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6

라캉적 임상 진단 및 치료

"논쟁의 효과,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한윤형의 블로그, 2008년 3월 15일)에 달린 리플을 통해 이루어진 언어적 임상 진단과 치료 가능성에의 타진을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라캉은 의도적으로 글을 어렵게 썼습니다. 또 그 스스로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가는 과학이라는 개념에 안주해서는 안되며, 어떤 차원의 지식도 쉽게 진실의 차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해야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스스로 잘 잡히지 않는, 미끄러지는 전략을 취한 겁니다."라고 레비나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환자 A가 말했다. 나는 그가 진보누리에서 한윤형과 벌이던 논쟁을 통해, 그에게 일종의 언어 장애가 존재한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경우에도 그러한 증상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가령 그 전 리플에서, 환자 A는 "라캉이 기본적으로 대수학을 인용, 차용했던 것은 자신의 이론을 R 도식과 L 도식을 이용해서 보다 간소화하고 보기 편리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였"다고 주장했다(띄어쓰기와 맞춤법 등은 환자 자신의 것을 그대로 살렸다). "의도적으로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이, "보다 간소화하고 보다 편리하게 가르치"기 위해 대수학의 도식을 차용했다는 모순을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저지르고 있다.

인식의 지체 현상 또한 그의 언어에서 발견되는 심각한 징후 중 하나이다. "라캉은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상대한 최고의 임상의였습니다. 또 그 권위는 적어도 한다락 글로서 정리되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에는, 이미 플라톤이 제시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경험(empeiria)과 기술/학문적 인식(techne/eposteme)의 차이가 태연하게 무시되고 있다. 라캉이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상대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경험 차원에 머물 뿐이다. 라캉의 방법론이 보편적 사태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라캉 본인도 전기와 후기로 나뉘며, 아직도 전기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가령 제너의 종두법 같은 경우, 종두법을 발견하기 전 단계인 '전기 제너'가 남겨놓은 연구 방법론에 대한 연구, 아니 차라리 탐닉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지난 글에 달린 리플에서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없더라도 무엇이 과학이 아닌지에 대해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 과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라캉의 정신분석이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같은 입장이다.

만약 라캉의 정신분석이 의학에 범주에 속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가 의학으로서 합당한 자격을 지니고 있음을 이론과 실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라캉 계열의 정신분석가들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매일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으며,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적어도 미국에서는, 브루스 핑크에 따르면)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만약 정신분석이 의학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한 나는 더이상 그에 대해 품평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환자 A와 같은 이들은 정신분석이 의학으로서의 권위를 갖추면서도, 동시에 의학이 아닌 그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는 개념 착란을 보인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징후가 의학적 증상과 확연히 다른 그 무엇이라고 쳐보자. 그렇다면 환자 A는 '라캉은 의사가 아니다'라는 명제에 굳이 반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의사가 아닌 사람을 의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1000명과 임상을 진행한 라캉의 권위를 내세운다. 이러한 심리의 이면에는 매우 원시적인 인정 욕구가 존재한다. "예전에 어느 뇌과학 연구 분야에서 상당한 권위에 있는 어느 학자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자연 과학은 물론 인문학에 대한 다랑의 독서를 하고 있는데, 이 분이 하는 말씀이 현대 뇌과학에서 연구하는 자아는 주체는 無라는 라캉의 주체 이론과 밀접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생산적인 대화의 예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묻는 모습을 보면 그 점은 매우 확연해진다. 그 대화를 통해 생산된 지식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라캉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과학자가 인정해 주었다'라는 작은 위안이 선사되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단순히 증상을 약화 시킨다는 의미에서 약물 치료와 행동 심리학이 임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이런 의미의 임상에서 정신분석은 당연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의 임상은 특히 라캉의 임상은 차라리 그런 지위를 거부하"고 있다면, "단순히 증상을 약화시킬 뿐"인 의사들이 정신분석가들을 인정해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지젝-라캉주의자들이 라캉적인 의미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들은 라캉의 권위를 곧추세우면서도 라캉의 언어를 자신들의 상징계 속으로 포섭하지는 못한다. 세미나, 에크리, 알렝 밀레의 논문을 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환자 A이다. 자신이 먼저 라캉을 읽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오해를 교정하는 것이 순서에 부합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그 언어를 소화하려 들지 않고, 도리어 상대방에게 그것을 읽으라고 강요한다. 그는 라캉의 언어와 직접 대면해야 하는 순간을 계속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라캉의 의견이 일치하는 단 하나의 지점이 도출된다. 이 환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댓글 8개:

  1. 지나가다 들렀네요. 한심한 글입니다. 논쟁 목록도 훑어 봤는데, 사실 라캉 논쟁이라긴 보단, 그냥 과학대 철학의 논쟁이라고만 보여지네요. 사실 국제 정신분석 흐름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런 주장들을 합니다. 그러나 임상의인 제가 봤을때 라캉 학파는 전 세계 정신분석가중 반은 차지합니다. 한국만 조금 기형이라서 미국식 대상관계이론만 차용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 점을 모두 간과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국내에서 열린 지난 정신분석 국제 세미나에서 주된 충돌은 라캉대 영미 정신분석 이론의 충돌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라캉 이론가들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관계는 아닙니다. 절대.. 블로거님은 정신분석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것 같네요. 정신분석은 애초부터 문학적인 요소가 다분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사실 정신분석을 비판하는 논자들은 아예 라캉만을 가지고 비판하는게 아니라, 정신분석 자체를 폐기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블로거님은 라캉만을 걸고넘어지고 있네요. 이해 불가능입니다. 사실 정신분석 하나만 놓고보면 라캉 뿐만아니라, 대다수 이론들이 과학적 명증성과 확연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전이 하나만 놓고봐도, 환자들의 심리에 대한 메타 철학적 자세를 요구하고 있고, 과학적으로 딱 나온 증상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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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몇가지 덧붙히자면, 님이 말하는 과학 어쩌구는 프로이트부터 해당되는 이야기랍니다. 프로이트의 후기 저작에서 생물학 개념들이 차용되는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의 사상 전반은 경헝주의적 과학과는 별개로 매우 메타적인 비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구술논법이나등등등.. 이런데 왜 어째서 라캉만이 문제가 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심리학 개론을 보면 아마 인지과학이나 행동심리학이 대세겠지만, 이 사람들도 늘 프로이트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골때리는건 미국 학계에서도 이런 되도않는 논쟁이 있는데, 정작 그런 편견을 걷어내면, 라캉이든 뭐든 아무렇지 않게 섞여서 연구되고 있는게 사실이라는 겁니다. 과학이니 뭐니 이런 질나쁜 논쟁을 전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준이 다들 저열합니다. 뇌과학에서 헤겔을 연구하는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합니다. 미국에선.. 또 그걸 비과학이니 뭐니 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만 그런 논쟁이 마치 주효한 논쟁인양 포장되고 어쩌구 하더군요.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남아돌면 공부를 더들 하시던가.. 여기보니 어느 임상께서 라캉이 듣보잡 취급되지 않는다고, 그 사이에 전공 공부를 더 하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공감이 갑니다. 사실.. 블로거님이 임상의신지 아님 전공이 다른 어떤 분이신지 모르겠는데, 라캉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거론하는 것도 삼가해야 맞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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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가 이 논쟁을 통해, 라캉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실 국제 정신분석 흐름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런 주장을 한다"는 식의 시건방을 떠는 대신, 대체 어떤 흐름이 어떻길래 "라캉 학파는 전 세계 정신분석가중 반은 차지"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소명할 것.

    둘째, "라캉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거론해야 하는 것도 삼가해야 맞"다는 원칙을 준수하고, "뇌과학에서 헤겔을 연구하는게 가당키나 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이어가, 정신분석가인 라캉의 추종자들이 심리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부당한 일임을 인정할 것.

    제 요구사항은 이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라캉을 옹호하시는 분들은 위 두 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더군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추측 하에, 저는 이 글에 대한 추가적인 코멘트를 받지 않겠습니다. 필립님이 리플을 다신다 해도 무시당하거나 삭제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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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블로거님이 불쾌하셨다면 죄송하네요. 저는 블로그들을 자주 돌아다니는데, 님의 블로그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런데 괜히 님에게 불쾌한 언사를 한것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님 반응도 그렇고. 그러나 블로거님. 님 주장은 정확히 모순입니다.

    경험적 과학이라고 하신다면, 사실 라캉 정신분석이 아니라, 정신분석 자체가 의심이 대상이 됩니다. Dufresne의 The black book of psychoanalysis를 읽어 보셨는지 말입니다.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의심이 되는건 대상관계 이론이나, 영미식 자아-심리학의 일부분의 연구들 빼면 대다수 정신분석학이 과학이 지위를 잃게 됩니다.

    제가 임상의라고 밝혔음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네요. 부르스 핑크를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핑크가 지적하는 정신분석학은 대다수 정신분석학이 쪼들려 있다는 거지(의료보험 적용이 안된다등등) 라캉 정신분석이 규모가 작다고 하는거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선 오해를 하셨네요.

    간단해요. 유럽은 딱 반반입니다. 유럽의 IPA의 임상의로 등록된 회원이 4만명이고 라캉 정신분석학의 프로디옌의 영향을 받은 임상의가 4만영입니다. 영국계 족이 주로 IPA의 흐름을 따른다면, 스페인과 프랑스쪽은 거의 라캉 이론의 주도 아래 있습니다.

    그 외 일본은 라캉이론가들이 즐비하고, 아마 영미이론이라고 불릴 자아 심리학 또는 대상관계이론은 아메리카 대륙 빼고는 그렇게 주도적이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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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의심이 되신다면 콜뤼지같은 데서 검색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디 한국같이 편중된곳이 있는지.. 논문 나오는 숫자만 봐도 답 나옵니다. 오히려 핑크의 에크리의 번역본 이후로, 라캉의 이론이 미국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추세인데, 왜 이런 최신의 흐름을 간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위기를 느낀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지난해 열린 대회에서 공공연하게 라캉주의자들을 까기도 했습니다. 그 쪽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책자들 보면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황당한건 라캉 뿐만 아니라, 영미계 사이에서도 자아 심리학과 개인 심리학등등.. 얘네들도 나뉘어서 쌈을 한다는 겁니다. 서로 과학이 아니니 뭐니.. 자아가 어쨋느니 뭐니..

    정리하자면 정신분석을 까거나 비판하는 두가지 흐름이 있는데, 노정태님이 말하는건 포퍼식의 과학주의 주장에 관련된 겁니다. 이 경우 라캉 뿐만 아니라, 대다수 이론들이 비판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는 아마 아이추판다?님이 하고계신 자아 심리학등등 국내에 수입된 이론에 비추어 라캉을 까는 겁니다. 사실 심리학도는 공공연하게 과학도들과 논쟁을 많이 하는데, 심리학도 딱히 과학이라 불릴 요소가 적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아이추판다님의 주장은 상당히 모순된 겁니다.

    여하튼 오래된 논쟁인듯 싶은데, 괜히 댓글을 달아서 노정태님의 심기를 상하게 했습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시간이 남아도니 할일없는 놈이 그랬다치고 너그럽게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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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이고.. 그리고 덧붙히자면,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라캉은 에크리에서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닌, 정신에 관한 과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동의하는 편입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정신에 관한 과학은 통속적인 경험주의적 과학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연구하는것이 정신분석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인간의 의식이 언어로 구조화 되어있다면, 당연히 이 무의식의 차원은 사회-구조에 대한 메타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노정태님의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그게 원래 라캉의 뜻이었고, 라캉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며, 임상의인 제가 봐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신분석이 치료성이 없는 듣보잡라는건 아니지요. 인간의 의식을 치료하는 방식은 겉에 보이는 증상을 두고 치료를 하는게 아니라,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물리적인 치료에서는 의지가 어떻든 치료는 가능하지만, 정신분석에서는 환자의 의지와 심리적 상태등등이 없다면 전이는 불가능합니다. 즉 명확한 치료 효과는 정신분석가와 환자의 관계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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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http://blog.naver.com/maaalgn?Redirect=Log&logNo=100012967483 요기가셔서 기사를 읽어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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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노정태님의 비판글은 어찌보면 라캉이 아닌 광신도들, 즉 반기독교주의자가 광신도를 비아냥 거릴 때 쓰는 방법론이라고 보여집니다. 라캉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못되죠. 지금 말하는건 모두 그 광신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정태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기독교주의자들처럼 기독교자체에 대한 비판이 성공적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순과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위치시켜서는 안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저는 광신도들을 비난하는 것이 전혀 순수할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과학이다 아니다라는 주장은 그것 때문에 끌어다 쓰고 계신거 아닌지요. 그냥 지나가다가 흥미로와서 글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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