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김영사, 2만2천원.
'인공지능'(AI). 최근 우리 사회를 새삼스레 달구고 있는 화두다. 알파고 대 이세돌의 바둑 대국에서 알파고가 첫 승을 거두기 시작한 후 사람들은 AI와 제4차 산업혁명과 그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 등에 대해 분분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다. 구 소련이 미국보다 앞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던 '스푸트니크 쇼크'처럼, '알파고 쇼크'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대체로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인간'에 대해, 혹은 '지능'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에 대해 축적되어 있는 선행 논의가 없다보니, 단순한 흥미 위주의 보도 혹은 '인문학적 통찰'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지금, 우리는 오히려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과 다른가? 무엇이 우리를 유인원의 한 갈래에서 '인공지능의 창조주'까지 도달하게 한 것일까?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대담한 질문과 그에 답하는 서술로 인류 역사를 관통한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19쪽)
유발 하라리는 모든 논의에 앞서 '인간'이라는 범주를 탈신비화한다. 그 어떤 '인문적' 관점도 배제한 채, 오직 '호모 사피엔스'라는 유인원의 한 종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또 다른 유인원인 네안데르탈인과 경쟁 관계였다. 그러나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을 통해 복잡하고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더욱 효율적이며 날카로운 무기와 발달된 사냥 체계를 얻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로 자리매김한다.
농업혁명은 잉여생산물을 낳았고, 잉여생산물은 그 생산물을 독점하는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이 이 시점에서 빛을 발한다. 자연적 부족의 최대 규모인 150여 명을 넘어서는 사회를 구성하려면 윤리, 도덕, 법, 계급 등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원리가 필요하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질서라고 늘 주장해야"(169쪽)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진행되어 오던 인간의 역사는 과학혁명을 통해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357쪽) 과학혁명은 신, 과거의 현자, 기타 전승되는 문헌의 저자들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수천년 동안의 가정을 폐기했다. 그 결과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의 영역에까지 과학 기술의 힘으로 침범해 들어가고 있다. 애초에 농업혁명 그 자체가 장기간에 걸친 유전자 조작이었다. 알파고 등 다양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여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파고 쇼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만들어왔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2016.03.29ㅣ주간경향 116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