한국인들은 일단 군인들을 조롱하고 낮춰보지. 하지만 실은 군인들을 두려워하는 거야.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냥 떠오르는 대로 최대한 쉽게 설명했을 뿐이기에, 대충 그 정도 대화를 마친 후 툭툭 털고 일어나 잔업을 하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자신감, 모든 남자들이 다 각자의 군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그 일상성과 하찮음 뒤에는, 아직도 극복되지 않은 군대에 대한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인들을 믿지 않는다.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군대를 통제하고 끌어안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사고치지 않고 북한의 ‘거지떼’가 넘어오는 것을 막아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고, 대선개입 의혹은 국정원을 넘어 군 전체로 번져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추위에 떨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고, 군 수뇌부 중 일부는 대선개입 의혹을 덮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 25년이 흘렀다. 이제는 더 이상 눈 돌리지 말고,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와, 군대와, 올바름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군대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 군을 사회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화해낼 수 있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늘의 위기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13.11.26 20:08:3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62008365&code=990100&s_code=ao051#csidx047fc7a7031cbb58435d0eec921e172

2013-11-05

[2030콘서트] ‘박근혜 탄핵’은 없지만

문재인의 대선 패배는 선거 부정 때문이 아니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라 할지라도, 국정원과 기타 조직의 선거 개입이 없었다면 문재인이 이겼을 것이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17대 대선에 비해 무려 12%나 솟구친 75%의 투표율을 보며 야권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은 개표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것이 ‘잠자던 대학생들의 야권 표’가 아닌 ‘정치에 소외되어 있던 50대 이상의 여당 표’임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기업이라는 단 하나의 조직만을 남겨둔 채 그 나머지를 급속히 파괴했다. 우리는 기업 속에서 사장님과 직원이 되고, 기업 밖에서 소비자와 유권자가 될 뿐이다. 이렇게 불안에 빠진 파편화된 개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사회가 우경화된다는 말과 같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실용정부까지 한국의 집권 세력은 새로운 경제적 질서에 부합할 만한 새로운 사회적 구성 원리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유지하는 일에만 골몰해왔던 것이다. 18대 대선의 결과는 바로 그 일관된 정책 방향이 낳은 당연한 업보에 가깝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권력기관들의 선거개입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국정원 직원들은 수백여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아이디와 게시물을 삭제하는 식으로 증거를 은폐했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최대한 꼬리를 자르고 말을 바꾸고 증거를 없애가며,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게다가 이 모든 난국이 진행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끝없는 해외 순방길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야권은, 2004년의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를 탄핵소추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박근혜를 탄핵해 그 권한을 정지시키고, 현재의 대선개입 문제를 검찰과 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도록 사태를 이끌어갈 수 없다. 이것은 비단 그들이 무능해서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그해 있을 총선을 앞두고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거나,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등, 선거법 위반의 혐의가 있는 발언들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내놓았다. 바로 그 발언들을 두고 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판정을 내놓았고, 그로 인해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능해졌다.

반면 지금은 그와 많이 다르다. 마치 전두환이 광주 시민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가 국정원 및 기타 조직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혜택을 받을 사람이 직접 그 과정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묘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 박근혜 캠프를 불법적으로 도청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박근혜 본인이 그런 식으로 선거법을 어겼다고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할 수 없다. 그가 직접적으로 선거에 불법 개입했음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직도 진행 중인 국정원 여론 개입 사건에 대한 확실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바로 그 ‘시민사회’ 자체가 거의 형해화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마땅한 정치적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조직과 ‘실세’들이 알아서 충성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순방이나 다니는 대통령을 어떻게 다시 정치의 현장으로 불러낼 것인가. 당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형해화되어 가는 ‘시민사회’를 재구성해, 정치가 단지 이권 다툼이 아닌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당위의 문제로 돌아오게 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입력 : 2013.11.05 22:27:5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52227535&code=990100&s_code=ao051#csidxf973a1289ce972d83b38ef4785727b6

2013-10-15

[2030콘서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가 이른바 ‘셧다운’에 돌입한 것은 지난 1일의 일이다. 이미 충분히 국내에도 보도되고 또 소개된 사건이지만 다시 한번 그 전모를 살펴보자.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미국 건강보험 개혁안인 이른바 ‘오바마케어’(ACA)를 두고 공화당 강경파가 하원에서 반발했다. 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이 우세한 탓에 하원에서 요구하는 법안 수정을 상원은 계속 거절했고, 대통령 또한 ‘오바마케어’를 무위로 돌리기 위한 공화당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공화당 강경파는 버티기 끝에 연방정부의 예산안을 10월1일까지도 통과시키지 않았고, 그리하여 미 연방정부 소속 공무원들은 본의 아닌 무급휴가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의회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된 이 사건을 두고 ‘민주주의의 실패’ 등을 운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는 사태를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가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망가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너무 잘 작동해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영국 의회에서 웅변했던 원칙을 떠올려보자. ‘대표 없는 곳에 세금 또한 없다.’ 정답이다. 국민의 대표가 모여서 합의하에 세금을 걷고, 그것을 행정부에 넘기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입법부다. 국회는 단지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거나 토를 잡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정부를 향해 돈자루를 쥐고, 자신들이 만든 법에 따라 이 나라를 통치할 것을 행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다. 대표 없는 곳에는 세금도 없고, 세금 없는 곳에는 예산도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미 공화당 강경파를 두둔하거나 옹호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정부가 문을 닫고 국립공원부터 백신 개발까지 온갖 중요한 연방정부의 사업들이 멈춰버렸음에도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궁극적으로는 법치주의의 원리를 곧이곧대로 행하고 있는 미국식 정치에 어떤 의미에서 감탄하고 있을 따름이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연방정부는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다. 월급을 줄 수 없으니 당연히 연방정부는 피고용인들을 일터로 억지로 불러내지도 못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구분이 희미하고 그저 ‘나랏일’로 뭉뚱그리는 한국식 정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장 국정이 마비되게 생겼는데 월급 좀 밀리는 게 대수인가? 하지만 법치주의의 원리를 놓고 보면, 월급을 주지 못하는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옳다. 공무원들 역시 월급 받는 만큼 일하기로 계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강경파는 무모한 정치적 도박을 저질러가며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이곳과 저곳의 문화적, 정서적, 정치적 차이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이것은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제국을 운영하면서 만든 그 옛날의 법전에도 명시되어 있는, 인간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다.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근본적인 약속이 없다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모두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도 정부는 법치주의를 내세워 힘 없는 사람들에게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강요하지만, 과연 자신들 스스로는 약속을 지키는가? 힘 없는 서민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행정부와 관료들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와의 약속마저도 헌신짝처럼 여기기 일쑤다. 이번 국정감사에 대해 기대감을 품지 못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 사회이므로, ‘높으신 분’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아니면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그만인 것이다.

한국의 법치주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식 법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정부나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에 그저 손가락질이나 할 수밖에 없지만, 국가는 국민들이 ‘폴리스라인’ 같은 사소한 약속을 어기면 가혹한 응징을 한다. 우리 스스로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해 꾸준히 성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인 ‘팍타 순트 세르반다’가 모두의 상식이 되어야만, 우리도 그들을 ‘셧다운’시킬 수 있다.


입력 : 2013.10.15 21: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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