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9

왜 외신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까

100여명이 강제 연행된 지난 화요일, 하지만 외신은 잠잠했다. '닭장차 탑승 시위'의 재기발랄함은 여중생이 연행되는 황망함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주요 언론들은 이명박의 중국 방문을 톱 기사로 다뤘고, 한겨레와 경향 등 일부 언론만이 경찰의 과격 진압을 문제삼았다. 네티즌들은 '우리 편'이 되어줄 언론을 바다 건너에서도 찾았지만, 외신은 침묵하고 있다. 나는 하루에 수십번씩 BBC 뉴스를 체크한다. 가디언과 NYT등도 빠지지 않고 훑는 편이다. AP는 통신사니까 제외한다고 치면, 한국의 현 정국을 전면적으로 다루어주는 외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외신 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주 말부터 이번주 수요일까지 벌어진 게릴라성 촛불시위는 '깜'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재미있고 놀랍고 또한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고작' 100여명이 잡혀들어갔을 뿐이라면, 사망자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외신의 지면이 그 시위에 할애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제'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그정도 스케일로는 충분하지 않다. 뉴욕타임즈와 가디언의 목요일자 국제면을 살펴보자.



5월 29일 뉴욕타임즈 국제면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5월 29일 가디언 국제면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영국이 집적탄 제거 조약에 가입했다는 것, 중국 댐의 범람 가능성이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뭐 이런 등등의 기사가 눈에 띈다. 이쯤은 되어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간지의 지면을 차지할 수 있다. 가디언을 보자. 팔레스타인과 대화하고 있는 이스라엘 대통령, 신간 서적을 통해 폭로된 이라크전 관련한 부시의 거짓말, 이런 것들이 주요 기사로 다루어진다. '일반 시민' 100여명으로 구성된 '일반 시민'들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 따위는 없다. 이건 그들의 국적이 한국인이어서도 아니다. 미국에서 같은 시위가 미국인에 의해 벌어졌다 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촛불시위는 국제 뉴스 꺼리가 되지 못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강조하는데, 나는 오늘 저녁 광화문이나 시청 앞으로 향할 계획이다. 4시 발표되는 고시를 KBS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글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는 촛불시위를 외신에서 다루어줄 가능성은 앞으로도 거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외신 기자들이 보기에, 무역 장벽 완화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는 언제나 있어온 것에 불과하며, 특히 광우병의 공포를 내세워 쇠고기 수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입장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촛불시위대는, 우리 스스로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건 간에, 외신 기자들의 눈에는 '반 세계화 시위대'의 일부 정도로 취급되고 있을 터이다.

이 문제를 진정 세계적인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싶다면, '시민'들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비단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 한미 FTA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고, 치솟아오르는 원자재 가격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조직해나가야 한다. 민주노총은 룰라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노동자중앙조합(CUT)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노동단체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시위를 하면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통합민주당이 오늘에서야 반대 성명을 내고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태까지 이 문제가 국외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비호해주고 있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소비자운동에 불과하지 정치적인 이슈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이후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어제까지 민주당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정치적인 쟁점으로 외신 기자들에게 인식되지 못했고 그 결과 100여명이 연행되면서도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 수 없었다.

여기서 나는 최근 과격 시위의 진정한 배후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를 거리로 내몬 장본인은 다름아닌 노무현이다. 그가 유언처럼 남겨놓고 떠난 '한미 FTA 타결'은 그만큼 야권의 움직임을 제한했고, 그에 따라 야당은 적극적인 반발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이 문제는 인터넷에서만 떠돌 수밖에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는 반대하지만 한미 FTA에는 찬성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앞뒤가 안 맞는다. 이번 이슈는 한미 FTA에 대한 전적인 재검토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슈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더 이상 '깃발 내려'같은 소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촛불 옆에 깃발이 함께 설 때도 되었다. 각계 각층에서 반발하고 있다는 말이 시위를 통해 표현되기 위해선, '당신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잖아'라는 목소리가 잦아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일반 시민'만이 반대하는 이슈에 대해 외신은 절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언제나 존재하는 단편적인 불만 세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를 통해 이명박 정부에 진정으로 타격을 주고 싶다면, '폭력 시위'라는 딱지를 진작부터 달고 살았던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의식의 성장일 것이다. 나는 오늘 현장에 가서, 과연 우리의 시민의식이 어디까지 성숙하고 있는지 관찰해야겠다.

댓글 8개:

  1. "다함께"의 방식에 대해 워낙에 비판적이고 거부감을 느끼는지라, 민주노총이나 민노당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시민들에게 다가가야할지도 고민해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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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천정배님이 오시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씨벌 에프티에이 하자 그런게 누군데 여길 기어나와!!" 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천정배! 천정배! 천정배!" 를 연호하며 저의 편협함을 일깨워주더군요.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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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erte/ 다함께가 '운동권' 외의 사람들의 입에 이렇게 회자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시민들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슬쩍 섞여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아요. 물론 투쟁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게 사실이지만요.

    이상한 모자/ 나의 편협함도 일깨워지는군여. (니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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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와우, 정말 얼마 만에 뵙는 이름인지. ^^
    큰 깨달음을 주는 글이군요.
    자주 들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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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존레넌/ 네,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집회 갔다 왔습니다. 존레넌님도 함께하시길 바래요. 이거 말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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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토요일의 강경진압이 시작된 이후로, 외신들도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정치정당들의 행동에 비해 한걸음 정도 빠른 행보를 보이네요. 역시 폭력진압때문인지...

    FTA때문에 우왕좌왕하던 민주당은 이제야 촛불문화제에 끼어보려고 했다가 그 값을 톡톡히 치루고 있는거 같군요...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920926646&cp=nv

    날씨도 궂고, 경찰의 대응도 궂은데, 다치시는데 없이 계속 하실수 있길 바랍니다.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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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91065.html

    또 한겨레라서 그런지 저런 것도 나오네요. ㅋㅋ
    한발짝은 나아간 듯도 하니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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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앞만 바라보고 가지 마시고, 때로는 뒤도 한번쯤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100미터 9초 끊는다고 옆 사람도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위에서 모든 분들이 동의를 표하신 걸 보고, 반대 의견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시민들 다수가 지금은 민주노총의 깃발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 깃발을 하나의 상징으로 대체해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그 거부감은 "이제 포용하시길..."과 같은 권유로 걷어내지지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잘못했기 때문에, 2007년 반FTA 시위에 시민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제대로 포착하고 반성한 '좌파' 논객을, 지금까지 샅샅이 둘러보았지만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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