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1

이재명, 우원식, 민주당의 5.18 파시즘

이건 파시즘이다. 내가 직접 쓰기도 귀찮아서 챗GPT 굴림.

5.18을 역사적으로 되새기고 기념하며 그 정신을 새롭게 다지는 것과, 5.18을 앞세운 파시즘에 놀아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

(일러두기: 나는 5월 18일자 중앙일보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는 취지의 칼럼을 기재한 바 있다.)

우원식이 내놓은 개헌안 낼름 받아서, 그 장단에 놀아났던 분들, 다들 반성을 좀 해봅시다.


문: 행정부가 특정 기업을 불매하고,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겠다'는 나라가, 민주국가 중에 있나?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치가 유대인 기업에 할 법한 소리 같은데?

답: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부나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압박하는 사례는 있다. 그러나:

  • 행정부가 조직적으로 “불매”를 유도하고,

  • 최고권력이 특정 기업을 “응징하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하며,

  • 국가 권력을 동원해 보복을 암시하는 것

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치주의(rule of law), 정치권력과 시장의 분리, 표현·경제 활동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기업을 비판하더라도 보통은:

  • 독점 규제,

  • 탈세 수사,

  • 노동법 위반,

  • 국가안보 문제,

  • 소비자 보호

같은 “명시적 법적 근거”를 앞세운다.

반대로 “정권에 비협조적이다”, “마음에 안 든다”,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응징을 시사하면, 그 순간부터는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 정치의 냄새가 강해진다.

당신이 떠올린 1930년대의 사례도 완전히 엉뚱한 연상은 아니다. 예컨대 1933년 나치의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 은 국가권력이 특정 집단의 경제활동을 정치적·인종적 이유로 공격한 대표적 사례다. 물론 오늘날의 어떤 사건이 곧바로 나치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 비교에서는 규모·제도·폭력성·인종주의 여부 등을 신중히 구분해야 한다.

다만 정치학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은 있다:

  1. “국민”과 “반국민”을 나눈다.

  2. 독립기관·언론·기업을 “적”으로 규정한다.

  3. 국가권력을 이용해 경제적 불이익을 암시한다.

  4. 법 집행이 중립성을 잃고 충성 여부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헝가리 의 오르반 빅토르 체제, 튀르키예 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체제, 일부 시기의 러시아 등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형식상 선거는 존재하지만, 국가권력이 시장과 시민사회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비판이다.

핵심은 “민주국가냐 아니냐”를 이분법적으로 보기보다, 민주주의에도 정도(degree)가 있다는 점이다. 선거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민주주의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 혹은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다.


같은 질문에 대한 제미나이의 답변은 더 단호하다: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특정 사기업을 겨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겠다'고 선언하거나 행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주도하는 행위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이례적이며 법치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민주국가의 헌법과 법률은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기업의 경제 활동 활동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지적한 대로 이러한 형태의 전방위적 민간 압박은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 정권, 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 상점을 대상으로 벌인 조직적 보이콧(Judenboykott) 등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통제 방식에 가깝다.

다만 현대 민주국가에서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타격을 입히려 시도한 사례는 존재한다.

현대 민주국가에서의 유사 사례와 한계

현대 정치에서 정권이 특정 기업을 압박한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기업 압박: 트럼프는 재임 시절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던 워싱턴 포스트(WP)의 소유주 제프 베이조스를 겨냥해 아마존의 택배 요금 문제를 지적하며 우체국(USPS)에 요금 인상을 압박했다. 또한 CNN의 모기업인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법무부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이나 재임 중 하 Harley-Davidson, Goodyear 등의 기업을 향해 "제품을 사지 말라"며 사실상의 불매를 선동하는 트윗을 올린 바 있다.

  • 리차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보복 시도: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하던 워싱턴 포스트의 모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해당 기업이 소유한 TV 방송국의 면허 갱신을 취소하도록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압력을 가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이는 이후 '닉슨 테이프'를 통해 폭로되었다.

민주주의 시스템과의 충돌 및 제어 메커니즘

이러한 사례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응징'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부의 상호 견제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 사법부의 견제와 법치주의: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부는 행정권의 자의적인 행사를 제한한다. 만약 행정부가 합법적인 근거(반독점법 위반, 세법 위반 등) 없이 특정 기업에 불이익을 준다면, 해당 기업은 행정소송이나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법무부가 제기한 AT&T 합병 저지 소송은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 권력 남용 및 탄핵 사유: 대통령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해 특정 기업을 파멸시키려 한다면, 이는 헌법 수호 의무 위반으로 이어져 의회의 탄핵 사유나 퇴임 후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앞서 언급한 닉슨의 시도 역시 탄핵 발의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자가 거친 수사(Rhetoric)를 동원해 특정 기업을 위협하거나 지지층을 동원해 불매를 유도하는 정치적 행태는 간혹 발생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 행정력을 초법적으로 동원해 특정 기업을 '응징'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해당 국가는 이미 외형만 민주주의일 뿐 실질적으로는 법치주의가 무너진 독재 내지 권위주의 국가로 이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6-05-10

주담대 틀어막기는 강남좌파를 제외한 온 국민 '인종차별'

 

이 대퉁령의 '잔인한 금융'론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드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가난한 사람이 목돈을 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집을 사서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천천히 갚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을 악마화하며 그 요건을 매우 빡빡하게 조여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 방식 중 하나인 주택담보대출을 이렇게 막아놓고, 가난한 사람에게 대체 무슨 돈을 어떻게 빌리라는 말인가.

노정태. (2026-05-08). [노정태 칼럼]저신용자 고금리가 ‘잔인한 금융?’ 주담대부터 정상화하라!. 뉴스프리존. 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8739

매달 초 발행되는 '노정태 칼럼'. 뉴스프리존이라는 인터넷 매체에서 경제 관련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위대하신 이재명 대통령 각하께서 최근 '잔인한 금융' 어쩌고 하시면서 금융 제도를 또 이케저케 뜯어고치려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각하께서는 그 와중에 주담대를 틀어막다못해 아주 박살내고 계시죠.

이 두 가지 행태가 함의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이건 인종차별입니다.

뭔 소리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산층이 어떻게 성장했나요?

첫째, GI Bill을 통한 학자금 대출로 대학 가기 쉽게 해줌.
둘째, 참전 군인 중 '오직 백인'을 대상으로 모기지 쉽게 내줌.

이 중 첫째는 이명박 정부에서 했는데, 문제는 둘째죠.

미국은 설령 전쟁에 갔다 왔어도, 흑인들이 교외에 집을 사려고 할 때는 무슨 개같은 핑계를 대면서 대출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주담대를 틀어막는 것을 흔히 '레드라이닝'(Red Lining)이라고 하는데, 그게 바로 전후 미국이 흑인과 유색인종에게 저지른 최악의 인종차별입니다.

왜? 집값이 상승하여 발생하는 자산 상승의 혜택을 흑인이 못 누리게 한 거니까. 그렇게 흑인들은 계속 도심에서 월새 내고 살면서 랩이나 하라 이거죠.

지금 민주당 강남좌파(혹은 이재명 성남좌파? 암튼) 정권이 하는 짓도 똑같습니다.

이미 서울에 집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부동산이라는, 주식과 달리 인간의 생존과 번식과 번영에 필수적인 자산을 못 갖게 하고 있죠. 그러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 금융을 상대적으로 못 다루는 저소득층에게 돈을 더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이러면 결국 벌어질 일은 뭐다? 아주 끝장나는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이재명 정권 끝날 때쯤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산 없이 빚의 노예가 되어 있을 겁니다.

삼전닉스가 어쩌고 칠천피가 저쩌고 다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런 역할을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원문의 링크를 클릭해서 읽어주시면 제 글을 받아주는 작은 매체에도, 그리고 제게도,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6-05-02

박한슬. 『내 집에서 나이 들 수 있을까』(서울; 더퀘스트, 2026)



글 짓는 약사 박한슬 님께서 보내주신 책을 이제야 읽었다.

옛날에는 관혼상제를 모두 집에서 했는데 지금은, 관은 아예 없어졌고, 혼은 예식장, 상은 병원 장례식장, 그리고 제사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 모든 과정 중 특히 상이 문제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는 것은, 옛날과 달리,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라고 죽음이 짧고 짜릿하고 즐거운 것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오늘날의 죽음은 그렇지 않은가. 어디 요양병원에 유폐되다시피 한 상태로 앓고 앓고 자식들은 간간히 찾아오는둥 마는둥... 뭐 그런 스토리들.

이 책은 노화와 돌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논점을 짧은 분량 안에 효율적으로 담고 있다. 저자 사인에 적혀있듯,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것을 여성, 특히 며느리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는데, 그 모델이 파괴되자 '요양병원에서의 죽음'이라는 생뚱맞은 결말이 갑자기 들이닥치게 된 것이다.

더 최악은 따로 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는 것. 복지에는 돈이 드는데 아무도 세금을 낼 생각이 없다. '내놔라 공공임대' 하는 그쪽 사람들 말고, 그쪽 사람들 욕하느라 바쁜 자칭 보수 진영 역시 마찬가지다. 비용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책상 위에 한참 누워만 있던 책을 이제서야 집어서 후딱 읽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여러 지점에 대해 함께 논의해봤으면 좋겠다.

2026-04-27

조건에 맞서기, 운명에 맞서기

 

조건과 운명.

사람들은 흔히 이 두 요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운명에 맞서는 태도를 견지하되,
조건에는 순응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고,
극심한 연교차가 있고,
땅을 파도 석유는 나오지 않고,
국제적으로 쓸만한 무역항은 부산 뿐이며
북쪽은 어떤 유사국가 무장단체가 막고 있다.

이런 조건은 우리가 발버둥쳐서 바꿀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냥 순응하고, 그 속에서 전체 파이를 키우되,
서울과 경부선 라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이
어떻게 소외되지 않을지 고민하는 게 합리적이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내려와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나의 조건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조건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여기서 조건의 역설이랄까, 그런 게 생긴다.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그제서야 비로소 '운명'을 바꿀 여지가 생긴다는 것.

우리는 그렇게 선진국 문턱을 살짝 넘었다.
조건을 받아들이되 운명에 맞섬으로써.

민주당의 지역이기주의적 행태 앞에서
민주당 지지 고학력층의 골때리는 소리들을 보고
이분들은 대체 왜 이럴까 생각해 보았다.

이 사람들의 세계관은 정 반대가 아닐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조건을 '거부'하면서
운명에 순응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데,
그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운명에의 순응이다.

이영도가 피를 마시는 새였나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토끼는 자신에게 강한 턱과 이빨이 없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달린 두 다리와 큰 귀를 이용해
포식자를 감지하고 재빨리 숨어서 이겨낸다.

조건에 순응하는 것은 운명에 순응하는 게 아니다.
조건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운명과 맞서기 위한 첫 걸음이다.

대한민국은 충분히 큰 나라여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가 아닌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미국은 고사하고
심지어 일본과 비교하기에도 부적합한
그런 아담한 사이즈의 '영토국가'라는
조건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지방소멸은 극복할 수 있다.
심지어 운명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하에서
그 조건을 활용할 때에만 가능하다.

2026-04-23

너무도 단순한 돈의 방정식과 어두운 곳을 보지 않는 돈의 심리학

Housel, M. (2025). The Art of Spending Money. Portfolio(Penguin).
Housel, M. (2020). The Psychology of Money. Harriman House.

한국어판 <돈의 방정식>은 저자의 전작인 <돈의 심리학>의 후속편이다. 기왕 읽는 김에 두 권 다 구입했다.

두 책의 소재, 주제, 심지어 서술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무리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만족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두 권 모두 키워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enough'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안분지족'이 가능한 상태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저자가 <돈의 심리학> 챕터 3에서 언급하는 조지 헬러와 해지펀드 매니저의 일화가 바로 그렇다.

조지 헬러는 '저기 저 해지펀드 매니저는 네가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하루에 번다'고 말하는 커트 보네것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이 절대 갖지 못할 것을 갖고 있는걸... (그거면) 충분해.'

여기서 어떤 논리적 모순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조지 헬러가 <캐치-22>의 저자로서 가지고 있는 불멸의 명성은, "a hedge fund manager"만 가질 수 없는 게 아니다. 심지어 커트 보네것조차도, 보네것이 가진 명성과는 별개로,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신전속적이고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이 책을 읽을 수많은 이들에게 그런 일신전속적이고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냐는 거다. 나는 갑돌이의 아들이며 개똥이 아빠다, 라고 생각할 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모든 남자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모든 여자는 누군가의 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경제적' 가치와 자부심의 근원은, 말하자면, 일신전속적이고 고유하지만 딱 나의 친족 범위 내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더 끔찍한 경우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족이 됐건 직장 내에서의 인정이 됐건, 심지어는 가족의 틀을 넘어서는 사랑(aka 불륜이나 그... 뭐 수간? 같은 것)이 됐건, 그 고유한 가치가 경제적인 이유로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확고하고 단단한가? 과연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가?

돈 때문에 작살난 가족은 돈이 없어도 파괴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돈 문제로 크게 고심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모건 하우절의 두 베스트셀러가 그렇게 막되먹은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저자는 몹시 사려 깊은 문장과 어조로, 술술 읽히도록, 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지만 무시하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숙달된 미국 저널리스트의 글쓰기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나다. 배울 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거기서 만족하기 어렵다. '돈의 심리학'을 어기게 되는, 불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선택을 하고야 마는, 그런 '심리학'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애석하게도 미국의 대중 교양 서적 시장은 그러한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이러저러한 호르몬 작용이라고 매도하거나, 아무튼 깊게 따져볼 필요도 없는 무언가로 치부할 따름이다.

나는 그게 매우 애석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인문학이라는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할 일이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