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0

여성의 폭력과 법 앞의 평등

나의 검열삭제 경험담

2016년 10월 11일의 일이다. 경향신문 오피니언팀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오피니언팀을 담당하던 부장님 전화였다.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소위원회에서 8월 1일자 칼럼 "'물뽕'과 부동액"에 대해 "모방 범죄를 유발하게 될 우려가 있어 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시정 권고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적된 문단을 삭제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이다.

2008년 무렵부터 신문 지면에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언론중재위원회의 연락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기도 했거니와, 이미 작성한지 두 달이 넘은 글을 두고 무슨 소리냐 싶었다. 나에게 거부권이 없는 상황이므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검열삭제'를 경험한 것이다. 성행위를 뜻하는 은어로서의 검열삭제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생각과 말을 제약당하는 검열삭제 말이다.

그렇게 잘려나간 문단은 다음과 같다.

한편 2016년 6월,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에 묘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정보] 진짜 한남 재기시켜도 죄책감 안 느낄 수 있는 년들은 이거 먹여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게시물에는, “자동차 부동액은 물이랑 에틸렌글리콜 + 색소가 주성분”이라며 “용법은 1일 1회 5㎖”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별별시선]‘물뽕’과 부동액", 경향신문, 2016년 7월 31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312051005&code=990100#csidxbdbdec283bdaff7aafb36493d4a385b 삭제되지 않은 원문은 내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asil83.blogspot.kr/2016/08/blog-post_4.html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저 고급 정보를 어떻게 알았을까? 자동차 부동액은 무색무취하기 때문에 타인을 독살하기에 아주 좋다는 정보는 SBS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한편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저런 논의가 오간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가령 이런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말이다.

‘부동액 커피’ 사건은 지난 6월 워마드에 ‘한남(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용어)을 재기시켜도(죽게 해도) 죄책감 안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이거 먹여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이 글에는 1일 1회 5ml씩 희석해서 먹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명시돼있으며 부동액은 마트에서 구매할 때 현금 결제를 해야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당부도 담겨 있다.

전종선, “남성에 부동액 타 먹였다” 워마드 경찰 수사 착수에 네티즌 “암덩이들 도려내야”, 서울경제, 2016년 7월 28일. http://www.sedaily.com/NewsView/1KZ1J58KL3

이제 두 문단을 비교해보자. 내 칼럼에 실렸다가 언론중재위원회의 권고를 받고 잘려나간 문단과, 아직도 인터넷을 통해 잘 남아있는 위 기사의 문단에서, 정보의 차이가 있는가? 1일 1회 5㎖라는 구체적인 용량까지 동일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당시 쏟아져나온 수많은 언론 보도를 보고 저 칼럼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언론중재위원회는 내 칼럼을 "모방 범죄를 유발하게 될 우려가 있어 사회적 법익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똑같은 내용이 담긴 다른 기사들에 대해서는 시정 권고 조치를 내리지 않는가?

그 이유는 명백하다. 위 기사를 포함해 당시 워마드의 게시물을 다루었던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워마드를 '꾸짖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있었던 반면, 내 입장은 달랐기 때문이다. 삭제된 문단을 포함한 전문을 다시 올려보도록 하겠다. 검열삭제된 문단은 굵은 글씨로 강조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

[별별시선]‘물뽕’과 부동액

2015년 11월 중순, 서울 성동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집단강간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보에 따르면 한 남자가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소라넷에 올렸다. 술 혹은 약물에 의해 정신을 잃고 벌거벗은 한 여성의 사진과 함께, 작성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소라를 잘 안 해서 랜덤 채팅 양톡으로 여태 3분 정도 와서 질사하고 가셨는데 ㅋㅋ 오늘은 소라에서 한번 해볼까요?”

‘골뱅이’란 술이나 약물 등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강간을 뜻하는 은어다. ‘왕십리 골뱅이’의 작성자는 첫 게시물을 올리고 11분 후 두 번째 글을 업데이트했다. 역시 의식을 잃은 듯 보이는 여성의 나체 사진이 붙어 있었다. 게시물 아래에는 ‘줄 서봅니다’라는 식의 댓글이 달리는 중이었다.

한편 2016년 6월, 여성 커뮤니티 워마드에 묘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정보] 진짜 한남 재기시켜도 죄책감 안 느낄 수 있는 년들은 이거 먹여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게시물에는, “자동차 부동액은 물이랑 에틸렌글리콜 + 색소가 주성분”이라며 “용법은 1일 1회 5㎖”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내용에는 어느 정도의 구체성이 있지만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과는 다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한남(한국 남자)을 재기(사망)시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가 달린 가상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 흔한 ‘인증샷’도 없이 인터넷에서 그냥 하는 소리, 시쳇말로 ‘드립’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동액 섞인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가 병원에 입원했다면, 원인이 밝혀지면서 실제 범행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적 범죄의 정황이 없지만 경찰은 일단 수사를 개시했다. 허위 게시물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공권력은 작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반면 2015년 11월, 인터넷 성범죄 사이트 소라넷을 모니터링하던 활동가가 “서울 왕십리 골뱅이 여친”을 신고했을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페미니즘 활동가 단체인 ‘(RPO) 리벤지 포르노 아웃’팀이 공개한 당시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담당자는 “요거를 전체적인 댓글이나 글 게시된 걸 분석해 보니까 범죄혐의는 전혀 없”다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장난한 것 같애요. 이 소라넷 사이트 이용하는 애들이~ 반응 보려고~.”

설령 농담이라 해도 사람에게 독극물을 먹이자고 모의하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전복적 발화로서 긍정적 기능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런 ‘미러링’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사람을 기절시키는 약물을 누군가 먹였다는 제보를 받은 공권력이 그것을 장난으로 간주해버리는 것만큼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자는 발화자들의 개인적 존엄 및 품위의 문제인 반면, 후자는 우리 사회의 공권력이 얼마나 공정하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게시물을 두고 신고가 들어갔다. 그런데 왜 여자가 남자에게 부동액을 먹였다는 신고와, 남자가 여자에게 ‘물뽕’을 먹였다는 신고에 대해, 경찰의 반응이 이토록 다른 것인가? 전자는 살인이지만 후자는 성범죄이므로 범죄의 무게가 달라서라면, 경찰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저년 배를 칼로 쑤시겠다,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식의 살해 협박에 대해서도 일일이 수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아무리 꼬셔도 안 넘어” 오는 그녀를 함락시키라는 광고 문구를 달고 버젓이 데이트 강간 약물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죽이고 강간하겠다고 하면 ‘농담’이라고 대충 넘어가면서, 여자가 남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말을 하면 곧장 공권력이 투입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물뽕’과 부동액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훨씬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


'그 여자를 죽이러 가겠다'는 경범죄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2017년 8월 현재까지도 법 앞의 평등이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8월 9일 새벽, 아프리카 BJ 김윤태는 생방송을 진행했다. 유튜브 스트리머 갓건배의 집 주소를 알았다며 찾아가서 죽이겠다고 한 것이다. 경기도 부천, 서울 성북구 둘 중 하나라며 차를 타고 나가던 그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7000여 명에게 중계되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여,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에만 이날 새벽 1시30분께부터 총 3차례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해당 BJ는 스트리밍을 하면서 "그 주소에 갓건배가 살지 않아도 여성이라면 목졸라 죽이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것이 방송을 본 이들의 증언이다(링크). 특정한 피해자의 신원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분풀이 삼아 여성을 살해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표명하였고, 어떤 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여 현장으로 향하던 중이다.

과연 이 사람에게 형법상 살인예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가? 관련된 대법원 판례(2009도7150)는 다음과 같다.

형법 제255조, 제250조의 살인예비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형법 제255조에서 명문으로 요구하는 살인죄를 범할 목적 외에도 살인의 준비에 관한 고의가 있어야 하며, 나아가 실행의 착수까지에는 이르지 아니하는 살인죄의 실현을 위한 준비행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의 준비행위는 물적인 것에 한정되지 아니하며 특별한 정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순히 범행의 의사 또는 계획만으로는 그것이 있다고 할 수 없고 객관적으로 보아서 살인죄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외적 행위를 필요로 한다.

김윤태가 흉기를 준비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집에 갓건배가 살지 않는다면 다른 여자를 목졸라 죽이겠다'고 발언했다. 흉기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에게 갓건배를 살해하겠다는 의도가 없었고, 살인의 준비 행위가 없었다고, 확실히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방송을 보는 이들로부터 제보를 받아 갓건배가 살고 있을법한 위치를 좁히고 실제로 차를 타고 나갔다는 사실은 "살인죄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외적 행위"에 포함되지 않는가?

경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김윤태는 "한 파출소로 임의동행돼 아침까지 조사를 받았고, 경범죄처벌법상 '불안감 조성' 행위로 범칙금 5만원 통고처분을 받고 귀가했다." 경찰은 이 사건이 "형사과로 넘기기에는 사안이 경미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시킨 후 귀가시켰다"고 설명했다."(이효석, ""죽이러 간다" BJ 생방송에 경찰 수사 소동…BJ에 범칙금 5만원 ", 연합뉴스, 2017년 8월 10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0/0200000000AKR20170810151500004.HTML)

설령 백번 양보해서 김윤태의 방송 행위가 살인예비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다. 이미 지난달 벌어진 '왁싱샵 살인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소위 '1인 미디어'가 생산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폭력은 쉽사리 전염되기 때문이다. 김윤태의 방송을 보고 '나도 갓건배 죽이러 가겠다'고 나설 사람이 과연 단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작년 8월에 쓴 칼럼이 10월에 검열삭제된 사건을 떠올리게 된 것은 그래서이다. 한국 사회와 그 사회의 법 체계는, 여성의 일탈에 유독 민감하고, 더 강한 처벌의 잣대를 들이댄다. 실제로 처벌이 불가능하다 싶어보여도 일단 경찰 수사를 해서 겁을 준다. 반대로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폭력을 휘두르면 가장 엄격한 죄형법정주의와 절차중심주의를 통해 최대한 그 벌을 가볍게 한다.


여성들이 법 앞의 평등을 쟁취하는 그날까지

앞서 내 칼럼의 소재가 되었던 워마드 부동액 사건을 되짚어보자. 부동액을 먹고 사람이 죽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었다면 경찰이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경찰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대략 알면서도 겁주기용으로 워마드 수사에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반면 인터넷을 통해 남자들이 '인증'하려고, '리플' 받고 관심 끌려고 범죄 모의를 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일은 심심찮게 벌어진다. 가령 지난 2월, 일간베스트(일베)에 자신을 39세 일용직 노동자라고 밝힌 누군가가 선화예고 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학교는 2월 5일까지 임시로 학교 시설을 폐쇄했고, 서울 광진경찰서는 학교 인근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며 게시글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을 하는 BJ의 행동이 범행을 불러온 사례가 최근에 또 있었다. 7월 초 한 남성이 왁싱샵에서 홀로 일하던 여성을 찾아가 살해하고 금품을 챙기며 강간까지 시도했던 사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는 한 유명 BJ가 피해자의 가게에서 브라질리언 왁싱 시술을 받는 것을 소재로 한 자극적인 영상물을 보고 범행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서울 역삼동 주택가에서 대낮에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여성이기에 당하는 폭력이 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남성의 폭력을 모방하여, 남자들에게 뭐가 폭력인지 가르쳐주기 위한 어떤 퍼포먼스가 있다. 그런데 법은 양자를 똑같이 '폭력' 취급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서서 법의 눈이 둔감하다고, 남성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당한다. 그것이 내가 작년 10월에 겪었던 일이다.

2016년 강남역에서 그렇게 큰 시위가 벌어졌지만, 2017년에는 역삼역 인근에서 혼자 일하는 여성이 살해당한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이들이 한 여성을 붙잡아 죽이겠다고 날뛰어도 고작 범칙금 5만원 처분을 받는다. 법 앞의 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댓글 11개:

  1. 유튜브 아주 가관이더군요. 주소와 핸드폰번호까지 댓글에 까발려져있고(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김윤태분 말고도 실제 차를 타고 그 주소지로 찾아가 잠복하고있는 상황을 유튜브에 올린 bj(?)들이 꽤 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올리며 유명bj들의 영상을 따라하며 갓건배를 저격하는 영상을 올리던데 유튜브에대한 조치는 좀 필요해보입니다; 초등학생들도 그러니 앞으로 여혐남혐문제는 나아지기보다 심해지지않을까요; 물론 갓건배 그분이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집단으로 광적인 모습들이 소름끼치는군요.

    답글삭제
    답글
    1.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만, "앞으로 여혐남혐문제는 나아지기보다 심해지지않을까" 하는 말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성혐오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큰 반면, 남성혐오는 애초에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혐오는 '일부 남자들'이 '일부 여자들'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현상이 아닙니다. 여성이라는 범주 그 자체에 대한 집단적 폄하와 멸시입니다. 최근에 아주 좋은 사례가 등장했으니 그걸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일 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해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제가 당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서 수백억원대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피고인 신문에서 “아버님께 야단을 맞은 것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이 발언에 재판정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3/2017080301613.html
      -----------

      여기서 이재용이 아니라 이재순(가상의 재벌 여성)이 재판을 받고 있었고, 박근혜가 아니라 박근휘(가상의 대통령 남성)에게 뇌물을 준 혐의라고 해봅시다. 그래서 이재순은 박근휘와의 만남을 두고 '남자분한테 혼나본게 처음'이라고 했다고 말이죠.

      1) 한국 사회에서 저 연령대의 성인 여성이 남자에게 꾸중을 듣는 일이 평생 처음인 경우가 과연 가능할까요?

      2) 원래의 대화에서 이재용이 박근혜를, 당시에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여자분'이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심지어 대통령이어도 '여자' 취급받으며 그 여자는 '감히 남자인 나를 꾸짖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지 않나요?

      3) 법원 관중들은 '여자는 남자를 혼내고 꾸짖지 못한다'는 이재용의 상식과, 그 상식을 깨뜨리는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언밸런스로 인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여자분'들이 처한 집단적 지위를 상징하는 사건 아닐까요?

      한국 사회가 여성혐오 사회라는 것은 단지 무슨 몇몇, 딱 봐도 한심한 아프리카 BJ들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세련된 옷차림과 몸가짐을 한 굴지의 재벌 총수도 자신을 혼내는 대통령의 성별이 여자니까 '어디 감히 여자가 나를?' 하면서 속으로 발끈하는데 그게 바로 여성혐오입니다.

      그런데 저 현상에 대응할만한 '남성혐오'가 존재하나요? '어디 감히 남자가' 이런 소리, 코미디언 김숙 씨의 유머, 혹은 갓건배의 게임 방송에서나 들을 수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미러링'일 뿐입니다.

      그 외에 말씀하신 내용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합니다만, '여혐남혐문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여성혐오가 문제일 뿐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 다소 길게 답글을 달았습니다. 이 내용은 정리해서 추후 별도의 포스트로 작성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2. 오 그렇네요.. 상당히 말을 잘하시네요; 너무 알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여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이해가 좀 되긴합니다. 이번 일이랑 최근에 있었던 여러 끔찍한 사건들로인해 이 문제에 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그냥 인터넷에서 남자랑 여자랑 싸우는걸로만 생각했습니다 서로 이해를 못하고;.. 저도 이재용의 저 발언을 웃어넘겼는데 이렇게 되짚어보니 그릇된 가치관이 숨어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냥 일상적인 말이나 생각들에도요;.. 근데 남혐이라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셨는데, 남혐이 맞긴 맞지않나요? 이번에 유튜브에서 벌어진 집단적인 네티즌들의 광적인반응들은 잘못됐지만 가만히있는 남자한테도 한남이라며 싸잡으니, 사실 남자들은 모든 한국여자들에게 하는게 아니라 일부 젊은층의 여성들(돈을 밝힌다던지..)에게만 하는것이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저런 남혐하고는 좀 달라서;
      아무튼 갓건배도 조금 누그러뜨리면 싸움도 안나고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집에 찾아가고 그런건 잘못됐죠.
      다음에 포스팅 쓰시면 읽으러 오겠습니다. 다양한 관점에 대한 경험이 될거같네요.

      삭제
    3. 1) 사회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2) 특정 성별에 대한 폄하와 멸시를 3) 누군가가 재생산하는 것

      이것이 여성혐오라는 말에서 '혐오'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남성혐오'는 사회 현상이 아닙니다. 물론 유튜버 갓건배님은 한국 남자를 싫어합니다만, 그러한 개인적 감정은 1)과 2)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사실 남자들은 모든 한국여자들에게 하는게 아니라 일부 젊은층의 여성들(돈을 밝힌다던지..)에게만 하는것이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저런 남혐하고는 좀 달라서;"라는 말씀을 들으니 제 설명을 이해 못 하셨거나, 머리로는 따라오는데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일부 여자'가 문제니까 욕해도 된다? 그래서 계속 된장녀 김치녀 타령 하시겠다? 그런 생각이면 제 블로그에 더 이상 오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백인들도 흑인 차별할 때 '좋은 흑인'과 '나쁜 흑인'을 갈라쳤고, 일본인도 조선인 차별할 때 '좋은 조선인'과 '나쁜 조선인' 갈라쳤습니다. 님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지만 차별주의자들의 언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한국 남자들이 '한남'이라고 싸잡아 욕을 먹는 이유는 다른 한국 남자들이 '김치년'이라고 싸잡아 욕을 할 때 가만히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갓건배를 비롯한 미러링 퍼포머들이 그와 같은 언행을 반사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갓건배가 누그러뜨리는 게 아니라, 갓건배가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말하는 방문자님 같은 남자들, 그리고 나 같은 남자들이 다른 남자들의 여성혐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제지하지 않으면 이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입니다.

      어떤 여성이 개인적 행동으로 인해 비난을 받거나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런 '개인'들의 사례를 두고 '김치녀'나 '된장녀'(돈을 밝히는 젊은 여자 라는 말을 할때 방문자께서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개념들입니다)라고 욕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개별적 행위자를 여성이라는 성별 범주로 묶어 폄훼하는 고전적 여성혐오일 뿐입니다. 비난받을 행동을 하는 여성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녀'라고 욕을 먹어야 하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자의 사실로부터 후자를 거론하는 사람은 여성혐오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삭제
  2. 안녕하세요 작가님 다름이아니라http://www.instiz.net/clip/813701 이 영상에서 목소리로 등장하는 남성분이 노정태씨라고 주장하는 분이 계셔서;; 여쭙고 싶은데, 혹시 본인이 맞으신가요? 전 아무리 봐도 아닌거같은데 딴지일보 그 김현진씨랑 하신 라디오에서 나온 노정태님 목소리랑 비슷하다며 주장하시는 분이 계셔서 여쭤봅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안녕하세요. 저 영상에 목소리로 등장하는 남자분은 제가 아닙니다. 문의를 주신 덕분에 저 영상도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저 남자분이 누군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나보군요. 말하는 것으로 보건대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거주하거나 양쪽 모두 경험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추측해 봅니다. 아무튼 저는 아닙니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혼동할 수도 있는 거고요.

      삭제
    2. 괜히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ㅋㅋ 답글 감사합니다!

      삭제
  3. 이 글을 부디 모든 남자들이 정.독.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세 줄 요약해 달라고 하지 말고ㅋ

    답글삭제
  4. 2018년 5월에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몰카 처벌에 관련해 양성이 다른 처벌을 받았고 이에 항의해 대규모 여성 시위가 있었습니다. 글쓰신 분 혹시 타임머신타고 1년후 보고 온 후에 글쓰신거 아니신지..?ㅎㅎ 통찰력이 돋보이네요. 덕분에 한국 경찰이 동일범죄에 양성을 다르게 수사하는 것이 명백하다는 걸 깨닫게 됬습니다ㅎ 글 잘읽고 갑니다.

    답글삭제
    답글
    1. 해당 시위에 참석할 수는 없는 관계로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서 마음 속으로 지지의 뜻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쓴 건 2017년 8월이지만 검열삭제당한 경향신문 칼럼은 2016년 7월에 쓴 것이니, 벌써 2년 전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공권력이 남자를 봐주고 여자를 겁주려 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으니, 이제는 여성들이 겁을 먹는 대신 당당하게 '여자도 사람이다'라고 외치며 반박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국의 남성 기득권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에서 얻어진 동력을 최대한 잘 살려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성과를 얻어내야 할 때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