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6년 2월 25일 오후 9시 현재, 개정된 국회법에 따른 필리버스터가 시작된지 40여 시간을 넘겼다. 한국의 정치에 이렇게 지적이고 품위 있는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뜬금없는 계기를 통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필리버스터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패배주의가 느껴진다. 어차피 2월 26일에 선거구를 획정하기로 했으니까 그때 새누리당에서 처리해버리겠지, 3월 10일까지 계속 이렇게 버티기만 해도 어차피 다음 회기가 열리면 즉각 처리되어 버리겠지, 그렇게 우리는 지금은 신나고 재미있고 흥분되지만, 결국은 지겠지. 이렇게 말이다.
심지어 허핑턴포스트에 제시된 기사 "필리버스터 후 테러방지법은 이렇게 처리된다"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철회하거나, 대통령이 테러방지법을 포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적혀 있다. 익숙한 이 느낌, 패배보다 앞서 먼저 스며들어오는 패배주의의 눅눅한 기운이 발목을 휘감는다.
2.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저지될 수 있다. 어떻게? 새누리당에서 딱 12명만 반대표를 던지면 된다. 다시 말해,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 테러방지법에 찬성하지 않는 의원들이 자신의 뜻을 표로 밝히면 되는 것이다. 열 명도 필요 없다. 여덟 명이면 테러방지법은 막힌다.
현재 국회의원은 총 292명. 그 중 새누리당은 절반을 넘긴 157석을 차지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만 전원 출석하고 찬성표를 던지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한 현실 앞에서 야권 지지자들은 '콘크리트 지지율', '어리석은 국민들', '새누리당 철옹성'에 손가락질을 하며 익숙한 절망 달콤한 패배의식에 다시 젖어든다.
하지만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작동시키고 있는 나라라면 새누리당의 의석이 과반이라 해서, 그 새누리당의 법안이 반드시 통과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며, 본인의 정치적 판단과 신념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건 어디까지나 선진국 이야기일 뿐이라고? 대한민국은 의회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그렇게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우리편 의회 독재'를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비난하는 '콘크리트 지지층'과 사실상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다. 우리가 진정 의회민주주의의 원리에 동의하고 그 힘을 믿는다면, 우리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체적인 판단과 자발적인 반대표에도 기대를 걸어야 한다.
게다가 그러한 기대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 모두 공천 칼바람이 불고 있는 계절이니 말이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는 유행어가 떠올랐는데, 바로 그것이다. 지금 여의도 최대의 관심사는 공천이며, 공천 탈락 예정자는 주변의 분위기와 소문, 기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자신이 탈락할 것임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지금 새누리당에는 '당론'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이번에 한 번 거르고 다음에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자는 생각조차 포기했을 수 있다.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혹은 당내 정치의 변화로 인해, 정치 인생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몇 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지면, '국가비상사태'는 의회민주주의의 힘에 의해 제압된다.
4.
이자스민 의원을 생각해보자. 이민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은 그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너무도 두텁다. 자신에 대한 뉴스의 리플을 다 읽는 이자스민 의원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는 그 어떤 지역구도 돌파하기 어렵다. 결국 그는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마치 지난 총선의 손수조 후보처럼 사석(死石)으로 던져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테러방지법에 대해 이자스민 의원의 양심에 묻고 싶다. 당신은 진심으로 테러방지법에 찬성하는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테러'를 악마화하는 이 법은, 이자스민 의원 본인이 대변하고자 하는 이주민들에게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를 더욱 북돋울 것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 이자스민 의원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 결혼이주민의 아이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테러범'이라고 조롱당하며 가슴 속의 울분을 쌓고 있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라고 누군가를 지목하여 인간사냥을 해왔다. 마찬가지로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게 누군가를 '테러단체'의 구성원이라고 지목할 권한을 줄 것이다. 설령 그 '테러단체'가 "UN이 지정한 테러단체"라고 규정되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그들은 '너 테러범'이라는 편견과 딱지붙이기를 전혀 해결할 생각 없이, 오히려 그 편견의 힘에 기대어 자기 조직의 권한을 늘리려 할 뿐이다.
여의도 정가의 복잡한 속사정을 다 알 수 없으므로 어쩌면 내가 잘못 짚고 있을지도 모른다. 새누리당 내에서, 혹은 저 위쪽에서 누군가가 각별히 이자스민 의원을 아껴서,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그런 지역에 그를 꽂아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주어진 정보만을 놓고 보면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렇다면 이자스민 의원은 새누리당으로부터 얻는 것도 없이, 자신이 대표하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한국인'들과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한국인의 자녀'들을 타자화하는 법에 찬성표를 던지는 셈이다.
5.
이자스민 의원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에는 양심적이고 사려깊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국가비상사태'를 들먹이며 직권상정을 했다는 그 절차적 하자가 이미 얼마나 심각하게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처사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친박계, 아니 진박계와 비박계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번 공천에서,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진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주어진다. 물론 불사조처럼 살아남는 몇몇 정치인은 수없이 정당을 바꾸지만 그 경우는 더 이상 대선주자급으로 부상하기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정치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고, 정치적 입지를 잃지 않으려면, 진영을 바꾸지 않거나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단 한 번만 갈아타야 한다.
만약 새누리당에서 야권으로 옮겨가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야권이 나뉘어 있어서 새누리당 이탈자에 대한 호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테러방지법을 부결시키는데 기여한다면, 그 공로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귀순을 하려면 미그기 정도는 끌고 내려와야 한다. 공천 싸움의 패배자 그룹은 대략 정리되었지만, 아직 출마자 명단이 확정되지는 않은 지금, '국가비상사태'와 '테러빙자법'을 쓰러뜨리고 의회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용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6.
비판자들의 비아냥이 들려온다. 새누리당에서 그럴 리가 있겠어? 정치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로 밉보이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이상하다. 그들은 진심으로 의회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면서, 오직 의회민주주의의 '겉모습'을 띈 단순한 권력 투쟁의 승리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실제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이것은 '박근혜가 테러방지법을 포기한다'와 같은 원천 불능의 요건이 아니다. 어쩌면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란, 예나 지금이나, 가능성의 예술 아니던가. 적어도 선택 가능한 답안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은 이미 수도 없이 지적되었다. 이제 나올 수 있는 논점은 대충 다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일단 법 자체가 굉장히 허술하게 만들어져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렇게 공식적으로 금융기록과 통신기록에 손을 댈 수 있게 되는 국정원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이 직권상정이 가능하게 된 '국가비상사태'라는 요건 자체가 허구임이 명백하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당 대 당'의 힘싸움으로만 정치를 바라보면, 우리가 빠질 길은 값싼 회의주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국회에 모인 민의의 대변자 몇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것조차 기대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수십만 수백만의 시민들의 생각이 바뀌어 의석 배분이 변화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7.
필리버스터라는 전무후무한 정치적 무대가 열렸다. 저 단상에 올라 자신의 양심을 선언하고 반대의 뜻을 밝힌 최초의 새누리당 의원이 된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의원이 된다면,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도 이제 고작 2년 남았다. 대통령은 지는 별이고, 새누리당으로부터 더 받을 것도 없다면, 양심을 지키며 마지막 정치적 불꽃을 불사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닌가?
2월 25일 밤 연단에 오른 더불어민주당의 강기정 의원은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만큼 평화롭게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 전까지 그는 '폭력국회'를 상징하는 인물처럼 여겨졌다. 벌금 500만원, 벌금 1000만원 등의 판결을 받고, 결국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것이다.
폭력의원으로 시작했지만 토론으로 의정생활을 마무리짓게 되었다며 그는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당에서도, 주제에서 곧잘 벗어나는 강기정 의원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오히려 그를 도닥이기도 했다. 더 좋은 제도, 더 평화로운 방법이 있었다면, 싸우지 않고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국회 내에 공유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리버스터는 시간끌기다. 문제는 그 시간을 끄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이냐이다. 다가올 총선 결과를 예단하며 절망할 것인가? 아니면 새누리당 의원들의 양심과 식견에 호소해볼 것인가? 나는 한국의 정치권이 후자의 길을 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는 억지로 만들어낸 너무도 평화로운 '국가비상사태'를 의회민주주의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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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게시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