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15

강유원 게시판의 비극

최근 몇 차례의 삭제와 글쓰기 금지 파동을 겪으며 급격하게 찌질해진 강유원 게시판의 분위기는, 그 운영자가 선택한 삶의 방향으로 인해 어쩌면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 밖에 없었던 현상이었을지 모른다. 짧은 문장들로 추려서 말하자면, '회사원 철학자' 강유원의 카리스마가 예전같지 않게 되었고, 그리하여 쇠락의 냄새를 맡은 몇몇 파리들이 꼬여들어 그러한 문제가 불거졌다는 뜻이다. 파리라는 말이 개인적으로는 심할 수도 있지만, 자기만의 '철학'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치들을 따로 불러줄 말이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용어를 정정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강유원 게시판은 예전같지 않고, 그 배경에는 운영자의 카리스마 쇠퇴가 가장 큰 이유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나는 기억한다). 어설프게 '나만의 철학'을 풀어놓으려는 자들에게 강유원은 자신있는 어조로 '공부가 안 되었군,' 이라고 운을 뗄 수 있었고, 그러면 그의 동료들이 나서서 '이러저러한 책들을 먼저 읽어봐라'라고 마무리를 해줬다. 말하자면 그가 어떤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는 뜻인데,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점은 대체 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권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진실로 그렇다. 강의와 인세 수입(이라는 게 있다면)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지금, 그는 굳이 밤잠을 쪼개가며 책을 읽을 필요 없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여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할 수 있다. 책을 들여다보는 양과 가르치는 내용의 질이 정비례까지는 아니어도 대충 비슷하게 따라간다고 가정하면, 그가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또한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풍성해져야 마땅하며, 그러한 변화는 대중에게 철학을 강의하는 그의 '선생'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켜야 마땅한 것 아닌가? 헌데 상황은 그 반대다. '회사원 철학자'라는 수식어에서 '회사원'이라는 명사 하나가 떨어져나간 순간, 강유원의 아우라 중 매우 중요하고 커다란 것이 함께 사라져버렸다.

강유원이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것은, 그가 기존 '학계'의 논리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 금전적으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뜻했고, 그리하여 그는 '독립된 지식인'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이러한 셈법이 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손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중요한 미덕이며,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택하지 않으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기 위해 그가 벌였던 숱한 고행의 의의를 폄하할 생각도 전혀 없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회사원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가 누리고 있던 특수한 아우리가 과연 그 자체로서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볼 때 합당한 것이었나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돈을 받으며 연구하는 것, 꾸준히 논문을 써 내고 동시대의 학자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것, 아카데미즘의 본질이라면 본질을 구성하는 이러한 요소들을 폄하하는 것이 '회사원 강박사'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그는 보란듯이 철학과 무관한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해왔다. 간단하게 줄여 말하자면 일종의 '은둔고수' 같은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에 다님으로써 그는 아직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직장인들의 호감을 사는데도 성공했다. 사람은 자신이 도저히 못할 것 같은 일, 다시 말해 질투를 하기에는 너무 어렵거나 그럴 가치가 없어보이는 일을 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에는, 대체로 사심 없는 칭찬을 보내는 법이다. 이 두가지 맥락이 맞물려 강유원은 나름대로 (책을 사서 읽는) 대중들 사이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요점은 그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아니다. 철학 공부를 하면서도 학계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대중들에게는 감동이었고 카리스마였고 '포스'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분위기 자체가 정당한 것일까? 내가 추측하는 바와 같이, 강유원의 책을 구매하던 대중들이 '회사원 철학자'의 이미지를 먼저 소비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철학자가 어떤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과연 그 '회사원 철학자'라는 딱지는 정당한 것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되물어질 될 수 있다. 과연 철학이라는 분야에서는 '은둔고수'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자기들끼리 '빨아주는' 논문을 쓰는 대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헤겔 원문만을 파고 있다보면,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선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강유원이 '내가 공부하는 방법'에서 제시하고 이후 자신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간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에는, 이렇듯 무협지의 내적 논리가 진하게 묻어나있다. 강호 잡사에 물들지 않고 오직 무공 한 길에만 정진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호탕한 웃음 한 번 짓고 스러질 수 있다는, 일종의 자뻑이며 자학인 그런 종류의 존재미학.

다른 부분을 다 접어두더라도, 그런 방식은 근대 학문의 기본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과학이건 철학이건, 그 학문이 대상으로 삼는 데이터(박홍규 식으로 말하자면)에 대해 자유롭게 연구하고 발언하는 것이 근대 학문의 정신이라면, 공부하는 이는 마땅히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그들과 소통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강유원은 학계에서 떨어져나간 후 홀로 외로이 헤겔을 읽는 길을 택함으로써, '뭔가 센 놈'과 독고다이를 뜨고 싶다는 자신의 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켰을지언정, '공부'를 하고 싶다는 더욱 근원적인 바램은 접어두게 된 것이다.

결국 지금 나는 그가 하는 일이 '공부'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헤겔을 읽어도 토론을 할 수가 없고, 서평을 쓰면 '잘 봤습니다'라는 리플성 트랙백만이 달리는 현실. 강호에서 발을 빼면서 그는 시골 마을에서 검을 가르치며 독야청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누구와도 시원한 칼부림을 주고받을 수는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무협지의 세계에서는 혼자 폭포수 옆에서 서른 여섯가지 자세를 잡고 운기조식을 하면 '내공'이 늘어나지만, 그런 일은 현실 속에서 가능하지 않다. 혼자 산 속에서 무공을 연마하던 '고수'들이, 다른 동료들과 투닥거리며 질펀하게 연습을 하던 '스포츠맨'들에게 줄줄이 얻어터지고 깨어져나갔다는 것은 이종격투기 'K-1'의 역사가 처절하게 증명하는 바와 같다.

아무튼 그가 화전을 일구고 있던 동안에는 '강호'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명백했고, 그리하여 '은둔고수'의 품위도 유지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전업 지식인, 혹은 강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고, 즉 '나 철학자 아니야. 그저 책을 좋아하는 회사원일 뿐이지, 허허허'라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포스를 잃어버리자, 여태까지는 범접하지도 못하고 있던 다른 '재야'들이 칼을 빼들고 기회를 노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품위가 있는, 적어도 '가오'를 잃어버리지 않는 법은 아는 사람이고, 그 게시판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다른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도 힘입어서, 강유원 게시판은 그럭저럭 책에 대해 물어보고 대학원 진학에 대해 상담하며 '철학 공부하면 먹고 살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은 그런 공간으로 남아있기는 하다.

그 균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은, 애초에 강유원이 설정하고 있던 모두스 비벤디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둔고수'는 허구의 개념이며, 설령 그런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면 이 자본주의 세상은 그런 인재를 반드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내고야 만다. 스타크래프트 연습생들은 모두 인터넷 고수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센 놈만이 남아서 프로가 되는 것이 그 바닥의 생리이듯이 말이다. 헌데 강유원은 그 길을 택했고,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상당한 수의 대중들이 그의 그러한 행보에 갈채와 찬사와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강유원은,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진정 인문학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았어야 한다. 그들은 다만 현실 속에서 '은둔고수'가 현현하기를 고대하고 있던 뒤틀린 무협지 매니아였을 뿐이다. 헌데 그 이미지는 서사의 논리만을 따지고 보더라도 잘못된 것이어서, 그가 진정 '내공'을 쌓기에 적합한 처지가 되자 자체적인 모순에 의해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대상은 결국 강유원 개인이었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바는 그의 책과 홈페이지와 게시판에서 나온 것 뿐이기에, 글 제목을 '강유원 게시판의 비극'으로 하기로 한다.

댓글 25개:

  1. "은둔 고수의 판타지"라는 것, 굉장히 끈질기지.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외과의사가 마지막에 하루 재수술할 때 자기 손 떨린다고 재야에서 십여년 썪은 자기 스승한테 수술해달라고 부탁하는 거 보고, 실소했던 기억이 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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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스꽝스러울 뿐더러 현실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하지만 '문제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써놓은 마르크스의 책을, 많은 좌파 청년들이 무림 비급처럼 달달달 읽고, 그런 과정에서 뭔가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는 식의 거짓 만족을 얻고 있다는 거지. 강유원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런 판타지를 직접 삶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거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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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림고수하면 또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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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강유원 씨는 튼튼영어사의 직원은 아니지만 안국동의 모처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그 게시판의 수질이 저하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선생이 소통의 장을 bbs에서 networkpolis.net의 on/off로 옮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 선생은 따로 헤겔 철학을 연구하지 않으며, 자본주의를 철학으로 규명하겠다, 혹은 변혁하겠다는 야심도 없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근본적이어서 오히려 실천적으로 보수적이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파트타임(강사,번역,기고)을 포함한 밥벌이 이외에 선생이 공적으로 하는 일은 무료로 철학적 텍스트를 읽는 법을 가르치고, 또 다른 전공자들(예를 들면 지주형씨, 김영건 선생 등)에게 배우며, 그 결과를 나눠먹는 일 입니다.
    자신이 은둔고수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설사 마음 한켠에 그런 야심이 있다 해도, "결과로 말해야지, 진정성 따윈 소용없다"는 걸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걸로 보아, 결과를 지켜보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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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r/ 말씀하신 안국동의 모처가 '풀로 엮은 집'이라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제 글에서 이미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전문적으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된 것 부터가 '회사원 철학자'라는 막강한 타이틀에 흠집을 낸 사건이라고 저는 말하고 있어요. 제가 강유원님이 소득이 있네 없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networkpolis.net의 문제는 제가 모르니 님의 견해를 존중하겠습니다만,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몇 건의 질문이 들어왔을 때 줄곧 리오 휴버먼의 책을 권하셨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유원 님의 방식이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며 그러면서도 너무 야심이 크다고 판단하는 입장입니다.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님이 전달하신 강유원 님의 말씀대로, 결과를 지켜보는 편이 낫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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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노정태/ 서핑하던 도중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네요. 글의 결론만 한두 문장으로 요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난잡하여 독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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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직접 요약해낼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직접 해보시는 편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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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강유원씨가 회사원이네 아니네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줄은 몰랐군요.
    전 그냥 어디서나 출몰하는 찌질이들의 수가 강유원, 혹은 강유원 블로그의 지명도가 높아지는 것과 관련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했는데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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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강유원이 회사원이었던 게 뭐 그리 중요한 지 모르겠군요.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혼자 낄낄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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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강유원선생 말고 주류권 학자들도 다 그럽니다. 헤겔책을 읽으며 무협지판 내공 쌓기? 헤겔보다 까마득하게 오래전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철학서를 평생 들이파는 주류학자들도 많습니다. 인문학은 주류든 아니든 한국 현실에 과연 얼마나 이런것들이 쓸모가 있을지 쉽게 인식되는 그런 분야가 아니죠.

    강선생이 요즘 추천하는 경제사나 사회과학, 역사 등등에 관한 책들은 충분히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그런 서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철학과 수업을 들어보기나 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요즘 한국에서 철학계 주류라고 할수 있는 독일관념론이나 분석철학, 프랑스철학 같은데서 하는 담론과 논쟁이 얼마나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지 아십니까? 강선생 만큼 현실지향적인 사람도 보기드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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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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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여기에 약간의 해답이...

    "오늘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손에 물 묻히기를 싫어하며 힘있는 자에게 지식을 팔고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며 기생한다. 지식인들이 기득권자의 편을 들고 이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다. 나는 영주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는 르네상스식 지식인이 아니라, 기도와 학문과 노동을 병행하며 자급자족한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와 같이 건강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한다."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06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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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노정태가 이런 글도 썼었군. 선생의 포스가 금전에 초월한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포스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노정태는 블로그에서 단 세줄이면 요약되는 내용도 없는 글만 질질거리며 쓰고 돌아다니지만 강유원의 글은 나날히 짧고 간결해지면서 단단해져 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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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아는 게 없는 초딩 같은 글이네.
    자뻑에 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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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글좀 간단하고 명료하게 쓰시면 안됩니까? 게시판이 문제라는 겁니까? 강유원씨가 문제라는 겁니까? 아니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겁니까? 그리고 비유가 글의 이해를 도와야하는데 그저 방해가 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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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강유원씨 생긴게 레알 좆ㅋ망ㅋ 가끔 강유원이 쓴 글 보면 지가 잘생긴줄 알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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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파리가 꼬이기론 이 게시판의 비극도 만만치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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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이분 밀크커피 못마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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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비극은 뭔 비극..강유원빠의 신종버전이구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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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지나다 읽어봤는데 님은 글쓰기 선생이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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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강유원이라는 사람은 몰랐습니다만, 노정태 씨의 글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문학 전공자라 제게도 늘 '어울려야 하는가'와 '틀어박혀야 하는가' 사이의 망설임이 있었는데... 무림고수의 꿈은 소심함으로 인한 것이었군요. 반성하고 용기를 내야겠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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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3줄 요약
    1.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아빠가 보내준 학비로 평생 학교 울타리안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온 학생이
    2. 자신의 식견도 결국은 권력과 자본에 포섭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3. 검정고시 출신 친구를 촌스럽다고 까는 글(이지만 사실은 열폭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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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진짜 한심해서 한숨만 나오네....강유원이 느그들 머리 위에 있단다...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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