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15

갈수록 태산

구좌파와 단절 전쟁 각오, 내책임 커
'대한민국 좌파'하자, 야권재편 필연
[인터뷰-주대환] "뉴레프트가 뭡니까"…"운동권 이념은 난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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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수 | 이 자리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지난 대선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서 왜 오랜 동지 노회찬을 지지하지 않고 권영길을 지지했나?

주대환 | 노회찬은 정말 훌륭한 동지이고, 유능한 대중 정치인이고 스타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선수에게도 코치가 필요하다. 그라운드 바깥에서 보는 풍경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영국노동당을 만든 케어 하디는 노회찬처럼 하지 않았다. 더 많이 인내하고 양보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노동조합 간부들의 부족함과 근시안과 보수성을 인내하고, 그들의 별로 맞지 않는 의견과 권력욕에 양보했다.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100년 전 영국의 노동조합의 간부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그런데 그들의 뜻이 권영길 후보에게 있었다. 그건 아마 그들이 정치세력화에 소극적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돈과 표를 모으자고 호소하는 명분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우리가 책임지자”는 데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나의 권영길 지지는 1992년부터 내가 걸어온 ‘노동당’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엄청난 착각. 100년이나 후대에 활동하는 사람과 그 전 시대의 사람을 같은 층위에서 비교하고 있다. 100년 전 영국에는 여성참정권도 없었다. 비정규직도 없었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지금의 노동조합 구성원들이 그때의 노조 간부들보다 훌륭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 100년 전 노조 간부들과 똑같거나 더 낮은 수준이라면, 그건 연대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안팎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 논쟁은, 결국 '헐 나 삐져뜸'이라고 외치고 있는 주대환에게 모두가 말려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논쟁을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더욱 옳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

이 논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주대환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 속에 만연한 '반 운동권' 정서,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반 정치인' 정서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보면 주대환이 운동권이 아닐 리가 없다. 운동권을 아무리 씹어봐야 한 번 운동권은 영원한 운동권일 뿐이다. 운동권과 대중의 정서가 괴리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인터뷰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문답.

장태수 |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요즘 본 영화 중에서 권하고 싶은 영화는?

주대환 | 〈미션〉이다. 배경 음악도 좋아서 CD를 구해 차에서 듣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본 영화 중에서는 〈크로싱〉이 좋았다. 많이 울었다.


아, 나도 많이 울고 싶다.

댓글 2개:

  1. 요 며칠 노정태님의 블로그를 안들어갔더니 읽을 글이 많아서 좋네요..

    그런데 근래에 주대환이라는 사람이 말한 것을 가지고 가타부타 말이 많더군요. 노정태님의 글 덕분에 그 사람에 대해서 찾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법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많은 글을 올려놓았더군요.하지만 저에겐 이런 논쟁이 저 먼 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같게 느껴지더군요.

    다만 노선(?)을 중심을 가지고 박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니 참 안쓰럽다는 생각들었습니다. 그 사상을 기초로 한 구체적인 정책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한다는 당위적인(주장하는 사람에게) 의견제시에 그치지 말고 말이죠..

    대중에게 별 영향력이 없다고 느껴지는(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의 주장이나 말에 이렇게 사람들이 정력을 소비하는게 아쉽습니다.(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기는사람도 많더군요..--;;)

    더불어 이런 논쟁이 골방에 틀어박혀 주의나 사상을 논쟁하는 모습 같아 더 우울하게 느껴지더군요. 아직도 변한게 없구나..라는 생각에 말이죠.

    노선이나 사상에 대한 논쟁이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다는게 아닙니다. 다만 노선을 말할 때에는 손에 쥘 수 있는 정책도 동시에 제시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이것을 하면 사회에 어떤 효과를 미치고 어떤 부담을 지우는 지를 예상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들 말이죠. 이 수준엔 못 미치더라도 적어도 실감나는 근거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고 그 기초가 정당하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걸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논쟁하는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노정태님께서도 몇차례 지적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한걸음 딛기가 이렇게 힘든가 싶어 답답한 생각에 글 올려봅니다.

    골방에서 토론하다 서로 필받아 화내고 싸우고 하다 뒤풀이 한답시고 술 한잔 먹고 "그래도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휘적휘적 걷는 모습, 또는 "당신은 배신자야"라고 하면서 서로 등을 돌리는 모습은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아. 이제 골방이 인터넷으로 옮겨진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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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대환 논쟁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정책적인 차원에서 갈라질 수 있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에서부터 주대환과 그의 반대자들이 완전히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중적으로 주대환이 영향력이 크건 작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적어도 반박할 가치가 있는 주장을 하고 있으냐 그렇지 않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저는 이렇게 수없이 명멸하는 '논쟁'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갈무리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논쟁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담론이 구체적인 정책 차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면, 가령 플라톤의 교육철학에 대해 우리는 '진지한' 반박을 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플라톤의 교육론을 이해하는 것은 국제중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논쟁이 끝나고 난 뒤 추해지는 건 저도 참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미학적 불쾌감이, 논쟁과 담론 자체에 대한 불쾌감으로 이어지지는 말았으면 싶군요.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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