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9

문화와 자본주의

최근 20년간, 동아시아 지역에 걸처 가장 기쁜 성과 가운데 하나는 이곳에 고유한 ‘문화권’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중국, 한국, 타이완의 놀라운 경제 발전을 들 수 있으리라. 각국의 경제 시스템이 보다 강하게 확립되어 문화의 등가교환도 가능해졌고, 많은 문화적 성과(즉, 지적재산)이 국경을 넘어 오가게 됐다. 공통의 규칙이 정해져, 일찍이 이 지역에서 맹위를 떨친 해적판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고 (또는 그 수가 대폭 줄었고), 어드밴스(선급금)와 인세의 대부분은 정당하게 지불되게 됐다.

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 블로그의 한국어 번역본을 참조하였음.
센카쿠 열도 분쟁은 바로 이 ‘동아시아 문화권’을 해치고 있다고 하루키는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의 밥줄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겠지만,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이 내용을 살펴보자.

여기서 하루키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경제권’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상승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경우, ‘경제적 세계화’는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한 작가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기에는 겸연쩍지만, 사라지게 될 때에는 그것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만한 무언가가 된다.

즉 ‘시장’과 ‘작가-지식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준다는 것.

2012-09-24

고종석 생각

공적인 자리에서건 사적인 대화에서건, 누군가 내게 존경하는 문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는 다소 어물거리며 이렇게 답하곤 했다. 존경한다는 표현까지는 과도할 수 있지만, 고종석의 문체와 어조를 따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렇게 과거의 일을 기술함으로써 나는 현재에 대한 대답을 피해왔다. 사실 지금도 그런 종류의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젊은 시절의 나는, 속된 말로 고종석 ‘빠돌이’였다. 20대 초, 한창 게시판 글쓰기를 하던 무렵에는 그의 책을 놓고 고스란히 베끼는 공부를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가난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의 동북부에 위치한 대학교까지 오가는 교통비와, 매달 빠져나가는 학자금 대출금 따위를 내고 나면 호주머니에 남는 돈이 없었다. 1000원짜리 길거리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면서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읽었고, 문학과지성사의 문고판으로 나와 개중 저렴했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은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만약 안티조선 운동이 없었다면 나는 고종석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종석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발언하는, 이른바 ‘논객’ 노릇을 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는 ‘반독재파쇼한나라당수구꼴통’을 새된 목소리로 몰아붙이는 대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염치와 도리를 알고 지키는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조선일보에 기고하지 않는 것이 올바르다고 말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쪽에 가까웠다. 물론 그는 호남인이고 그것은 그의 정체성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지만, 말하자면 강준만처럼, 자신의 ‘호남적 정체성’을 공적인 글쓰기의 원동력으로 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노무현은 그를 향한 지지자들의 기대를 하나씩 하나씩 꺾어나갔다.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었던 그는 엘리트 사회 내에서 비주류였고, 본인을 정치인으로 발탁해준 김영삼에게 반기를 들고 뛰쳐나온 후 김대중에게 영입되면서, 야당 내에서도 비주류가 되었다.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고 민주당의 세를 꺾어버린 것,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하고 또 비참하게 거절당한 것 등은 모두 그 비주류 컴플렉스의 발로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더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었다. 동시에, 민주당을 누빔점으로 삼아 세상을 향해 발언하던 두 명의 안티조선 논객이 중심을 잃었다. 『김대중 죽이기』가 대표작인 강준만이 그 혼미에 빠져든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아하고 맵시있는 문장을 선보이며, 안티조선 필자들 중 이른바 ‘문화면’ 역할을 도맡았던 고종석 또한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어떤 시점부터, 고종석은 ‘논객’으로서 힘을 잃었다.

‘소통’을 제 화두로 삼고 논객으로서의 생명을 이어가려고 시도한 강준만과 달리, 고종석에게는 그런 종류의 의지가 없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친구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본 여자들, 오래 전에 죽었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고 만날 수도 없는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더 들여다보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흥미로운 젊은이들을 지면에 소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돌아오는 마감을 쉽게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고, 이미 내면의 불꽃을 잃어버린 본인의 발언권을 활용하여 후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석훈이 역설한 ‘20대 칼럼니스트’의 필요성에 귀를 기울인 몇몇 신문사들에 의해, 마치 나이트클럽처럼 연령 제한을 두는 순회 칼럼 지면들이 생겨나기도 훨씬 전의 일이다. 나 또한 그 덕을 보았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나는 “노정태라는 사내“가 되었다.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종석은 절필을 선언했다. 사람들은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는 그의 말을 즐겨 인용하고 있다. 왜 이렇게 순진하냐고, 알 것 다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시냐고, 끝내 한마디씩 하는 모양이다. 어떤 ‘운동’이 ‘조직’이 되고 불가능해보였던 싸움이 승리로 끝난 게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돌’이 자신의 팬클럽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박혀있던 돌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다. 백낙청을 운운하며 글쓰기의 무력함을 이야기하는 고종석의 허무를 왜 이해 못하는지, 혹은 외면하는지, 나로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문인이 절필을 하면 그것은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절필 이전의 자신과 얼마나 완벽하게 단절하느냐, 혹은 얼마나 주도적으로 그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정치적 중심을 잃었고, 자신이 알거나 아끼거나 궁금해하는 타인들의 이야기를 거의 다 풀어놓은 그다. 이제 한 사람의 산문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는 고종석의 독자로 남아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 뿐이다.

2012-09-19

[2030 콘서트] 2012년, 논객 없는 대선

필자가 2010년 가을 무렵 입대를 선택한 것은 2012년 여름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해 연말이 대선이니 이른바 ‘논객’들의 활약이 도드라질 것이고, 따라서 긴 공백을 뚫고 입지를 확보하는 일도 좀 더 쉬워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한 장의 전역증을 주민등록증 뒤에 살포시 감춰놓고 다니게 된 지금, 그 계산은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2월19일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논객’이 활약할 만한 입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조건들이란 무엇인가?

첫째, 피아 대립 구도가 명확해야 한다. ‘우리편’과 ‘너희편’을 확실히 나눠서, 내 글이 먹혀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 ‘우리편’에 모종의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나 스스로가 그에 동의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 있게 논객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독자들도 비로소 설득된다.

셋째, 그 논객들의 활약을 실어줄 수 있는 언론들 역시 스스로의 입장을 확실히 해둔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특정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인혁당 사건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문명인의 태도가 아니다. 그는 후기 박정희 정부의 직접적인 관계자 중 한 사람으로, 유신정권의 공과 과를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 비단 ‘판결이 두 개’인 인혁당 사건만이 아니라, 유신정권이 만들어낸 그늘의 깊이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후보는 어떤가? 최근 항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문재인의 캠프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문재인은 참여정부의 공과 ‘과’를 모두 끌어안은 셈이다. 물론 그것은 ‘대한민국 남자’다운 태도일 수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자세일지는 매우 의문이다.

한편 1997년 대선 후로 얼마 전까지는 전통적인 여야 구도에서 벗어나더라도 좀 더 진보적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국민승리21부터 가시화된 진보정당 운동이 대안 노릇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정직하게 말하자면 인터넷에서 ‘찌질’거리고 있었을 뿐이지만, 어쨌건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에 부끄럽지 않게 현실정치에 대한 담론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김규항의 말마따나, 예전에는 ‘신념대로 찍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나의 신념을 비춰볼 수 있는 현실 속의 거울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 분열과 파산이 ‘통합’의 기치하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잔여 세력과 국민참여당 계열의 정치인, 진보신당의 간판급 얼굴들이 모여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는데, 이른바 ‘주사파’의 활약에 힘입어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등은 다시 한 번 탈당 보따리를 쌌다. 급격하게 힘을 잃은 진보신당은 사회당과 살림을 합쳤지만 그로 인해 어떤 상승 효과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총선 당시 관악을 공천에서 부정선거를 한 이정희는 국민들 앞에 죄송한 마음을 담아 눈물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춘다. 진보정치는, 적어도 제도권 속에서는, 죽었다.

당시 이정희의 부정선거를 기묘한 논리로 옹호하던 진중권은 현재 안철수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이 칼럼을 쓰는 9월19일 새벽 1시45분 현재, 안철수는 유력한 대선 후보이지만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지도 않은 대선 후보다. 말하자면 ‘슈뢰딩거의 안철수’인 셈인데, 필자는 그런 양자역학적 후보를 지지할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이 못된다. 게다가 19일 오후 3시, 그가 대선 출마와 관련하여 중대발표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신문사의 마감 시한으로 인해 그 내용을 이 칼럼에 반영할 수도 없다.

지지 세력뿐 아니라 심지어 운도 없으니, 필자에게 ‘논객’의 시대는 정말 끝났나보다.


입력 : 2012.09.19 21:27:47 수정 : 2012.09.19 23:10: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92127475&code=990100&s_code=ao051#csidx500b31ec2f053909a49051e82ceac15

2012-09-16

매개념 문제

인터뷰를 마치며 박 교수는 걱정스런 얼굴로 “제 얘기가 그렇게 근본주의로 들리나요?”라고 물었습니다. (1) 진보신당 사람들은 늘 올바른 이야기를 하지만, 가끔은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2)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당인데도 제가 선뜻 표를 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저의 그런 우려에 박 교수는 “지식인의 삶의 유일한 기준은 죽음에 임박해 자기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30년대 말의 조선 지식인들을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근본주의적이든 아니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소수자로 태어나 평생 약자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과 냉철한 이성을 벼려온 박노자의 존재는 ‘지엔피 인종주의’에 빠져 외국인과 소수자 차별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점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그의 아들 율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더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 인터뷰였습니다.

집안일 많이 하며 죄악을 씻고 있어요”(한겨레, 2012년 9월 15일)
김두식이 박노자를 만나 인터뷰를 한 후, 마지막 정리 발언으로 한 말. 여기서 ①과 ②의 논리적 관계를 추적해보자.

(1)은 일종의 대전제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진보신당 사람들이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로 보인다고 김두식은 말하고 있지만, 어차피 본인의 주관적 판단을 정정할만한 다른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므로, (적어도 화자에게는) 진보신당의 지식인들이란 까대기에만 능숙한 청맹과니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2)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당이지만, 진보신당에 선뜻 표를 주지 못한다.

이 사이에 빠진 소전제가 하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금새 알 수 있다. ‘나는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임의로 (1.5)라고 번호를 부여해보자. 그렇다면 이 삼단논법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된다.
(1) 진보신당 사람들은 늘 올바른 이야기를 하지만, 가끔은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1.5) 저는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의 집단에는 표를 주지 않습니다.

(2)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당인데도 제가 선뜻 표를 주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즉, 그래서 저는 진보신당에 표를 주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매개념’, 즉 대전제와 소전제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이 바로 그것인데, 그것이 결론에서는 “좋아하는 사람들”로 슬쩍 바뀌어있다. 하지만 이 삼단논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매개념이 같은 것이어야 한다.

즉 김두식에게는 “현실과 담 쌓고 까대기에만 능숙한 지식인”들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이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 같은 차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색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물론 ‘애정어린 비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지만, 굳이 분석해 보았다.

김두식은 현실과 담 쌓은 지식인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투표하지는 않는다는, 즉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서 오늘의 보람을 찾도록 하자.

2012-09-04

고종석의 안철수와 최장집 생각

[고종석 칼럼] 안철수 생각, 한겨레, 2012년 9월 2일.

[최장집칼럼]책임정치를 위하여, 경향신문, 2012년 8월 27일.

누군가 늘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현상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양자 모두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한 문필가가, 현재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학자의 주장을 오해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한 마디 덧붙인다.

“안철수 생각”이라는 제목 하의 고종석 칼럼에서 주목해 읽어볼만한 지점은 다음과 같다.
대의제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정치학자들도 안철수를 꺼린다. 이 정치학자 집단을 대표한다 할 최장집은 지난주 ‘책임정치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에서 “필자는 대선 후보 가운데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의제 정당정치에 대한 그의 오랜 신념을 생각하면 조금도 놀랍지 않은 발언이다. 그런데 최장집의 지지 조건을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는 후보는 박근혜일 수밖에 없다. (강조는 인용자)
나는 고종석이 저러한 단언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하다. 최장집의 칼럼을 검토해보자.

최장집은 한국의 대통령제가 ‘책임정치’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은 정당이 아니라 캠프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고, 임기 말년 지지율이 떨어지면 자신의 정당과 거리를 둔다.
임기 전반에 대통령은 “집권당 없는 대통령”이고자 여러 형태로 당의 영향력을 제어했다. 그러나 임기 후반에 이르러 그의 권력이 현저하게 약화될 때의 당정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어 당이 오히려 멀어지고자 한다. 대통령은 대선에 가까워오면서 오히려 당에 부담이 되고, 이제 당이 나서서 “대통령 없는 집권당”이 되기를 원하게 된다. 이러한 청와대-집권당 관계는 대통령을 유능하고 좋게 만드는 데 있어서나, 정당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나 실패하게 된 원천임이 분명하다.
그 결과 ‘이명박 심판론’을 들고 총선에 나선 야권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갈아치우고 ‘나도 이명박을 심판하겠다’고 나선 박근혜와 대립각을 세우기가 매우 곤란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이명박의 실정을 비판하기 위해 같은 당(이지만 다른 계파)인 박근혜를 찍겠다고 나서면, 사실상 유의미한 정치적 선택은 불가피하다.

즉, 최장집의 이 칼럼은 ‘나는 박근혜를 찍겠다’는 내용으로 이해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고종석은 그렇게 읽고 있다. 왜일까? 잘 모르겠다. 최장집 칼럼은 전체적으로 현재 ‘캠프’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선 국면이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현상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쪽은 같은 당의 대통령을 심판하겠다는 대선후보인 박근혜 아닌가.

고종석은 “대선 후보 가운데 정당을 바로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최장집의 말에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박근혜가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면,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편승하지 않고, 그 공과 과를 모두 이어받겠다는 태도를 내밀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어쩌면 아버지의 독재를 사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현재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종석이 안철수를 ‘지지’ 혹은 ‘응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그는 박근혜와 안철수가 낳을 수 있는 1mm의 차이를 위해,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는 정치학자의 원론적인 주장마저도 히스테리컬하게 ‘그것은 박근혜 지지가 아니냐’라고 묻는다. 대체 어쩌다가 한국의 정치 토론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심히 안타깝고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