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6

'오바마'를 지금 팔아라?

인터넷 미디어 비평 매체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미국 대선에 대한 제 생각은 좀 더 천천히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외신과 주요 블로그를 통해, 오바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나누어보자. 'It's time'이라는 명료한 표어와, 속된 말로 대단히 '간지나는' 표지로 오바마의 당선 커버스토리를 낸 <이코노미스트>는, 오바마가 당장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애초부터 그는 '적절한 상황이 되면' 이라크에서 발을 빼겠다고 했을 뿐,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즉시 철군하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걸지 않았다. 오바마가 일거에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를 지금 팔아라?", 미디어스, 2008년 11월 6일.

‘오바마’를 지금 팔아라? - 미국 대선 결과를 보는 외국 언론들의 몇 가지 시선

버락 오바마는 '변화'를 핵심 기치로 내걸고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것을 보도하는 대부분의 한국 언론의 자세는 새로움과 거리가 먼 것 같다. 한국 주류 언론에서 오바마의 당선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 인간극장. 2. (어쩌고 저쩌고) 흑인. 3. 부시와는 다름. 그리고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 두 가지 정도 사안을 살펴본다. 첫째, 오바마가 당선되었는데 한미 FTA를 원안대로 통과시킬 수 있을까? 둘째, '친미 반북'을 표방하던 정치 세력에 균열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될까?

물론 앞서 말한 세 가지 보도 포인트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궁금한 것일 수 있다(가령, '아니,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됐단 말야?'라며 놀랄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또 케냐 이민자 출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을 딛고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 남자의 '성공 신화'는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같은 정보만을 쏟아내는 국내 언론들을 바라보며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바마의 당선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대강이라도 나누어 보는 것이다.

   
  ▲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캡처.  
 
여러 외신과 주요 블로그를 통해, 오바마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나누어보자. 'It's time'이라는 명료한 표어와, 속된 말로 대단히 '간지나는' 표지로 오바마의 당선 커버스토리를 낸 <이코노미스트>는, 오바마가 당장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애초부터 그는 '적절한 상황이 되면' 이라크에서 발을 빼겠다고 했을 뿐,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즉시 철군하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걸지 않았다. 오바마가 일거에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컴퍼니에 인수된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Foreign Policy>는, 각계 전문가 10인에게 다음 행정부를 구성할 만한 '드림팀'을 꼽아달라고 청탁했다(<Foreign Policy>, 2008년 11/12월호). 그 결과 다섯 명의 전문가가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의 연임을 요청했다. 그가 이라크 파병군 증가를 통해 상황 호전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오바마가 이라크에서 당장 미군을 빼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11월 이후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이슈가 된 경제 살리기는 어떨까.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룬다. 2001년 경기 침체기 당시에도 소득 중 소비 비중을 줄이지 않았던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카드가 닫혀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확산되는 경로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카리스마나 구호만을 통해 극복될 수 없을만큼 구체적이고 심각한 것이다.

그래도 영국의 <가디언>은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의 희망이며 동시에 우리의 희망이다'라고 환호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그 희망은 구체적인 정책에 근거를 두기보다는, 그가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뚜렷한 정치적 입장에 근거하는 듯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의 건강 보험 시스템, 막대한 재정 적자, 경제 위기 등을 오직 '올바른 태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미국 대선이 2004년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뉴욕타임스 사이트에 있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크루그먼은 '오바마는 당당하게 진보적인 가치를 내걸고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음으로써 승리했다'며, 그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현실은 어렵지만 나침반만은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 가디언 웹사이트 캡처.  
 
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면, 역시 현실은 어렵다. 클린턴 1기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거대 기업들의 로비와 영향력이 살아있는 한 오바마가 자신의 이상을 그대로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오바마가 오늘 승리한다면, 진짜 시험이 내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요컨대 그는 희망을 걸고 있지만 낙관하지는 못하고 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 10월 29일 영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사이먼 잰킨스는 <가디언>에 글을 보냈는데, 그 첫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오바마를 주식에 빗대어, '지금 오바마를 팔아라'라고 권한다. 오바마 주식은 과대평가되어 있으며 장래 다가올 시장은 미쳐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 너무 큰 기대를 걸면, 나중에 안게 될 실망의 크기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공화당원이 아닌 흑인 대통령 후보'라는 것 뿐이다. 오바마가 자신의 선거운동을 승리로 이끈 것은 그의 개인적 매력과 풀뿌리 조직의 결합 덕분이었다. 그 둘은 국정 운영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매도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당연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바마'를 아는 것보다 '미국' 그 자체를 아는 것이다. '오바마와 나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라는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의 발언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것은, 두 사람의 외모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두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오바마만을 놓고 아무리 궁리해봐야 우리는 미 대선과 한반도의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버락 오바마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노정태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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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10월의 여행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마감이 덤벼들고, 개인적으로 맡은 일도 처리하다보니 10월에 다녀온 여행 사진을 11월에 올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나는 동행인과 함께 10월 3일 개천절에는 10번째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다녀왔고, 이후 10월 4일과 5일에 걸쳐 부산에 내려가 영화는 한 편도 안 보고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을 쏘다니며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돌아왔다.

긴 글을 쓰긴 좀 피곤해서, 사진과 간단한 설명만 덧붙인다.




김창완 밴드.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부터 세 곡을 내달렸다. 쌈싸페의 키치 분위기가 김창완 밴드에 압도당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 전까지는 '슈퍼키드'라는 명랑한 친구들이 나와서, 치킨집 앞에 놓는 흐느적거리는 풍선 인형을 틀어놓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얼쑤절쑤 덩실덩실 신나게 랩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김창완 밴드가 락으로 정리했다.




유앤미블루의 이승열. 한국의 보노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백 퍼센트 즐기지는 못했다.

사실 이번 쌈싸페의 최고 이벤트는 심수봉의 등장이었는데, 그 광경을 사진으로 못 찍은게 아쉽다. 목소리의 힘은 많이 죽었지만 타고난 분위기만큼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10월 부산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기였다. 국제시장. 토요일 밤에 지리를 파악하고 일요일에 쏘다녔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암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 낮에 찍어서 그런지 그 느낌까지 살아있지는 않다.




부산에서는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곤약을 같이 팔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굳이 시식해보고 있는 대중문화비평계의 큰 별 노정태 선생.




해 떨어진 자갈치 시장에서, 회가 나오기 전까지.





부산 국제시장의 '개미집'에서 먹은 낚지볶음.





개미집 간판. 낙지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개미집 간판을 자세히 보면 글씨 안에 정말 개미가 들어있다. 둘 다 은근히 귀엽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말처럼 달리고 싶은 사람은 클릭해서 크게 보시길.




친구가 구입한, 노먼 록웰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우산을 쓰고 찍은 사진. 노먼 록웰의 일러스트를 나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몽롱하고 포근하지만, 나와는 너무 이질적인 문화적 코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의 일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내 것이 아닌 그리움에 휩싸이게 되고, 그로 인해 굳이 느낄 필요가 없는 소외감에 젖어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렸을 때, 양과자 깡통에 그려진, 풍성한 핑크색 치마를 입고 양산을 쓴 아가씨의 파스텔 그림을 볼 때의 기분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러스트가 우산에 그려져 있으니, 감정적인 동요를 미적인 즐거움이 압도했다. 어쩌면 예전 그때와 감성의 구조가 조금 달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깡통시장을 쏘다니다가 먹은 '할매 유부오뎅'. 당면이 들어있는 유부를 삶아서 오뎅과 함께 내준다. 다소 느끼하긴 하지만, 북적거리는 시장을 누비고 다니다가 HP를 충전할 때에는 이런 걸 먹어줘야 하지 싶다.




국제시장에 있는 가야밀면에서 저녁. 작년에 다른 곳에서 먹어본 밀면은 실망스러웠는데, 여기는 마음에 들었다. 밀면 맛이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니지만, 맛있는 것과 맛없는 건 확실히 다르다.




여행의 소득. 골동품 상인에게서 덥썩 산 손목시계. 메이커도 없고, 방수 기능도 없고, 바늘 세 개와 유리판만 있는데, 은근히 그럴싸해보여서 샀다. 지금도 내 손목에 차고 있음.

마감을 끝내고, 맡은 일들을 잘 처리하고, 언젠가 또 여행을 가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요즘 이래저래 사는 게 팍팍하다. 고작 한 달 전인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터무니없을 정도로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다시 봐도 흡족하다.

2008-11-03

토론다운 토론

지난 포스트에서 내가 다소 생뚱맞게도 '금리인하 논쟁'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그것이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지금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환율 및 기타 경제지표보다 내년도 성장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동시에 그것은 '이명박의 경제정책'을 좀 더 세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의사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 않으므로, 그 각각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경기부양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한은 이성태 총재는 '내년도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는 점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1%까지 내리고, 일본이 0.5%를 0.3%로 낮춘 것도 전부 2008년도 4/4분기가 아니라 2009년도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기준금리 인상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은행이 원화의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그 신호를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이해할까. 내년도에 어떤 혹독한 경기 후퇴를 겪건, 지금 당장 꺼야만 하는 큰 불이 있다, 이런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 아닐까.

가령 유럽의 '금융 허브'로 잠깐 떴다가 가장 큰 서리를 맞은 아이슬란드는, 최근 기준금리를 12%에서 18%로 대폭 인상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 아무리 비관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2008년 11월 3일 현재의 대한민국과 아이슬란드를 같은 사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내년도 경기 후퇴에 대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경기'에 대한 것인가, 즉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로 집중된다.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고 고용을 안정화하며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은, 모두 국내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미국의 소비심리가 대후퇴하고 있는 지금, 아무리 '환율주권'을 사수한다 한들 수출 주도형 경제로는 안정성 확보에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지난 글에서 우석훈 박사의 '환율주권' 언급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현행 경제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환율주권론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석훈이 특히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주장한 '전쟁산업'에서 '평화산업'으로의 이행은, 지금과 같은 중공업 중심의 수출경제 구조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환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금리인하에 반대한다는 말은 그의 전체적인 논지에 비추어볼 때, 성립이 불가능하지야 않지만 상당히 어색하다.)

금리인하 논쟁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재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중공업 시대, 건설업 시대를 이어 어떤 곳에서 성장동력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전부 사장된 채, 이렇게 해도 한국 경제 망한다 저렇게 해도 한국 경제 망한다, 이런 목소리만 드높았던 것이 최근 두어 주일간 벌어진 담론적 소극 아닌가.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면, 그로 인해 유발될 더 극심한 디플레이션 속에서 어떻게 한국 경제를 재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그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담론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은행의 결정 이후 환율과 주가가 안정세를 찾자,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미네르바를 잡아라' 따위 마녀사냥질을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환율이 높아지고 주가가 낮아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명박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제 정책을 싸잡아서 비판하다가, 결국 논의다운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촛불시위때와 같은 패턴으로 닭몰이를 당하고 있다. 이건 저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이쪽이 저들보다 멍청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주가 올라가면 미네 버로우? ㅋㅋㅋ' 같은 소리 하던 아고라의 삐딱한 인간들이, 지난주 월요일부터 반짝 기승을 부린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명박 욕하기 판소리 대회에 나온 게 아니지 않나. 잘못되고 있는 모든 일 때문에 이명박을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 모든 잘못된 일들 중 하나만 제대로 되어도 이명박을 비판하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성장동력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논의다운 논의가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조만간 좀 더 자세하게 하고자 한다. 아무튼 요즘, 참 답답하다. 이명박 당선이 '국민이 개새끼'라서 그런 걸까? 그 이명박을 막아낼만한 '지성계'라는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토론다운 토론이 절실한 시점이다.

2008-10-30

금리인하 논쟁이 필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 중, 부동산 버블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령 양도세 완화라거나, 종부세 완화, 다주택소유자에 대한 중과세 완화, 투기지역 해제, 분양가 상한제 폐지, 기타등등. 이 모든 것들은 안그래도 포화상태인 현재의 건설경기에 기름을 끼얹는 것인데, 이미 버블이 꺼지는 조짐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상황이라 시장은 결코 반응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단행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다. 최근 2~3일간 도드라진 그러한 견해들은, 내가 보기에는,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역할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는 결과 발생하는 오류처럼 보인다. 이성태 한국은행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은행은 현재 요동하는 환율이 국내 시장보다 외재적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고 판단하고 있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또한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8월 금리를 올렸는데도 환율이 폭등한 사례를 놓고 볼 때, 금리와 환율의 상관관계가 발생하기에는 지금 국제적인 사건이 너무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단기간의 외환/통화정책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앙은행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행과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 OK? OK! 사인을 주고 받은 후 기준금리를 내리고 온갖 감세안과 규제완화책을 내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물론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의에 동참하도록 강만수가 이성태를 설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정부가 '어떤 경기를 되살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 침체 국면에서, 최대한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나서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명박과 강만수는 파던 삽질 마저 파는 것 말고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이것마저 한국은행이 책임져야 할 일처럼 논의가 흘러가는 것이 나는 매우 의아하다.

우석훈 박사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시중금리와 기준금리가 따로 노는 것을 지적하며 기준금리 인하 정책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나는,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환율은 외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하고 있으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고, 따라서 '주권'인 환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여담이지만 '환율주권론'은 원래 강만수의 트레이드 마크 아니었나. 우석훈 박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다니, 그 분의 책을 거의 다 읽은 나도 뭘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

중앙은행이 장래의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정부는 그에 맞춰 낙후된 산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 국내 경제만 놓고 보자면 이것이 정답이다. 문제는 한 쪽에서는 제대로 정답을 말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과 손발이 안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리인하는 건설경기 부양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둘을 전혀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말하자면 금리인하는 □□경기 부양책이다. 저 안을 무엇으로 채워넣을지는 정부의 몫이지, 중앙은행의 결정사항이 아니다. 여기까지 내가 말한 바에 동의할 수 있다면, 금리인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의아함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국가의 운영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그리고 그 외 독립기관들은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올바른 국가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권력의 남용을 막는다.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는 '내년에 경기침체를 덜 겪는 나라'다. 그런데 이명박과 강만수가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는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나라'다. 이 두 가지를 싸잡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뇌사상태에 빠진 한국 지성계에 '기준금리 논쟁'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환율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한국은행과 정부의 대책 전부에 대해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점인데, 여기서 두 가지 경제 주체를 나눠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하면 '실컷 이명박 욕만 하다가 어영부영 위기가 해소되었는데, 정작 제 역할을 한 중앙은행은 조용히 묻히고 강만수만 연임하고 이명박은 으스대는 상황'을 연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현재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경제 문제마저 '이명박 대 반 이명박'으로 단순하게 나누어지는 담론적 구성을 타개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도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방침에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