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경찰은 역시나 무차별 연행을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종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던 사람도 잡아갔다는 기사가 경향신문에 게재되었다. 프레시안은 경찰이 촛불 연행자 여성에게 브레지어를 벗어서 내놓으라고 강요했다는 기사를 터뜨렸는데, 놀랍게도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자살 방지를 위해 '본인에게 요구'했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대체 왜 경찰은 무자비한 연행과 지독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일까?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 강경하게 나올수록 이른바 '전민항쟁'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 정 반대이다. 현재 경찰이 펴고 있는 무차별 연행 전략은, 버마 군부가 8888 혁명 당시 자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던 그것과 같은 행동 유형이다.
1988년 8월 8일 터졌던 버마의 인민 봉기, 즉 '8888'의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가 이코노미스트 온라인 에디션에 8월 12일 게재되었다. 이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인민의 힘'이 갖는 명백한 한계를 탐색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8888이 실패한 원인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부재도, 국제 사회의 지지 결여도, 일반적인 대중들의 지지 부족도,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핍도 아니었다. 아웅산 수지와 그의 정당은 8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는 군부가 저항하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당시 사망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3000여 명이지만 그것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에 뛰쳐나온 시민들에게 닥치는대로 발포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후, '전민항쟁'은 진압되었다. 아웅산 수지는 가택 연금되었고 버마는 아직까지도 군부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도 같은 경로로 실패한 민주화 투쟁이다. 탱크가 출동했고, 시위는 진압되었다.
국제 사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놓을 의향 따위 전혀 없으며, 폭력적인 진압의 도구가 되는 관료 조직(즉 경찰 혹은 군대)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독재 권력 앞에서, 사실 '국민의 힘'이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향한 본능이 있기 때문에, 죽이겠다고, 잡아 가두겠다고 협박하며 그 의지를 매일같이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 겁을 먹고 움추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청수의 목줄을 움켜쥔 채 숨을 식식거리며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헤매고 다니는 이명박의 '미친놈 되기 전략'은, 불행하게도 성공적이다.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가능성을 이코노미스트는 대단히 낮게 평가한다. 버마의 국민들이, 군부가 무슨 짓이건 하고야 말리라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는 한 군부 독재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뜨겁게 몰아치는 민중의 함성보다는, 군부 내에서 이탈 세력이 발생하는 쪽에 기대를 거는 것이 낫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이건 이 매체를 보는 사람들이 서구 사회의 정책 결정자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다소 섬뜩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실 또한 객관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브레지어를 빼앗는 경찰에게 무차별 연행될 우려가 있다면, 촛불시위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였던 '일반 대중들의 참여'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 강력한 이탈 세력이 발생하고, 그들이 이명박의 독주를 견제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낼 수가 없다. 그 집단의 수장이 다름아닌 복당 박근혜 여사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어떤 해법을, 적어도 이 짧은 글에서 도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동성을 앞세운 촛불시위를 넘어선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촛불을 계속 들되, 다음 아고라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다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하지만 진보신당을 포함한 대안 정치세력들이 과연 현재의 움직임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그 답 또한 불투명하다. 떡볶이 먹던 사람도 체포해가는, 그런 민주주의의 위기다. 하지만 그 절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네요... 원래 촛불집회 싫어했던 사람들이야 정부 잘하고 있다고 하고 있을거고... 나름 선전한 것이지만 교육감선거가 참 뼈아프네요...
답글삭제제가 늘 주구장창 이런 얘기를 하였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답글삭제물론 그런 투덜거림에 대해 장석준이라는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정치는, 타이밍~!"
erte/ 노원 병, 덕양 갑과 더불어 2008년의 3대 패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뼈아픕니다. 이명박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아무리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더라도, 끌어내릴 방법이 지금은 묘연하죠. 이게 현실입니다. 일단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다음 대책을 세워야겠죠.
답글삭제이상한 모자/ "왜 다들 나를 무시합니까? 왜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까?"라는 명언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정치는 타이밍인데, 문제는 그 타이밍이라는 게 놓쳐봐야 '아, 타이밍이 그때 좋았구나'라고 알게 된다는 거 아니겠어요.
떡볶이 민주주의. 제목이 좋군요.
답글삭제블로그 글을 읽을 때마다
잠재의식 한 켠에 놓인 생각이 끄집어진 기분입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하게 읽고 있다는.
(동갑이신데 글쓰는 것이 어쩜 이렇게 다른지, 멋져부러~!)
좋게 봐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자주 방문해서 좋은 코멘트 남겨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답글삭제거리 문화에 대한 피로감이 올림픽 열기와 맞물려, 국민적 저항이 다소 약화되면서 자신만만해진 것 같군요. 저렇게까지 뻔뻔해질 수 있는 걸 보면 말이죠. 하지만 2mb의 삽질은 계속될 것이며,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우석훈 선생의 말씀마따나 자명한 사실이죠. 결국 어떻게 될지 알고서도 계속 당하고 있어야 하는, 그런 절망감이 스칩니다만,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잘 알기에, 작위적일 수도 있지만, 다시 희망을 가져봅니다.
답글삭제무엇보다 2mb가 이러고 있는 상황이니 뭐...
답글삭제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4&oid=001&aid=0002234525
교육감 선거의 승리가 이명박 일당들에게 자신감을 안겨준 것 또한 큰 요소가 되겠죠. 보란듯이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습니까. '선거가 없어서 이명박을 못 잡는다'던 사람들이 투표일에 다들 어디 갔었는지, 정말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7월 30일에 이겼으면 지금 분위기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답글삭제이명박이 아무리 삽질을 반복한다 해도, 이쪽에서 저항할 동력을 잃어버리면 그건 결코 호재가 되지 못하죠. 지치지 않기 위해,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시점입니다.
감사합니다.
답글삭제30여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돌린 시계앞에서 작은 민주주의의 주인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뭉쳐야할때가 아닌가싶습니다.
나이가들어 가족부양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니 옜날의 역사를 잊고지냈습니다.
이렇게 댓글이나마 올릴수 있다는것이 하나의 불씨요 작은행동으로 모였으면합니다.
좋은글 더욱 감사드립니다.
87년 이후로 잡으면 20년, 3당 합당을 통해 정권을 잡은 김영삼을 빼면 10년, 이런 계산이 나오는군요. 30여년의 민주주의 역사라는 말씀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단결해야 할 때라는 말씀만큼은 100% 공감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이 글을 82쿡 자유게시판에 펐습니다.
답글삭제http://www.82cook.com/zb41/zboard.php?id=free2&page=1&page_num=28&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n&keyword=&no=238213&category=
네, 감사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