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6

[북리뷰] 북핵 위기, 케인스를 공부할 시간

평화의 경제적 결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저 정명진 역 부글·1만5000원

그 영국 재무부 관료는 1차 세계대전의 뒷수습을 위한 파리평화회의가 자기 뜻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음을 직감했다. 전범국들이 끝도 없는 가난의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 가운데, 전승국들은 원초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혀, 경제학자인 그가 볼 때 턱도 없는 배상을 요구하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한 미국마저도 그 복수의 굿판을 방관하고 있는 상황. 그는 공직을 내려놓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명저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그렇게 태어난 책이다. 머리말에서 케인스는 스스로를 3인칭으로 두고 이 상황을 기술한다. "그는 평화조약의 조건을 적은 초안을 수정할 수 있는 희망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평화조약에 반대하는, 아니 유럽의 경제적 문제에 대한 파리평화회의의 전반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근거들이 이 책의 여러 장을 통해 설명될 것이다."(9쪽)

케인스의 주장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보자. 독일은 석탄과 철로 산업을 일으켜 해외 무역으로 돈을 버는 나라다. 그런데 승전국들은 독일에게 석탄을 현물로 내놓고 모든 식민지와 무역용 상선까지 포기하면서 동시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갚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능할 때마다 통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가설의 늪에 빠져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독일은 여러 해에 걸쳐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늘려 외환 보유를 확대할 수 있어야만 배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176쪽)

독일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므로 수출 산업의 부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경우, 유일한 천연자원이라 할 수 있는 석탄을 판매하거나 현물로 제공하는 것 외에는 배상을 할 방도가 없다. 결국 승전국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합리적 수준의 배상을 위해 독일의 경제 부활을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복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독일 경제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계속 배상을 요구하는 모순된 입장을 취할 것인가.

케인스는 파리평화회의의 결과를 예상하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연합국은 독일을 경제적으로 으깨버리는 길을 택했고, 독일은 그 빚을 갚기 위해 무리하게 화폐 발행을 일삼다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버렸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 틈을 타 독일의 민족 감정을 자극하며 권력을 잡았고, 연합국을 비난하기 위해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자주 거론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서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성찰하는 이들에게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 법.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승전국들은 비로소 케인스의 처방을 받아들였다. 두 번이나 세계 대전을 벌인 독일을 향해 마셜 플랜을 펼침으로써 경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확고히 다졌던 것이다. 그렇게 부유하고 평화로운 민주국가로 거듭난 서독은 결국 동독과 다시 하나가 되었다.

독일은 히틀러의 집권 이전부터 민주주의 국가였다. 북한을 향한 경제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려운 반면, 독일은 고도성장의 과실을 비교적 고르게 분배한 모범적인 복지국가다. 다시 말해, 이 책을 우리의 현실, 특히 북한을 향한 경제 봉쇄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읽고 공부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국제 정세와 경제적 현실을 아우르며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그려내면서 현실을 과감히 비판하는 지식인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017.09.26ㅣ주간경향 1245호

2017-09-12

[북리뷰] 현대 문명에 흐르는 검은 피

황금의 샘 1, 2
다니엘 예긴 저·김태유 허은녕 역·라의눈 각권 2만4800원

1911년 여름, 윈스턴 처칠은 해군장관에 임명되었다. 영국은 하루가 다르게 군사력, 특히 해군력을 키워가는 빌헬름 황제의 독일에 대응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처칠은 선택을 해야 했다. 해군 함정의 연료를 계속 석탄으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석유로 전환할 것인가?

"그 시절, 영국 군함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석유로의 전환은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다.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웨일즈산 석탄 대신,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페르시아산 석유에 의존해야 되기 때문이다. 처칠은 "해군 함정의 연료를 석유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풍랑이 심한 바다에 무기를 맡겨놓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연료를 석유로 바꾸면 함정의 속력을 높이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 이점이 크다는 점은 명확했다. 결국 처칠은 함정의 연료를 석유로 전환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했다."(1권 17쪽)

처칠의 판단은 옳았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초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자국 영토 내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는 나라였지만, 그런 위험을 먼저 무릅쓰고 우수한 해군 함정을 건설하여 영국 해군을 굴복시킨다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산산조각나버릴 테니 말이다. 더 효율적이고 막강한 에너지원이 발견되어버린 이상 영국 뿐 아니라 석유가 나오지 않는 모든 나라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처칠은 그의 회고록에 '지배력이란 모험을 무릅쓴 데 대한 상(賞, prize)이다'라고 썼다."(1권 17쪽)

석유 산업 및 국제 정치 경제의 권위자인 다니엘 예긴의 책 『황금의 샘』은 석유가 만들어낸 20세기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훑어내는 대작이다. "석유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20세기를 지배했고, 이 책은 바로 석유의 지배가 일어나게 된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1권, 18쪽)

『황금의 샘』의 원제인 The Prize는 바로 그런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다. 주로 자동차, 비행기, 선박의 연료로 사용되며,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이기도 하고, 투기의 대상이기도 하며, 수많은 국제 분쟁을 야기하고, 그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전 세계의 경제가 울고 웃는 단 하나의 상품. 그리고 그것을 확보하는 나라만이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는 상급. 그것이 바로 석유이며, 따라서 석유의 역사는 곧 20세기 인류의 역사와도 같다.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존 D. 록펠러는 '수직 계열화'라는 경영의 일대 혁신을 이루어냈다. 석탄을 연료로 쓰는 해군력으로 패권국이 되었던 영국은 석유를 갖지 못해 1차 세계대전 이후 위축되고, 반대로 자국 내에서 석유를 펑펑 뽑아내는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편 일본은 인도네시아의 유전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진주만을 폭격하고 전쟁을 벌여 예정된 패배의 늪으로 걸어들어갔던 것이다.

지난 7월, 중국은 동아프리카의 요충지인 지부티에 사상 최초의 해외 군사 기지를 가동했다. 석유 수송로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 입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중국이 계속 원유를 공급하는 한 북한 봉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세상을 읽으려면 여전히 석유의 흐름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직 석유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2017.09.12ㅣ주간경향 1243호

2017-08-29

[북리뷰] 일본의 발전, 그 뿌리를 찾아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저·뿌리와이파리·1만5000원

'조선은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마땅한 나라다.' 조선의 패망과 일본에 의한 국권 침탈 등을 논할 때 많은 이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망할만한 나라'였다면, 그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한 일본은 '성공할만한 나라'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는 일본이 오랜 전란 끝에 통일되었던 그 시기, 즉 에도시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공직을 박차고 나와 우동집 '기리야마 본진'을 차린 것으로 유명한 전직 외교관 신상목의 책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화두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성공에 기여한 '축적의 시간'이자 '가교의 시기'로서의 에도시대에 주목한다. 에도시대에 어떻게 근대화의 맹아가 태동하고 선행조건들이 충족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주제이다."(17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리한 전쟁을 일으킨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막은 훨씬 복잡하고 의미심장하다. 도쿠가와 가문의 당시 본거지는 슨푸(시즈오카)였지만, 도요토미는 도쿠가와가 교통의 요지에 앉아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에도(도쿄)로 쫓아냈던 것이다.

오늘날의 도쿄를 보면 '에도로 쫓아냈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신들과 함께 자리잡았던 그 무렵, 에도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강 하구 습지에 불과했다. 에도 성이 있었지만 낡아빠진 상태였다. 우물을 파면 소금물이 나오는 그런 척박한 땅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괴롭힘에 굴하는 대신 가신들과 철저히 단결하여 에도를 발전시켰다. 치수(治水) 사업을 통해 "1)인공의 물길을 뚫고, 2) 자연 물길의 흐름을 바꾸고, 3) 수면을 메워버리는 대토목공사"(36쪽)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렇게 척박한 에도를 교통과 상업의 허브이며 옥토로 바꾸는동안, 부질없는 전쟁에 몰두한 도요토미는 몰락하고, 버려졌던 땅 에도를 기반으로 삼아 발전시킨 도쿠가와 가문이 패자가 되었다. 에도시대는 계획도시 에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출현 과정을 조선왕조의 건국 이야기와 비교해보자. 이성계는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쩔 수 없이 자리잡은 터를 본인과 신하들의 힘으로 '개척'해내고 기반으로 삼았다. 건국 영웅담의 이면에 작동하는 사고의 체계부터 이미 확연히 다르다.

한층 더 대담한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이른바 '자생적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영조가 청계천 준설 공사를 벌인 것을 '조선판 뉴딜 정책'이라고 칭하곤 한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일본의 '자생적 근대화'는 에도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다시 말해 우리보다 약 170여년 빨랐다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에도 개척의 역사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가장 앞부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낯설지만 우리의 한반도 중심 세계관을 뒤흔드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막연한 거부감과 우월감만 앞세우던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후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합병당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 우리가 잊지 말고 배워야 할 역사는 '우리'의 역사만이 아닐 것이다.

2017.08.29ㅣ주간경향 1241호

2017-08-19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환경주의

환경주의의 다양성

환경주의는 넓은 개념이다. 가령 최초의 동물 보호 운동을 벌였던 것은 사냥꾼들이었다. 자신들이 사냥을 하다보니 생태계 균형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환경주의자'는 반드시 '탈원전'에 동의할 필요가 없다. 환경주의에도 여러 갈래가 있으니 말이 나온 김에 분류를 해보기로 하자.

1) 반인간적 환경주의: 지구 환경을 위해 인류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만약 위 문장에서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는 굉장히 극단적인(혹은 '래디컬'한) 입장인 셈이다. 영화 〈12 몽키즈〉에 나왔던 것처럼,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간을 죽이는 그런 반휴머니즘적 환경주의의 길을 택하는 것이니 말이다.

2) 문명 퇴행을 수용하는 환경주의: 환경을 위해 인류는 길어진 기대 수명, 풍요로운 식생활, 청결과 위생,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구조, 법치주의 등 기존의 문명적 가치를 포기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그래야 하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반 문명적' 태도에서 환경주의를 주장하는 셈이다. 이웃간에 정감 넘치는 생활을 하기 위해 냉장고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철학자' 강신주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함께하는 진보 진영에서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생각이다.

3) 현대 문명과 함께하는 환경주의: 지구 환경을 위해 인류는 기존의 '문명적' 가치를 포기하는 대신, 우리가 가진 과학과 문명의 도구를 최대한 발전시켜야 하는가? 나를 포함해 원자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환경주의자들이 택하는 입장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그러면서 더 많은 서비스와 풍요를 누리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그 활용도를 더 높여야 한다.

현재 '탈원전' 논의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2)에 속하는 이들이 3)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매도하는 일에 너무도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3)에 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2)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방사능 공포를 부추기면서, 특히 저개발국가에서 벌어질 기후 변화의 충격을 나몰라라하는 이기주의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일종의 '에너지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할까?

에너지 사다리 걷어차기, 그리고 우리의 솥단지

우리가 누리는 풍요를 그들이 누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환경주의의 이름으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우리는 개발도상국이 급격하게 화석 연료의 사용을 늘림으로써 기후 변화의 충격이 더욱 강하게 몰아치는 것을 수수방관해서도 안 된다. 결국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기저부하를 공급할 수 있는, 현재로서의 유일한 해법인 원자력 발전을 더욱 확장하는 것만이 해법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누렸던 행운도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지만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재획득했고, 그렇게 얻은 정치적 동력을 바탕으로 영남권의 공업 단지에서 요구하는 전력 수요에 따라 해당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를 대거 건설할 수 있었다.

오늘날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도시 거주민들은 원전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급격한 탈원전 드라이브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대체 왜 해당 지역에 그렇게 원자력 발전소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 지역에 대한민국의 핵심 중공업 단지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중공업 단지들의 존재로 인해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은 높은 경제 수준을 향유하고 있으며, 더불어 대한민국의 경제도 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양 고리1호기를 내팽개쳤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우리가 수십년 동안 밥을 해먹은 솥단지인 것이다.

아무리 원전이 싫고 미워도 그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말자.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에너지를 24시간 생산해내는 원자력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가난을 극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문명화된 삶을 누리고 있다.

선진국 환경주의자들의 이기적 폭력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에너지 복지를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전지구적 기후 변화가 세계인들의 거주지를 뒤흔들고 건강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지금, 원전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가.

무턱대고 방사능의 공포를 외치며 반대하는 그런 식의 환경주의는 1960-70년대 가장 풍요롭고 잘 살던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너무도 당연했기에 그들은 자발적 가난을 칭송했다. 단 한 번도 굶주려본 적이 없는 이들이기에 거리낌없이 녹색혁명을 비난하고 화학비료의 사용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환경을 위해서는 인류의 숫자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멜서스주의적 세계관 역시 그 무렵 환경주의자들이 유포한 것이다. '인구 폭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도덕적 당위인 양 포장되면서, 서구의 임신중절기술이 한국, 중국, 인도 등의 개발도상국에 도입되었으며, 그 결과 무수한 여아들이 선별낙태당했다.[1] '에너지 사용을 늘리지 말고 인구를 줄이자'는 발상은 이토록 반인륜적이다. 줄어드는 '인구'는, 당연히,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환경주의자들은 반성하고 있다. 〈판도라의 약속〉에 출연한 마크 라이너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통스럽게 실토한다. 환경주의자들이 무턱대고 원자력에 대한 증오심만을 불러일으킨 결과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력발전의 공해로 목숨을 잃었다고. 환경주의자들은 그러한 판단 착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더 이상 원자력혐오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홀 어스 카탈로그」를 창간한 사람, 1960-70년대 환경주의와 히피즘의 창시자 중 하나인 스튜어트 브랜든은 TED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도시화를 반대하고 시골 생활이 좋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정작 시골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는, 내가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옹호하는 환경주의자가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원전혐오자들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생각을 직접 만들어낸 사람이기에, 그것을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또 바꿀 수 있었으리라.

지구를 위해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방법론이다. 모두가 골고루 가난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충분히 풍요로운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면 냉장고를 없애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눠먹자는 소리를 할 턱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렇다. 환경을 걱정한다면서 사람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그런 환경주의에 나는 반대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환경주의 말이다. '까짓 전기요금 좀 오르면 어떠냐'고 으스대거나 '에어컨 안 틀어도 한산모시를 입으면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가진 자의 여유일 뿐이다. 그 몇 푼의 전기요금도 내지 못해 여름에는 헐떡이고 겨울에는 덜덜 떠는 그런 이들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와 에너지 정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건 보수라고 생각하건, 더 많은 이들이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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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구 폭탄'론의 유포, 아시아권을 향한 서구의 산부인과 기술의 급속한 전파, 그로 인한 여아 선별 낙태에 대해서는 마라 비슨달, 박우정 옮김, 『남성 과잉 사회』(서울: 현암사, 2013)를 참고. 이 책에 대한 나의 서평은 「주간경향」 1151호(2015.11.17)에 게재되었으며, 이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2017-08-15

[북리뷰] 현해탄의 군함도, 오호츠크해의 게공선

게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저·양희진 역·문파랑·1만원

『게공선』은 192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될 때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걸작이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부터 새삼스레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책의 말미에 붙은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게공선의 새로운 바람은 "일본 매스컴이 일본 사회의 빈곤 현상을, 워킹 푸어(Working Poor)와 〈게 공선〉의 작품 세계를 연결해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었"(196쪽)다고 한다. 그 열풍은 『88만원 세대』의 출간을 계기로 청년들의 빈곤 문제에 대해 논의가 한창이었던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그때 이 책을 한 번 읽었고, <군함도> 논란이 뜨거운 지금 다시 펼쳐들었다.

책으로 들어가보자. 1920년대 일본, 홋카이도의 도시 하코다테(函館)에서 게잡이 공선 하쓰코호가 출항하는 장면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공선(工船)이란 수산물 가공 설비를 갖추고 있는 어선이다. 가령 참치캔 같은 어류 가공품의 상당수가 공선에서 만들어진다. 공선에서 곧장 어류를 가공하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고 제품을 보관하기에도 용이하다. 하지만 『게공선』에서 말하는 바, 당시 공선을 운용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게 공선은 '공장선'으로 '선박'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41쪽) 그 결과 하쓰코호는 선장이 아니라 노동자를 관리하는 감독이 지배한다. 하지만 바다에 떠 있기에, 혹은 작품 내에서 설명하지 않는 다른 이유로, 게 공선은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그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었다."(42쪽)

어선이면서 공장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어선이 받아야 할 규제도 공장이 받아야 할 규제도 받지 않는 치외법권. 그것이 게 공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 착취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성장과 궤도를 같이 하는 현상이었다. "내지에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커져서 무리하게 일을 시킬 수 없게 되었고, 시장도 대부분 개척해버리자, 자본가들은 '홋카이도, 사할린으로' 갈고리 같은 손톱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와 똑같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노동자를 '혹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자본가들은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83쪽)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름이 아니라 특징으로 기술되는 익명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연대하고 투쟁하는 법을 배워나가 동맹파업에 이른다. 자신들의 편일 줄 알았던 해군이 오히려 파업을 진압하는 광경을 목도하며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180쪽)고 절규한다. 그리고 또 다른 투쟁을 결의하면서 작품이 끝난다.

식민지 뿐 아니라 자국의 하층민들 역시 일본의 자본주의는 철저히 착취하고 있었다. 그들의 저항은 제국주의적 무력으로 억눌렀다. 『게공선』은 단 한 줄의 '이론적' 서술도 없이 피와 오물을 뚝뚝 흘리는 자본의 원시축적과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그려낸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덧붙이는 말>에서 "이 한 편의 글은 '식민지에 있어서 자본주의 침입사'의 한 페이지이다"(185쪽)라고 말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과 수탈은 통제받지 않는 자본의 횡포와 뒤엉켜있다는 사실을 1929년의 그는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보다 섬세하게 입체적으로 심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게공선』을 다시 거론하게 되는 이유다.

2017.08.15ㅣ주간경향 12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