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3

작은 언론, 큰 언론

[세상 그리고 사람]“20대 문제는 모든 세대의 문제… 20대만 욕하지 말라”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노정태(경향신문, 2008년 8월 14일자 섹션 4면)

최근 경향신문의 김후남 기자님을 통해 지면을 얻고 또 인터뷰까지 하게 되면서, 언론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2시간 40분 넘게 손동우 사회부 부국장님과 마주앉아 별별 이야기를 다 했는데, 그 중 꺼내지 못한 게 있다면 이런 것이다. 대한민국의 일간지, 즉 메이저 출판 매체가 취약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뒷받침해줄 튼튼한 전문지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의 오류 등을 화끈하게 질타하면서 정정해줄 그런 전문 매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출판 매체 시장에 다양한 전문지가 강인하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언론에서 '정보'가 아닌 '내 편'을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드라마 전문 매체인 드라마틱에서 일할 때 특히 강렬하게 느꼈던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 한 편의 드라마의 팬인 내 편을 들어줄 그런 매체를 원한다. 사실 촛불 정국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구독자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촛불 시민'들은 '우리 편'이 되어줄 그런 신문을 원했지, 종합 일간지답게 사회의 다양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신뢰할만한 언론을 원한 게 아니다.

작은 언론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어야 큰 언론들도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언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큰 언론들 또한 조화로운 언론 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은, 인터뷰에 언급된 것처럼,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언론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원론적으로는, 경향신문이 미국 축산농민협회의 의견 광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현재의 분위기를 감안해볼 때 그런 광고 제의를 거절한 것은 당연하며 또한 잘 한 일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 두 선택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안을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FP 9/10월호 제작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아직 커버 타이틀 등을 공개할 수는 없는데, 이번호 타이틀은 지난호보다 훨씬 '핫'하다. 앞서 나는 작은 언론과 큰 언론을 구분지으면서, 전문지를 작은 언론으로, 종합 일간지를 큰 언론으로 대강 분류했다. 하지만 미디어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그런 구분은 희미해진다. Foreign Policy와 Foreign Affairs는 모두 외교 전문지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두 매체를 '작은 언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작은 언론'과 '큰 언론'의 경계선 또한 지금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어져야 할 일이다. 물론 나는 FP 한국어판이 한국 내에서도 '큰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근 세 시간을 떠들고도, 인터뷰를 읽어보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겨서 후기를 적어보았다. 방문자들께서는 인터뷰에 대한 코멘트를 이 게시물에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8개:

  1. 오 이번 사진 잘 나왔는데요? (본인은 마음에 안드실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인상이 좋게나왔어요. ㅋㅋ "대중문화평론계의 큰 별" 재미나네요. ㅋㅋㅋ 내용은 이 블로그의 독자의 입장이라면 그리 새로울 건 없네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용으로 어필하기에는 좀 파고드는 면이 부족하고, 그냥 소개하는 정도로 쓱 지나간 맛이네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한 상당한 호감이 기사 구석구석에 나타나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선동적이랄 만한 제목에 비해 내용이 좀 힘이 없다고 해야할까나요.

    "사실관계, 오류 등을 화끈하게 질타하면서 정정해줄 그런 전문 매체가 없다"는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건축계쪽에도 그 문제는 무지무지하게 심각해요. 한국엔 제대로 된 건축비평이라는게 없다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전 이런 현상을 전체적으로 '검증시스템의 부재'라는 쪽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식을 갖고있는 교수들이 일단 저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보니, 아마추어 학자들이 난립하고, 오히려 인정받는 전문가가 나오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여기도 여러 문제가 많죠) 참 어떻게 한마디로 말하기 힘든 문제인거 같으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주제 관련해서 트랙백 한번 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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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급적 눈에 힘 주고 찍으려고 했는데, 자꾸 웃어버려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대중문화평론계의 큰 별"은 이상한 모자가 붙여준 별명인데, 자꾸 쓰다보니까 얼결에 신문 지면에서 공식화되어 버렸네요. 어디 가서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 싶습니다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쩌겠어요.

    슥 소개한 정도에 머문 것 같다는 말씀도 타당한 것 같습니다. 제가 대중적으로 특별히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죠. 당장 한 권의 저서를 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진지하게 파고든 것도 아니고, 뭔가 인물 소개 비슷한 형식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 와중에 저 정도로 인터뷰를 잘 뽑아낸 건 어디까지나 에디터의 역량이라고 봅니다.

    전문 매체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또한 전문 매체가 뿌리내릴 수 없는 현실 그 자체의 문제가 양쪽으로 참 심각하죠.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 외의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싶은 것이 제 마음이니, 언제라도 erte님이 자신의 경험을 말씀해주신다면 환영입니다.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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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진을 얼른 저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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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지면을 떼어다가 벽에 붙여놓았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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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잘 읽었어요. 아마 노정태님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기사인데요.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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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공감되는 글입니다. 광장에서 촛불들과 토론하면서 가졌던 생각이 "'촛불 시민'들은 '우리 편'이 되어줄 그런 신문을 원했지, 종합 일간지답게 사회의 다양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신뢰할만한 언론을 원한 게 아니다."였습니다. 조금전까지 KBS 앞에서 시민들과 '국민주방송'에 대한 토론에서 그걸 지적했고, 국민주 방송에 대한 시민들이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토론 아닌 토론을 했습니다. 촛불이 기존의 방송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내 편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열망'이 좌절한데서 오지 않았나 싶더군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스펙트럼이 다양해질 때, '내편'은 참 어려워집니다. 오늘도 공부를 많이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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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리고 경향신문 기사는 용산서 유치장에서 잘 읽었습니다. 그 기사를 가지고 유치장 안에서 한 시간 정도 다른 분들과 함께 토론을 했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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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익명/ 좋게 평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똠방/ 네, 저도 이런 저런 대화를 해본 체험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곤 합니다. '조중동은 물러가라'라는 구호에 대해 구체적인 속 내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 '왜?'라는 질문을 들으면 거의 반사적으로 '친일 반민족 신문이라서'라고 대답하게 되죠. 경향신문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구독해주는 것만으로 언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당장 뭐라 답을 내놓긴 참 어려운 문제죠.

    제 얼굴과 인터뷰가 실린 기사를 촛불 연행자들이 읽고 토론하셨다니, 황송하고 기쁜 것을 넘어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이 앞서네요. 충실한 글을 쓸 수 있도록 언제나 가다듬고 살아야 할텐데, 쉽지가 않습니다. 좋은 리플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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