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5

타인의 글을 읽는 자세

"사실 노정태의 반론에 대해서, 약간 우려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글을 썼다. 그의 글은 "이 모든 건 다 유시민 때문이다."로 요약될 수 있다. 그 견해에 동의하는 면이 없는 바는 아닌데, 결국에 노정태의 글은 이 투표율 하락의 책임도 유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단호한 글쓰기'로 진실을 호도하기", How may cuts should I repeat?, 2008년 4월 15일)

내 글에서 과연 저런 내용이 나왔던가? 유시민의 이름이 등장하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최장집은 탄핵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는 선관위와 헌법재판소를 비판하였지만, 사태가 수습되고 유시민이 민주당을 파국으로 몰아가던 시점부터는 꾸준히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해왔다."

"아이추판다님은 "뭘 말아먹었는지 얼마나 말아먹었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집권여당이 정권말기에 당 간판을 내렸다면 하여간 무엇이든 심각하게 말아먹었다는 건 분명해보인다"라고 하지만, 구 열린우리당이 당 간판을 내리고 아작이 나게 된 것은 노무현 유시민을 비롯한 일부 정치적 급진주의자들이 지역감정의 해소라는 이념적 당위를 위해 정당의 존립 근거를 전부 뒤흔들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그 자체가 노무현 정권이 행정부 차원에서 벌인 실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과 이해찬 등 이른바 '친노' 계열과 정동영을 선두로 하는 신규 당권파들이 기존의 민주당 세력과 분당하면서, 지역적 기반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의석을 갖게 된 '탄돌이'만으로 구성된 정당이 바로 열린우리당이었다. 망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최장집과 총선에 대한 의견들", 노정태의 블로그, 2008년 4월 14일)

'읽힐 수 있다'는 말에 방점을 찍어봐야 소용 없다. 한윤형은 내가 술자리에서 떠든 내용과, 그것을 정련하여 만든 글의 내용이 같으리라는 짐작 하에 제대로 된 독해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구 열린우리당이 간판을 바꿔 달고 통합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후 선거에서 참패하였고, 그 과정에서 투표율이 바닥을 친 것이 전부 유시민 탓이라고 나는 주장한 바 없다. 다만 열린우리당은 망할 만한 집단이었고, 더욱이 그들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적 차이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고, 그래서 '대안'을 찾지 못한 국민들이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이 글에서 전제하고 있는 18대 총선에 대한 분석이다. 나는 한윤형이 나의 취지를 함부로 축소하고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열린우리당이나 통합민주당이 자신들의 계급적 지향성을 가감없이 드러내게 된 것, 그것도 유시민 때문이라고 내가 말하고 있는가? 노회찬 심상정이 지역구에서 낙선한 것도 유시민 때문이라고 내가 말하고 있는가? 총선 득표율이 50%도 안 되는 것이 유시민 탓이라고 주장하려면, 혹은 그런 주장을 암암리에 전제하려면 적어도 내가 기존에 쓴 글보다 훨씬 더 길고 복잡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글은 "이 모든 건 다 유시민 때문이다."로 요약될 수 있다"고 내 글을 넘겨짚는 모습을 보고, 다소 어이가 없어서 그의 글에 트랙백을 보내기 위해 이 포스트를 작성하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나는 술자리에서 필 받은 김에 하는 소리를 그대로 블로그에서 '의견'으로 제시할만큼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나는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 "유시민 이 개새끼, 나라 꼴이 이게 뭐야?"라고 소리를 지르긴 했다. 하지만 그걸 '정치적 분석'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정치적인 분석을 담은 글에 고스란히 그 취지를 담고 있으리라고 짐작한다면 매우 곤란하다. 아,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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