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6

[북리뷰]안전은 ‘공학과 경제학’의 문제다

[북리뷰]안전은 ‘공학과 경제학’의 문제다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함인선 지음·마티·1만5000원

1911년 뉴욕. 당시 미국은 세계의 공장이었고, 그 중에서 뉴욕은 세계의 봉제공장이었다.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브라운 빌딩에 불이 났다. 그 건물에는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봉제공장이 있었는데, 공장주가 문을 잠가놓은 탓에 123명의 여성과 23명의 남성이 화재로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미국의 의류업계도 어린 여성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탓에 사태는 더욱 끔찍해졌다. 생때같은 10대·20대 소녀들이 불에 타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그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해 창 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저자의 말을 읽어보면,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한 책이 아니었다. “나의 작업기를 바탕으로 그 작업들의 이론적·실천적 배경이 된 근대 건축가들의 얘기로 꾸며볼 계획”(232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의 탈고를 앞둔 시점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으려던 경주 리조트 붕괴사건에 대해서도 발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책 자체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거기에 각각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우리는 책 제목을 통해 그 구분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앞에서는 ‘정의와 비용’을, 뒤에서는 ‘도시와 건축’을 논하는, 뜻하지 않게 시의성을 갖춘 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의’라는 단어 뒤에 곧장 ‘비용’이라는 개념이 붙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담론 지형에서 상당히 낯선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다. “결국은 공학과 돈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자꾸만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문제로 바꾸려 든다”(19쪽)고 지적한 후 “공학적 사고의 원인은 안전율의 부족 때문이고 안전율의 부족은 돈의 부족 때문”(27쪽)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안전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안전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삼풍백화점부터 경주 리조트 붕괴, 세월호 침몰까지 공학적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것은 안전 불감‘증’(症)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 ‘공학-경제학’의 문제이다.”(같은 곳)

그러한 시각으로 세월호 침몰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 참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배의 안전율은 곧 운항 수익의 함수이다. 그리고 운임은 좁게는 그 회사의 경영진이 정했겠지만 넓게는 동종업계의 합의였을 것이고 더 크게는 물가를 통제하는 당국과 시장이 정했을 것이다.”(22쪽) 실제로 정부는 연안여객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만을 고려하여 요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었고, 청해진해운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배의 평형수를 빼고 신고하지 않은 화물을 실었다. 그렇게 생긴 이윤은 배와 안전에 재투자되지 않고 유병언 일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박하게 책정된 안전율임에도 범죄자들은 이마저도 빼먹을 것이라는 것은 경험상 ‘예견된 일’이다.”(같은 곳)

1911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 이후 미국은 같은 종류의 대형 참사를 다시는 겪지 않았다. 안전이 사회적 비용의 문제임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비용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의 도로가 푹푹 꺼지는 싱크홀 현상까지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그 비극으로부터 대체 무엇을 배웠을까.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8-25

송희영, 조갑제, 김영오

송희영, 조갑제, 김영오


1. 8월 23일, 송희영 칼럼 "국가와 싸우는 국민들"

8월 23일,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의 칼럼이 게시되었다. 제목은 "국가와 싸우는 국민들". 그는 미국의 핵 물리학자 리원허(李文和)가 간첩 혐의로 FBI에 체포되었던 사건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리원허 박사는 중국에 핵무기 정보를 몰래 제공한 것 외에, 59개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지만, 그것은 FBI의 잘못된(아마도 '기획'된) 수사에 의한 것이었다. 결국 무죄가 선고되었고 "FBI의 잘못된 수사에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개 사과를 했다"고 한다. 송희영 칼럼 첫 번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이다.

2014년 8월 23일, 한국 저널리즘의 한 풍경. 거대 신문사의 유명 주필이 외국에서 벌어진 무리한 기획 수사 이야기를 꺼내들고, 삼권분립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넓은 의미의 정부'의 권한을 셋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는 듯 논지를 끌어간다. 그러면서 결국은 세월호 유족들이 '사회계약을 넘어서는 초법적 권리'를 요구한다고, 전교조 혹은 수많은 노동조합들과 다를 바 없다고, "대통령·국회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 골몰한 나머지 정작 계약의 당사자인 다수 국민과 싸우고 있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딱지를 붙인다.

이제, 세월호 피해자들을 조선일보가 어떻게 몰아가려 하는지, 분명해졌다. 제목에는 '국민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국가와 싸우는 비국민들'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2. 삼권분립 위에 '나랏님' 있다?

잠시 그의 칼럼을 조금 더 짚어보자. 송희영은 삼권분립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삼권분립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인, '넓은 의미에서의 정부'를 강조한다. FBI가 잘못 수사해서 벌어진 일이지만 리원허가 감옥에 갇혀있던 것에 대해, 보석(保釋)조차 허가받지 못했던 것에 대해, 판사가 판결문을 통해 사과한 것을 두고 그런 논지를 펼친다. "FBI의 수사 실패를 왜 판사가 사과하느냐고 한국인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송희영은 단정짓는다.

교묘한 사실의 왜곡이다. FBI가 엉터리 기소를 했더라도, 법원에서 제대로 그 내용을 간파하고 보석을 허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원허 사건에서 법원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는 식으로 송희영은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뜻이다. 법원은 법원의 잘못을 저질렀고, 그래서 사과를 한 것이다. "법원이 행정부를 대신해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와 행정부가 한 몸이라는 입장에서 사과한 것"이 아니다.

가령 인혁당 사건에 대해 생각해보자. 당시 박정희의 유신 정권이 공안조작 사건을 벌여 피고인 8명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18시간만에 형을 집행했다. 이 경우, '사법살인'의 궁극적인 주체는 박정희의 유신 정권이며 사건을 조작한 중앙정보부지만, 법원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의 대한민국이 진정 삼권분립을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그러므로 그 사과의 주체는 법원과 정부 양쪽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결코 한쪽이 다른 쪽의 역사적 사죄를 대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리원허 사건과 그 전개에 대한 송희영 나름의 해석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보기에는,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사과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은 리원허가 더 나쁘다. 몇 문단 아래로 내려가보자. 리원허가 자서전에서 "자기 조국(祖國) 미국을 원망했다"며, 여태까지 학교나 연구소로 돌아가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판사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해 사과했지만 그가 먼저 자기 나라를 등졌기 때문일까"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질문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대통령도 사과했고 판사까지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해 사과했으니, 억울해하지도 말고 그런 내용을 자서전으로 쓰지도 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이다. 되도 않은 기획 수사에 휘말려 인생이 뒤엉킨 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은 온데간데없고, '나라가 사과했으면 백성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봉건적 논리만이 남아있는 셈이다.

리원허 사건에서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법원은 FBI의 무리한 기소를 애초부터 인정하지 말았어야 한다. 설령 기소했다 한들 그를 독방에 가둬두고 보석조차 허락하지 않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말았어야 한다. 행정부와 사법부 모두 나름의 잘못을 저질렀고, 그래서 사과를 했다. 하지만 송희경은 거기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정부'로 성급하게 나아간 후, 오히려 '조국을 욕하고 다니다니'라며 리원허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송희영의 세계 속에, 과연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나는 그 과오를 밝힌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내부고발자나 양심적·비판적 애국자의 자리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삼권분립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을 읽는 대신, 그는 3부를 통괄하는 '나랏님'의 존재를 이끌어내고, 세월호 유족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그 '나랏님'을 국민 전체와 등치시킨다. '비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담론적 포석이다. 이것이 2014년 8월 23일,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세월호 사태 대응 전략이다. 그들을 전교조처럼, 노동조합 가입자들처럼, 비국민으로, 옛날 식으로 말하자면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이다.


3. 손석희 vs. 조갑제

세월호 참사가 막 시작되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배는 급격히 기울어 한 시간 가량 지난 오전 10시 5분, 이미 90도 가까이 기울어 좌현 전체가 거의 물에 잠겼다. 오전 10시 19분에는 완전히 전복되어 배의 바닥만이 수면 위로 드러난 상태가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는 참사의 시작이었다.

세월호의 침몰은, 처음에는 일종의 해프닝처럼 보도되었다.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지만 승객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희대의 오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오보를 처음 낸 곳은 어디인지, 사실 확인 없이 받아적은 언론사들이 전부 어디인지, 낱낱이 밝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세월호 침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바로 그 '전원 구조'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머릿속에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입력되고 나니, 연이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원 구조가 가능했는데 해경의 잘못으로 애꿎은 생명이 희생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해경의 대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1). 해경은 신고를 받고도 일부러 늑장 출동하였다.
(2). 해경은 일부러 세월호 선내에 진입하지 않는 등, 소극적 구조 활동에 머물렀다.
(3). 세월호가 전복된 후에도 '에어포켓' 등에 갇혀 있는 승객을 살려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언딘과 유착된 해경의 수상한 행동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쳤다.

(1)에 대해 살펴보자. 왜 진도 VTS가 아닌 제주 VTS로 신고가 접수되었는지, 세월호의 변침을 왜 진도 VTS에서 놓쳤는지 등을 놓고 다양한 '의혹'이 제기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을 놓고 보면, 어쨌건 해경은 사고 신고 접수 후 출동했다. 해경 구조 헬기는 약 30분 뒤, 구조정은 약 40분 뒤에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비판자들은 마치 해경에게 무슨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있는 양, 왜 배가 기울기 시작한 그 순간에 현장에 없었냐는 식으로 나무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경비정은 24노트의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신고를 받은 후 이보다 더 빨리 출동할 수 있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2)의 경우도 그렇다. 마치 단 한 사람의 해경도 세월호 선내에 갇힌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양, 그렇게 언론은 입을 맞춰 몰아갔고 그렇게 사실은 왜곡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배에 갇힌 단원고 학생을 해경이 망치와 파이프로 유리창을 깨고 구조했다. 세월호에서 승객을 구조해낸 당사자인 박상욱 경장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가 “선실 유리창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 배가 船首 쪽으로 돌면서 발견한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급히 망치를 들고 세월호로 옮겨 탔습니다. 이형래 경사와 이종훈 경사 그리고 제 곁의 한 분은 구조된 승객이라 기억하는데 그 분도 저와 같이 유리창 깨는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30cm 정도 되는 나무자루에 주먹 만한 쇠뭉치가 달린 망치였는데 이걸로 몇 번 가격해도 유리창이 멀쩡했습니다. 아마 가격할 때 자세가 불안정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기울어진 바닥에서는 망치질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종운 경사가 망치를 들고 저는 123정에서 전해준 쇠파이프 지주봉을 들고 때렸습니다. 지켜보던 123정에서 鐵製 지주봉을 뽑아 저에게 전해 준 겁니다. 함정에 추락방지용으로 설치한 鐵製 봉이었지요. 제 옆에 서 있던 승객도 망치를 건네 받은 뒤에 같이 몇 번을 내리 쳤습니다. 그래도 유리창은 멀쩡했습니다. 그때 제 곁에 있던 승객이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퍽’ 하고 유리창이 깨져 나갔습니다. 거의 동시에 船室에서 두 손이 번쩍 올라왔습니다. ‘만세 자세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오는 손 마다 잡고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도 두 사람이 끝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부터는 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배가 더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의 손이 유리창 부근으로 다가오질 않는 겁니다. 이번에도 123정에서 ‘홋줄’을 건네 주었습니다. 이걸 내려주어 사람들이 줄을 잡고 올랐습니다. 
"세월호 조타실로 진입했던 海警(해경) 朴相旭 경장: "제발 사실대로만 써주세요. 부탁입니다"", 조갑제닷컴, 2014년 5월 26일.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941&C_CC=AZ

목포해경에 소속된 의경 김모(22)씨의 증언 역시, 당시 해경이 '적극적 구조 활동'을 하였으며, 심지어 그 구조 활동에는 이미 구조된 세월호 승무원이 참여하기도 했음을 시사한다. "김씨는 123정이 세월호에 두 번째로 맞대어 객실 유리창을 깨고 5~6명을 구조한 것과 관련, "누가 유리창을 깼느냐"는 검사의 질문을 받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직원(해경) 두 명이랑 승객 두 명이 있었다"고 답했다."("세월호 승무원 2명, 승객 구조 참여 정황 확인(종합2보)", 연합뉴스, 2014년 8월 19일, http://m.yna.co.kr/kr/contents/?domain=2&ctype=A&site=0100000000&cid=dJRTVKaDAJb)

언론을 포함해 블로거 등 독립적으로 여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사건 현장의 사진 한 두 장을 놓고, '세월호 선내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해경은 그것을 못본 척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해경은 이쪽에서는 유리를 깨고 사람들을 구조하고, 저쪽에서는 그냥 죽도록 내버려뒀을까?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해경은 최선을 다해 구조 활동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보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3)으로 넘어가보자. 진도체육관에 몰려 있는 유가족들을 생중계하기 시작한 언론은 그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내보내며, 마치 뒤집어진 세월호 속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듯 보도하기 시작했다. 오전의 '전원 구조' 오보가 정정되고 난 후, 국민들의 관심이 비로소 쏠리기 시작한 시점인지라, 자극적인 보도 소재가 필요했기에 모든 언론은 거의 암묵적으로 '저 속에는 생존자가 있다'는 전제를 너무도 당연하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7~8월 해수욕장에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4월의 바닷물 속에서, 설령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떠있다 한들, 몸이 바닷물에 닿는 한 하루 이상 실종자가 생존해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당 수역의 수온을 전제로 한다면 침몰 후 6시간이 경과했을 무렵 생존자가 존재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우리는 고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육체가 지닌 한계다.

세월호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뒤집힌 배에서 생존자를 발견해 꺼낼 수 있다는 발상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 더욱 명백해진다. 세월호의 높이는 50미터가 넘고, 수면 위로 드러나있던 배의 아랫부분에는 창문 따위가 없다. 배의 밑바닥이니까 당연히 '물 샐 틈 없이' 튼튼한 철판으로 용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생존자를 만약 잠수부가 발견한다면, 그 생존자는 수십 미터 물 속을 잠수하여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아무런 장비 없이, 이미 지칠대로 지친, 훈련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말이다. 이 조건이 과연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세월호 침몰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1), (2), (3)의 '상식'은, 모두 사실이 아닌 그저 희망사항에 기반한 것들이다. 해경은 최대한 빨리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배가 4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였다. 선장과 선원이 탈출하면서 선내에 승객들이 얼마나, 어떻게 존재하는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탓에,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는 작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선내 진입 시도가 있었지만 배가 너무 많이 기울어서 100톤급 구조정에 실린 장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배가 완전히 뒤집힌 다음에는 사실상 생존자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침몰 당일, JTBC의 손석희 사장은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9에서 백점기 부산대조선해양공학과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백점기 교수는 "세월호 격실이 폐쇄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며 배의 구조상 공기 주입을 하더라도 사실상 생존이 불가능하다"며, '에어포켓'에 생존자가 남아있을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손석희가 10여초간 침묵한 것은 세월호 참사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왜, 언론은 이후에도 '에어포켓'에 집착하며 '골든타임'을 되돌려달라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습 작업에 매진하던 해경을 몰아붙였을까?



여객선 세월호 침몰...백점기 부산대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전화 연결
http://youtu.be/VQLyJu_1F6Q?t=5m55s

사고 당일 언론인으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손석희마저도, '다이빙 벨'을 투입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편승하고 오히려 그것을 부추김으로써,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논의는 더욱 수렁에 빠져들었다. 언딘과 해경의 유착설이 떠오르면서 정작 그 해경이 사고 초기에 174명을 구조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혔다. 승객을 구조해낸 해경의 공로는 완전히 도외시되고, 그들은 '자력으로 탈출'했다는 식으로 보도되기까지 했다.

세월호 같은 크기의 배에서 당신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내린다고 가정해보자. 차갑고 조류가 빠른 진도 앞바다에서, 몸이 떠있고 숨을 쉰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살아있다'는 뜻은 아니다. 빨리 안전한 배로 옮겨 타야 한다. 배가 침몰하는 바다에는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며, 그것에 부딪치면 부상을 입는다. 물에 뛰어내리는 과정에서도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바다로 '탈출'한다고 해서 자력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그런 오만은, 안전한 곳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헛소리라는 말이다.

앞서 인용한 박상욱 경장의 인터뷰를 조금 더 읽어보자. 구조 현장의 모습은 이랬다.

잠시 뒤에 또 한 사람이 의식불명인 채로 배로 옮겨졌습니다. 학생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이름표가 ‘정찬웅’이었을 겁니다. 이형래 경사와 제가 즉각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떠 있어 건졌는데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고 구조대원 중 누군가가 전해 주었습니다. 뇌진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의 神이 끌어가기 전에 제가 살려내야 한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도해도 이 친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폐 소생술이 예상외로 무척 힘이 듭니다. 제가 지치면 李 경사가 시도하는 식으로 교대로 했지만 더 이상 바이탈 사인(Vital sign·호흡, 맥박, 체온, 혈압 등 活力 징후-注)이 생기질 않아서 헬기로 후송시켜야 했습니다. 그럴 때의 절망감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뉴스를 들으니 사망했더군요. 
"세월호 조타실로 진입했던 海警(해경) 朴相旭 경장: "제발 사실대로만 써주세요. 부탁입니다"", 조갑제닷컴, 2014년 5월 26일.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941&C_CC=AZ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참사이기도 하다. 사건 당일, '에어포켓' 따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손석희는 며칠 후 '다이빙 벨'에 올인했다. 그 기적의 다이빙 벨이 현실 속에서 검증되어 어떤 민망한 결과를 연출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서술하지 않겠다. 세월호 참사 내내 가장 믿음직하다고 여겨졌던 '손석희 뉴스'가 이런 식이었다. 냉정한 사실을 파악한 후 그것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대신, 헛된 가능성을 부풀리며 '희망 고문'을 하는 여느 언론의 대열에 동참하고 만 것이다.

오히려 이번 참사에서 유일하게 사실에 입각한 진실을 말하던 언론인은 조갑제 뿐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조갑제'라고 말하고 있다. 조갑제는 달랐다. 그는 4월 17일, 그 누구보다 빨리 세월호의 침몰이 과적 및 화물 결박 문제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화물을 제대로 묶지 않으면 급회전 때 탈락, 배가 기울 수 있다", 조갑제닷컴, 2014년 4월 17일,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473&C_CC=AZ). 후속 보도인 "파도 없는 바다에서 이 정도의 急변침만으로 큰 배가 전복된다면 海運이 성립될 수 없다!"의 내용을 인용해보자.

배의 操舵(조타)는 35도 이상 꺾을 수 없다. 배는 덩치가 커서 자동차처럼 핸들을 꺾는다고 금방 회전하는 것도 아니다. 즉 급회전만으로 배가 顚覆(전복)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급회전이, 무게중심이 높은 船體(선체)를 기울게 하고, 여기에다가 적당히 묶어두었던 컨테이너 등 화물이 풀려, 그쪽으로 쏠리고 여기에다가 강한 潮流가 가세하면 배는 復原力 한계를 넘게 되어 전복되는 것이다. 
"파도 없는 바다에서 이 정도의 急변침만으로 큰 배가 전복된다면 海運이 성립될 수 없다!", 조갑제닷컴, 2014년 4월 17일,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480&C_CC=AZ

나는 조갑제의 거의 모든 정치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를 애국자로 내세우는만큼 나도 애국자라고 생각하지만, 박정희와 이승만을 우상화함으로써 그 애국이 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오히려 그런 식의 우상 숭배로 나아가는 것이, 과연 조갑제 본인이 말하는 바와 제대로 부합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있어서만큼은 조갑제가 옳다. 조갑제만이 올바로 사태를 파악하고 보도한 언론인이었다.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여 해경 뿐 아니라 세월호 선장의 변호사까지 인터뷰하는 언론인도 조갑제 뿐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고 있는 오직 단 한 사람을 꼽자면, 적어도 나는 손석희가 아니라 조갑제의 손을 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에 나섰던 해경을 언론은 '참사의 원흉'으로 몰아갔다. 7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는, 청와대에 거주하는 시사평론가 박근혜 씨는, 그 언론 보도를 고스란히 받아적어 '대통령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시사평론가 박근혜 씨는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라고,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선포'하면서, 해경을 해체해버린 것이다. 너무도 노골적인, 희생양을 만들어 국민들의 분노한 여론으로부터 도망가려는, 꼬리 자르기였다.

9. 朴 대통령은 성난 여론 앞에 해경을 희생양으로 바쳐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잠수사들이 죽어 나가는, 목숨을 건 屍身(시신)수습 작업의 주체인 해경을 격려하고 보호하기는커녕 선동 언론과 합세, 뭇매를 때린 대통령을 공무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세월호 침몰 후의 사태 전개 정리: 언론이 가장 큰 개혁대상임을 확인", 조갑제닷컴, 2014년 5월 30일,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992&C_CC=AZ


4. 조선일보는 어쩌면, 알고 있었다.

박근혜가 하는 말이라면 덮어놓고 믿지 않는 수많은 야권 성향의 인사들이 참 많다. 그런데 그들도 백이면 백, 저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말만큼은 철석같이 믿는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전제조건을 시사평론가님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지점이 발견된다. 해경 해체가 발표된 후 각 신문사에서 내놓은 사설들을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해경 해체의 논리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올바른 일이 된다거나, 조선일보가 찬성하는 일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건 그들은 특유의 정보력과 여론 감각을 가진 '1등 신문'이다. 해경 해체에 대한 조선일보 사설을 읽어보자.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해경 해체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세월호 사태에서 드러난 해경의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해양 구조·구난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해경의 무능과 무책임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해경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문제 의식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해양 구조·구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해경 본연의 업무이자 우리의 주권 수호와 직결된 해양 경비·경계 역량을 약화하는 쪽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볼 때 해양 경계·경비 업무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별도의 해양 경비 조직이 꼭 필요하고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사설] 해경 해체에도 '海洋 주권' 지킬 기구는 강화해야", 조선일보, 2014년 5월 21일, http://m.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4052004191&sname=news

사설 전체에서 해경에 대한 비난이 등장하는 문장은 딱 두 줄 뿐이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해양 구조·구난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해경의 무능과 무책임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해경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문제 의식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두 문장 외에는 모두, 해양주권을 지키기 위한 별도의 조직이 왜 필요한지, 중국의 해양 영유권 주장이 거세지고 중국 어선들이 우리 바다에서 활개를 치는 지금 특히 왜 절실한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지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행간을 꼼꼼히 읽어보면 조선일보가 과연 해경 해체에 찬성한다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하다. 주요 부분들을 짚어보자.

"바다 주권(主權)을 지키는 해양 경계·경비 업무가 국가안전처 내 실(室)·국(局) 단위 조직으로 편입되는 셈이다. 주권 수호 기능이 구조(救助) 기능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은 머지않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해경이 세월호 구조 작업에 매달려 있는 사이 중국 어선들이 우리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연평도·백령도·흑산도 등 주요 어장에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매단 중국 어선만 눈에 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 어선들은 도끼와 낫, 쇠창 등으로 무장한 채 떼를 지어 다니면서 어종을 가리지 않고 불법 남획을 일삼고 있다. 준(準)군사작전이나 다름없는 이들에 대한 단속 업무까지 국가안전처가 맡게 되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은 지금 해양 주권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 조치들을 취해나가고 있다. 육·해·공군과는 별도의 해안경비대를 강화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국방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국방 개혁 기본계획에서 현재 육군이 맡고 있는 해안 경계 업무를 2021년까지 해경에 넘기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해경이 해체되면 국방 기본계획까지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내용들을 앞에 한참 늘어놓은 후, '국민 모두 분노했다, 박근혜의 인식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며 해경 해체에 슬쩍 찬성하는 모양새를 만드는 조선일보는, 어쩌면 '해경 책임론'이 세월호 사태에 대한 올바른 진입 경로가 아님을, 늦어도 이 시점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후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 언론들은 종편 방송사를 총동원하여 유병언 일가에 대한 검찰의 추적에 집중했다. 반면 진보 언론들은 계속 '해경 책임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세월호 책임론'을 물고늘어졌다. 여당과 야당의 대응도 바로 같은 경로로 나뉘었다. 그리고 우리는 8월 25일 현재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조선일보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그게 꼭 옳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조선일보에서 찬성하는 일이 다 나쁜 일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뭔가 독특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거기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해경 책임론이 바로 그렇다. 이미 조선일보는, 앞서 우리가 살펴본 사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바, 어느 정도 손을 털었다. 혹자는 그 이유를 '해경을 감싸기 위해서다, 더 큰 음모가 배후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양가가 없어서'라고 보는 편이 좀 더 간명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 관계자들은 대부분이, 특별법과 특검 없이도 경찰과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었고,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이준석 선장을 포함한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이 대표적이다. 해경 대원들 역시 재판의 참고인으로 많은 조사를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면, 해경은 그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면수심'이라고 비난받던 세월호 선원들 중 일부도, 자신들이 그 배에서 탈출한 후에는 창문을 깨고 승객을 구조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조금씩이나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야권의 대부분에서 공유하고 있는 잘못된 프레임이다. '전원 구조'가 오보라면, '전원 구조할 수 있었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가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세월호는 침몰 시작 후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전복되었다. 흘수선과 가까운 곳에, 자동차를 싣기 위한 격문이 설치되어 있는 로로선(Ro-Ro船)의 특징이다. 무게중심이 높아서 잘 뒤집히고, 전복되기 시작하면 그 피해를 걷잡을 수 없다. 1994년 9월 28일, 노르웨이의 여객선 에스토니아호 사건이 그렇다. 01시 00분 무렵에 쾅 소리가 들렸고, 01시 30분 무렵이 되자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선원과 승객을 포함해 989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138명이 구조되었고 그 중 한 사람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고와 비교해보면 세월호 침몰에 대한 한국 해경의 대응이 과연 '늑장 대응'이었다고, '무책임한 태도로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수수방관했다'고,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적어도 조선일보는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야권의 인식을 굳이 교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전제를 놓고 달려들게 내버려두는 편이 '정치적'으로 볼 때 좀 더 나은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요구하는 '진상 규명'이 '해경 책임론'에 근거하고 있는 한, 진도 VTS가 어쨌고 저쨌고 언딘이 어쩌고 저쩌고에 매달려있는 한, 야권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배가 기울기 시작한 순간 비극이 시작되었음을, 선장과 선원들이 잘못된 선내 방송을 틀어놓고 탈출해버린 한 승객을 전원 구조하는 것은 불가능했음을, 설령 승객 전부가 바다에 뛰어내렸다 한들 불행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음을,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언론은 희생양 만들기에 골몰했고 박근혜 정권은 그 여론몰이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해경 해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초강수를 두었다. 진상을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부로서의 책무를 내팽개친 것이다. 로로선이 기울어진 이상 비극은, 크건 작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우리가 먼저 깨닫고,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살려내라'고 해경을 향해, 청와대를 향해, 그 누군가를 향해 삿대질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영악한 '1등 신문'은 그 포지션에서 이미 발을 빼고,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유가족 중 특히 김영오 씨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쪽에서 먼저 저들보다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또 당할 것이다. 뱀처럼 지혜로우며 비둘기처럼 온유하라는 성경의 말을 되새겨보자. 그렇게 기울어진 배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해경이 뛰어들었다면, 그들은 희생자들을 구조하기는 커녕 스스로가 시신이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야권 언론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선량함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 기존의 논의에 매달려있을 때, 조선일보는 이미 그들을 두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5. '침묵의 카르텔'을 향한, 김영오 씨와 우리 모두의 싸움

본격적인 신상털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자료를 확보해두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영오 씨가 작년 7월 충남 궁도협회에서 궁도 초단을 땄다는 그런 '정보'는 과연 어디서 어떻게 입수할 수 있는 것인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실 확인이 좀 더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아무튼 조선일보는 방향을 정했다. 신상을 털겠다는 것이다.

이 신상털기가 무서운 이유는 단지 김영오라는 한 사람을 궁지로 몰아붙이기 때문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공동의 의제로 소화되어야 할 사안을, 단지 한 사람의 '땡깡'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거칠게 막아서고, 대신 김영오라는 사람, '유민 아빠'라는 누군가가 과연 정말 그렇게 가난해서 딸 양육비도 안 보냈느냐 마느냐로 화제의 촛점을 옮긴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더욱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월호 특별법이 정말 '수사'하고 '기소'해야 할 대상은, 현장에 출동한 해경이 아니라, 세월호라는 배를 그런 식으로 개조하고 운항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총체적 안전 관리 시스템이다.

해경들이 순간 그 장소로 순간이동해서 기관실의 마이크를 빼앗고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라'고 방송을 했다면 아마 전원 무사히 구조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간 해경의 123정이 도착했을 때 이미 세월호는 45도가 넘도록 기울어져 있었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다음에야 그보다 더 기울어지고 있는 배에 올라탈 수는 없다. 구조대원은 구조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를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인원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권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해경 책임론에 목을 매고 있고, 그들의 죄과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며, 청와대와 여당에서 그것을 순순히 내놓지 않자 '더 윗선에 닿은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숙덕거린다. 만약 그렇게 거창한 음모가 있다면, 과연 특별법에서 정한 그 알량한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윗선'을 죄다 털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야권과 야권 성향의 언론들은 있지도 않은 음모와 복선을 찾아야 한다고, 마치 지붕 위의 닭을 쳐다보는 개처럼 마구 짖어댔다. 자녀들의 생죽음을 경험한 유족들이 그러한 의견에 휩쓸려버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누가 김영오 씨의 신상을 털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조선일보다. 하지만 누가 김영오 씨를 고립시키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오히려 검증할 수도 없는 음모론과 해경 책임론 등등을 유포시킨 모든 언론 및 야권에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합심하여 세월호 유족들에게 검증될 수 없는 진실을 요구하도록 몰아갔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배가 뒤집혔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배가 왜 뒤집혔을까? 안전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있었어도 엉망으로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배가 뒤집힌 이후, 승객들을 '전원 구조'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는 듯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만약 밝혀진다면 박근혜 정권이 발칵 뒤집힐 것 같고, 결코 입증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 해경은 민간인 어선들과 협력하여 최선을 다했고, 배가 뒤집혀버린 후에는 '에어포켓' 따위 없었으며, 생존자를 구조할 가능성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야권의 논지가 세워졌다면, 오히려 그들은 해경을 해체해버린 박근혜 정부를 향해 강력한 비난의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무슨 대통령이 어떤 부처의 정상적인 기능 수행을 '실패'라고 단정짓고, 대뜸 해체를 선언해버린단 말인가? 이보다 무책임한 국정 총책임자를 우리는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야권 정치인과 언론들은 '해경 책임론'에서 시사평론가 박 모씨와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바, 박근혜를 욕하면서도 박근혜의 정책을 지지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진실게임'을 벌이다가 야권이 쓴맛을 본 2010년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국제합동조사팀이 '북한의 어뢰에 천안함이 피격되었음'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 언론들은 계속 온갖 음모론을 양산했고, 심지어 '이스라엘 잠수함이 서해 바다에 와서 천안함을 들이받았다'는 기상천외한 소리까지 등장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 영해로 북한 잠수함이 침투했다는 점을 두고 정부와 여당을 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기회는 전부 날아가버렸고, 대신 무능한 군과 정부가 애국자 행세를 하는 꼴이 연출되고 말았다. 지금 벌어지는 일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한 해에 80여명씩 '자살'로 처리되는 군내 사망 사고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군대 속에서는, 4년마다 세월호가 한 척씩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보자.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왜 이딴 배가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었느냐이다. 그 이유를 우리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배의 안전을 검사해야 할 한국선급은 사실상 선주들의 이익단체이며, 심지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감사를 받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선급 전영기 회장은 4월 25일 사표를 제출했고 그 사표는 깨끗하게 수리되었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그를 비롯한 한국선급의 고위직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배가 침몰해서 벌어진 참사에 대해, 배가 침몰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수사하며 예의 주시하는 대신, 정작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고 있던 이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이 현상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해경의 고위직들이 한국선급에 수사 정보를 흘려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심각하게 다루고 밝혀내야 할 일이지만, 공권력 전체에 대해 묻지마 불신을 형성하고 퍼뜨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안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통해 어떤 진실을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그 지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 아니 그 전에 협상 주체로 나서는 이들의 전반적인 합의가 과연 이루어져 있는가. '모든 의혹은 낱낱이 밝혀낸다'는 추상적인 구호 말고, 대체 무엇이 의혹의 대상이며 무엇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야권의 입장은 중구난방이며, 가장 극단적인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세월호 참사 현장 사진 한 두 장을 가져다 놓고 '왜 당신들은 저 배에 뛰어들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식으로는, 그러나 그 어떤 '진실'에도 다가가지 못할 것이 너무도 명백해지고 있다.

한 발 떨어져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면, 세월호 참사의 배후에는 '안전'과 '이윤' 가운데 후자를 택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한다. 배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화물을 싣고 승객을 태우는 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그렇게 생긴 이윤을 나눠먹는 사람들이 서로 입을 싹 씻고 다물어버리겠다는 합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침묵의 카르텔'은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다. 가령 최근 28사단 폭행 사망 사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군 내부의 문제들이 그렇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모아놓으면 확률적으로 폭행, 가혹행위, 사망 사건 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군이 조직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그러한 일들을 은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군은 윤일병의 사망 원인을 질식사로 몰아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은폐 시도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음을 너무도 확연히 바라볼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세월호 피해자들과 군 사망 사건 피해자들의 접점이 생긴다. 수학여행 보낸 자식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부모와,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보낸 아들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부모는, 모두 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에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선급을 포함한 해운업계라는 거대 조직, 혹은 군대라는 거대 조직은, 자신들이 '별 일 없이' 누려온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고 여론을 몰아간다.

현재 군 지휘관이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군사법정의 재판권을 시민사회가 일부 되찾아오지 않는 한, 군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를 은폐하려 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전한 해상교통수단을 이룩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 한, 여전히 위험한 불법 개조를 감행한 배들은 바다 위를 활보하고 다닐 것이다.

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에 맞설 때, 비로소, 딸에게 줄 양육비는 없고 국궁 쏘러 다닐 돈은 있다고 여론몰이당하고 있는 김영오 씨는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야권과 언론이 만들어온 프레임을 유지하는 한 세월호 유족들은 사회적으로 점점 더 고립되어갈 뿐이다.

'진상규명'이 아닌 '안전회복'에 더 무게를 두고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론전의 각도를 재설정해야 할 필요성도 바로 거기에 있다.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도 없는 국정원의 세월호 음모 따위에 계속 발목을 잡혀있으면 곤란하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고, 배가 침몰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손쓸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향할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비겁하게도 행정부의 한 조직을 통째로 쳐냈다는 것이다. 어떤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가, 어떤 진상을 규명해야 하며 무엇은 의혹의 대상이 아닌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지금이라도 시작되어야 할 필요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jeongtae-roh/story_b_5706973.html

2014-08-12

[북리뷰]대학을 접수한 자본의 대학경영

[북리뷰]대학을 접수한 자본의 대학경영

기업가의 방문
노영수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깃배에 탔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를 버티면 용하다고 빈정거렸지만, 그는 이겨냈다. 휴학을 하고 한 학기에 걸쳐 배를 탔다. 계약된 기간을 다 버티지 못하고 내리면 최저시급에 턱없이 부족한 기본급만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과를 휴학한 복학생 노영수는 그 시간들을 징하게 버텨냈다. 그렇게 번 돈은 316만9000원. 지난 학기 등록금과 똑같은 액수였고, 등록금이라는 것은 매년 치솟는 탓에 2008학년도 등록금인 337만500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배를 타고 번 돈을 들고 그는 학교로 돌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학교는 고깃배와 달리, 낙오자의 몫을 남은 사람들이 갈라먹는 그런 잔인한 곳이 아니었다. 노영수의 회고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학생 자치 및 교육에 있어서 ‘선’을 넘지 않았다. 2003년에 그가 입학할 무렵 중앙대학교 재단은 가난했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었고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대해 많은 재정적 지원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영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은 그 시절을 ‘좋았던 때’로 기억한다.

고깃배를 타고 파도를 건너 돌아온 복학생과 함께 한 기업가가 중앙대학교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는 이사장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형식을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CEO가 경영하는 기업처럼 운영되었다고 노영수는 증언한다. 두산에 소속된 회사원들이 학교의 세부사항을 관리했다. 기업화된 대학은 인기 교수 진중권의 해임에 맞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을 꼼꼼하게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노영수는 마지막 학기에 본인이 속한 독어독문과 학생회장에 당선되지만, 이미 ‘찍힌’ 그의 이름으로는 과대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재단은 통보해왔다. 노영수의 말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마치 두산중공업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수행했던 것과 같은 그런 다양한 기법들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기업가의 방문>은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을 차용한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 귈렌에 차하나시안 부인이 방문한다. 그 노부인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데, 과거 자신을 임신시켜놓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여 배신한 첫사랑 알프레드 일을 누군가 죽인다면 귈렌의 시민들에게 1000억 프랑을 나누어 주겠노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 제안을 못 들은 척하던 사람들은 점점 술렁이기 시작한다. 있지도 않은 돈이 생겼다고 들떠서 씀씀이가 커진 시민들은 결국 알프레드 일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기어이 죽여버린다. 노부인은 약속했던 1000억 프랑을 남겨두고 귈렌을 떠난다. 뒤렌마트의 희곡은 거기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의 방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통제받지 않는 금융과 자본은 결국 파국을 불러올 뿐이라는 교훈을 안겨주었지만, 해묵은 시장주의의 논리는 오늘도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뒤덮으며 또 다른 ‘기업가의 방문’을 예고한다.

법인화된 서울대학교는 최근 두산그룹의 전 회장 박용현을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동생이며, 중앙대학교의 이사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서울대학교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우리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기업가의 방문>을 꺼내어 한 페이지씩 다시 읽어나갈 뿐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8-03

[별별시선]교통사고다, 그래서?

[별별시선]교통사고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일종의 교통사고인가?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 이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역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및 피해자들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언론, 정치인, 시민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발언에 대해 격렬한 반대의 뜻을 표하고 나섰다.

물론 그러한 발언이 나온 맥락과 시점을 고려해보면 두 사람의 여권 인사는 정부와 여당으로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다. 내게 쏟아질 수 있는 비난을 무릅쓰고, 감히 물어보겠다. 세월호 참사는, 그렇다면, 교통사고가 아닌가?

경향신문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김혜진 국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분노한 건 사고 자체가 아니라 사고가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속에서, ‘교통사고’는 ‘구조 실패’보다 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선행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향후 방지해야 할 것은 사고 그 자체다.

좀 더 정확히 말해보자. 이미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망자와 생존자, 실종자와 그 모든 이들의 가족 및 친지들이 겪었고 앞으로도 겪게 될 고통을 그냥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에 잔인한 현실이 존재한다. 이미 벌어진 비극으로서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동정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저질러진 일, 이미 벌어진 비극 앞에서, 우리의 감정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세월호의 침몰과 그로 인한 대량의 인명 손실을 그저 ‘세월호의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그런 위험을 끌어안고 있다.

‘세월호는 일종의 해상 교통사고’라는 발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반발한 것은 그런 면에서 최선의 대응이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교통사고’처럼,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 우리가 살다 보면 우연히 겪기도 하는 일이, 이렇듯 참사로 비화될 수 있다고 응수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는 과거의 사고이며, 희생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이 겪은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확률적으로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며, 현재와 미래의 사고이다.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누가 놀러 가라고 했냐, 누가 죽으라고 했냐’고 막말을 퍼붓는 어르신들 또한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확률상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즉 ‘교통사고’라는 프레임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논의의 폭을 사회 전체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라고 누군가가 어떤 맥락 속에서 ‘막말’을 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그에게 ‘너는 교통사고 안 당할 것 같냐’고 ‘막말’을 되돌려줄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럼 그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뭘 했냐’고 쏘아붙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미 벌어진 비극을 놓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또 다른 사고의 가능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의 시민운동가 랄프 네이더는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를 통해, 충분히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 자동차가 교통사고의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광범위하게 규합해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움직임이다. 누군가가 이미 겪은 ‘참사’에서, 너와 내가 당할지 모르는 ‘사고’로, 논의의 초점을 옮기는 것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 부른다 해도 정부의 잘못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프레임 속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가 겪었고, 겪을 수도 있으며, 최선을 다해 예방해야만 하는, 그런 비극적인 교통사고인 것이다.


2014-07-29

[북리뷰]뿌리깊은 갈등의 다양한 비극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함규진 옮김·글논그림밭·1만2500원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서로를 향해 로켓을 쏘아대면서 전투를 시작한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공간은 특히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참혹하게 희생당한 사진으로 뒤덮였다. 저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선의와 분노로 가득찬 이들이 새로운 게시물을 올리면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묵묵히 리트윗이나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그들의 피로 흥건한 참상을 우리 스스로가 일종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지만, 우리는 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스마트폰 시대의 세계시민적 분노란 이런 게 아닐까.

1917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밸푸어 경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고, 그 일을 성취하는 데 대하여 팔레스타인에 거하는 비유대인의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한에 대해, 또는 타국에 거하는 유대인의 정치적인 상태에 대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렇게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원주민이 아닌 유럽 열강들과의 협상을 근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거주민임을 주장했다. 단지 말로만, 혹은 외교 협상 문서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총과 칼과 탱크와 포클레인 등을 서슴없이 동원했다. 하염없이 수세에 몰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87년 이스라엘군의 무장 점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인 ‘인티파다’를 벌인다.

2014년 현재까지 우리가 보게 되는 참상은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단단히 꼬여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재판 없이 구금하고 고문한다. 이스라엘의 폭력이 일상화된 탓에 감옥에 다녀오지 않은 남자를 찾기가 어렵다. 군인들은 병원에 찾아와 환자들을 두들겨패가며 시위 주동자의 행방을 묻고는, 애먼 사람을 몇 명 붙잡아간다. 이것은 분명한 인권 유린이며, 당장 중단되어야 할 조직적인 국가 폭력이다.

그러나 현장에 뛰어들어 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만화로 그려내는 코믹저널리스트 조 사코가 보기에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그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암담하다. 이슬람 사회 특유의 고질적인 여성 차별, 폭력으로 종종 치닫는 내부 정파 갈등, 터무니없이 높은 실업률 등 이스라엘이 설령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서 손을 뗀다 하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의 해결이면서 동시에 비교적 작지만 지독하기로는 큰 차이가 없을 다른 문제의 시작일 것이다. 조 사코는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필체로 팔레스타인의 암담한 풍경과 비극적 일상을 처절하게 담아냈다.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곳에 갈 수 있다. 가자 지구의 진창에서 뒹굴면서 예루살렘의 깨끗한 호텔로 돌아갈 날을 고대한다. 비극을 ‘경험’하지만, 그 비극의 ‘일부’는 아닌 관찰자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당사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마주하면서 겪게 되는 거의 모든 딜레마를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좋아요’를 누르기 전에, 리트윗을 하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