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책회의의 행동 중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긴 하다. 하지만 '48시간 국민행동'을 제안해놓고는, 10시 30분에 시청 광장에서 "우리 내일 만나요"라며 해산해버리는 건 대체 무슨 발상인지 지금까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아주머니가 커다란 쇼핑백에 싸들고 온 은박 돗자리가 민망해보일 지경이었다.
2. 최장집 교수의 고별강의에 다녀왔다. 한국의 현실정치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인식적 탁월함과, 그것을 담론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실천적 한계가 동시에 잘 드러난 강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필기한 내용을 정리해야겠다.
3. 이문열이 내놓는 정치적 발언들은 결국 책 팔아먹으려고 벌이는 노이즈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택광 선배의 지적은 상당히 적절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문열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효용 있는 일이 되지 못한다. 2008년의 촛불 혁명이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나는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새물결, 2006)를 읽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서평을 쓸지, 그것을 통해 이문열을 어떻게 비판할지에 대해 상당히 큰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헌 논의가 매우 위험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기사를 레디앙에서 발견하였다. "개헌? 초가삼간 태운다!"(윤현식, 레디앙, 2008년 6월 20일)의 논의 중 특히 중후반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문제의식 또한 나는 필자와 공유하고 있다.
5. 잠시 광고 말씀. 7월호 GQ가 나왔다. 최근 나온 GQ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에 대한 특집은 정말이지 눈이 번쩍 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자료 삼아 한 권 사야 한다. 박상륭 인터뷰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나이 많은 문학인을 이토록 멋지게 다루어준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GQ 7월호에 실린 박상륭은 흡사 변희봉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사진과 인터뷰가 실려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점에서.
2008-06-16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며 시위대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있던, 문제의 5월 31일 밤. 그런 시위가 있건 말건,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제18대 국회의 첫 번째 법안을 발의했다. 그 내용은 다름아닌 1가구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면제였다. 시가가 1억이건 100억이건, 1가구 1주택이면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우리가 광화문 사거리를 뚫고 안국동으로 진격하고 있을 때 상정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하며 광장에서 빈둥거리는 6월 2일 이후의 '촛불시위'와, 그러한 종류의 '참여'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 네티즌들에게 내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6월 10일 100만 명이 모인 이후 한국의 쇠고기 문제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도 비로소 눈치챘고, 그에 따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다양한 논자들이 여러 의견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위의 목적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탈당파들의 복당을 일부 수용하면서 한나라당은 명실공히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당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당권을 잡고,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많이 죽었지만, 총리까지 된다면 그 결과는 실로 파멸적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지난 포스트에서 "죽 쒀서 개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굳이 더러운 비유를 써서 말하자면,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촛불시위가 불타오르고 있거나 말거나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려 들 것이고, 사학법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며, 기득권층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은 헌법 제119조 2항을 슬그머니 빼는 쪽으로 개헌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추상적인 구호만이 가득한 촛불시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헌법 제1조 1항이 상징하고 있는 바는 매우 크다. 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으로 내려와보면, 대한민국의 경제 정의를 지켜온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자유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정하고 있는 동조 1항과 함께, 119조 전체를 우선 살펴보자.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당연한 말이 헌법에 써있느냐 마느냐가 낳는 차이는 매우 크다. 이번 촛불집회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주제를 통해 그 영향의 일부를 살펴보자. 흔히 '신문고시'라 불리는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부는 바로 저 119조 2항을 근거로 신문고시와 그에 따른 무가지 경품 배포가 합법임을 확인하였다(2002. 7. 18. 2001헌마605 전원재판부).
신문고시에 따르면 신문판매업자는 신문구독자가 내는 1년 구독료의 20%를 상회하는 무가지 혹은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신문고시는 그러한 행위를 불공정 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도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조중동 찌라시'들이 벌이는 패악 중 하나로 지목하는 바로 그 행위를 막는 것으로, 언론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에 신문 독자인 청구인 1과 신문 배급소를 운영하는 청구인 2가 공동으로 신문고시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신문 독자는 신문고시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 반면 신분 배급자의 경우, 지금 내가 이 글에서 인용하지 않은 다른 청구이유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으므로 청구가 각하되었지만, 신문고시 3조 1항에 대해서는 심리에 들어갔다. 길고 긴 판결문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결국 헌법 제119조 2항의 사회적 자유경제국가 규정이다.
이런 '독소 조항'이 헌법의 한켠에 버젓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7, 8, 9월에 걸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789 노동자 대투쟁'이라 부르는 이 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개헌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질서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큰 힘이 실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사회적 자유경제질서하에 움직이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헌법의 규정이 그 자체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노동자와 시민들의 경제적 권리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너진다. 이것은 심지어 홍준표마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만으로는 한나라당의 연이은 악법 제정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개헌을 통해 헌법 제119조 2항을 제거하는 일에도 속수무책이다. 구체적인 개정안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들이 모여있을 뿐인 그런 '대중'이 아닌,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 사항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집단'들의 연합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무의미하다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 기득권층에게 줄 수 있는 위협의 정도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조중동의 광고를 며칠간 끊어놓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이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파업중인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그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것은, 현재 완전히 마비되어버린 부산항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명박 정권이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본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위의 공격적인 파급력에 있어서 파업과 촛불시위는 작동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 영향력도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수직선 위에 올려놓고 직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업이 자본가들의 목줄을 졸라 이명박 정권의 궁극적인 지지기반을 흔들리게 한다면, 촛불시위는 시민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양자가 서로 보완해나갈 때 우리는 이번 시위의 승리 가능성을 비로소 엿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파업하는 노동조합은 마린이고, 촛불시위하는 시민들은 메딕이다. 6월 10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은, 이명박이 쌓아놓은 컨테이너 박스 너머에 메딕만 다섯 부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물병을 던져야 한다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폭력시위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파업을 옹호하고 있다. 파업 또한 평화적인 시위의 일부분이다. 나 또한 파이어벳이 나오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굳이 한 번 더 강조한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자. 국회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어찌되었건 법치국가이다. 18대 국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말이지 마음 내키는대로 사회를 뜯어고칠 수 있다. 현재 야당들의 꼬락서니를 볼 때, 그러한 발걸음을 원내정치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므로 나는 2008년에, 1987년의 6월 항쟁만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789 노동자 대투쟁까지도 함께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촛불과 깃발이 함께 서야 거대여당과 재벌의 횡포로부터 중산층과 저소득층, 그리고 중소기업의 권리를 간신히 지켜낼 수 있다.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업무개시 명령이 떨어진 후에는 강제진압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촛불들에게 묻고 싶다. 5월 31일 밤, 안국동 골목에서 물대포에 맞서 싸우던 깃발 중 금속노조의 것을 기억하냐고. 보건의료노조 사람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을 말리던 그때를 잊지 않았느냐고. 현재 촛불정국의 2라운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아가씨들이 아저씨들을 지켜줘야 할 때인 것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촛불은 더욱 굵어져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하며 광장에서 빈둥거리는 6월 2일 이후의 '촛불시위'와, 그러한 종류의 '참여'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 네티즌들에게 내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6월 10일 100만 명이 모인 이후 한국의 쇠고기 문제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도 비로소 눈치챘고, 그에 따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다양한 논자들이 여러 의견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위의 목적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탈당파들의 복당을 일부 수용하면서 한나라당은 명실공히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당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당권을 잡고,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많이 죽었지만, 총리까지 된다면 그 결과는 실로 파멸적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지난 포스트에서 "죽 쒀서 개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굳이 더러운 비유를 써서 말하자면,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촛불시위가 불타오르고 있거나 말거나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려 들 것이고, 사학법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며, 기득권층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은 헌법 제119조 2항을 슬그머니 빼는 쪽으로 개헌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추상적인 구호만이 가득한 촛불시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헌법 제1조 1항이 상징하고 있는 바는 매우 크다. 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으로 내려와보면, 대한민국의 경제 정의를 지켜온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자유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정하고 있는 동조 1항과 함께, 119조 전체를 우선 살펴보자.
제119조
1.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당연한 말이 헌법에 써있느냐 마느냐가 낳는 차이는 매우 크다. 이번 촛불집회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주제를 통해 그 영향의 일부를 살펴보자. 흔히 '신문고시'라 불리는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부는 바로 저 119조 2항을 근거로 신문고시와 그에 따른 무가지 경품 배포가 합법임을 확인하였다(2002. 7. 18. 2001헌마605 전원재판부).
신문고시에 따르면 신문판매업자는 신문구독자가 내는 1년 구독료의 20%를 상회하는 무가지 혹은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신문고시는 그러한 행위를 불공정 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도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1-7호) 제3조(무가지 및 경품류 제공의 제한)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제1항 제3호 전단에 규정하는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1. 신문발행업자가 신문판매업자에게 1개월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신문판매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2. 신문판매업자가 독자에게 1년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 경우는 구독기간이 1년 미만인 때에도 같다.
3. 신문발행업자가 직접 독자에게 1년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것은 우리가 흔히 '조중동 찌라시'들이 벌이는 패악 중 하나로 지목하는 바로 그 행위를 막는 것으로, 언론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에 신문 독자인 청구인 1과 신문 배급소를 운영하는 청구인 2가 공동으로 신문고시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신문 독자는 신문고시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 반면 신분 배급자의 경우, 지금 내가 이 글에서 인용하지 않은 다른 청구이유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으므로 청구가 각하되었지만, 신문고시 3조 1항에 대해서는 심리에 들어갔다. 길고 긴 판결문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결국 헌법 제119조 2항의 사회적 자유경제국가 규정이다.
이 사건 조항은 신문판매업자가 거래상대방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무가지와 경품의 범위를 유료신문대금의 20%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문판매업자의 사업활동의 자유와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신문판매업자에 대한 이러한 행위제한은 무가지와 경품등의 과다한 살포를 통하여 경쟁상대 신문의 구독자들을 탈취하고자 하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상황을 완화시키고 신문판매ㆍ구독시장의 경쟁질서를 정상화하여 민주사회에서 신속ㆍ정확한 정보제공과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하여야 하는 신문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주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며, 나아가 무가지 살포와 경품 제공은 결국 신문의 구독강요에 흐를 위험이 큰 점을 고려할 때 일반 국민인 신문구독자가 내용상 자신이 선호하는 신문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을 억지하고자 하는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고시 내용에 의한 신문판매업자에 대한 규제는 신문업에 있어서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경제적 규제로서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며, 따라서 결국 이는 헌법 제119조 제1항을 포함한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조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강조는 인용자)
이런 '독소 조항'이 헌법의 한켠에 버젓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7, 8, 9월에 걸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789 노동자 대투쟁'이라 부르는 이 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개헌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질서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큰 힘이 실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사회적 자유경제질서하에 움직이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헌법의 규정이 그 자체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노동자와 시민들의 경제적 권리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너진다. 이것은 심지어 홍준표마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정회의에서 "헌법 119조 2항은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시장을 전부 일대일의 대결구조로 만들어 버리면 대기업만 살아남는 시장구조가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도 살고 근로자 살고, 힘없는 사람도 사는 구조를 만들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헌법상 원칙이 있다"며 "그 원칙이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헌법 원칙에 의거해서 개입할 것은 개입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화물연대가 불법파업에 나서게 된 절박한 배경을 정부가 헤아려서 헌법원칙에 맞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요즘 철근 값이 인상되면서 건설업계, 중소기업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 문제도 결국 헌법 119조 2항에 따라 정부가 앞으로 약자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헌법, '사회적 시장경제' 천명 적극 개입해야"(뉴시스, 2008년 6월 15일)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만으로는 한나라당의 연이은 악법 제정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개헌을 통해 헌법 제119조 2항을 제거하는 일에도 속수무책이다. 구체적인 개정안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들이 모여있을 뿐인 그런 '대중'이 아닌,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 사항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집단'들의 연합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무의미하다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 기득권층에게 줄 수 있는 위협의 정도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조중동의 광고를 며칠간 끊어놓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이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파업중인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그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것은, 현재 완전히 마비되어버린 부산항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명박 정권이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본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위의 공격적인 파급력에 있어서 파업과 촛불시위는 작동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 영향력도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수직선 위에 올려놓고 직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업이 자본가들의 목줄을 졸라 이명박 정권의 궁극적인 지지기반을 흔들리게 한다면, 촛불시위는 시민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양자가 서로 보완해나갈 때 우리는 이번 시위의 승리 가능성을 비로소 엿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파업하는 노동조합은 마린이고, 촛불시위하는 시민들은 메딕이다. 6월 10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은, 이명박이 쌓아놓은 컨테이너 박스 너머에 메딕만 다섯 부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물병을 던져야 한다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폭력시위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파업을 옹호하고 있다. 파업 또한 평화적인 시위의 일부분이다. 나 또한 파이어벳이 나오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굳이 한 번 더 강조한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자. 국회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어찌되었건 법치국가이다. 18대 국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말이지 마음 내키는대로 사회를 뜯어고칠 수 있다. 현재 야당들의 꼬락서니를 볼 때, 그러한 발걸음을 원내정치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므로 나는 2008년에, 1987년의 6월 항쟁만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789 노동자 대투쟁까지도 함께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촛불과 깃발이 함께 서야 거대여당과 재벌의 횡포로부터 중산층과 저소득층, 그리고 중소기업의 권리를 간신히 지켜낼 수 있다.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업무개시 명령이 떨어진 후에는 강제진압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촛불들에게 묻고 싶다. 5월 31일 밤, 안국동 골목에서 물대포에 맞서 싸우던 깃발 중 금속노조의 것을 기억하냐고. 보건의료노조 사람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을 말리던 그때를 잊지 않았느냐고. 현재 촛불정국의 2라운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아가씨들이 아저씨들을 지켜줘야 할 때인 것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촛불은 더욱 굵어져야 한다.
2008-06-15
'일반 시민'을 넘어서
집회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다는 발상은 착각이다.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축제를 집회처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간 바와 같이, 축제의 탈을 쓴 집회가 아닌, 집회의 탈을 쓴 축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6월 10일 그 많은 인파가 모이고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군중들 속에서 진짜 '집회'를 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KBS 앞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그 광경을 목격한 몇몇 우익 단체들은 항의 집회를 연답시고 엉뚱하게 MBC에 찾아가 별 짓을 다 했는데, 그러자 대책회의의 차량과 집회 행렬이 길고 긴 행진을 하게 된 것이 13일의 금요일 밤에 벌어진 일의 전말이다.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선 그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행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추산으로 1만여명 이상의 대오를 유지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명박이 물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탈진하지 않고 있다. 기나긴 고난의 행군은 시위가 지나치게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을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편하게 투덜거리던 사람들은 중간에 집에 간다. 여의도에 도착하고 나니 '구호빨'이 예전에 비해 훨씬 잘 먹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축제를 즐기고자 모인 사람들은 반면, 끈덕지게 광화문을 사수하며 적은 인원으로 효율성 있게 놀고 있다. 역시 13일의 금요일 밤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남아있는 깃발은 오직 10대 연합에서 가져온 것 뿐이었는데, 내가 학부 다닐 때 '문선'이라 부르던 그것을 하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이 분열은 매우 긍정적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부산항이 마비될 지경이다. 화물연대가 부산항을 봉쇄하고 있지 않다 뿐이지 사실상 그 기능은 멈췄다고 봐야 한다. '생계형 파업'이라는 말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정치적인 긍정성을 띌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화물연대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예전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럭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몇 개 국가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다 기억나지는 않고, 사진을 저장해 둔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물류가 멈춰버린 결과 슈퍼마켓의 진열장들이 아래 사진처럼 되어버리고 말있다.
(바르셀로나의 한 슈퍼마켓. 레몬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과연 한국의 '일반 시민'들도, 이명박이 순순히 말을 들을리는 거의 없으므로 물류대란의 여파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시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런 파업을 긍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유가 파고 속에서 꽁치가 풍작인 터라 어민들이 울상이라는 기사가 현재 네이버 메인화면에 떠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유럽의 어부들은 EU를 상대로 가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세부적인 차원으로 내려가면 차이가 있지만, 유가 상승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경제 위기는 닥쳐오고 있고, 한국의 정치 세력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명박산성을 재축조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경찰이 광화문의 봉쇄를 터줄 가능성은 그야말로 0이다. 이명박이 시민들의 말을 곱게 들어줄 턱이 없다.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아침 곱게 회사에 출근하는 '일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에게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사실로부터 큰 충격을 받겠지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집회가 다양한 방면으로 분열되는 것과 동시에, '일반 시민'과는 다른 사람들이 자꾸 끼어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종종 눈에 띈다. 어느 '진보 매체'에서 촛불시위의 초창기에 참여자를 묘사하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청바지에 티셔츠, 굽 높은 구두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크로스백을 매고 있는 사람들'. '일반 시민'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철저히 계급적이다. 이는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규정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규정은 '서울말'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역 토착어를 소외시키킨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양'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계급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가 마찬가지 논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차마 그런 말까지 하지 못하지만, 익명으로 찌질거리는 일에 익숙한 일련의 '네티즌'들은, 평화로웠던 촛불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되게 된 원인을 노숙자와 노가다꾼들의 가세에서 찾곤 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 기사에 달린 썩어나는 리플들을 보라. 물론 나도 술냄새 펄펄 풍기는 아저씨들이 꽥꽥 소리지르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반응은 그런 즉각적인 쾌와 불쾌의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다. '알바'를 성토하는 것들을 일단 빼보자. 그러면 의견의 8할은 '사진을 봐라, 20대가 주범이다'이고, 나머지 2할이 노숙자 욕인데, 후자가 직설적으로 노숙자를 '시민'의 범주에서 몰아내고 있다면 전자는 다소 교묘한 방식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자가 사회 하층민에 대한 정치적 배제에서 멈추는데 반해, 전자는 그들의 존재를 아예 인식론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인식론적 차단이 적용되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조선일보 등에 광고가 안 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기뻐하면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이명박이 화주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들 또한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팽팽하게 고조되어 있는 반 정부 시위대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경찰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 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히 칸트의 도덕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칭찬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
그러므로 촛불시위대는 '일반 시민'의 벽을 넘어 노동조합과 적극적인 연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그 벽을 넘어서는 일은, 촛불시위의 물결 속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이 단순히 여러 단체에서 나누어주는 피켓을 수동적으로 받아드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있나 읽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연대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있는 쪽은 그 잘나신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6월 7일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와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하였다.
(노점상을 밝히고 있는, 소주병에 꽂힌 촛불)
(포장마차의 윗부분에 붙어있던 안내문)
서울서부지역 노점상 연합은 6월 7일부터 10일까지, 밤 8시에서 9시에 걸쳐 전등을 소등하고 대신 촛불을 켜놓는 것으로 촛불시위에 대한 연대의 뜻을 밝혔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일반 시민'들은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다. 이것은 폭력과 비폭력 이전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염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혹은 대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며,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에 이 촛불시위를 그토록 가둬놓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이 촛불시위에 승리하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계급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과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시민적 교양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연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나는 아직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조합의 홍보물을 함께 나누어주는 것 정도가 지금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다. 중요한 것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며, 따라서 노동자이다.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이 벽을 넘어 노동자가 되는 날, 승리는 한 걸음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볼이 터져라 오뎅을 먹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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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군중들 속에서 진짜 '집회'를 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KBS 앞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그 광경을 목격한 몇몇 우익 단체들은 항의 집회를 연답시고 엉뚱하게 MBC에 찾아가 별 짓을 다 했는데, 그러자 대책회의의 차량과 집회 행렬이 길고 긴 행진을 하게 된 것이 13일의 금요일 밤에 벌어진 일의 전말이다.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선 그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행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추산으로 1만여명 이상의 대오를 유지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명박이 물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탈진하지 않고 있다. 기나긴 고난의 행군은 시위가 지나치게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을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편하게 투덜거리던 사람들은 중간에 집에 간다. 여의도에 도착하고 나니 '구호빨'이 예전에 비해 훨씬 잘 먹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축제를 즐기고자 모인 사람들은 반면, 끈덕지게 광화문을 사수하며 적은 인원으로 효율성 있게 놀고 있다. 역시 13일의 금요일 밤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남아있는 깃발은 오직 10대 연합에서 가져온 것 뿐이었는데, 내가 학부 다닐 때 '문선'이라 부르던 그것을 하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이 분열은 매우 긍정적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부산항이 마비될 지경이다. 화물연대가 부산항을 봉쇄하고 있지 않다 뿐이지 사실상 그 기능은 멈췄다고 봐야 한다. '생계형 파업'이라는 말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정치적인 긍정성을 띌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화물연대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예전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럭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몇 개 국가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다 기억나지는 않고, 사진을 저장해 둔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물류가 멈춰버린 결과 슈퍼마켓의 진열장들이 아래 사진처럼 되어버리고 말있다.
과연 한국의 '일반 시민'들도, 이명박이 순순히 말을 들을리는 거의 없으므로 물류대란의 여파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시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런 파업을 긍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유가 파고 속에서 꽁치가 풍작인 터라 어민들이 울상이라는 기사가 현재 네이버 메인화면에 떠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유럽의 어부들은 EU를 상대로 가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세부적인 차원으로 내려가면 차이가 있지만, 유가 상승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경제 위기는 닥쳐오고 있고, 한국의 정치 세력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명박산성을 재축조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경찰이 광화문의 봉쇄를 터줄 가능성은 그야말로 0이다. 이명박이 시민들의 말을 곱게 들어줄 턱이 없다.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아침 곱게 회사에 출근하는 '일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에게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사실로부터 큰 충격을 받겠지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집회가 다양한 방면으로 분열되는 것과 동시에, '일반 시민'과는 다른 사람들이 자꾸 끼어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종종 눈에 띈다. 어느 '진보 매체'에서 촛불시위의 초창기에 참여자를 묘사하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청바지에 티셔츠, 굽 높은 구두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크로스백을 매고 있는 사람들'. '일반 시민'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철저히 계급적이다. 이는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규정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규정은 '서울말'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역 토착어를 소외시키킨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양'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계급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가 마찬가지 논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차마 그런 말까지 하지 못하지만, 익명으로 찌질거리는 일에 익숙한 일련의 '네티즌'들은, 평화로웠던 촛불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되게 된 원인을 노숙자와 노가다꾼들의 가세에서 찾곤 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 기사에 달린 썩어나는 리플들을 보라. 물론 나도 술냄새 펄펄 풍기는 아저씨들이 꽥꽥 소리지르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반응은 그런 즉각적인 쾌와 불쾌의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다. '알바'를 성토하는 것들을 일단 빼보자. 그러면 의견의 8할은 '사진을 봐라, 20대가 주범이다'이고, 나머지 2할이 노숙자 욕인데, 후자가 직설적으로 노숙자를 '시민'의 범주에서 몰아내고 있다면 전자는 다소 교묘한 방식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자가 사회 하층민에 대한 정치적 배제에서 멈추는데 반해, 전자는 그들의 존재를 아예 인식론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인식론적 차단이 적용되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조선일보 등에 광고가 안 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기뻐하면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이명박이 화주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들 또한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팽팽하게 고조되어 있는 반 정부 시위대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경찰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 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히 칸트의 도덕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칭찬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
그러므로 촛불시위대는 '일반 시민'의 벽을 넘어 노동조합과 적극적인 연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그 벽을 넘어서는 일은, 촛불시위의 물결 속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이 단순히 여러 단체에서 나누어주는 피켓을 수동적으로 받아드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있나 읽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연대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있는 쪽은 그 잘나신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6월 7일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와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하였다.
서울서부지역 노점상 연합은 6월 7일부터 10일까지, 밤 8시에서 9시에 걸쳐 전등을 소등하고 대신 촛불을 켜놓는 것으로 촛불시위에 대한 연대의 뜻을 밝혔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일반 시민'들은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다. 이것은 폭력과 비폭력 이전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염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혹은 대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며,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에 이 촛불시위를 그토록 가둬놓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이 촛불시위에 승리하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계급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과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시민적 교양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연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나는 아직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조합의 홍보물을 함께 나누어주는 것 정도가 지금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다. 중요한 것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며, 따라서 노동자이다.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이 벽을 넘어 노동자가 되는 날, 승리는 한 걸음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이 사진을 다른 곳으로 퍼가는 일은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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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6월 10일,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 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 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일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를 막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p.s. 폭력에 맞서는 적극적인 비폭력과 무저항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모진 탄압을 당하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젖어있지도 않다. 묵묵히 참고 또 참지만 결코 복종하지 않는, 진짜 비폭력이 이 안에 있다.
6월 첫째 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 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일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를 막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p.s. 폭력에 맞서는 적극적인 비폭력과 무저항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모진 탄압을 당하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젖어있지도 않다. 묵묵히 참고 또 참지만 결코 복종하지 않는, 진짜 비폭력이 이 안에 있다.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시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가 막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6월 첫째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시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가 막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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