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란 대체 무엇인가? 모든 대선 후보가 앞다투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사회적으로도 ‘프랜차이즈 빵집도 동네 빵집이다’라는 식의 공허한 말장난이나 오가고 있을 뿐, 내실 있는 토론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회의 이견들을 수렴, 조절, 집행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민주화가 의미 있는 담론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확고한 의지와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사저 부지 구입을 둘러싸고, 이광범 특별검사가 지휘하는 특검팀이 한창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5일에는 대통령의 아들인 시형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을 놓고 보더라도, 이 사저 부지 구입건은 대통령의 친·인척이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 개발 비리 사건이다. 대통령 사저가 건설되면 당연히 그 일대 토지와 건물의 가격이 동반 상승한다. 문제는 그러한 ‘개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주체, 즉 대통령 혹은 청와대 비서실 등이, 대통령의 친·인척 혹은 본인이 그 이익을 집어삼킬 수 있도록 모종의 ‘배려’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형 개발 비리’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경제민주화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장사를 하냐 안 하냐, 프랜차이즈 빵집이 가맹점에 뜯어내는 돈이 얼마냐 등도 중요하지만, 부동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세습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급격하게 신분제 사회로 되돌려놓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2005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토지 자산 지니계수는 0.689로 나온다.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우면 평등한 것이고,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한 것인 만큼, 한국에서의 토지 분배는 대단히 불평등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상위 1%가 땅값 기준으로 45.3%를 소유하고 있으니만큼 저 수치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땅 위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동네 빵집을 하건 과일장사를 하건 농사를 짓건, 나름의 방식으로 땀흘려 일하고 돈을 번다.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젊은 남성들은 군대에 가고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들의 청춘을 바친다. 군대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유지되고, 징병제를 유지하는 사회적 비용 또한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이 부담하고 있다. 상위 1%가 절반 가까이, 혹은 절반이 넘도록 소유하고 있는 ‘그들만의 땅’에서, 우리는 일하고 그들에게 임차료를 바치고 심지어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을 조금 더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국고를 유용해 땅장사를 시도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특검의 직접적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경제민주화를 운운하는 것은 질 낮은 농담처럼 보인다.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축재하는 행위를 처벌하지도 않으면서 재벌 개혁은 또 무슨 헛소리인가.
지금은 대선 정국이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대표할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그만큼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형성해내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고. 하지만 지식인들의 담론은 ‘재벌 빵집 대 동네 빵집’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그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누군가는 친·인척을 동원한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특검의 수사 대상에까지 오르내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리 의혹 사건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민주화를 얼마나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또 실천하려 하는지, 그 인식 수준과 집행 의지가 총체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대통령을 탄핵할 수도 있다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민주화는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입력 : 2012.10.24 21: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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