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계몽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계몽이 과도해서 문제인 시대로 보인다. 다들 똑똑하고 이것저것 잘도 알고 있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Sapere aude!” 칸트는 또한 1784년을 사는 독일 대중에게 외쳤다. 사이버 세계를 호령하는 오늘날 한국의 대중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말이다. 종로 3가 맛집 리스트부터 곽정은 에디터의 성형수술 전 얼굴, 김연아 선수 남자친구 부모님의 재산 현황까지 모든 것을 과감히 알고자 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네티즌 탐정단을 꾸려 특정인의 ‘신상을 털어’ 진실 여부까지 검증하고 나서니 말이다.
유명인의 가십 차원이 아니더라도 사정은 내내 엇비슷하다. 정치의 영역에서, 더 이상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설득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국민의 소득은 양극화되고, 노령화로 인해 경제 인구는 대폭 줄어드는데, 소외된 노인의 자살률은 극단적으로 높다. 아기는 태어나지 않고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더 끔찍한 것은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잘 알아. 근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어?”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있다고 믿는, 계몽 과잉의 시대. 그리하여 계몽이 불가능한 시대. 어쩌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됐을까?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면 좀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계몽이 가능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그때는 왜 그것이 가능했거나, 가능한 것처럼 보였을까? 가령 한국에서는 수많은 대학생이 이른바 ‘사회과학’ 서적이라는 것을 읽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길로 나선 1980년대가 있었다. 또한 영화가 됐건 음악이 됐건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취향을 건설하고자 애썼고, 그랬기에 어찌어찌 구입한 음반이나 비디오테이프를 마르고 닳도록 돌리며 작가의 정수를 흡수하고자 노력하던 1990년대도 있었다. 21세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스스로를 계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80년대건 90년대건,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장님 코끼리 더듬듯 어렵게 수입된 해외 선진 문물을 가까스로, 목마른 사슴이 옹달샘에서 목을 축이듯 향유해야 했다. 불문학자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펼쳐보자. 가장 먼저 나오는 글 ‘과거도 착취당한다’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1970년 대, 당시 외국 책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저자는 회고한다. 외국의 서적상에게 우편으로 주문을 하고, 외환사용허가신청서를 작성해 우편환으로 송금을 하고,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반 년가량 기다리면 한국에 책이 도착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어렵게 한국땅을 밟은 책은, 최종적으로 서대문 국제우체국 창구에 앉아있는 ‘미스 아무개’의 허락이 없는 한 독자의 손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냥 주면 될 것을 미스 아무개는 청년 황현산을 굳이 다음 주에 다시 오라며 돌려보내고, 심지어 내용을 잘 알면서 책은 왜 사냐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해 가로대를 뛰어넘어 창구로 난입해 손에 책을 넣는다. 저자 황현산은 이 일화를 곱씹으며 “유신시대의 젊은이들은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고 회고한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유신시대의 식자층은, 황현산이 분노로 기억하는 바로 그런 검열과 통제 기구 때문에, 또한 당시만 해도 정보통신기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쉽게 지식인일 수 있었다. 1970년대의 황현산이라면 절대 손에 넣을 수 없었을 문서를, 지금 우리들은 ‘마르크시스트 인터넷 아카이브 www.marxists.org’ 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열람하고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오늘날 누가 그렇게 열심히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읽겠냐만은, ‘그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의 탄압과 감시를 받는 동시에 대중의 존경어린 시선까지 받을 수 있던 시절은 애저녁에 끝났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90년대 ‘삐짜’ 테이프로 그렇게 돌려봤던 전설의 명작들을 이제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각자의 모니터를 통해 손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한탄은 오래된 것이기에 이 지면에서 또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계 어디에나 DVD를 배송해주는 아마존이 영화 마니아의 아우라를 벗겼다는 볼멘소리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한때 모든 이의 스승처럼 보였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지금 대중으로부터 어떤 대우 혹은 취급을 받고 있나. 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록의 역사와 혁명 정신을 대중에게 설파했던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현재 <음담패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변기요정’ 캐릭터로 출연한다. 음악에 대한 그의 설명이 길고 지지부진하다 싶으면, 김구라가 이내 변기를 작동시켜 물을 내려버린다.
지식의 독점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두 번째 현상을 야기한다. 같은 세대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1980년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운동권은 이른바 NL과 PD로 분화되어 있었다. NL 중에서도 주사파의 이론적 대부는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이었고, PD는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 바이블이었다.
김영환이 <강철서신>을 완성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 이진경이 이른바 ‘사사방’을 펴낸 것은 대학원에 다니던 24세 때의 일이다. 80년대에는, 20대가 쓴 책을 본 20대가 자발적으로 뭉쳐서 막강한 권력과 맞섰다. 청년 세대의 문제를 따로 끄집어내 논의하고 하소연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청년이 온 세상의 문제를 자신의 어깨 위에 대뜸 짊어졌기 때문이다. 권력과 맞선다는 사명감, 제한된 정보를 독점적으로 입수하고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 거기에 대학 졸업 후의 삶을 근심할 필요가 없었던 고도성장기의 풍요가 맞물려, 청년들은 계몽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일 수 있었다. “전두환의 시대가 혹독했다 하나 사람들을 한데 묶는 의기가 벌써 솟아오르고 있었다.” 황현산의 말이다. 가슴은 의기 혹은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꽉 차 있었고, 머리에는 새로운 지식을 채워넣을 공간이 남아 있었다. 당시 청년 세대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스스로를 계몽했다.
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문화의 열풍이 가라앉고 나니, 서점가에는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눅눅한 바람이 불고 있다. 굳이 ‘눅눅하다’는 수식어를 쓰는 이유는, 이 인문학 바람이 띠는 복고적인, 적어도 현재적이지 않은 분위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문학 담론을 이끌었던 1970년대에는, 같은 세대의 젊은 작가들이 소설을 쓰고 비평을 하며 서로를 견인해 나갔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은 앞서 언급한대로 또래의 ‘젊은’ 지적 기반 위에서 수행되었다. 1990년대 영화비평을 이끈 정성일은 1959년생으로, 영화 잡지 <키노>를 창간할 당시 만으로 36세였다.
반면 오늘날의 청년들은 계몽의 객체에 머문다. 그러면서 멘토를 구하고 스승을 찾으며,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의 존재를 희구한다. 앞서 언급한 황현산이나, 최근 두 권의 칼럼집을 낸 문학평론가 도정일 같은 원로들이 새삼 각광을 받는 이유를 그렇게 해석해볼 수 있다. 그들의 책은 모두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원고를 묶은 것이다. 바로 지난달의 정치적 이슈를 두고 책을 쓰고 논쟁하던 논객의 시대가 끝나니, 원로 인문학자들이 오래 묵은 원고의 먼지를 털어 책으로 엮고 있다.
청년들이 서로를 계몽해가며 정권을 뒤엎겠노라, 영화판을 발칵 뒤집겠노라 날뛰던 시절은 끝났다. 계몽과 운동의 시대는 실은 하나였다. 순차적으로 같이 시작해서, 동시에 따로 끝났다. 이런 세상에서 계몽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냐고, 강연을 나가면 종종 질문 섞인 눈빛과 마주친다.
칸트가 살던 시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위대한 철학자에게 계몽이란 대체 무엇인지, 대중은 스스로 미성년 상태에 머물기를 원하는데도 과연 계몽이 가능한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당시에는 대통령을 선거로 뽑지도 않았고, 귀족과 평민의 계급이 엄연히 법적으로 나뉜 시대였다. 계몽주의를 공부하던 귀족에게 찾아가 ‘재미삼아’ 평등한 대우를 요구한 뒤, 곧장 뺨을 맞은 것은 루소였던가, 볼테르였던가. 그리고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을 쓴 지 5년이 지난 1789년에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났다.
어쩌면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이치와 같을까? 칸트는 “우리는 지금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계몽의 시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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