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뷰파인더㉔] 차라리 지방거점 국립대에 28兆 퍼붓자
●文 “부·울·경, 동북아 8대 대도시권 도약”
●일본의 97개 공항이 과연 경제 살렸나
●반도체 등 항공 화물 수요도 수도권에
●일단 짓고 나면 수요 발생? 일종의 신앙
●보스턴 증명하듯 도시경쟁력 핵심은 대학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5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 있는 해양대 실습선 선상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2월 25일 부산신항 다목적 부두에 있는 해양대 실습선 선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과 사퇴로 인한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여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카드를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그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직접 부산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산업과 경제의 절반 이상이 모여 있는 나라다. 수도권 집중을 막자는 대의에 원론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수도에만 자원이 집중된 나라는 그만큼 큰 빈부격차와 자원 불균형을 피할 수 없고, 이는 대외 경쟁력 뿐 아니라 국내 정치의 안정성마저도 해치는 요인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쌍수 들고 환영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대통령이 저 시점에 저곳에서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선거개입이라는 걸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옹호하기 위해 동남권 메가시티가 필요하다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이런 수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 메가시티라는 게 무엇인가. 인구 800만의 광역권을 1000만으로 만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신공항 건설은 메가시티를 이루기 위해 필수불가결한가. 혹은 도움이 되는가. 공항이 아니라면 무엇을 통해 어떻게 자족적인 경제권으로 기능하는 메가시티를 이룰 수 있는가.
2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
이는 사실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집계에 따르면 서울은 1988년 인구 1029만 명을 기록하며 ‘1000만 도시’가 되었지만, 2020년 말 현재 총인구 991만1088명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서울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인구 1000만이 안 되므로 메가시티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서울’은 서울특별시 그 이상의 존재다. 인천, 부천, 과천, 성남, 의정부 등 인근 광역시를 모두 자신의 생활권으로 포괄하고 있다. 인천과 경기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인 ‘수도권’은 2019년 12월 현재 그 외 모든 지역보다 인구가 많은 곳이 됐다. 앞으로도 그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은 대단한 글로벌 도시다. 소위 ‘국뽕’을 빨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2015년 1월 22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발표한 ‘글로벌 메트로 모니터’(Global Metro Monitor)에 따르면, 구매력평가 기준(PPP) 국내총생산(GDP)을 놓고 볼 때 2014년 한국의 수도권은 8459억600만 달러(한화 약 951조 8980억 원)로 도쿄, 뉴욕, LA의 뒤를 이어 세계 4위에 올라 있었다. 인구로 따져도 2460만 명으로 세계 5위다. 한국인 뿐 아니라 세계인이 서울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동남권은 어떨까. 같은 자료를 검토해보자. 브루킹스연구소는 부산과 울산을 하나의 도시 단위로 놓고 통계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현재 부산-울산의 구매력평가 기준(PPP) GDP는 2965억1000만 달러(한화 약 333조 6627억 원)로 세계 36위, 인구는 768만1200명으로 세계 49위에 머물고 있다. 경상남도 전체의 인구를 합하더라도 2021년 현재 80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구를 놓고 보면 더욱 갈 길이 멀다. 2040년까지 인구 1000만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19년 안에 200만 명의 순유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가정에서 아이를 열심히 낳는 것과 별도로, 국내에서 이사를 오건 해외에서 이민을 오건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또 정착해야 인구 1000만의 동남권 메가시티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또한 대단히 획기적인 인구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가깝다.
경제와 인구의 성장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밝은 미래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을 때 삶의 터전을 옮기는 모험을 감행한다. 내 자식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 좀 더 기꺼이 아이를 낳는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대한민국이 지금은 풍요로워도 그 구성원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있지 못하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19년 만에 인구 200만 명 순증가, 즉 현재 800만인 인구가 25% 늘어난다는 것은 고도 성장기에나 있을법한 엄청난 사건이다. 동남권 메가시티 플랜이 제대로 작동하고 성공을 거둔다면 온 나라에 긍정적인 선례가 될 테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필자가 어떤 정답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조심스러운 제안을 해볼 수 있을 뿐인데, 그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논하기로 하자.
일단은 분명한 오답에 대해 말해야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실은 문 대통령이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혹은 성추행으로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역시 잘 알고 있다. 가덕도에 28조 원을 들여 신공항을 짓는 것은 동남권 메가시티를 이루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한국에서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여러 공항의 실패 사례를 또 거론하지는 말기로 하자. 그보다 더 극적이고 확실한 교훈을 주는 사례가 바다 건너 일본에 충분히 많으니 말이다. 일본에는 총 97개의 공항이 있고, 그 중 54개가 지방관리 공항이며, 그 중 상당수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취지하에 ‘일단 짓고 본’ 공항이다. 그래서 일본 경제가 살아났던가.
2월 26일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대안)이 통과된 직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부산시장 후보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여기서 변성완 후보, 박인영 후보, 이낙연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김영춘 후보(왼쪽부터)가 박수를 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
두 논리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항공 운송은 선박에 비해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산업 차원에서 움직이는 항공 화물은 그 종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항공 화물이 바로 반도체인데, 모두가 알다시피 삼성전자의 공장은 평택에 있고 SK하이닉스의 공장은 이천에 있다. 둘 다 경기도, 즉 수도권이며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이 있지만 화물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가덕도 신공항을 통해 해외로 곧장 나가고픈 간절한 소망은 이해한다. 허나 해외 노선이라는 게 이쪽에서 공항을 만들기만 한다고 당장 생기는 대상이 아니다. 항공사가 노선을 개설해야 한다. 외국 항공사들이 인구 2000만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교통이 원활한 수도권을 두고, 인구 800만에 구매력평가 GDP로 세계 36위인 동남권에 별도로 직항 루트를 개설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공항이 있어도 취항하는 노선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세계로 통하는 노선’을 뚫을 권리는 외국 항공사에게 있다. 180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민주당이 미국 항공사에 ‘가덕도에 취항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가덕도 신공항을 어떻게든 옹호하려는 이들은 공항을 만들면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창출된 수요가 동남권 메가시티 창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을 뉴스 댓글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는 ‘카고 컬트’(Cargo Cult)라는 개념이 스쳐 지나간다. ‘화물 숭배’라 번역할 수 있다. 뉴기니와 인근 멜라네시아 각지에 사는 원주민들이 믿게 된 토착 신앙이다. 오지 중의 오지였던 그곳에도 19세기 후반부터 서구인들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거점으로 삼은 섬에 배와 비행기로 필요한 물자를 투하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현지인들 역시 그들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온갖 문명의 풍요와 편리를 맛보았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벌어졌다. 더 이상은 비행기가 오지 않았다. 하늘에서 ‘카고’가 오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자 현지인들은 비행기를 신의 사자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카고’를 신의 선물로 이해하는 자생적 신앙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카고 컬트는 점점 정교화되었다. 백인들이 비행장을 만들고 관제탑을 세워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을 본 일부 현지인들은 나무와 수수깡 등으로 가짜 비행기, 활주로, 관제탑 등을 만들었다. 심지어 항공관제사의 손놀림을 흉내 내며 ‘카고’의 도래를 기원하는 주술 행위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다고 비행기가 다시 날아와 ‘카고’를 주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알만한 지식인들이 희망사항과 현실을 뒤섞어가며 가덕도 신공항에 경제성이 있다는 둥, 일단 24시간 운항 가능한 국제공항이 생기면 부‧울‧경 메가시티가 탄생할 거라는 둥, 혹세무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마치 이제 전쟁이 끝났고 백인들이 와서 ‘카고’를 내려놓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카고 컬트를 이어나가는 족장이나 샤먼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있을까? 필자가 도시 정책 및 산업 정책 등의 전문가는 아니기에 타인의 식견을 빌려올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를 펼쳐보자.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의 제조업은 쇠퇴했다. 그 과정에서 도시 간 명암이 갈렸다. 보스턴은 법률, 금융, 생체의학 연구 등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경제적으로 부활했다. 디트로이트는 지금껏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육, 특히 연구 중심 거점 대학의 유무가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보스턴에는 하버드대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여럿 자리 잡고 있는 반면, 디트로이트는 그렇지 않다. 입학 순위가 높은 미시간대가 인근에 있긴 하나, 미시간대는 엄밀히 말해 디트로이트 시내가 아닌 미시간 주 앤아버에 있으며 별개의 생활권과 경제권을 구성한다. 디트로이트에는 ‘자동차 산업의 하버드’가 없었고, 그것이 두 도시의 명암을 갈랐다.
좀 더 확실한 사례로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스탠퍼드대는 애플 본사까지 고작 2km, 구글 본사까지는 8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스탠퍼드대에서 쏟아진 고급 인재들은 자신들이 대학에 다니던 바로 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생활을 꾸려나간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노동과 대학 교육은 불가분의 관계다. 대학을 빼놓고는 도시의 경제와 미래를 논할 수 없는 셈이다.
동남권 뿐 아니라 서남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메가시티가 가능하려면 미래 유망 산업과 연계된 대학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해법은 요즘 흔히 ‘지거국’이라 부르는 지방거점국립대에서 찾아야 한다. 대학 교육과 지역 경제 및 국가 산업 전략을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나는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에 대해 찬성한다. 어쩌면 김경수 경남지사나 문재인 대통령보다도 더, 진심으로 찬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28조원을 바다에 퍼붓는 것에 회의적일 뿐이다. 충분한 논의와 고민을 거쳐 그 돈을 각 지역의 거점이 되는 대학에 퍼붓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훨씬 나은 미래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남권 메가시티 논의가 보다 건설적인 해법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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