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10

[북리뷰]신의 이름으로 장부를 기록하다
2014 03/11ㅣ주간경향 1066호

<1494 베니스 회계>
루카 파치올리 지음·이원로 옮김·다산북스·2만3000원

루카 파치올리는 15세기에 활동한 수학자이며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였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지식인 계층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대단히 재산이 많아서 생업에 종사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읽고 쓰고 공부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했다.

세속으로부터 가장 먼 삶을 살아야 할 기독교 수도사가 가장 세속적인 주제라 할 수 있는 상인의 장부 기록법에 대한 책을 쓴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는 <Summa de Arithmetica, Geometirica, Proportioni et Proportionalita>라는 책을 토스카나어와 베네치아어로 써냈다.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시피 <Summa>는 대수학, 기하학 등 수학의 각종 영역을 넓게 다루어 집대성한 책이다.

문제는 그 중 포함되어 있는 ‘Treatise de Computis et Scripturis’라는 부분이다. 번역하자면 ‘상업적 계산과 기록’이라는 뜻이며, 말 그대로 상인에게 필요한 계산 및 기록법이 적혀 있다.

그 ‘계산과 기록’이란 다름 아닌, 괴테가 “인간의 지혜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고 극찬하기까지 한 복식부기법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논쟁을 하면서 때아닌 화제가 되기도 했던 복식부기는 어떤 거래가 있을 경우 그것을 원인과 결과에 따라 나누어 동시에 기록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신용카드로 7000원을 내고 국밥을 한 그릇 사먹었다고 해보자. 그것을 ‘-7000원 국밥’으로 적어둘 수도 있겠지만, 복식부기 방식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저녁식대 7000 // 미지급금(신용카드) 7000.’

이 차이는 명백하다. 단식부기가 아니라 복식부기를 택함으로써 내가 쓴 7000원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식부기식으로 적어두면 지금 사용한 7000원이 나중에 신용카드 결제일에 또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며 혼란을 겪게 되지만, 복식부기를 해놓으면 그럴 우려가 없다.

그래서 15세기의 수도사는 “누구라도 한눈에 거래내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차인(돈을 꾼 사람)과 대인(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정리·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러나 <1494 베니스 회계>는 오늘날의 실용서들과는 퍽 다른 인상을 준다. 모든 재산을 기록하고 목록으로 만들며 그 경제적 가치를 파악하라는 내용은 극히 세속적이지만, “상인은 그의 모든 장부의 첫 머리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은 영락없는 종교 서적이다.

세계 최초로 복식부기에 대해 설명하고 기록하는 <1494 베니스 회계>에는 이렇듯 종교적인 가르침과 경건한 태도가 한껏 스며들어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결코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닌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장부를 적는 상인의 경건함과 정직함이 없다면, 서로의 신용을 걸고 거래하며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자본주의는 거대한 투전판으로 전락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모든 사안을 이중으로 기록함으로써 기록자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의 출발점인 셈이다. 회계 조작으로 경영 손실을 만들어내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가 공부해야 할 책이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

2014-03-07

시사통 김종배입니다 [14.03.07.am] B급 첩보영화 찍냐?

2014년 3월 7일 금요일 오전 방송 내용입니다. 정치학의 고전인 <절반의 인민주권>을 다루고 있습니다.


▶ 팟빵 : http://www.podbbang.com/ch/7260
▶ 아이튠즈 : https://itun.es/kr/LI5mX.c
▶ 시사통 홈페이지: http://sisatong.net/

다루고 있는 책의 구체적인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E.E. 샤츠슈나이더, 현재호, 박수형 옮김, <절반의 인민주권>(서울: 후마니타스, 2008)

저는 9분 45초 무렵부터 출연합니다. 많은 호응 바랍니다.

2014-03-02

[논객시대] 좌담회 (1) - 박해천 선생님과의 대화

『논객시대』의 출간을 기념하여 세 번의 좌담회가 열립니다.

3월 7일 금요일에는 그 중 첫 번째 시간으로, 『인터페이스 연대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을 쓰신 박해천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님과의 좌담이 있습니다. 장소는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이며, 시간은 오후 7시입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만든 홍보용 이미지(요즘은 '웹자보'라는 표현도 더러 씁니다만)를 첨부합니다. 2강과 3강도 예정되어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 신청은 여기서 하실 수 있습니다.(http://blog.aladin.co.kr/culture/6904597)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은 이런 곳에 있습니다.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이나 1호선 회기역을 통해 오시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2014-03-01

시사통 김종배입니다 [14.02.28.am] 야만적 사회가 생활고를 부른다

2월부터 시작된 팟캐스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에 정기적으로 출연합니다. '시사뒷Book'이라는 코너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방송됩니다.

▶ 팟빵 : http://www.podbbang.com/ch/7260
▶ 아이튠즈 : https://itun.es/kr/LI5mX.c
▶ 시사통 홈페이지: http://sisatong.net/


2014년 2월 28일 방송분입니다. 저는 약 11분 30초 무렵부터 출연합니다.

이번에 소개된 책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자서전인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입니다. 세부적인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헬무트 콜, 김주일 옮김,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서울: 해냄, 1998)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와 '시사뒷Book'에, 많은 관심과 호응 부탁드립니다.

2014-02-27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정치개혁인가 자승자박인가

정치개혁인가 자승자박인가
게시됨: 2014년 02월 27일 23시 55분

1만 명의 군인들이 적진 한 가운데에 갇혔다.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페르시아의 퀴로스 2세는 자신의 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대왕을 공격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이민족 정벌을 핑계 삼아 대규모의 용병을 불러온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렇게 1만 3천여 명의 군사들이, 대부분의 경우 생전 처음 가보는 적진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퀴로스의 음모를 몰랐지만, 곧 발각되었고, 반란 수괴인 퀴로스는 전투 중 사망하게 되었다.

그리스 군은 그 전투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1만여 명의 병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잘못된 정보를 듣고 용병이 되어 온 것이므로, 품삯을 지불해야 할 퀴로스가 죽은 이상 이제 귀향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들이 페르시아, 즉 최강의 적국 한 가운데에 뚝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튼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 군사들은 반란 세력의 일부, 적군이다. 페르시아의 대왕은 그리스 군을 향해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라고 요구한다.

자존심 강한 그리스의 보병들은 그 말을 무시했다. 만약 페르시아가 그리스 군을 상대로 이겼다면, 직접 와서 시체 위에 떨어진 창과 방패를 주워가라고 응수한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싸워보지도 않고 무장을 해제한 채 항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중무장한 밀집 대형의 보병들은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다. 맞붙어 싸운다면 큰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우리는 친구다, 친구끼리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다'라는 논리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무기를 버리지 않겠다. 만약 우리가 너희들의 친구가 된다면, 무기를 내려놓았을 때보다 무기를 들고 있을 때 더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너희들이 우리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손에 무기가 들려있지 않을 때 우리는 너희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의 협상에 대해서 이보다 더 탁월한 통찰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일시적인, 혹은 극복 가능한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는 것은, 전략적 목표가 확실하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때로는 단기적인 손실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역량이나 능력 그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쪽에서 먼저 무장을 해제하고 '친구'가 되면, 그 '친구'는 금새 '정복자'로 돌변할 것이니 말이다. '내줄 수 있는 것'과 '내줄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전자를 양보하더라도 후자는 포기하지 않아야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에 대한 논의가 과연 '정치개혁'일까? 정당의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고 그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선거 투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한국의 여당과 야당은 모두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내던지는 '개혁'을 하겠다고 목청을 높히고 있다.

여기에 제3후보 안철수 의원 측에서,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처지이므로, 선수를 쳐서 민주당을 머쓱하게 만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제 민주당은 그놈의 '개혁'을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다. '정치개혁'을 해버리면 정당의 가장 크고 중요한 정치적 수단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것을 '정치개혁'이라고 말해버린 이상, 개혁에 역행하는 세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한복판에 갇혔는데, 이미 방패와 창을 버리겠다고 선언해버렸고, 페르시아의 대왕은 그저 청와대에서 껄껄 웃고 있을 뿐이다.

정치개혁.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를' 개혁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원하는 것은, 정치'를' 개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치'가' 개혁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이미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페르시아의 '친구'가 되어버린 정치가, 대체 누구를 어떻게 개혁할 수 있단 말인가. 기업은 국민들의 사적 생활을, 관료들은 국민들의 공적 생활을, 이미 침식할대로 침식해버린 상황이다. 정치권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단 벗고 보는 눈물의 홀딱쇼를 멈추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힘을 이용해, 국민들의 행복과 권리를 지켜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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