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친구와 함께 광화문에 다녀왔다. 동화면세점 앞 광장과 청계광장 양쪽으로 촛불시위가 형성되어 있었다. 동화면세점 앞은 집회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이 그냥 모이기 시작한 곳이고, 반면 청계광장은 진보신당과 그 외 단체들이 주도하는 촛불문화제였다. 우선 동화면세점으로 갔다. 닭장차가 그 모퉁이를 빼곡하게 가로막고 있었고, 그 속으로 촛불시위하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전경들이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광화문 사거리 방향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말이,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차단되고 있었다.
그들은 10시 넘어서 집회가 야간집회로 규정될 때까지 아마도 그 자리에서 계속 대치할 것이므로, 나와 동행인은 청계광장 쪽으로 넘어갔다. 그때가 이미 9시 20분이 막 지나던 시점일 것이다. 촛불문화제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청계광장에는 그을린 파라핀 냄새가 그득했다. 여고생들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관련된 이 논의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협상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내 친구는 이름, 전화번호, 주소와 함께 서명을 남겼다.
곧 촛불문화제가 끝났다. 10시 정각에서 10분 모자란 시각이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 정말 있다면 이 많은 인원이 그냥 흐지부지 집에 가게 냅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고, 그들 중 일부가 방금 내가 보고 왔던 동화면세점 앞으로 향했다. 그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전경들의 뒷통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10시 정각이 되자, 야간이 되었다는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제 몸이 좋지 않았던 동행인은 앉을 자리를 찾았다. 면세점 앞 동상 위에 걸터앉았다가, 내려와 화단에 앉았다.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같이 찾아주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10시 20분 무렵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별다른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줄로 전경 라인을 뚫고 해산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속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자진 해산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런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적어도 1000명은 될 것 같았던 인원은 20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경찰의 포위망은 더욱 촘촘하게 얽혀들었다. 동화면세점 앞 광화문 버스정류장까지 전경들이 점거했다. 고개를 좌우로 아무리 넓게 돌려도 닭장차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들이 200명 가량의 시위대를 완전히 포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차를 보았다.
(정체불명의 차량: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아까까지 없던 차가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이 차, 뭐에 쓰는 건가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이 많은 경찰이, 직업적인 미소를 얼굴에 띄고 대답했다. "최루탄인가요?" "아닙니다." "최루탄 아니면, 살수차인가요?" "대외비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따져볼까 했지만 피곤한 하루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차를 본 순간부터 목구멍이 무겁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그렇고 내 동행인도 그랬다. 공기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중국에서 황사가 몰려온 탓일 수도 있겠지만, 기체 분자가 확산되는 속도 등을 염두에 둘 때 내 목이 갑자기 아파온 원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집회 참가 경력이 없기 때문에 저 차의 정체를 식별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최루탄 발사 차량이 떴다고 단정짓지는 않겠다. 하지만 듀나의 영화낙서판에 가보니, 게시판 주인인 듀나도 "최근에 시내에서 최루탄 터진 일 없죠? 있었다면 뉴스에 났을 테니. 근데 왜 제 코가 계속 가렵고 재채기가 났던 걸까요? 눈도 아리고요. 딱 최루탄 현상인데. 제 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듀나의 영화낙서판, 2008년 5월 27일).
그 시점에서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마음같아서는 새벽까지 동참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미 그저께에도 광화문에 왔었고, 한참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저께 그와 내가 겪은 일은, 본디 한 편의 다른 글로 작성되었어야 할 성격의 것이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짜맞추어지고 있기에 이 속에 넣도록 한다. 그제 우리는 광화문을 쏘다녔다. '폭력 시위'를 구경하기 위해, 혹은 동참하기 위해 밤 10시 무렵 광화문 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전경은 무지하게 많았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청계광장을 지나, 다시 동화면세점 쪽으로 올라간 다음,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통해 독립문 방면을, 그야말로 경찰과 함께 들쑤시고 다녔다. 무전기를 하도 시끄렵게 켜놔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다 들렸기 때문이다.
나와 그는 우리가 한 편의 부조리극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범인을 잡겠다고 이 많은 경찰이 돌아다니는데, 정작 불법 시위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광화문 쪽으로! 광화문! 이런 무전을 듣고 따라가보면 그 곳에는 전경만 있다. 독립문 방면, 독립문 방면! 이래도 마찬가지다. 워커 신은 전경들이 뛰기 시작하면 우리는 길 곁으로 비켜서야 했다. 나와 내 친구와 전경 모두가 폭력 시위를 찾아 밤 늦은 서울 거리를 헤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고서야 그 도둑맞은 편지가 어디에 꽂혀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신촌에서 벌어진 대량 폭력 검거 사태가 일종의 토끼몰이라는 추정에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은 전경들을 공허하게 발굴림하면서 그들의 부아를 자극했고, 필요 이상의 병력을 동원함으로써 서울 중심가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신촌으로 몰려간 이들은 맞을 만큼 맞고 나서 닭장차에 실렸다. 진중권이 생중계를 한 것은 그 다음 날의 일이다. 어젯밤에는 진중권도 맞았다. 경찰이 사람을 괜히 때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누군가가 전의경들이 사람을 때리게 한다. 폭력 시위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폭력 시위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내가 어제 목격한 것이 최루탄 발사 차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경찰은 계속 강경 진압 노선을 고수할 것이다. 분노에 사로잡히고 공포에 휩싸인 군중들이 행여 돌맹이라도 치켜든다면, 경찰은 때가 왔다는 듯이 더욱 강경한 진압 전술을 펼칠 터이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매우 양가적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혹여라도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그에 준하는 큰 부상이 생긴다면, 몇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하건 두들겨 맞건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던 한국의 '시민'들도 뭔가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찰이 그런 방향으로 집회를 몰아가고 있다. 운동권이라면 학을 떼는 '시민'들의 '리좀'은 경찰의 폭력 앞에 더 없이 취약하다.
하지만 이 집회의 결말이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게까지 뜨거워진 시위가 흐지부지 식어버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 발생한 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시민'들이 입 싹 씻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집회에서 맞아죽는 순간 그는 운동권이 되고, 시민들은 등을 돌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 중 그 무엇도 실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이 지난 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광화문에 갈 계획이다. 오늘 밤에는 황사 섞인 비가 내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숨고르기를 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직 나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길거리에 서서 팔뚝질 몇 번을 했을 뿐인 사람들을 44시간씩 경찰서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중대한 인권 침해이다.
물론 경찰은 시위가 사그러든 후에도 폭력 시위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와 내 동행인 또한 얼결에 그들의 뒤를 따라다닌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된 공간에서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폭력 시위 가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다니던 파랑새처럼, 폭력 시위도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두 개의 과제가 각각 수요일과 금요일 마감으로 있다. 가능한 한 빨리, 폭력 시위를 찾아서, 새장을 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