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국내의 민중적 지지 기반,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대남한 강경 정책에 대한 정치적 물질적 정신적 도덕적 지원, 중국 공산당의 승리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자신감 등 모든 대내외적 조건들이 압도적 우세에 있었다. 그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1998년, 국민의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최장집의 책에서 인용된 문구다. 당시 ‘월간조선’은 이 ‘발견’을 대서특필하며 최장집을 청와대에서 쫓아냈다. 뒤이어지는 문장이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하였던 요소는 한반도의 국내 정치적 조건이라기보다는 국제 정치적 조건, 즉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던 냉전 체제의 성격과 그곳에서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의 힘이었다”라는 것은 그 시점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문장 하나, 표현 하나를 꼬투리 잡아 ‘빨갱이 사냥’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소유는 열강에 에워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민족 생존권과 자립을 위해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 현재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앞두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핵심 인사가 내뱉은 말이 아니다. 김상률 신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2005년 저서 <차이를 넘어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적어도 인용된 문장의 ‘수위’만 놓고 보면, 1998년의 최장집이나 2005년의 김상률이나, 비슷한 말을 했다. 오히려 김상률의 경우가 더 심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전쟁은 지나간 일이지만 북한의 핵무장은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니 말이다. 이에 고무된 보수 언론들은 앞다투어 <차이를 넘어서>를 입수한 후 ‘문제 발언’들을 더욱 캐내기 시작했다. 최장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전후 맥락 없이 툭툭 잘려나간 문장들이, 신문 지면을 수놓고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주적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더욱 잘 이해해야 한다. 전략적 판단에는 역지사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북한 입장에서야 당연히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하려 들 테니 말이다. 문제는 저 인용된 문장이 과연 북한의 뜻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의 정치적 입장은 다르다’는 것인지, 언론 보도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1998년과 거의 유사한 풍경을 연출해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 서술인지, 비판하기 위해 남의 말을 적어둔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실제로 동의하는 정치적 주장인지 아무런 구분도 없이 마구잡이로 인용된 문구가 언론 지면을 장식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니 어떻게 저런 빨갱이가 청와대에 들어가나’라는 대중의 비난 어린 손가락질이, 이번 경우에는 대통령 쪽으로는 결코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그 선고를 앞두고 있다. 나 너 우리가 ‘종북’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 선고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지, 아니면 북한이라는 ‘적’을 상정해야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허약한 군사독재 국가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그것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국면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된다면 우리는 1998년 이전으로 후퇴한다.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는 비로소, 청와대에 ‘종북’ 의혹을 받는 수석이 임명될 수도 있는, 2014년 이후의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최장집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설명하며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김상률은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의 책에 적힌 내용은 에드워드 사이드 및 미국 좌파 지식인들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니 말이다. 통합진보당 역시 그들 스스로가 아닌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 존속되어야 한다. 그들의 시대착오적 대북관을 심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권자이며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302100215&code=990100&s_code=ao122
2014-11-30
2014-11-25
[북리뷰]모멸, 수치심 자극하는 최악의 방아쇠
모멸감
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500원
“박정희가 왜 죽었는지 아냐? 김재규한테는 술 안 따라주고 차지철한테만 따라줘서 총 맞아 죽은 거다.” 이런 이야기를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로부터 듣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 자기한테 술을 안 따라준다고 사람을 죽일 수가 있을까? 일국의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이 그렇게 하잘것없는 개인적 감정 때문에 역사의 방향을 바꾸게 될 거사를 저질렀단 말인가?
<모멸감>을 쓴 사회학자 김찬호에 따르면 저러한 ‘민담’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작동하며, 때로는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회학은 인간의 감정을 중요한 변수로 다루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렬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29쪽) 그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저자는 ‘감정사회학’이라는, 기존의 연구 문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아주 무서운 감정인 ‘모멸감’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은 바로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모욕은 누군가의 자기존재감을 해치는 행위라고 정의한 그는 그 모욕 중에서도 ‘경멸’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모멸감’에 주목한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67쪽)
이렇게 구분짓긴 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모욕과 모멸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가족처럼’ 생각해서 여직원의 엉덩이를 더듬었다고 주장하는 중년 남성 관리자와 ‘친하니까’ 함부로 말하고 다소 괄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은 풍토 속에서, 내가 남에게 모욕을 가했다, 혹은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양심을 울리고 있는 이른바 ‘압구정동 ㅅ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사모님’으로 흔히 지칭되는 70대의 ㄱ씨는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모멸감을 선사했다. 분류된 재활용 쓰레기를 놓고 트집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5층 높이에서 그에게 음식을 던지며 “슛, 골인”이라고 외쳤다는 증언도 있다. 자기 나름대로는 모욕을 주기는커녕 ‘친하니까’, ‘가족같으니까’, 혹은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는 머슴 같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작은 모욕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내면이 폭발한다. 때로는 그 사람과 함께 사회 전체가 터져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모멸감을 선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두고 있는 한, 이 구조 속의 우리는 그 누구도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없다.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과 같은 맥락에서 ‘모욕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이대로 모멸의 왕국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에는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노정태 ‘논객시대’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1181102071&code=116
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500원
“박정희가 왜 죽었는지 아냐? 김재규한테는 술 안 따라주고 차지철한테만 따라줘서 총 맞아 죽은 거다.” 이런 이야기를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로부터 듣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 자기한테 술을 안 따라준다고 사람을 죽일 수가 있을까? 일국의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이 그렇게 하잘것없는 개인적 감정 때문에 역사의 방향을 바꾸게 될 거사를 저질렀단 말인가?
<모멸감>을 쓴 사회학자 김찬호에 따르면 저러한 ‘민담’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작동하며, 때로는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회학은 인간의 감정을 중요한 변수로 다루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렬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29쪽) 그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저자는 ‘감정사회학’이라는, 기존의 연구 문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아주 무서운 감정인 ‘모멸감’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은 바로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모욕은 누군가의 자기존재감을 해치는 행위라고 정의한 그는 그 모욕 중에서도 ‘경멸’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모멸감’에 주목한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67쪽)
이렇게 구분짓긴 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모욕과 모멸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가족처럼’ 생각해서 여직원의 엉덩이를 더듬었다고 주장하는 중년 남성 관리자와 ‘친하니까’ 함부로 말하고 다소 괄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은 풍토 속에서, 내가 남에게 모욕을 가했다, 혹은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양심을 울리고 있는 이른바 ‘압구정동 ㅅ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사모님’으로 흔히 지칭되는 70대의 ㄱ씨는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모멸감을 선사했다. 분류된 재활용 쓰레기를 놓고 트집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5층 높이에서 그에게 음식을 던지며 “슛, 골인”이라고 외쳤다는 증언도 있다. 자기 나름대로는 모욕을 주기는커녕 ‘친하니까’, ‘가족같으니까’, 혹은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는 머슴 같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작은 모욕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내면이 폭발한다. 때로는 그 사람과 함께 사회 전체가 터져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모멸감을 선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두고 있는 한, 이 구조 속의 우리는 그 누구도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없다.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과 같은 맥락에서 ‘모욕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이대로 모멸의 왕국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에는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노정태 ‘논객시대’저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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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1
[북리뷰]전염병, 올바른 공공정책 방향
[북리뷰]전염병, 올바른 공공정책 방향
2014.11.11ㅣ주간경향 1100호
바이러스 도시
스티븐 존슨 지음·김명남 옮김·김영사·1만4500원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유행은, WHO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10월 1일 현재 1만여명에 가까운 감염자를 발생시켰고 그 중 절반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1974년에 확인된 에볼라 바이러스가 이렇게 많은 감염자를 낳은 것은 처음이다. 그 전에도 몇 차례 유행이 있었지만, 워낙 치사율이 높았을 뿐더러 발병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도시로의 인구 밀집은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위기를 안겨준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조건이 맞는다는 전제 하에, 더욱 쉽게 숙주를 찾을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면 그만큼 유전적 변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더욱 그 질병을 퇴치하기 어려워진다. 전 세계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의 대도시 상륙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머전스>로 잘 알려진 미국의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은 <바이러스 도시>에서, 19세기 런던을 강타했던 콜레라 유행과 그에 대한 공공의학적 대응에 주목한다. 당시 세계의 수도 노릇을 했던 런던은 무려 300만명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하수도 시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대소변과 기타 오물을 적당히 모아서 집 근처의 오물 웅덩이에 퍼부었다. 그 오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정화되기도 했지만, 도시의 거주민들이 이용하는 우물에 녹아들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바로 그렇게 런던 소호의 브로도 거리에서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는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적으로 개량해낸 것으로 명성을 얻은 의사 존 스노와 브로도 거리를 담당하는 세인트제임스 교구의 목사인 헨리 화이트헤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빅토리아 여왕 재임 시기, 19세기 중반은 의학이 과학으로서 갓 걸음마를 내디딘 시점이었다. 콜레라는 오물의 악취를 맡으면 발생하는 질병인지, 아니면 그것을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게 하는 요소, 즉 ‘감염’의 원인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학적 논쟁이 한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 즉 ‘독기설’을 취한 반면 존 스노는 후자인 ‘감염설’을 지지했다.
<바이러스 도시>는 존 스노가 10여년에 걸쳐 감염설을 연구하고 있던 중, 자신이 살던 지역의 콜레라 발병을 목격하고, 본인의 연구를 현실에 적용시켜 군집생활을 하는 인류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를 막아낸 영웅담이다. 그는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마셔서 콜레라에 걸린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한 후, 화이트헤드 목사를 설득해 오염된 물이 나오는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했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공공정책의 영역에 개입한 최초의 사례이자, 명백한 성공사례이기도 하다. 이후 런던은 상하수도를 갖췄고 콜레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는 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올바른 공공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국제적·인도적 차원에서 의료진을 에볼라 발병 지역에 파견하되, 병에 걸릴 경우 제3국에서 치료를 받고 오게 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야만과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에볼라에 걸린 후 완치된 간호사 니나 팸에게 따뜻한 포옹을 선사했다. 우리는 미지의 질병 그 자체보다는 그 질병에 대한 공포심을 더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1041406261&code=116
2014.11.11ㅣ주간경향 1100호
바이러스 도시
스티븐 존슨 지음·김명남 옮김·김영사·1만4500원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유행은, WHO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10월 1일 현재 1만여명에 가까운 감염자를 발생시켰고 그 중 절반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1974년에 확인된 에볼라 바이러스가 이렇게 많은 감염자를 낳은 것은 처음이다. 그 전에도 몇 차례 유행이 있었지만, 워낙 치사율이 높았을 뿐더러 발병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도시로의 인구 밀집은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위기를 안겨준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조건이 맞는다는 전제 하에, 더욱 쉽게 숙주를 찾을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면 그만큼 유전적 변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더욱 그 질병을 퇴치하기 어려워진다. 전 세계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의 대도시 상륙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머전스>로 잘 알려진 미국의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은 <바이러스 도시>에서, 19세기 런던을 강타했던 콜레라 유행과 그에 대한 공공의학적 대응에 주목한다. 당시 세계의 수도 노릇을 했던 런던은 무려 300만명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하수도 시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대소변과 기타 오물을 적당히 모아서 집 근처의 오물 웅덩이에 퍼부었다. 그 오물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정화되기도 했지만, 도시의 거주민들이 이용하는 우물에 녹아들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바로 그렇게 런던 소호의 브로도 거리에서 콜레라가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는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적으로 개량해낸 것으로 명성을 얻은 의사 존 스노와 브로도 거리를 담당하는 세인트제임스 교구의 목사인 헨리 화이트헤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빅토리아 여왕 재임 시기, 19세기 중반은 의학이 과학으로서 갓 걸음마를 내디딘 시점이었다. 콜레라는 오물의 악취를 맡으면 발생하는 질병인지, 아니면 그것을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게 하는 요소, 즉 ‘감염’의 원인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학적 논쟁이 한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 즉 ‘독기설’을 취한 반면 존 스노는 후자인 ‘감염설’을 지지했다.
<바이러스 도시>는 존 스노가 10여년에 걸쳐 감염설을 연구하고 있던 중, 자신이 살던 지역의 콜레라 발병을 목격하고, 본인의 연구를 현실에 적용시켜 군집생활을 하는 인류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를 막아낸 영웅담이다. 그는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마셔서 콜레라에 걸린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한 후, 화이트헤드 목사를 설득해 오염된 물이 나오는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했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공공정책의 영역에 개입한 최초의 사례이자, 명백한 성공사례이기도 하다. 이후 런던은 상하수도를 갖췄고 콜레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는 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올바른 공공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국제적·인도적 차원에서 의료진을 에볼라 발병 지역에 파견하되, 병에 걸릴 경우 제3국에서 치료를 받고 오게 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야만과 너무도 대조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에볼라에 걸린 후 완치된 간호사 니나 팸에게 따뜻한 포옹을 선사했다. 우리는 미지의 질병 그 자체보다는 그 질병에 대한 공포심을 더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1041406261&code=116
2014-11-02
[별별시선]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어린 시절의 내게 신해철은 넥스트의 신해철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쓰고 부른 바로 그 신해철이었다. 그는 동성동본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의 인습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가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 서태지는 북한을 향해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자고 노래했고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리들을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있는 공교육을 비판했다. H.O.T.의 데뷔곡은 ‘전사의 후예’인데, 학교폭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아 “그들은 나를 짓밟았어”라고 노래한다. 젊은이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이른바 ‘기성세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1990년대는 ‘문화 전쟁’이 한창이었다. 연세대학교의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직을 잃은 것이 1992년의 일이었다. ‘무한궤도’를 통해 혜성처럼 데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마초 사범이라는 딱지를 달게 된 신해철은 1995년에 동성동본 연인들을 위한 송가를 불렀다.
신해철의 저항은 구체적이었다. ‘이 사회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식의 추상적인 내용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동성동본 연인들의 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한국 사회는 “대마가 가지고 있는 환각 증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과장함으로 인해서 예술가들에게 인격적 모욕을 주고 인간 쓰레기로 만든다”고,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까지 목청을 높였다. 가수로서, 또 라디오 DJ로서 활동하면서 그는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두 번째 이름으로 삼았다.
그의 느닷없는 죽음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당시 신해철에게 쏟아졌던 온갖 비난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처럼 낭만적인, 요즘 말로 ‘중2병’스러운 가사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반감과 비판을 염두에 두고 음미되어야 한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로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다는, 철들지 않는 소년과 같은 순수함이 없다면, 스스로를 동성동본 연인을 앞에 둔 누군가로 상정하고는 “아직 단 한번의 후회도 느껴본 적은 없”다고 외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다.
그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사회와 대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번 구체적인 욕망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비록 동성동본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 비록 학생일지라도 학교에서 ‘사랑의 매’를 맞지 않고 싶은 욕망. 비록 법으로 금지된 대마초를 흡입한 사람이라 해도 사회적으로 멸시당하고 싶지 않은 욕망. 소년의 꿈과 희망은 현실의 벽 앞에 자주 부딪쳤다. 우리는 언젠가 그 벽이 깨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느 날, 그는 얄리를 따라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1997년 7월16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의해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하는 민법 제809조 제1항이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승리를 제외하고 나면, 신해철이 지지했던 구체적인 욕망들은 아직도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한 표 차이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미 합법화 혹은 비범죄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대마의 재배와 사용이 엄격하게 처벌되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 보호는 학부모가 선출하는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
한국은 아직도 개인과, 그 개인들이 누리는 행복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나라다. 공개적으로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김조광수 감독이 제출한 혼인신고서는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욕망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무죄다. 모든 사랑은 합법이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995년의 신해철이 만들었던 노래를,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022043065&code=990100&s_code=ao122
돌이켜보면 1990년대가 그런 시대이기도 했다. 서태지는 북한을 향해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자고 노래했고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리들을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있는 공교육을 비판했다. H.O.T.의 데뷔곡은 ‘전사의 후예’인데, 학교폭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아 “그들은 나를 짓밟았어”라고 노래한다. 젊은이들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는 이른바 ‘기성세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1990년대는 ‘문화 전쟁’이 한창이었다. 연세대학교의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직을 잃은 것이 1992년의 일이었다. ‘무한궤도’를 통해 혜성처럼 데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마초 사범이라는 딱지를 달게 된 신해철은 1995년에 동성동본 연인들을 위한 송가를 불렀다.
신해철의 저항은 구체적이었다. ‘이 사회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식의 추상적인 내용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동성동본 연인들의 결혼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한국 사회는 “대마가 가지고 있는 환각 증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과장함으로 인해서 예술가들에게 인격적 모욕을 주고 인간 쓰레기로 만든다”고, 1990년대를 넘어 2000년대까지 목청을 높였다. 가수로서, 또 라디오 DJ로서 활동하면서 그는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두 번째 이름으로 삼았다.
그의 느닷없는 죽음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당시 신해철에게 쏟아졌던 온갖 비난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마”처럼 낭만적인, 요즘 말로 ‘중2병’스러운 가사는,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반감과 비판을 염두에 두고 음미되어야 한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로 속에 묻어버릴 수는 없”다는, 철들지 않는 소년과 같은 순수함이 없다면, 스스로를 동성동본 연인을 앞에 둔 누군가로 상정하고는 “아직 단 한번의 후회도 느껴본 적은 없”다고 외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테니 말이다.
그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사회와 대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번 구체적인 욕망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비록 동성동본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망. 비록 학생일지라도 학교에서 ‘사랑의 매’를 맞지 않고 싶은 욕망. 비록 법으로 금지된 대마초를 흡입한 사람이라 해도 사회적으로 멸시당하고 싶지 않은 욕망. 소년의 꿈과 희망은 현실의 벽 앞에 자주 부딪쳤다. 우리는 언젠가 그 벽이 깨질 것이라 믿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느 날, 그는 얄리를 따라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1997년 7월16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의해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지하는 민법 제809조 제1항이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이 하나의 승리를 제외하고 나면, 신해철이 지지했던 구체적인 욕망들은 아직도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한 표 차이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미 합법화 혹은 비범죄화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대마의 재배와 사용이 엄격하게 처벌되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 보호는 학부모가 선출하는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좌우된다.
한국은 아직도 개인과, 그 개인들이 누리는 행복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나라다. 공개적으로 동성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김조광수 감독이 제출한 혼인신고서는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욕망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무죄다. 모든 사랑은 합법이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1995년의 신해철이 만들었던 노래를, 그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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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북리뷰]무차별 ‘인터넷 사찰’의 막전막후
[북리뷰]무차별 ‘인터넷 사찰’의 막전막후
2014.10.28ㅣ주간경향 1098호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글렌 그린월드 지음·박수민, 박산호 옮김·모던타임스·1만5000원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처음 ‘사이버 망명’ 이야기가 나왔을 때 비교적 무덤덤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가 있는데, 그것은 국내 서버에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이후 텔레그램을 설치한 사람들은 대략 200만 명을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이렇듯 대중들이 인터넷과 사이버 프라이버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은 반대로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정보를 추적하려 드는 오늘날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 ‘포스트-스노든 시대’(Post-Snowden Era)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전산시스템 관리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와 접선하여, 자신이 빼온 고급 정보를 전달하고, NSA가 무차별적으로 인터넷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바로 그 사건 이후, 인터넷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바로 그 역사적 폭로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글렌 그린월드가 스노든의 폭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행동의 전후 맥락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킨키나투스’라는 익명으로 그린월드에게 스노든이 이메일을 보냈지만 처음에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제보를 받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던 일화에서 출발해, 그린월드는 스노든의 폭로가 이루어진 과정, NSA의 무차별적 도·감청이 수행된 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더 안전하고 개방적인 인터넷을 만들 수 있을지 등 다양한 주제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사실 NSA의 감청과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는 사뭇 다르다. NSA는 적법하게 영장을 발급받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하여 국민들의 메시지를 기술적으로 뚫고 들어갔다. 반면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수사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감청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그러한 청구를 받아들여 ‘영장 자판기’ 노릇을 한 듯하다. 미국의 법원이 한국처럼 영장을 남발했다면 NSA는 굳이 스노든 같은 IT 전문가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문제는 IT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법적 절차의 작동방식 그 자체다.
하지만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국민을 사찰하는 ‘정보기관’이 움직이는 방식은 동일하다. NSA가 수집한 정보는 테러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수집한 정보 중에는 적어도 ‘미국인’ 한 명의 온라인 성생활과 인터넷 상에서의 ‘방탕한 행위’, 예컨대 포르노 사이트 방문과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의 은밀한 채팅 섹스에 관한 세부 내용이 있었다. NSA는 목표 대상의 명성과 신뢰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런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244쪽) 사생활을 수집해 반체제인사, 혹은 반정부인사를 물밑으로 협박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검찰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말에, ‘왜 위축되나, 아무 문제없는 글을 쓴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NSA가 미국인들의 성생활까지 감시하는 데서 알 수 있다시피, 어떤 글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그들’이 정한다. ‘사이버 망명’이 아닌 민주주의의 회복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해법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0211421211&code=116
2014.10.28ㅣ주간경향 1098호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글렌 그린월드 지음·박수민, 박산호 옮김·모던타임스·1만5000원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처음 ‘사이버 망명’ 이야기가 나왔을 때 비교적 무덤덤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가 있는데, 그것은 국내 서버에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이후 텔레그램을 설치한 사람들은 대략 200만 명을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이렇듯 대중들이 인터넷과 사이버 프라이버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은 반대로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정보를 추적하려 드는 오늘날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 ‘포스트-스노든 시대’(Post-Snowden Era)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전산시스템 관리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와 접선하여, 자신이 빼온 고급 정보를 전달하고, NSA가 무차별적으로 인터넷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바로 그 사건 이후, 인터넷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바로 그 역사적 폭로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글렌 그린월드가 스노든의 폭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행동의 전후 맥락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킨키나투스’라는 익명으로 그린월드에게 스노든이 이메일을 보냈지만 처음에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제보를 받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던 일화에서 출발해, 그린월드는 스노든의 폭로가 이루어진 과정, NSA의 무차별적 도·감청이 수행된 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더 안전하고 개방적인 인터넷을 만들 수 있을지 등 다양한 주제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사실 NSA의 감청과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는 사뭇 다르다. NSA는 적법하게 영장을 발급받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하여 국민들의 메시지를 기술적으로 뚫고 들어갔다. 반면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수사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감청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그러한 청구를 받아들여 ‘영장 자판기’ 노릇을 한 듯하다. 미국의 법원이 한국처럼 영장을 남발했다면 NSA는 굳이 스노든 같은 IT 전문가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문제는 IT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법적 절차의 작동방식 그 자체다.
하지만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국민을 사찰하는 ‘정보기관’이 움직이는 방식은 동일하다. NSA가 수집한 정보는 테러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수집한 정보 중에는 적어도 ‘미국인’ 한 명의 온라인 성생활과 인터넷 상에서의 ‘방탕한 행위’, 예컨대 포르노 사이트 방문과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의 은밀한 채팅 섹스에 관한 세부 내용이 있었다. NSA는 목표 대상의 명성과 신뢰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런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244쪽) 사생활을 수집해 반체제인사, 혹은 반정부인사를 물밑으로 협박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검찰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말에, ‘왜 위축되나, 아무 문제없는 글을 쓴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NSA가 미국인들의 성생활까지 감시하는 데서 알 수 있다시피, 어떤 글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그들’이 정한다. ‘사이버 망명’이 아닌 민주주의의 회복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해법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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