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31

5월 30일 가디언에 올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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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outh Korea: A demonstrator sticks a sign on a police bus during a protest rally against the recent South Korea-US agreement on the expansion of US beef imports

Photograph: Jeon Heon-Kyun /EPA



The Guardian, 30.03.08. 24 hours in pictures



30일자 가디언에 올라온 사진.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2008-05-29

왜 외신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까

100여명이 강제 연행된 지난 화요일, 하지만 외신은 잠잠했다. '닭장차 탑승 시위'의 재기발랄함은 여중생이 연행되는 황망함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주요 언론들은 이명박의 중국 방문을 톱 기사로 다뤘고, 한겨레와 경향 등 일부 언론만이 경찰의 과격 진압을 문제삼았다. 네티즌들은 '우리 편'이 되어줄 언론을 바다 건너에서도 찾았지만, 외신은 침묵하고 있다. 나는 하루에 수십번씩 BBC 뉴스를 체크한다. 가디언과 NYT등도 빠지지 않고 훑는 편이다. AP는 통신사니까 제외한다고 치면, 한국의 현 정국을 전면적으로 다루어주는 외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외신 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주 말부터 이번주 수요일까지 벌어진 게릴라성 촛불시위는 '깜'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재미있고 놀랍고 또한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고작' 100여명이 잡혀들어갔을 뿐이라면, 사망자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외신의 지면이 그 시위에 할애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제'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그정도 스케일로는 충분하지 않다. 뉴욕타임즈와 가디언의 목요일자 국제면을 살펴보자.



5월 29일 뉴욕타임즈 국제면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5월 29일 가디언 국제면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영국이 집적탄 제거 조약에 가입했다는 것, 중국 댐의 범람 가능성이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뭐 이런 등등의 기사가 눈에 띈다. 이쯤은 되어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간지의 지면을 차지할 수 있다. 가디언을 보자. 팔레스타인과 대화하고 있는 이스라엘 대통령, 신간 서적을 통해 폭로된 이라크전 관련한 부시의 거짓말, 이런 것들이 주요 기사로 다루어진다. '일반 시민' 100여명으로 구성된 '일반 시민'들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 따위는 없다. 이건 그들의 국적이 한국인이어서도 아니다. 미국에서 같은 시위가 미국인에 의해 벌어졌다 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시위는 국제 뉴스 꺼리가 되지 못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강조하는데, 나는 오늘 저녁 광화문이나 시청 앞으로 향할 계획이다. 4시 발표되는 고시를 KBS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글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는 촛불시위를 외신에서 다루어줄 가능성은 앞으로도 거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외신 기자들이 보기에, 무역 장벽 완화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는 언제나 있어온 것에 불과하며, 특히 광우병의 공포를 내세워 쇠고기 수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입장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촛불시위대는, 우리 스스로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건 간에, 외신 기자들의 눈에는 '반 세계화 시위대'의 일부 정도로 취급되고 있을 터이다.

이 문제를 진정 세계적인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싶다면, '시민'들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비단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 한미 FTA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고, 치솟아오르는 원자재 가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조직해나가야 한다. 민주노총은 룰라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노동자중앙조합(CUT)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노동단체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시위를 하면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통합민주당이 오늘에서야 반대 성명을 내고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태까지 이 문제가 국외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비호해주고 있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소비자운동에 불과하지 정치적인 이슈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이후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어제까지 민주당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정치적인 쟁점으로 외신 기자들에게 인식되지 못했고 그 결과 100여명이 연행되면서도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 수 없었다.

여기서 나는 최근 과격 시위의 진정한 배후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를 거리로 내몬 장본인은 다름아닌 노무현이다. 그가 유언처럼 남겨놓고 떠난 '한미 FTA 타결'은 그만큼 야권의 움직임을 제한했고, 그에 따라 야당은 적극적인 반발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이 문제는 인터넷에서만 떠돌 수밖에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는 반대하지만 한미 FTA에는 찬성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앞뒤가 안 맞는다. 이번 이슈는 한미 FTA에 대한 전적인 재검토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슈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더 이상 '깃발 내려'같은 소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촛불 옆에 깃발이 함께 설 때도 되었다. 각계 각층에서 반발하고 있다는 말이 시위를 통해 표현되기 위해선, '당신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잖아'라는 목소리가 잦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일반 시민'만이 반대하는 이슈에 대해 외신은 절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언제나 존재하는 단편적인 불만 세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를 통해 이명박 정부에 진정으로 타격을 주고 싶다면, '폭력 시위'라는 딱지를 진작부터 달고 살았던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의식의 성장일 것이다. 나는 오늘 현장에 가서, 과연 우리의 시민의식이 어디까지 성숙하고 있는지 관찰해야겠다.

2008-05-28

[블로그 속으로] 폭력·불법 시위는 없었다

[블로그 속으로] 폭력·불법 시위는 없었다 (경향신문, 2008년 5월 29일자, 2008년 5월 28일 오후 5시 55분 인터넷 게시)

"폭력 시위를 찾아서"의 축약판입니다.

2008-05-27

폭력 시위를 찾아서

어제 저녁 친구와 함께 광화문에 다녀왔다. 동화면세점 앞 광장과 청계광장 양쪽으로 촛불시위가 형성되어 있었다. 동화면세점 앞은 집회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이 그냥 모이기 시작한 곳이고, 반면 청계광장은 진보신당과 그 외 단체들이 주도하는 촛불문화제였다. 우선 동화면세점으로 갔다. 닭장차가 그 모퉁이를 빼곡하게 가로막고 있었고, 그 속으로 촛불시위하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전경들이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광화문 사거리 방향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말이,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차단되고 있었다.

그들은 10시 넘어서 집회가 야간집회로 규정될 때까지 아마도 그 자리에서 계속 대치할 것이므로, 나와 동행인은 청계광장 쪽으로 넘어갔다. 그때가 이미 9시 20분이 막 지나던 시점일 것이다. 촛불문화제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청계광장에는 그을린 파라핀 냄새가 그득했다. 여고생들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관련된 이 논의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협상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내 친구는 이름, 전화번호, 주소와 함께 서명을 남겼다.

곧 촛불문화제가 끝났다. 10시 정각에서 10분 모자란 시각이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 정말 있다면 이 많은 인원이 그냥 흐지부지 집에 가게 냅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고, 그들 중 일부가 방금 내가 보고 왔던 동화면세점 앞으로 향했다. 그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전경들의 뒷통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10시 정각이 되자, 야간이 되었다는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제 몸이 좋지 않았던 동행인은 앉을 자리를 찾았다. 면세점 앞 동상 위에 걸터앉았다가, 내려와 화단에 앉았다.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같이 찾아주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10시 20분 무렵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별다른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줄로 전경 라인을 뚫고 해산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속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자진 해산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런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적어도 1000명은 될 것 같았던 인원은 20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경찰의 포위망은 더욱 촘촘하게 얽혀들었다. 동화면세점 앞 광화문 버스정류장까지 전경들이 점거했다. 고개를 좌우로 아무리 넓게 돌려도 닭장차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들이 200명 가량의 시위대를 완전히 포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차를 보았다.


(정체불명의 차량: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아까까지 없던 차가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이 차, 뭐에 쓰는 건가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이 많은 경찰이, 직업적인 미소를 얼굴에 띄고 대답했다. "최루탄인가요?" "아닙니다." "최루탄 아니면, 살수차인가요?" "대외비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따져볼까 했지만 피곤한 하루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차를 본 순간부터 목구멍이 무겁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그렇고 내 동행인도 그랬다. 공기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중국에서 황사가 몰려온 탓일 수도 있겠지만, 기체 분자가 확산되는 속도 등을 염두에 둘 때 내 목이 갑자기 아파온 원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집회 참가 경력이 없기 때문에 저 차의 정체를 식별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최루탄 발사 차량이 떴다고 단정짓지는 않겠다. 하지만 듀나의 영화낙서판에 가보니, 게시판 주인인 듀나도 "최근에 시내에서 최루탄 터진 일 없죠? 있었다면 뉴스에 났을 테니. 근데 왜 제 코가 계속 가렵고 재채기가 났던 걸까요? 눈도 아리고요. 딱 최루탄 현상인데. 제 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여러 가지...", 듀나의 영화낙서판, 2008년 5월 27일).

그 시점에서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마음같아서는 새벽까지 동참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미 그저께에도 광화문에 왔었고, 한참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저께 그와 내가 겪은 일은, 본디 한 편의 다른 글로 작성되었어야 할 성격의 것이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짜맞추어지고 있기에 이 속에 넣도록 한다. 그제 우리는 광화문을 쏘다녔다. '폭력 시위'를 구경하기 위해, 혹은 동참하기 위해 밤 10시 무렵 광화문 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전경은 무지하게 많았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청계광장을 지나, 다시 동화면세점 쪽으로 올라간 다음,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통해 독립문 방면을, 그야말로 경찰과 함께 들쑤시고 다녔다. 무전기를 하도 시끄렵게 켜놔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다 들렸기 때문이다.

나와 그는 우리가 한 편의 부조리극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범인을 잡겠다고 이 많은 경찰이 돌아다니는데, 정작 불법 시위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광화문 쪽으로! 광화문! 이런 무전을 듣고 따라가보면 그 곳에는 전경만 있다. 독립문 방면, 독립문 방면! 이래도 마찬가지다. 워커 신은 전경들이 뛰기 시작하면 우리는 길 곁으로 비켜서야 했다. 나와 내 친구와 전경 모두가 폭력 시위를 찾아 밤 늦은 서울 거리를 헤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고서야 그 도둑맞은 편지가 어디에 꽂혀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신촌에서 벌어진 대량 폭력 검거 사태가 일종의 토끼몰이라는 추정에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은 전경들을 공허하게 발굴림하면서 그들의 부아를 자극했고, 필요 이상의 병력을 동원함으로써 서울 중심가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신촌으로 몰려간 이들은 맞을 만큼 맞고 나서 닭장차에 실렸다. 진중권이 생중계를 한 것은 그 다음 날의 일이다. 어젯밤에는 진중권도 맞았다. 경찰이 사람을 괜히 때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누군가가 전의경들이 사람을 때리게 한다. 폭력 시위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폭력 시위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내가 어제 목격한 것이 최루탄 발사 차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경찰은 계속 강경 진압 노선을 고수할 것이다. 분노에 사로잡히고 공포에 휩싸인 군중들이 행여 돌맹이라도 치켜든다면, 경찰은 때가 왔다는 듯이 더욱 강경한 진압 전술을 펼칠 터이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매우 양가적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혹여라도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그에 준하는 큰 부상이 생긴다면, 몇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하건 두들겨 맞건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던 한국의 '시민'들도 뭔가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찰이 그런 방향으로 집회를 몰아가고 있다. 운동권이라면 학을 떼는 '시민'들의 '리좀'은 경찰의 폭력 앞에 더 없이 취약하다.

하지만 이 집회의 결말이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게까지 뜨거워진 시위가 흐지부지 식어버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 발생한 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시민'들이 입 싹 씻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집회에서 맞아죽는 순간 그는 운동권이 되고, 시민들은 등을 돌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 중 그 무엇도 실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이 지난 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광화문에 갈 계획이다. 오늘 밤에는 황사 섞인 비가 내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숨고르기를 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직 나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길거리에 서서 팔뚝질 몇 번을 했을 뿐인 사람들을 44시간씩 경찰서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중대한 인권 침해이다.

물론 경찰은 시위가 사그러든 후에도 폭력 시위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와 내 동행인 또한 얼결에 그들의 뒤를 따라다닌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된 공간에서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폭력 시위 가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다니던 파랑새처럼, 폭력 시위도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두 개의 과제가 각각 수요일과 금요일 마감으로 있다. 가능한 한 빨리, 폭력 시위를 찾아서, 새장을 열러 가야겠다.

2008-05-22

아이언 맨과 테러, 그리고 국가의 성립

나는 '영화 평론가'와 '씨네 설레발리스트'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어만 봐도 바로 감을 잡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두 개념의 차이를 좀 더 설명해보자.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평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산문을 쓰는 사람을 영화 평론가라고 한다면, 영상 매체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자신이 아는 몇 가지의 개념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놓고 이런 저런 소리를 마구 씨부리는 인간들을 씨네 설레발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 왜 '설레발리스트'인가. 그들은 자신이 아는 주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영화를 보고도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에, 그 반대로 뭔가 이건 좀 알겠다 싶으면 입에서 마구 침을 튀며 열변을 토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쓰려는 글은 안타깝지만 후자에 속한다. 오늘 밤 10시 20분, 동대문 MMC에서 아이언 맨을 보던 나는, MMC 1관이 필름의 윗대가리를 잘라먹고 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급 분노했다. 이것은 '그럼 나는 영화를 6850원 어치만 보게 된 건가? 허허'라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인식하지 못하면 계속 모를 일이지만 한 번 눈에 띄면 또 계속 신경쓰이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 아닌가. 덕분에 나는 아이언 맨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쾌감에 전적으로 몸을 맡기는 일에, 어느 정도는 성공하였지만 100%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에서 테러범을 묘사하는 방식과 그 외 여러 장면에서 설레발을 칠 수 있는 여지가 눈에 띄고 말았다.

토니 스타크를 납치한 후 괴롭히는 테러 조직의 만행에 대해 생각해보자. 물론 테러 조직은 지역 주민들에게 기생하는 존재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농민들이 아편을 기르는 이유는, 그것을 팔아서 무기를 구입하고자 하는 테러 집단의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멋대로 세금을 걷고 인력을 징발하는 무장 단체라고 보면 된다. 적어도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스타크가 출동을 결심하게 하는 사건을 돌이켜보면, 테러범들이 마을을 황폐화하고 괜히 사람들을 죽인다는 식으로 '악행'을 묘사하는데,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 드라마에서 '조폭'들이 포장마차를 때려부수는 그런 수준의 저급한 표현일 뿐이다. 이 영화의 테러 조직에 대한 이해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딱 한 놈 살려두고 그 사람을 지역 주민들의 손에 맡긴 후 떠나는 장면에서, 나는 '법의 기원이 되는 시원적 폭력' 따위 개념을 얼른 떠올렸다. 제3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인 문제가 정치적 자결체의 성립과 존속 차원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장집단이 정부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일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국가의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언 맨이 쳐들어가서 나쁜 놈들 아무리 죽여준다고 해도, 그들이 스스로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를, 혹은 그에 준하는 정치적 단위를 구성해내지 못하는 한 외부로부터의 침략으로 인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런데 벤야민과 그 벤야민의 글을 비평하는 척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데리다, 그 외 여러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형성, 즉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적 집단의 형성에 있어서 그 주춧돌에 피가 뿌려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아이언 맨이 떠나간 그 자리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도, 찍어놓은 감독도 사실 모를 것이다. 아무튼 그 장면을 보니 국가의 건설과 시원적 폭력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테러 조직에 대한 이해도 문제로 돌아가보자. 진작부터 스포일러는 시작되어 있었으니 그냥 쭉 서술하자면, 나는 그 이름 길고 복잡한 대 테러 요원이 오히려 테러 집단의 스파이가 아닐까 의심했다. 인터뷰를 한다는 핑계로 집에 찾아와 스타크의 구형 심장을 훔쳐가고, 그래서 어찌어찌 테러 집단이 수트를 소유하게 되는 그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잘 생각해보니 그런 상상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FP에서는 '백인 남성'도 인터넷 등의 경로를 통해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지난 두 호에 걸쳐서 펼쳐오고 있다. 2008년 3/4월호의 "신세대 테러리스트", 5/6월호의 "차세대 테러리스트, 어떻게 찾아내나" 등을 몇 번씩 읽고 나니, 자신을 대 테러 요원이라 소개하는 백인 남성마저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지점까지 문제를 복잡하게 끌고 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였고 그 아들의 사업 파트너로 살아온 '2인자 인생'의 분노가 결국 그 모든 소동을 낳게 된 원인이라는 식으로 스토리 라인이 전개된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지만 그리 신선한 선택도 아니다. '씨네 설레발리스트'로서의 한계를 또 한 번 드러내며 솔직하게 기술하자면, 달랑 스파이더맨 2 하나 보고 하는 소리인데, 마블 코믹스 원작의 침공은 헐리우드의 캐릭터 형성에 나름대로 신선한 조류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대중적으로 접근이 쉬워지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아무튼 마감을 끝내고 책을 찍어낸 다음 훌훌 터는 기분으로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동대문 MMC의 도움으로 프레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씨네 설레발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