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1

[2030 콘서트]재능기부와 개똥 먹기

[2030 콘서트]재능기부와 개똥 먹기

경제학자 두 명이 길을 걷다가 개똥을 발견했다. 경제학자 A가 B에게 제안했다. 자네가 저 개똥을 먹으면 내가 100달러를 주겠네. B는 고심 끝에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100달러를 벌었다. 좀 더 가다보니 개똥이 또 하나 나왔다. 이번에는 B가 A에게 같은 제안을 했고, A가 개똥을 먹어서 100달러를 B로부터 받았다.

정산을 해보자. 두 사람 모두 개똥을 먹었고, 100달러씩 벌었지만 또 100달러를 썼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둘 다 개똥만 먹고 한 푼도 못 번 셈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달러씩 서로 두 번 거래를 한 셈이어서, GDP(국내총생산)는 200달러 올라간다. GDP가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과 삶을 제대로 반영해주지는 못한다는 교훈을 전달하고자 할 때 경제학자들이 인용하곤 하는 경제 우화 중 하나다.

이 지저분한 이야기는 그러나, 모종의 깔끔한 ‘상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면 돈을 줘야 한다. 업무를 완수하면 ‘요즘 경기가 통 안 좋아서’같이 구질구질한 핑계 대지 말고, 제대로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여 본인도 100달러를 벌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들에게는 이른바 ‘갑’과 ‘을’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잠정적이다. 이런 상식이 통하는 세상 속에 두 명의 경제학자와 두 개의 개똥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A와 B가 100달러를 매개로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A의 제안을 받았을 때 B는 100달러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 100달러를 벌게 된 B는 또 반대로,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쓸 수도 있었고,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담뱃불을 붙이는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A에게 같은 제안을 하는 쪽을 택했다. 그 시점에서 말하자면 ‘주도권’을 가진 사람은 B이다. 그에게는 100달러가 있지만 A에게는 없다. 100달러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A가 아니라 B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돈은 곧 힘이다. A는 B에게 개똥을 먹이는 대신 그만큼 자신의 ‘힘’을 넘겨준 것이다.

여기서 우화의 형태를 조금 바꿔보자. 갑은 모종의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고, 을은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다. 이 조합이라면 갑이 을에게 ‘젊은 벗의 재능을 기부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일이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다. 또한 을이 ‘나중에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써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그 일을 수락하는 것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논의의 공정함을 위해 갑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 정말 좋은 곳이어서, 을의 재능기부는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했고, 그래서 을 스스로가 그 이익을 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이 이야기는 본래의 경제학자들이 등장하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갑은, 동료에게 짓궂은 내기를 제안한 경제학자 A와 달리, 을에게 자신의 돈, 즉 ‘힘’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을이 월급을 받아서 전액을 다시 갑의 ‘사회적기업’에 기부할 생각이었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갑의 돈은 을의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기부할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을에게는 없다. 을은 재능기부를 함으로써 ‘기부’ 그 자체뿐 아니라, 다른 그 어떤 행위도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건 마지못해 하는 일이건 일은 일이다. 좋아하던 것도 직업으로 삼으면 힘들긴 매한가지다. 개똥을 먹고 돈을 받는 경제학자들의 비유는 어쩌면 우리의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자신의 일을 사랑해도 매 순간 충만하고 행복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물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처 다 파악하지도 못한 20대에게 일한 만큼의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제아무리 ‘좋은’ 포장지로 감싸도 노동착취일 뿐이다. 이 구조적 모순에 온몸으로 맞서는 후보에게, 이번 대선에서 나는 한 표를 던진다.

입력 : 2012-11-28 21:24:44수정 : 2012-11-28 21:24:44

댓글 6개:

  1. 포장만 그럴듯한 글입니다.

    선택은 수락과 동시에 일어났는데, (나중에) "기부는 물론 어떤 행위도 선택할 수 없게되었다" 라는건 교묘한 글쓰기의 속임수이죠. 그 자리에는 "자신의 이력서를 채울 수 있었다"가 들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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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 '선택'을 했다고, 혹은 한다고 청년들이 많이들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지적하는 게 이 칼럼의 취지입니다. 돈 받으면서 일해도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돈 못 받고 일하는 게 '정상적 선택'처럼 간주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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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택지가 넓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선택을 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를 전부 가질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주어진 범위내에서만 선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해 볼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어느정도가 정상적인 범위인가요? 돈을 받으면? 저임금일텐데요. 얼마나 많이 주어야 할까요? 너무 많이 주면 고임금 아닌가요? 자, 적정임금이라 해봅시다. 그것은 얼마가 될까요? 그런데 이 적정임금 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도 일하고 싶은 사람이 존재하면, 이를 적정임금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요?

      적당한 것이 얼마만큼인지는 말할 수 없는 만큼 이렇게 쉽게 현 상황이 정상적이 아니라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20대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따라서 적당하지 않다가 아니라 왜 악화되어가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하겠죠.

      댓글에서는 윗글을 쓴 목적이 상황을 '생각'해보는데 있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이미 원글에서 문제는 '착취'를 하는 사람들에 있다는 암시로 해결책까지 담아두신 상태입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경제구조에 있고, 해결책이 있어도 실행이 힘들판인데, 사실 아직 해결책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좌파라는 사람들은 항상 안이하게 눈앞에 보이는 나쁜놈을 때려잡자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으니 화가나는 것입니다.

      무급인턴을 고용하는 기업을 처벌해야 할까요? 법으로 막아야 하나요? 그러면 이 상황이 과연 호전될까요?

      이와 비슷한 상황인식을 보이는 문제로 최저임금문제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으로 사람을 부리는 곳이 삼성처럼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 대기업인가요? 실상은 알바하는 20대와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없는 편의점 주인이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행복해지는 사람과 불행해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좌파의 글에서 따듯한 마음과 동정심이 아니라 깊은 고민을 볼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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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설마 방문자께서는 "알바하는 20대와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없는 편의점 주인"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낮추거나 없애야 한다, 혹은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더 이상의 논의를 할 수 있을만한 최소한의 접점이 없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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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최저임금은 궁극적으로 올라가야합니다. 좌파논리인 인권이전에 우파논리인 산업재조정의 수단으로서만으로도 최저임금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정해놓은 최저임금이 잘 안지켜지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그저 올리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숫자만 달라질뿐 사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좌파는 이런 고민은 한번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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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해놓은 최저임금을 잘 안 지키는 사업자들이 적지 않지만, 어쨌건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들도 많습니다. 일단 인상해놓으면 기준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좌파'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또 그 누군가가 대표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만, '왜 사장들은 최저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라면 노동현장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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