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9

Think Again: 미네르바 현상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네티즌이 1월 8일 긴급체포되었다. 그의 정체를 놓고 대한민국 1% 상류층, 은퇴한 50대 증권사 애널리스트, 심지어는 'C급 경제학자' 우석훈까지 거론되었지만, 검찰은 그가 갓 서른살이 되었으며 직업을 가지지 못한 청년이라고 발표했다. 그를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 스승'이라고 추켜세우던 경제학 교수가 있는가 하면, 자신은 진작부터 미네르바의 빈약한 지식을 간파했다고 우쭐거리는 네티즌도 있다. '다중지성'의 부작용을 중화시킬 수 있는 지성계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미네르바의 발생과 긴급체포에서 공안정국의 기운을 감지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저지하는 것이다.



* 미네르바의 체포는 불법이다

아니다. 적어도 '허위사실유포'에 대해서만큼은 합법적이다.
미네르바는 자신이 정부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알고 있다고 적시했고, 그것을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려 놓았다. 허위 내용을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로 긴급체포했다는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말을 통해 유추해볼 때, 검찰은 형법 제314조(업무방해)의 2를 적용하여 그를 기소할 예정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조문에 따르면 "[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과 같다"고 규정되어 있다.

미 네르바가 12월 29일에 게시판에 올린 "(정부가) 주요 7대 금융 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게 오늘 오후 2시30분 이후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라는 취지의 글은, 안타깝게도 위 법에서 규정한 '허위의 정보를 입력'하는 요건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긴급체포는 지나치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명백히 범법을 저질렀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추가: 검찰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을 적용하여 미네르바를 기소했다하 겠다고 발표했다. 그 법에 따르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公然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업무방해를 적용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틀렸다. 하지만 전기통신기본법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이후의 논지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지적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뜻을 표한다.


*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유포죄라면 이명박도 체포해야 한다.

불가능하다. 이명박은 희망사항을 말했을 뿐이다.
미네르바를 체포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있던 검찰이 그를 잡아넣지 못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경제에 대한 예측이나 희망사항의 표현 등은 허위사실유포죄에서 말하는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 미네르바는 경제를 예측했기 때문에 체포된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요 금융 기관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기 때문에 체포된 것이다.

'주가 3000 간다'는 희망사항의 표현은 허위사실유포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 식이었다면 '주가가 반의 반토막 난다'고 말한 그 순간 미네르바를 체포했어야 한다. 실제로 그의 신병을 파악하고 체포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허위사실을 유포하지 않았다면 검찰은 미네르바를 체포할 수도 없었다.

국가의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이명박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경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3000 간다고 했다가 못 갔다고 해서 그것을 '허위사실'의 유포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그는 허황된 욕심을 국민들에게 불어넣기 위해 되는대로 숫자를 불렀을 뿐이다. 예측이나 정책 목표 설정 등은 그 죄의 구성요건에 포함되지 않는다.



* 미네르바의 체포는 형평성에 위배된다.

맞다. 하지만 '공평한 긴급체포'는 더 나쁘다.
미네르바의 체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긴급체포'라는 점에 있다. 12월 29일에서 1월 8일까지 고작 열흘이 흘렀다. 그의 신병을 확보하고 수사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급체포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된 수사권의 남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형법 제314조의 2는 컴퓨터 해킹을 통한 전산망 침공 등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조문이다. 만약 미네르바가 해킹을 통해 국가의 기반 시설을 망가뜨리고 있었다면 긴급체포는 합당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고작 다음 아고라에 글을 써서 올리고 있을 뿐이다.

일단 용의자를 잡아넣은 다음 수사하면서 여죄를 밝히는 수사 관행이 이 지점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체포가 불법은 아니지만, '긴급체포'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들쑤시고 밤샘수사를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 검찰이 이 긴급체포를 통해 노리는 효과도 바로 그것이다. 네티즌들은 자신 또한 불현듯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된다.

사실 그정도 허위사실유포를 놓고 긴급체포에 강제수사를 하는 것은 과도한 수사이며, 다른 허위사실유포자들과 비교해볼 때에도 형평성에 어긋날 소지가 크다. 하지만 노동부는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해서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이겠다'고 방침을 세운 상태다. 미네르바에 대한 긴급체포에서 '형평성'을 요구하면, 검찰은 그 형평성을 위해 다른 네티즌들도 줄줄이 긴급체포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미 네르바가 체포된 이유인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미네르바와 같이 온갖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던 인터넷 논객들, 가령 SDE 같은 사람은 체포되지 않았으며 체포되지 않을 것이다. 있지도 않은 공문을 꾸며낼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네티즌들도 마찬가지다. 공공연히 드러날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긴급체포될 일도 없다.



* 미네르바를 위해 촛불이 타오를 것이다.

어쩌면. 하지만 그리 뜨겁지는 않을 것이다.
12월 31일 종각 시위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한겨울의 시위는 매우 춥고 힘들다. 촛불을 들고 서 있어도 얼어붙은 손가락이 저려오는 추위를 이겨내고, 시민들이 미네르바를 위해 나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애초 에 미네르바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를 고려해보면 이 비관적인 예측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네티즌들은 미네르바가 주가와 환율을 예측했기 때문에 추앙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의 예측은 '돈'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 예언을 믿었더라면 지금처럼 큰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 경제적 이기심이 네티즌들의 숭배 뒤에 숨겨진 원동력이었다.

미네르바가 '대한민국 1%'가 아닌 '30대 무직'이라고 선언되어버린 지금, 그 네티즌들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말보다 미네르바의 예측을 믿어야 할 이유 또한 사라져버렸다. 현재 인터넷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미네르바와 미네르바 현상의 의의를 폄하하고 새삼스레 침을 뱉는 모습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패배자'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열한 모습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시민사회가 미네르바를 위해 싸우기 위한, 제대로 된 명분을 찾아내는 일 또한 쉽지만은 않다. 미네르바의 긴급체포가 과도한 수사권의 남용이라는 것 말고는 논점이 없기 때문이다. 미네르바가 '반 이명박'의 아이콘이긴 하다. 그러나 검찰은 충분한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고, 그것은 '무직'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중이다.

12월 31일의 시위에도 사람들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이 겨울에 '30대 무직 남성'을 위해 촛불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천여 명 정도가 모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흔히 말했던 것처럼 '미네르바를 체포하면 민란이 발생하는' 일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그래서 어떤 주식을 사야 할지' 궁금해서 미네르바의 글을 읽고 그를 숭배하던 네티즌들 중 상당수는 이미 미네르바를 버렸거나 버리고 있다. 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미네르바를 위해 싸워줄 사람들은, '형사소송법 개정'이나 '수사관행 개선' 같은 인기 없는 주제를 붙들고 묵묵히 늘어졌던 시민단체와 '운동권', 혹은 골수 촛불시민들 뿐이다.



* 미네르바는 이명박 정부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명박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미네르바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인 사례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공식선상에서 일개 네티즌의 이름을 거론했고, 그가 부정적이며 부정확한 예언을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다. 미네르바를 여러 네티즌 중 하나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미네르바는 이명박 정부의 과민반응에 의해 이명박 정부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미네르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내용들은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고 엄청나지도 않았다. 몇 개의 패가 잘 맞아들어갔고, 그 앞에는 강만수 경제팀의 실책이 언제나 놓여 있었기 때문에 후광효과가 두드러져 보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미네르바에게 쏟아진 찬사들은 대체로 이명박에 대한, 혹은 제도권 경제학과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가 미네르바를 자신이 "아는 한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스승"이라고 칭송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으로 재직하던 4년 동안, 뛰어난 엘리트들도 경제 지표를 예측하지 못하는 현상을 목격해왔고, 미네르바의 예측력에 감탄했다.

다음 아고라의 네티즌들이 미네르바를 찬양하게 된 맥락도 마찬가지다. 가령 미래에셋의 박현주 사장이 턱없이 낙관적인 경제 전망만을 내놓고 있을 때, 그는 정 반대방향의 예측을 내놓았고 적중시켰다. 지금도 네티즌들 중 미네르바를 두둔하는 사람들은 그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비교한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상징하고 있던 '반 주류 경제학', '반 애널리스트', '반 이명박'은 하나의 구심점을 형성하기 어려운 주제들이었다. 그러한 정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폭발력을 갖기 어려웠다. 미네르바에게 강의석같은 이슈메이커 자질이 있었더라면 그가 반 이명박의 상징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 미네르바의 예언은 소 뒷걸음으로 쥐 잡기에 불과하다.

그럴지도. 하지만 댁보단 낫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박 모씨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미네르바의 예언은 '30대 무직 남성'이 독학으로 배운 경제학에 기반하여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미네르바의 일부 예측들의 정확도를 폄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측의 목표는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김태동 교수의 발언이 말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다가올 경제 위기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능력만으로는 이론적인 경제학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폴 크루그먼이 현재의 경제학을 빅토리아 시대의 의학과 비교했던 것처럼, 경제학은 대단히 실용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그가 적중시킨 몇몇 예측의 가치는 그리 쉽사리 폄하될 수 없다.

미네르바같은 아마추어 경제학도가 아니라, 누리엘 루비니같은 경제학자가 국내 경기에 대한 예측을 내놓고 그것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장이 필요했다(내가 알기로 국내 언론 중 누리엘 루비니의 예언을 10월 이전에 진지하게 다룬 매체는 《Foreign Policy》 한국어판 뿐이다). 그것을 지성계라고 칭한다면, 국내의 지성계는 실종된 상황이다.

국내 에는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자유롭게 교환하고 서로 비판하는 지성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현황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연구 또한 대단히 미비한 수준이었다. 미네르바 현상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경제학의, 저널리즘의, 학계 전체의 빈곤을 깨달아야 한다. 뒷걸음질로 여러 마리의 쥐를 잡은 미네르바라는 소는, 그런 의미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하나의 증상이다.

이른바 '집단지성'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이번에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 옳으냐 애널리스트가 옳으냐 하는 이분법적 논쟁을 지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국내의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 자체가 드물었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그들의 연구 성과를 대중적 여론으로 이끌어내어줄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즘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과도한 열정과 어리석음을 식혀줄 '지성계'가 탄생하지 않는 한, 미네르바 현상은 다른 형태로 계속 반복되어 나타날 것이다.



* 미네르바의 체포는 네티즌 공안정국의 시작이다.

뒷감당이 더 중요하다.
미네르바의 체포가 아니라, 현재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법 개정이 더 중요한 문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행법상에서는 미네르바처럼 명백히 드러나버릴 거짓말을 하거나, 특정 연예인에 대한 악플을 주구장창 달아서 고소를 당하지 않는 한, 인터넷에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긴급체포되거나 할 일은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추진하는 미디어법 개정안 중 '사이버모독죄'가 신설되고 친고죄 조항이 빠진다거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모든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통화자 위치정보등이 1년 이상 보존되며, 통신사업자들은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인터넷 이용자들의 접속 기록도 보관된다. 이것은 말 그대로 수사를 위한 법이다.

미네르바의 체포를 통해 정부와 한나라당은 위 두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논점이 되어야 한다. '제2의 미네르바'를 막기 위해 사이버모욕죄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드높일 그들에게 맞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미네르바의 체포가 아니라 그 뒤에 불어닥칠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



- 이 글은 《Foreign Policy》의 코너 "Think Again"의 포멧을 빌어 작성되었습니다.

2009-01-08

아마추어 법이론가

누가 어디서 어떤 사이비(似而非) 합의를 보았건 간에 결단코 침해할 수 없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기본적 인권이며 사적 소유권이다. 이것에 대한 침해는 어떤 합의든 원천무효다. 바로 여기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법치주의의 접점이 있는 것이다.
정규재, "법은 사회적 합의라는 오해" (한국경제, 2008년 12월 29일)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에 따르면,
제119조

1.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에는 당연히 사적 소유권에 대한 제한이 들어간다.


또는, 토지수용법 제1조를 보자.
제1조 목적
이 법은 공익사업에 필요한 토지의 수용과 사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공공복리의 증진과 사유재산권과의 조절을 도모함으로써 국토의 합리적인 이용, 개발과 산업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개정 71·1·19]


법에 대한 사이비(似而非) 논의들이 참 많다.

2009-01-04

번역 한 권, 저술 두 권, 그리고 석사논문

작년부터 큼지막한 일거리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총 네 개. 그 중 하나는 이미 거의 다 끝냈고, 세 개가 남았다. 번역할 책이 한 권, 써야할 책이 두 권 있다.

처음 번역한 책은 《아웃라이어》인데, 곧 인쇄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말 잘 썼다. 저자가 워낙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터라, 여러 가지 일과 겹쳐서 진행하는 가운데 힘들긴 했어도 지루하거나 고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두 번째 번역은 훨씬 어려운 책이다. 내용 파악이 힘든 것은 아니지만, 복문이 많고 어려운 단어가 줄곧 사용되고 있다. 제목을 공개하기엔 다소 이르다.

번역을 하고 있다 보면 자기 책을 쓰고 싶어진다. 번역자는 한국어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기왕 책임을 질 거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의 정확성이나 매끄러움이 아니라 내용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20대와 문화에 대한 책 한 권이 계약되어 있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단행본 작업을 논의중이다. 전자의 경우 가제까지 붙여놓은 상태지만, 역시 공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철 들면서부터 나는 산문가, 영어로 말하자면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은 내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단정지어버린 다음이었다. 몇 편의 시를 써 보았지만, 다들 좋다는 기형도를 읽으며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로부터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도 종종 해방 이후의 시들을 읽곤 한다. 이 평가의 정확한 의미를 나도 설명해줄 수 없지만, 십중팔구 한국어로 쓰여진 시들은 '너무 작다'.

글을 읽고 쓰는 것과 관련하여 올해 해야 할 일은 크게 네 가지 정도이다. 한 권의 번역과 두 권의 저술, 그리고 석사논문. 그리고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내년 1학기와 2학기에도 휴학 없이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짧은 분량의 원고 청탁이 정기적으로 있고, 비정기적으로도 들어온다. 오늘도 주말이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다.

일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지 말자, 8할만 하자'는 생활 신조로 살아왔고, 그래서 시험 전날에도 밤을 새는 일 따위 전혀 없었지만, 올해는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달아올랐을 때 두들겨서 꼴을 잡아놓아야 한다. 책꽂이에는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아무 일 없이 그저 책을 읽는 행복'은 불완전한 이상에 불과하다. 그렇게 살고 있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써먹을 수 없는 지식을 잔뜩 축적해나가는 것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파악해내기 위해서는 구성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매주 쓰는 칼럼은 폴 크루그먼의 정신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몇 편 쓰지도 않고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지만, 그것은 그들이 팔을 휘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를 건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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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08-04-06

다리안 리더(글) ; 주디 그로브스(그림)

라캉

김영사

2002

39

2008-04-11

로버트 달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7

40

2008-04-11

강유원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

41

2008-04-16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42

2008-04-17

마르틴 하이데거

기술과 전향

서광사

1993

43

2008-04-18

이언 매큐언

첫사랑, 마지막 의식

media2.0

2008

44

2008-04-20

로제 그르니에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현대문학

2002

45

2008-04-21

M. 하이데거

세계상의 시대

서광사

1995

46

2008-04-22

Z. 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삼인

2000

47

2008-04-25

강영안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궁리

2002

48

2008-04-26

마이크 데이비스

조류독감

돌베게

2008

49

2008-05-06

스티븐 존슨

바이러스 도시

김영사

2008

50

2008-05-16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문예출판사

1997

51

2008-05-21

Jim Benton

The Fran With Four Brains

Aladdin

2006

52

2008-05-25

스티븐 부디안스키

고양이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

2005

53

2008-06-02

Allan Moore, David Gibbons

WATCHMEN (1)

시공사

2008

54

2008-06-02

Allan Moore, David Gibbons

WATCHMEN (2)

시공사

2008

55

2008-06-05

팀 하포드

경제학 콘서트

웅진

2006

56

2008-06-08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새물결

2007

57

2008-06-11

강양구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프레시안북

2007

58

2008-06-12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민음사

2004

59

2008-06-19

김석

에크리 -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60

2008-06-20

미시마 유키오, 기무라 오사무 외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새물결

2006

61

2008-06-23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어린 시절

새물결

2007

62

2008-06-27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웅진 지식하우스

2007

63

2008-07-03

숀 호머

라캉 읽기

은행나무

2006

64

2008-07-05

F. 폴 윌슨

다이디타운

북스피어

2008

65

2008-07-08

조너선 캐럴

웃음의 나라

북스피어

2007

66

2008-07-10

김철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

문학과지성사

2008

67

2008-07-20

존 르카레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열린책들

2005

68

2008-07-23

이충걸

갖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

위즈덤하우스

2008

69

2008-07-27

윌리엄 레이몽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

랜덤하우스

2008

70

2008-07-28

알렌카 주판치치

실재의 윤리

도서출판 b

2004

71

2008-07-29

권윤주

고양이에게

바다출판사

2005

72

2008-07-31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04

73

2008-07-31

조지 프렛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

세미콜론

2008

74

2008-07-31

로베르 드 라로슈

나보다 더 고양이

북하우스

2005

75

2008-08-06

피터 게더스

파리에 간 고양이

media2.0

2003

76

2008-08-09

피터 게더스

프로방스에 간 낭만 고양이

media2.0

2004

77

2008-08-12

피터 게더스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media2.0

2005

78

2008-08-12

발터 뫼르스

에코와 소름마법사 (1)

들녘

2008

79

2008-08-13

발터 뫼르스

에코와 소름마법사 (2)

들녘

2008

80

2008-08-13

김진경

고양이 학교 (1)

문학동네

2001

81

2008-08-13

김진경

고양이 학교 (2)

문학동네

2001

82

2008-08-13

김진경

고양이 학교 (3)

문학동네

2001

83

2008-08-13

김진경

고양이 학교 (4)

문학동네

2001

84

2008-08-13

김진경

고양이 학교 (5)

문학동네

2002

85

2008-08-16

스타니스와프 렘

사이버리아드

오멜라스

2008

86

2008-08-22

다치바나 다카시

청춘표류

예문

2005

87

2008-08-28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시공사

2004

88

2008-09-05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비즈앤비즈

2008

89

2008-09-07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새물결

2008

90

2008-09-10

헨리 페트로스키

서가에 꽂힌 책

지호

2001

91

2008-09-11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I·II

이제이북스

2007

92

2008-09-13

에드 맥베인

10 플러스 1

해문출판사

2004

93

2008-09-14

전우용

서울은 깊다

돌베게

2008

94

2008-09-18

Malcolm Gladwell

Outliers

Little, Brown, and Company

2008

95

2008-09-23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세속의 철학자들

이마고

2005

96

2008-09-25

강영안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효형출판

2008

97

2008-09-28

김진석

기우뚱한 균형

개마고원

2008

98

2008-10-02

이사야 벌린

고슴도치와 여우

애플북스

2007

99

2008-10-10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2002

100

2008-10-14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개마고원

2008

101

2008-10-26

성 아구스띤

고백록

바오로딸

1999

102

2008-11-06

스튜어트 후드

사드

김영사

2005

103

2008-11-10

레이몽 라디게

육체의 악마

문파랑

2007

104

2008-11-12

장 콕토

앙팡 테리블

2007

105

2008-11-19

박성래

부할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

김영사

2005

106

2008-11-28

조나단 B. 와이트

애덤 스미스 구하기

생각의나무

2003

107

2008-12-19

크리스토프 볼프

요한 세바스찬 바흐 1

한양대학교출판부

2008

108

2008-12-20

크리스토프 볼프

요한 세바스찬 바흐 2

한양대학교출판부

2008

109

2008-12-23

플라톤

소피스테스

한길사

2000

110

2008-12-25

J. R. R. 톨킨

북극에서 온 편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6

111

2008-12-27

김석수

칸트와 현대 사회 철학

울력

2005


올해도 어김없이 독서 목록을 올리며 한 해를 마감하고자 한다. 이런 목록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다. 첫째, 일종의 자기 관리 차원. 둘째, 정보 공유. 셋째, 말 그대로 '회고'. 이 책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당시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등이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이 목록은 1월 13일부터 작성되었다. 그 이전의 독서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또한 여기서 '책'은 내용의 질이나 대상 연령층 등과는 무관하게, 그냥 단행본의 형태를 띄고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김진경의 '고양이 학교'나 독일 동화인 '에코와 소름고양이'가 끼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수업시간에 배웠더라도 내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경우는 독서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선정 기준은 자의적이고, 그리 체계적이지 않다.

이런 저런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이 몇 개의 포스트를 올렸고 블로그에 리플이 얼마나 달렸고, 원고지로 따지면 전체 올라온 글의 분량이 얼만큼이고 등등을 결산하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 경우는, 일단 blogger.com이 그런 기능을 제공하지 않거니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보다는 원고를 쓰고 책을 읽는 것을 더 중시하고 있는 터라, 독서 목록을 통해 한 해를 결산한다.

아래 포스트에서도 한 말이지만, 모두 행복한 새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