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온난화 회의주의에 대해서도 '확실성'을 갖고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온난화 회의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기상학자들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기후 변화가 촉진되고 있으며, 그 방향은 평균 기온 상승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문제는 '그게 정말 참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지?'같은 수준 낮은 질문에 대답하기가, 적어도 그 분야의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엄청나게 많은 양의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현대 과학의 연구 성과는 비전문가가 한눈에 알아볼 수 없는 것일 뿐더러, 훈련된 전문가라 해도 잘못된 해석의 함정에 빠지기 일쑤다. 아이추판다님의 블로그에 올라왔던 연어 영혼 발견 사건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내가 해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자료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일은 '이게 있고 저게 있다, 따라서 이것과 저것은 관련되어 있다'는 수준의 판단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고 한다).
같은 교훈이 기후 온난화와 관련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이 기상 정보를 정밀하게 수집하기 시작한 역사 자체가 매우 짧거니와, 지금도 새로운 방법론이 속속 개발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기존의 데이터에 대한 재해석이 끝없이 가해진다. 따라서 그 분야의 정보를 꾸준히 다뤄봤거나 다른 분야의 연구를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감식안을 갖추지 않은 다음에야, 대체로 '학계 주류'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내가 지난 포스트에서 실피드님의 리플에 대해 답변으로 인용한 기상학 블로그 RealClimate의 한 구절 또한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Scientifically, this argument holds no water: it is simply not possible to draw conclusions about the causes of climate variations by just looking at one time series. Only considering the time series of Arctic temperature, it is impossible to tell what the cause of the 1930s warming was, what the cause of the recent warming is, and whether both have the same cause or not. Milloy’s specious argument is a characteristic example for a method frequently employed by “climate skeptics”: from a host of scientific data, they cherry-pick one result out of context and present unwarranted conclusions, knowing that a lay audience will not easily recognise their fallacy.
(강조는 모두 인용자)
http://www.realclimate.org/index.php/archives/2004/12/the-arctic-climate-impact-assessment/
가령 많은 온난화 회의론자들이 '자연스러운 기후 변화의 주기'의 사례로 인용하는 태양 흑점 변화의 경우, 그것이 '이유'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라는 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 흑점의 변화 주기 그래프 등을 제시한 후, 그 밑에 평균 기온 그래프를 가져다 놓고, '자 어때요, 놀랍죠? 온난화는 자연의 섭리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인 반론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정보가 옳다고 믿어야 하는 것일까? 실피드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나 스스로 자료를 해석하려 들지 않고, 다수의 견해라고 인정되는 것을 따른다'고 나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실피드님은 스스로 논문을 검색하고 자료를 찾은 후 기후 변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 편이다. 각자의 방식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내 방식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영역의 자료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렇다.
실피드님은 "북극의 얼음 면적 변화 추세" 라는 글에서 본인이 확보한 2002년부터 2009년까지의 북극 위성 사진 및 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10년 간의 [면적] 자료는 추이라고 할만한 일관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후, 지난 40년간 측정한 얼음의 두께에 대해 언급하고, "내 생각에도 북극의 얼음은 백 년 이상이 걸려 제법 많이 녹아 없어지거나, 유럽까지 덮을 정도로 커지거나 하는 것 같긴 하다. 요점은, 이 마저도 고기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주기적'일 거라는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실피드님은 인공위성 자료에 대한 크나큰 신뢰를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이전의 북극 현황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거나 찾더라도 신뢰할만하지 않으므로 장기적인 추세를 계산할만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적어도 링크된 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그러하다.
옥스포드대학 출판부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문고본 입문서 A Very Short Introduction중 하나인 Global Warming의 저자 Mark Maslin에 따르면, 그러나, 인공위성 자료가 지금까지 확보된 것들보다 정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그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4. Satelite data casts doubt on the models.
Again, before the satellite data was clearly understood it did suggest that [65p] over the last 20 years there had been a slight cooling. The interative process of science, i.e. the re-examination of data and the assumption concerning the data, clearly showed that there were some major inconsistencies within the satellite data; first, as a result of trying to compare the data from different instruments on different satellites and, second, because of the need to adjust the altitude of the satellite as its orbit shrinks as a result of friction with the atmosphere. The final problem withe the satellite data is that 20 years is just too short a time period to find a temperature trend with any confidence. This is because climatic circles or events will have a major influence on the record and will not be averaged out; for example, the sunspot cycle is 11 years, El Niño-Southern Oscillation is 3-7 years, and the North Atlantic Oscillation is ten years. So which of these cycles is picked up by the 20-year satellite data will strongly influence the direction of the temperature trend. [65-66p.] (강조는 인용자)
아무튼 위성을 통해 우리는 지난 20여년간 얻을 수 없었던 값진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 자료들을 통해 기후 변화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문적인 연구자들의 몫이다. 그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태양 흑점으로 인해 기온이 내려가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관측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연적인 요소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요소를 종합하면, 지난 130여년간 평균 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으며 그것은 모델을 통해 예측한 결과와 일치한다.
3. Solar output and sunspot activity control the past temperatures.
This is something both the sceptics and non-sceptics agree on. Of course sunspots and also volcanic activity influence past temperatures. For example, the cooling of the 1960s and 1970s is clearly linked to changes in the sunspot cycle.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camps is that the sceptics put more weight on the importance of these natural variations. Though great care has been taken to understand how the minor variations in solar output affect global climate, this is still one of the areas which contain many unknowns and uncertainties. However, climate models combining our current state-of-the-art knowledge concerning all radiative forcing, including grennhouse gases (see Table 1 on pages 16, and 17) and sounspots, are able to simulate the global temperature curve for the last 130 years. Figure 19 shows the separate natural and anthropogenic forcing on global climate for the last 130 years and the combiantion of the two. This provides confidence in both models and also an understanding of the relative influence of natural versus anthropogenic forcing. [62p.] (강조는 인용자)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에서 언급한 도표를 첨부한다. 이것을 보면 자연적 요소와 인위적 요소를 결합하여 만든 모델이 지난 130여년간의 평균 기온 변화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과, 현재의 평균 기온이 지난 130년 중 그 어느때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 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쓰여진 '평범한 입문서'의 도입부에서부터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 . Global warming is caused by the massive increase of greenhouse gases, such as carbon dioxide, in the atmosphere, resulting from the burning of fossil fuels and deforestation. There is clear evidence that we have already elevated concentrations of atmospheric carbon dioxide to their highest level for the last half million years and maybe even longer. Sceintiests believe that this is causing the Earth to warm faster than any other times during, at the very least, the past one thousand years. [1p.]
여기서 다시 지식의 확실성 문제로 돌아가보자. 만약 누군가가 '저 과학자들 다 돈 타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IPCC는 악의 소굴이다. 넌 왜 직접 자료를 찾아볼 생각도 않고 넙죽넙죽 믿기만 하냐'고 말한다면, 나로서는 그가 바라는 수준의 '확실성'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지식, 혹은 지식 일반에 대한 토대론이 무너진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의 지적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자승자박에 빠지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중적 차원에서 접할 수 있는 온난화 회의주의에 대한 책 중에는, 내가 인용한 것과 같은 '포괄적인 개론서'가 없다. 다만 특정한 자료의 해석을 놓고 기존의 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을 따름이다. 이 사실만을 놓고 보더라도, 온난화 회의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그들은 학계의 소수자 혹은 이단아일 뿐 주류적인 견해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나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온난화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시간적 단위는 150년이다. 2009년은 인류가 땅에서 석유를 채굴하여 쓰기 시작한지 딱 150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석유가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면서부터, (이것은 『인간 없는 세상』의 엘런 와이즈먼이 쓴 표현인데) 지구는 쉴 새 없이 화산이 폭발하고 있는 행성이 되어버렸다.
내가 인용한 책에서 130년간의 데이터를 논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현재의 인공위성 데이터처럼 심층적이거나 정밀하지는 않지만, 과학자들은 바로 그런 경우에도 모델을 만들어서 현실을 예측하고 자료를 해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지난 130년간 가장 뜨거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문적인 연구자들의 (대체로) 통합된 견해를 신뢰하는 편이, 나 스스로 자료를 찾고 결론을 내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북극 빙하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실피드님의 리플에 내가 달아놓은 반박에 이미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1900년과 비교했을 때 현재 남아 있는 [북극해] 빙하의 양은 예전의 77퍼센트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난 30년간 여름에 팽창했던 빙하의 부피가 무려 20퍼센트 감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측정한 인공위성 기록을 살펴보면 2005년 9월 북극의 빙하 부피는 최저치(550만 제곱미터)를 가리켰다. 이 데이터는 현재 진행되는 빙하의 감소가 20세기에 와서 발생한 유일한 현상임을 조언하고 있다.(110쪽, 강조는 인용자)
『기후 변화를 이해하는 짧지만 충분한 보고서』, 슈테판 람슈토르프, 한스 요하임 셸른후버 지음. 오재호 옮김, 도솔.
그러나 실피드님은 2002년부터 2009년까지의 위성 사진 자료(지난 '10년간'의 위성 사진 자료)를 찾아낸 후, 그것으로부터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지 못하고(자료가 부족하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그 결과 '북극해의 변화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그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의 한 표를 훈련된 다수의 연구자들의 일관된 견해에 던질 수밖에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 또한 전혀 기후 변화 문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내가 제시한 '사실'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해도 내게서 답변을 듣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저 또 다른 전문가들의 '보편적' 견해를 들이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차원에서 보자면 나는 결코 '확실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 수준의 확실성을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지는 이제 철학의 문제가 되어버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