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4

[신동아] 文 탈원전 밀어붙일 때, 바이든 "원자력 규제→투자"

 

文 탈원전 밀어붙일 때, 바이든 "원자력 규제→투자"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14. 10:01
[노정태의 뷰파인더⑬] 이상주의자도 국정운영 나서면 국익 따져

●바이든, 1980~1990년대 원자력 규제 주창
●지난 대선에서 ‘차세대 원자력 개발’ 공약
●기후변화·셰일 혁명으로 美 민주당 정책 변화
●‘反원자력’ 존 케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논란보다 중요한 것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1월 9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게시판.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의혹에 관해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뉴스1]
1994년 미국 델라웨어 강 하류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긴급 정지했다. 관리 실수로 인한 비상 정지였다. 발전소가 자리 잡은 곳은 행정구역상 뉴저지 주. 하지만 델라웨어 주가 바로 인접해 있었다. 

델라웨어 주의 젊은 상원의원이 즉각 반발했다. 그는 언론 앞에서 외쳤다. "저는 10년 넘게 살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리, 감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원자력 관리 위원회가 되풀이되는 심각한 안전 문제를 눈감아주고 있다며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 확고한 반대 의견을 지닌 그 상원의원의 이름은 조셉 바이든 주니어였다. 

조셉 바이든, 그러니까 '조' 바이든은 사반세기가 흐른 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세월 동안 바이든의 큰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바이든은 자신보다 훨씬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흑인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역임했다. 본인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샜다.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생각도 180도 바뀌었다. 

한때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리, 감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그가 지금은 차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도 기재돼 있는 사실이다. 

한국 원전업계는 환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이던 보수 야당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특별한 반응이 없다. 탈원전에 우호적이던 진보 언론들은 바이든의 변화를 모른 척 하려 드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바이든의 원자력 포용 정책은 단지 한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아니다. 50여 년간 지속돼온 미국 민주당의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반대가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뜻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거대한 방향 전환을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계바늘을 수십 년 전으로 돌려보자.

1972년 미국 민주당의 새 정강정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11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 퀸극장에서 차기 외교안보팀 지명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인물이 존 케리 기후특사 지명자. [윌밍턴=AP 뉴시스]
1972년 텍사스 철도 위원회(Texas Railroad Commission)가 중대 발표를 했다. 그 전까지 위원회는 미국의 석유 가격을 규제했다. 가격 통제를 포기하고 원유 가격을 오직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하겠다는 게 발표의 골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석유 수요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텍사스산 원유만으로는 미국 내 석유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가 부흥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석유에 목마른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는 단순히 값싼 외국산 석유를 수입하면 될 일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석유는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다. 안정적 석유 공급 라인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도 텍사스 철도 위원회 같은 조직이 석유의 가격과 공급을 어느 정도 통제했으나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은 중동, 특히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정권 보위에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동 문제에 단단히 얽혀버린 셈이다. 그때만 해도 사암(砂巖) 암반층에서 셰일 가스를 추출할 기술력은 부재했다. 미국은 중동에 코가 꿸 수밖에 없었다. 지구 반바퀴 너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갈등 구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1972년 7월 11일 발표된 민주당의 새 정강정책(party platform)을 보자. 1972년부터 1976년까지의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문서에서, 민주당은 원자력을 새롭고 긍정적인 에너지 유형의 일부로 소개하고 있다. 

"지구의 천연 자원은 일시적으로는 풍족하고 무한히 공급받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일지라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길 수 없다. 미국은 특히 에너지 공급 패턴에 있어서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정책의 재조정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1980년이 되면 미국은 대서양 동쪽에서 수입되는 석유에 전체 석유 소비량 중 30~50%가량을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원자력, 태양광, 지열 발전 같은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의 연구 및 보급은 뒤쳐져 있다." 

중동산 석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문제이므로 원자력을 더 개발하고 활성화하자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다. 1972년까지는 미국 민주당 역시 원자력에 대해 긍정적 태도였던 것이다. 1973년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원자력을 긍정적으로, 혹은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한층 더 커졌다.

지미 카터의 등장

1976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지미 카터가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진다. 그는 도덕주의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며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신임 대통령의 반핵(反核)주의 관점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원자력 연구에 치명타를 입혔다. 당시 한창 연구 중이던 고속증식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업용 원자로는 우라늄-235를 연료로 삼는다. 반면 고속증식로는 자연계에 더 흔하게 존재하는 우라늄-238과 플루토늄을 섞어 연료를 만든다. 우라늄-235의 핵분열로 에너지를 내는 통상적 원자로와 달리, 고속증식로는 플루토늄의 핵분열로 우라늄-238을 플루토늄으로 바꾸고, 그 플루토늄이 핵분열을 하는 연쇄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늘어나기' 때문에 고속‘증식'로라고 불린다. 

카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재료로 쓰일 수 있는데, 그게 더 늘어난다고? 반핵, 반전주의자 카터는 그와 같은 기술 발전의 방향을 용납할 수 없었다. 1979년 발생한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미국 원자력 산업의 관 뚜껑에 못을 박았다. 새로운 기술을 연구·개발하지도 않고, 기존 기술로 만들어진 발전소를 더 늘리지도 않은 채, 그저 이미 건설된 발전소를 유지·보수하는 데만 만족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선회했다. 

앞서 말했듯 1970년대는 오일쇼크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시대였다.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 보급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 동기가 충분했다. 하지만 카터의 개인적 성향, 그의 탄탄한 지지층이던 민주당의 젊은 고학력 베이비부머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자력은 곧 핵무기이고, 핵무기는 나쁜 것이므로, 원자력을 당장 없앨 수는 없어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러한 경향은 1990년대까지도 쭉 이어졌다. 1994년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은 미국 최후의 고속증식로 연구를 중단했다. 이 또한 정책적 판단이기 이전에 정치적 결정이었다. 여러 차례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하면서 민주당 중진으로 자리 잡은 조 바이든, 훗날 미국 국무장관을 지내는 존 케리 등이 원자력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섰다.

기후 변화와 셰일 혁명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은 미국 민주당의 행보를 과연 '반핵'과 '평화'라는 도덕적 가치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에너지, 안보, 지정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앞서 말했듯 1970년대 이전까지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였다. 1970년대 이후에도 중동 정세에 깊숙이 개입하며 안정적인 석유 공급로를 확보한 나라였다. 미국이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는 것은 미국 처지에서 약점이다. 하지만 미국 말고도 세계 모든 나라가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는데, 미국이 중동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미국에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다. 

모든 마을 사람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우물을 마셔야 한다고 해보자. 미국은 원래 자기 집에 있는 우물만 마시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로 부족해 물통을 들고 집 밖에 나와야 한다. 다른 자들과 함께 마을의 우물을 마셔야 한다. 이 상황 자체는 불편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물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 마을 사람들 전체의 목줄을 쥐고 있을 수도 있다. 우물을 없애고 집집마다 수돗물을 놓기 위해 투자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패권국가 미국으로서는 석유 시대를 종식시켜야 할 특별한 동기가 없었다. 반면 고속증식로는 한번 완성하고 상용화하면 해당 기술을 보유한 국가의 에너지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극비리에 개발했던 원자폭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에 유출되고 결국 전 세계로 퍼졌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고속증식로를 비롯한 차세대 원전 기술 역시 미국이 영원히 독점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릴 거야'라는 명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독점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만들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기후 변화가 가시화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압력이 늘어났다. 물론 정치인들은 일단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겉보기에 그럴듯한 '신재생에너지'의 편을 들었지만, 해가 지고 바람이 멈추면 돌아가지 않는 태양광과 풍력은 처음부터 에너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원자력을 늘려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 셰일 혁명이 시작됐다. 모래가 아주 단단하게 굳은 사암층에 갇힌 원유를 채굴하는 방법이 2008년 조지 미첼이라는 텍사스 석유 사업가에 의해 개발됐다. 셰일 가스의 매장량 및 채굴 기술에서 미국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셰일 가스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다. 2010년대 이후, 미국은 석유를 위해 중동의 정치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게 됐다. 오히려 영세 셰일 가스 개발 업체의 부실 경영 및 부채가 국가적 골칫거리다.

"원자력, 갑시다!"

12월 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관련 부서 모습. 이튿날 검찰은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하거나 이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산업부 공무원 2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뉴스1]
이에 따라 미국 민주당의 정강정책 역시 근본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았으나, 그 변화는 2010년대부터 가시화됐다. 1994년 빌 클린턴의 명을 받아 고속증식로 연구에 종지부를 찍었던 존 케리만 해도 그렇다. 그는 2017년 1월 9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방문해 45분에 달하는 연설을 했다. 

"저는 1970년대부터 원자력에 반대해 논쟁해온 사람입니다. 원자력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후 변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4세대 원자력 기술의 잠재력이 있습니다. 갑시다(Go for it).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듭시다." 

멋진 연설이다. 이 연설을 한 존 케리가 누구인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협상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란 핵협상이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봉쇄를 풀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석유 때문에 중동에 매달리지 않는' 21세기 미국의 대전략 중 하나인 것이다. 

트럼프뿐 아니라 바이든 역시 적극적으로 4세대 원자력 발전 연구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미국이 아닌 중국 같은 나라가 먼저 고속증식로 및 4세대 원전 상용화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평준화됐으니, 미국은 기술 유출이 아니라 기술 낙후를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기도 하다.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버리고 4세대 원자력 발전에 집중하겠노라는 미국의 정책 전환은 그러므로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에 직접 군사 개입을 하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줄이고, 원자력으로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며, 중국이나 인도 등 경제적 잠재력을 지닌 인구 대국에 탄소 배출 절감을 요구하며 압력을 넣기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 봐야 한다. 그야말로 '파워'(power) 게임이다. 

월성 1호기의 폐쇄 과정에서 불법적인 압력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에너지 정책을 국가 안보 및 국제 정세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은 전기 안 끊기게 하고 전기 요금 깎아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며 안보의 핵심이다. 초당파적 관점에서 오직 국익만을 바라보며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막강한 원전 경쟁력 활용할 때

빌 클린턴과 존 케리, 조 바이든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드스탁 록 패스티벌에서 춤추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월남전에 반대하던 바로 그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카터의 이상적 도덕주의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할 때가 되자, 미국의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원자력을 더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말이다. 

한국은 왜인지 이제는 철이 들어야 할 사람들이 철들지 않는다. 지금은 3세대 원전의 개발과 건설에서 대한민국이 지닌 막강한 경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할 때다. 그렇게 국부를 쌓으면서 4세대 원전을 향한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망국적 탈원전을 멈추고, 그 과정에서 권한남용이나 비리 등이 있었다면 낱낱이 드러내 바로잡은 후,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12-13

[신동아 좌담 上] "나꼼수 분열은 '대깨문'과 '소깨문' 싸움"

 

"나꼼수 분열은 '대깨문'과 '소깨문' 싸움"

고재석 기자 입력 2020. 12. 13. 10:01 수정 2020. 12. 14. 17:39
['한때 좌파' 4人의 쾌도난마①] 문재인 시대㊤

● “민주 질서 무시 文정권 리더들은 레닌주의자”(민경우)
● “86세대, 20대 때부터 민주주의 부재 상태”(나연준)
● “조국 속한 집단 전체가 나르시시즘”(봉달호)
● “체제 뒤엎으려던 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가 아냐”(노정태)
● “촛불혁명은 86세대가 韓 무혈점령한 것”(민경우)
● “한반도에서 北 빼고 가장 저질 팬덤이 문빠”(나연준)
● “文 비판하니 욕설 세례, 내 밥줄 끊으려 해”(봉달호)
● “97세대의 文 지지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노정태)

‘한때 좌파’ 네 사람이 2020년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지호영 기자]
네 사람 모두 반문(反文)이다. 문재인 정부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댄다. 여기까지라면 별 흥미가 없다. 친문(親文)이 그렇듯 반문도 차고 넘친다. 이건 어떤가. 네 사람 모두 '한때 좌파'였다. 그러면서도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가 섞여 있다. 네 사람의 이력부터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1965년생이다.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NL(민족해방) 계열 핵심 이론가였다. 

봉달호 편의점주는 1974년생이다. 92학번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해 구력은 길다. 주체사상을 공부했으나 나중에 비(非)NL 계열로 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1981년생이다. 한국 근현대사 정치사상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1983년생이다. 딴지일보 온라인 에디터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다. 1980년대생을 대표하는 진보 논객으로 불렸다. 

‘신동아'는 2020년 12월 7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으로 네 사람을 초청했다. 서로의 글은 즐겨 읽지만 이날 처음 보는 사이도 있다고 했다.

"전쟁 끝났어, 빨리 나와"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문재인 정권의 리더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레닌주의자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민경우 소장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는데요. 민주화운동의 상징자본이 파산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민경우 | 조국 사태 이후 친구들과 전혀 대화가 안 돼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지금 국민들이 보기에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검찰개혁을 주장하는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에요. 

기자 |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 중 일부만의 일탈이라는 반박도 가능할 텐데요. 

민경우 | 문재인 정권에 민주화운동의 중심 세력이 있기 때문에 정권이 대중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건 민주화운동의 실패라고 볼 수 있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나 서민 단국대 교수처럼 민주화운동 세력에서 부분적으로 이탈한 사람들은 있죠. 저도 거기에 속하고요. 하지만 그 규모가 크지는 않잖아요. 

나연준 |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주주의를 몸에 각인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지하조직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조직 보위가 운동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어요. 타인을 자신과 동일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거나 절차적 정당성을 준수해야 한다는 훈련이 안 돼 있죠. 그 사람들이 20대 때는 별로 가진 게 없잖아요. 50대가 되면 쥔 것도 지킬 것도 많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득권화됐어요. 여기에 20대 때부터 이어진 민주주의의 부재 상태가 결합한 겁니다. 

봉달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쯤 지났을 때 태평양 어느 섬에서 일본군 장교가 하나 발견됐는데, 전쟁이 끝난 것도 모르고 혼자 투쟁하고 있었어요. '전쟁 끝났어. 빨리 나와' 이러는데 본인은 안 끝났다는 거예요. 

노정태 | 이것은 우리를 항복시키려는 적의 계략이라고 본 건가요.(웃음) 

기자 | 봉달호 편의점주는 "반미, 종북이 본질이던 우리 운동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르는 것은 도둑질하려고 은행에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은행 강도를 잡은 도둑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형국"이라고 쓴 적 있죠. 

봉달호 | 권력을 쥐었는데도 아직 거악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이 이 사람들에게 있어요. 요새 사람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비아냥거리면서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조 전 장관이 속한 집단 자체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어요. 

과연 과거에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했었을까…. 저는 자주민주통일(자민통) 운동을 했던 것 같긴 한데, 거기서 민주는 '후순위채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운동권 문화가 전체주의적이었고 그 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내면화된 신념 없이 분노나 당위성에 따라 운동했는데 지금도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6월 항쟁 때 反美 외치니 '그러지 마' 하시더라고요"

봉달호 편의점주는 “86세대에게 이념은 허울이나 명분일 뿐이었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최근 민경우 소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여권의 압박을 레닌의 폭력혁명론에 빗댔는데, 봉달호 편의점주 의견과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네요. 

민경우 | 1980년대 중반 배운 민주주의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어요. 칸트나 로크, 미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운동권 안에서) 토론해 본 적이 없어요. 레닌주의부터 얘기했고, 그조차 이론보다는 행동주의로 받아들였죠. 우스갯소리로 '당을 만들어 무기고를 접수해야 한다'는 얘기를 1984~1985년에 대학교 2학년들이 했다고요. 레닌도 자기를 민주주의자라고 하고, 주체사상도 민주주의라고 하니까 민주주의라는 워딩은 있었죠. 문재인 정권의 리더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레닌주의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검찰이라는 거대악이 있고 쟤들은 민주적 질서를 거치지 않고서 제거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바로 레닌주의예요. 

기자 | 여권이 많이 쓰는 표현이 '민주적 통제'인데요. 

민경우 | (레닌주의와) 똑같죠. 

노정태 | 저는 민주화운동이 파산했다기보다는 이제야 진상이 보인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혁명운동하고 반체제운동한 사람도 포용하는 국가는 민주국가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란 말이에요. 1980년대 김영삼(YS), 김대중(DJ)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YS, DJ 찍었을 때 받게 될 멸시와 배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찍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자에 가깝죠. 대학가에 모여 체제를 통째로 들어 엎자는 모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민주화운동가는 아니었습니다. 요새 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도가 많잖아요. 태국에는 야당 지도자가 없어요. 민주화운동이 작동할 만한 대안이 되는 정치세력, 즉 지도자가 부재하니 대학생들이 왕정 폐지를 주장해도 아무런 힘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기자 | 민주화 과정에서 양 김씨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주장인데, 민경우 소장도 동의하나요. 

민경우 | 5·18과 관련해서도 DJ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어요. 5·18 이후에는 부산이 운동의 중심이었는데 1983년 김영삼이 단행한 23일간의 단식이 부산 시위를 촉발했어요. 야당이 선전한 1985년 2·12 총선이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였죠. 그때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해 대학생들은 '뻘짓'하고 있었어요. 주체사상, CA(제헌의회)그룹 같은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정치적 의미에서 대학생의 민주화운동은 터무니없이 과장됐습니다. 

나연준 | 1987년 6월 항쟁 때 CA그룹에서는 '제헌의회 소집'을 내걸었죠. NL(민족해방) 계열은 '독재타도'를 표면적으로 내걸었지만 원래 하려던 말은 '반미자주'였어요. 6월 항쟁에 대해 86세대가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86세대가 외치고 싶었거나 실제 외친 구호는 민주화가 아니었습니다. 

나연준 편집위원의 '돌직구'를 민경우 소장은 저항 없이 순순히 맞았다. 그러고는 경험담을 꺼냈다. 

민경우 | 넥타이부대가 판을 깔아주니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활개를 친 거죠. 6월 항쟁 후에 대학생들은 조국통일론으로 확 빠져버렸어요. 학생운동의 주요 동력은 이미 1986년 자주통일운동이 돼 있었어요. 이걸 일시적으로 반독재투쟁으로 전환했다가 1988년 본궤도로 돌아온 거죠. 사실 제가 그랬어요. 6월 항쟁 때 거리에 나가서 반미(反美)를 외쳤어요. 어느 날 명동성당 앞에서 넥타이 매신 어른이 절 부르더니 '너 그러지 마' 하시더라고요. 나는 학교에서 늘 하던 소리니 괜찮겠지 하고 한 거죠.

文의 콘크리트 지지층 97세대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주주의를 몸에 각인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그 유산이 90년대 학번으로 이어집니다. 1990년대에도 자주통일운동이 학생운동의 중추 아니었습니까. 봉달호 편의점주가 이 중 유일한 97(90년대 학번, 70년대 출생)세대인데요. 

봉달호 | 저는 거창하게 얘기하면 1996~1997년 전향했어요. 더는 NL이니 PD(민중민주)니 ND(민족민주)니 이런 말은 안 하겠지 했는데 지금도 같은 말을 하고 있잖아요. '세상이 왜 이래'(웃음). 저는 고등학생이던 1989년 운동을 시작했어요. 1980년대 학생운동은 그나마 고민이 있던 것 같아요. 1990년대 학생운동은 주입식이었어요. 김정일이 쓴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거의 외우다시피 했죠. 1990년대 중반이 되면 정통을 따지면서 북한에서 나온 원서가 아니면 보지도 않았습니다. 굉장히 교조화한 거죠. 1990년대 대학에는 상반되는 세력이 공존했어요. 전체주의 문화를 가진 운동권이 있던 반면, 서태지와 아이들에 빠진 대학생들이 있었어요. 두 집단이 대학에서 어울렸는데 지금은 똑같은 정치 성향을 보이니 참 그로테스크(grotesque·기괴)해요. 

기자 | 나연준 편집위원은 "97세대는 팬덤과 같은 자신의 문화 경험을 정치로 확장했다"고 쓴 적이 있잖아요. 

나연준 |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한 사람 상당수는 제도 정치권 진출에 성공했고 안착했어요. 반면 1990년대 학생운동은 계속 실패하면서 역량을 소진했어요. 90년대 학번은 자기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을 세대 내에서 못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세대를 지지하죠. 지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두 세대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 데뷔했어요. 90년대 학번들에게는 누군가를 공적으로 좋아하는 첫 경험이 팬덤이었던 겁니다. 팬덤이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노무현 바람'에서 '안철수 현상'까지 흐름이 이어졌죠. 

노정태 | 1930~1940년대 독일인들이 왜 자발적으로 나치를 지지했을까. 당시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 속에서 (불안해하는 독일인들에게) 히틀러가 '나에게 종속되는 게 너에게는 좋다'는 식으로 대중을 설득했어요. 에리히 프롬이 전체주의를 분석하며 꺼낸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97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자유로운 대중문화를 만끽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존재로서 스스로를 재정립하지 않고 의탁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었고, 노무현의 출현 및 비극적 죽음과 맞물려 유사종교화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나연준 | 러프(rough)하게 정의하자면 팬덤은 정서와 서사의 공동체예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순위 프로그램에 나가면 팬들이 손가락 부서져라 ARS를 눌렀어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죠.(웃음) 그렇게 해서 1등 만들어놓으면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 식의 서사를 정치인에게도 투여한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이 굉장히 극적이었잖아요. 돌아가시는 과정도 상당히 비극적이고요. 여기에 완전히 매몰돼 있거든요. 이 서사의 특징은 스스로 늘 선한 세력으로 규정한 뒤 악마와 싸우는 겁니다. 가까이는 노무현에 머물지만 멀리는 토착왜구 운운하면서 식민지 시기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가 '추억 열차'를 타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노정태 | 서태지와 아이들과 1위 경쟁을 하던 트로트 가수가 있었는데…. 누구였죠? 

나연준 | 2집 때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 가수는 김수희 씨죠. '애모'. 

기자 | 나연준 편집위원은 진짜 팬이셨네. 

노정태 | 서태지와 아이들 팬으로서 자아를 형성한 세대에게는 김수희 씨 같은 구세대와의 경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마겟돈처럼 느껴질 거예요. 97세대의 의식세계 속에는 어릴 때 느낀 문화적 답답함이 남아 있어요. 걸핏하면 음악 검열을 했던 기성세대가 아직까지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하지만 97세대를 억눌렀던 사람들은 나이 먹고 은퇴했어요. 이제는 97세대가 사회적으로 어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공부 안 하고 콘서트 가다 걸려서 부모님한테 혼나던 시절의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文 대통령은 허물로만 있고요"

97세대가 난타당하자 기자는 지긋이 봉달호 편의점주를 쳐다봤다. 그가 눈치껏 운을 뗐다. 

봉달호 | 요새 욕먹는 97세대로서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웃음). 우리 세대는 뭐라고 규정하기 어려우니 X세대라고 불렸어요. 앞 세대와 달리 저희 세대에는 동질감이 없었어요. 이제야 뒤늦게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예요. 소비자본주의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았고,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했죠. 대학 진학률도 높았고 대학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관철할 수 있었죠. PC통신을 통해 정보통신 혁명의 세례도 누렸고요. 

40대가 문재인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현상을 두고도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할 필요는 없어요. 현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에게 물으면 '지금 코로나 상황이잖아. 힘들 때는 뒤에서 장수한테 뭘 꽂는 거 아니야.' 이러거든요. 40대는 안정이 가장 중요해요. 40대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건 진보적 사고가 아니라 오히려 안정성을 희구하는 보수적 사고예요. 우리 세대를 대표할 만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얼마든지 뒤집히고 열광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민경우 | 지금의 40대가 20대이던 1990년대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나왔어요. 기업 담론이 역동적으로 한국 사회를 장악했을 법했는데, 당시 20대에게 거의 영향력이 없었어요. 대신 유시민 같은 논객이 담론의 공백을 메웠어요. 

기자 | 그렇다면 봉달호 편의점주는 86세대 기득권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봉달호 | 노무현 정부 때는 86세대가 기관장 할 나이가 아니었죠. 지금은 딱 기관장을 할 나이예요.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는 선배들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다 어디 들어가 있어요.(웃음) 아주 쉽게요. 1990년대 후반 어떤 선배가 저한테 운동을 왜 하느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순진하게 '민중을 사랑해서 합니다'라고 답했어요. 선배가 하는 말이 '그래? 나는 권력을 잡으려 하는데'였어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딱 맞는 말이에요.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면서 이해관계에 얽히고, 그러면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해 가는 거예요. 이념은 허울이나 명분일 뿐이었던 거죠. 

기자 | 86세대인 민경우 소장이 이야기를 이어가면 좋겠는데요. 

민경우 | 민주화운동 세력이 적이라고 불렀던 집단은 2010년 즈음에 다 돌아가셨어요. 마침 노무현 정권 때 30대 중반이던 사람들이 40대 중후반이 돼 한자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됐죠. 운동권만이 아니더라도 기업이나 법조계 등에서 중견 간부 지위에 올라갔습니다. 2016년 촛불시위는 보수가 물리적으로 퇴장하고 사회를 장악한 민주화운동 세력이 (한국을) 무혈점령한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같은 구조 위에 허울로만 있고요. 

구(舊)조국, 신(新)조국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이제야 보인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이야기를 다시 팬덤으로 돌려볼까요. 팬덤 하면 '문빠'를 빼놓을 수 없죠. 

노정태 | 최근 '나꼼수'(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멤버들이 분열한다고 하던데요. 편의적으로 단어를 붙이면 대깨문(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과 소깨문의 싸움 혹은 구깨문과 신깨문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일동 웃음) 

기자 | 구(舊)조국, 신(新)조국 있듯이….(웃음) 

노정태 | 네. 적과의 싸움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이건 인간의 본능에 가까워요. 스포츠처럼 그냥 즐기려고만 하면 안전하기도 하고 그 나름의 휴먼 드라마도 탄생합니다. 문제는 이 본능을 정치에 대입해 버린 거예요. 자신들이 움직이면 결과가 나온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 버리니 멈출 수 없게 된 겁니다. 고작 수백, 수천 명이 악플 단다고 정치인이 말 바꾸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정치가 사람들의 본능을 악용하고 있는 겁니다. 

나연준 | 아이돌 팬덤은 아주 예의 바르게 행동해요. 불우이웃도 돕고 기부도 하고 나무도 심잖아요. 

노정태 | 연예인 이름으로 대신 기부하잖아요. 

나연준 | 그렇죠. 선행을 하면서 우상의 이미지 제고를 꾀한단 말이에요. 발산하는 방식이 건강하잖아요. 같은 팬덤이더라도 '대깨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는 아주 결이 다릅니다. 저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팬덤 중 '북쪽' 빼놓고는 가장 저질 팬덤이 대깨문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도 노사모라는 팬덤이 있었는데요. 

나연준 | 노사모와 문빠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노사모가 한창 활동할 때 제가 민주노동당에 있었습니다. 선거만 있으면 노사모가 민주노동당(2010년 지방선거 때는 진보신당) 게시판에 단체로 몰려와서 후보직에서 사퇴하라고 도배를 했어요. 

기자 | 민주당과 야권 단일화를 하라고 요구했죠. 

나연준 | 남이 나와 똑같은 참정권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민주주의 훈련이 덜 된 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어요. 진보진영에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는데, 당시 노사모는 FTA 해야 한다고 주장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한미 FTA를 이명박 정부 때 비준하려 하니까 반대했어요. 그러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노무현의 FTA는 착한 FTA, 이명박의 FTA는 나쁜 FTA'였습니다. 정책을 선악으로 나누는 겁니다.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되면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나꼼수나 '김어준의 뉴스공장' 같은 데서 매일 소스를 던져주잖아요. 

민경우 | 1988년부터 1997년이 매우 중요한 시기예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었어요. 또 여대생 비율이 급격하게 올라갑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총학생회장이 주로 남자였어요. 1990년대 후반이 되면 여성 총학생회장이 대거 등장해요. 1987년 6월 항쟁 이후 NL은 통일운동으로 많이 갔어요. 8·15가 되면 범민족대회를 했는데, 대학이 해방구 같았어요. 세상에 서태지가 있건 말건 대학 내에서 10만 명이 축제를 벌였어요. 축제의 키워드는 통일운동이었죠. 그게 팬덤과 유사했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거칠 수가 있을까"

봉달호 편의점주가 얕은 한숨과 함께 말을 받았다. 

봉달호 | 문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정서가 강하게 깔려 있는 것처럼 보여요. 문제는 그 정서가 공격적으로 표출된다는 거예요. 제가 팔자에 없이 '신동아'에 칼럼을 쓰는데, 한번은 하루에 100개 넘는 욕설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편의점을 하잖아요. 프랜차이즈 본사에 전화해 '이런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데 왜 가만히 놔두느냐'고 해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거칠 수가 있을까. 생각의 차이를 이유로 누군가의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거잖아요. 중국 문화대혁명(문혁) 때와 너무 똑같아요. 문혁에 대한 기록을 보면 스승을 마당에서 두드려 패고 고깔을 씌웠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이고 순진한 사람들이었단 말이에요. 이 말을 들으면 문 대통령 지지하는 분들이 기분 나쁘겠지만, (그분들은) 역사적 상황이 문혁 때처럼 주어지면 똑같이 행동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정태 | 최근에 역사 강사 설민석 씨가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이유 중 하나로 2차 오일 쇼크(파동)를 들면서 경제가 거꾸러지자 부산·마산 민심이 이반했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이 설명을 못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박정희를 쫓아낸 것은 우리 위대한 민주화운동의 결과'이지 무슨 석유값 같은 걸 들먹이느냐는 거죠. 그러면서 설씨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경호실에 있었는데 후에 민주당으로 갈아타 국회의원을 했다며 설씨를 공격해요. 박정희가 오일 쇼크의 직격탄을 맞은 건 사실이고, 그때 무너진 정권이 굉장히 많거든요. 하지만 (정치)소비자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의로운 역사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압력을 주는 거죠. 

*‘한때 좌파' 4人의 쾌도난마 문재인 시대②로 이어집니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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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시사철] 공수처는 '절대반지'.. 권력자 善意 믿지 말고 반지를 파괴해야

 

[노정태의 시사哲] 공수처는 '절대반지'.. 권력자 善意 믿지 말고 반지를 파괴해야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12. 03:11 수정 2020. 12. 13. 10:30
[아무튼, 주말] '반지의 제왕'과 공수처
일러스트=안병현

어린아이 정도의 키에 맨발로 돌아다니는 소박하고 낙천적인 소인(小人)족 호빗. 그중 빌보 배긴스라는 호빗이 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는 그는 본인의 111세 생일잔칫날 홀연히 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하여 조카이자 양아들인 프로도가 절대반지(The One Ring)를 유물로 얻게 되었다.

빌보의 오랜 친구인 마법사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사정을 설명해준다. 절대반지는 타락한 신적 존재 사우론이 아주 오랜 옛날 만들어낸 물건이다. 요정들의 왕이 가진 세 반지, 난쟁이 군주들의 일곱 반지, 인간의 왕들이 지닌 아홉 반지. 그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찾아내며 불러내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단 하나의 반지가 바로 절대반지다. 절대반지를 끼면 남에게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고,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반지에 영혼을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악의 화신 사우론은 먼 옛날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절대반지를 잃어버렸다. 그가 다시 절대반지를 손에 넣는다면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어둠과 혼란 속으로 빨려들 것이다. 절대반지를 파괴하려면 사우론의 본거지인 운명의 산으로 찾아가 용암 속에 반지를 던져버려야 한다. 프로도와 일행은 멀고 험한 여정에 오르고, 사우론뿐 아니라 오래전 반지를 가지고 있다가 타락해버린 골룸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인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야기다. 그야말로 ‘현대의 신화’인 셈이다. 그것은 단지 3부작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J. R. R. 톨킨의 원작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세계관 및 진지하고도 보편적인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반지의 기원을 플라톤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리비아에 기게스라는 목동이 살았다. 어느 날 특이한 반지를 얻었는데, 보석받이를 자신의 손바닥 쪽으로 돌리자 본인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보석받이를 손등 쪽으로 돌리면 다시 몸이 보인다. 투명인간이 되는 힘을 갖게 된 기게스는 왕궁에 숨어들어 왕비와 간통하고 왕을 살해한 다음 왕국을 장악했다. 그 유명한 ‘기게스의 반지’ 설화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글라우콘은 스승에게 묻는다. 이렇듯 누군가 남에게 들통나지 않고 어떤 짓이건 멋대로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기게스처럼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습니까? 글라우콘은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눈이 있어야 인간은 선한 행동을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설령 이득이 된다 한들 악한 행동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글라우콘의 입장을 윤리적 가치의 외재설(外在說)로,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내재설(內在說)로 불러볼 수 있겠다.

두 입장에는 장단점이 있다. 윤리적 가치의 내재설부터 생각해보자. 가령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에 반기를 들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 목사가 살인 모의를 한다는 모순을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지지하거나 묵인했으니, 그의 행동은 주변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윤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본회퍼를 위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내재설은 타인의 반대를 뚫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때로 큰 힘이 되어준다. 개인을 위한 윤리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외재설은 사회적 관점에서 유익하다.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초기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윤리적 가치의 외재설을 따랐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분리하고, 언론을 통해 외부에서 감시하며, 범죄의 수사·기소·재판 또한 최대한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고 통제받지 않으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기게스처럼 타락할 수 있으니, 권력자의 선의를 믿는 대신 기게스의 반지를 없애버리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공수처라는 절대반지를 기어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공직자 부패 사건을 모든 수사기관에서 자동으로 가져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만들면 현 정권에서 벌어진 모든 권력형 비리를 서랍 속에 넣고 묵힐 수 있다. 공직자 부패 사건을 드러내고 처벌한다는 본래 취지와 정반대로, 부패 비리 집권 세력의 손에 기게스의 반지를 끼워주는 셈이다.

법원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판사도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헌법에 정해진 제도와 절차를 통해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는 판사들로 하여금 여차하면 먼지털이식 별건 수사를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폴란드는 ‘정치 활동 금지’라는 명목하에 판사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고 EU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또한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법을 내놓고 입법 폭거를 저지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왜 이렇게까지 공수처를 추진해야 하는 걸까. 최재형 감사원장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월성 1호기 폐쇄 감사 보고서를 써내려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 내용에 기반하여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저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윤석열 죽이기 법, 최재형 재갈 물리기 법을 만들려고 드는 이유가 뭘까.

공수처는 절대반지다. 권력자의 부패 범죄를 안 보이게 만든다. 권력자는 모든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을 억누를 수 있다. 이런 반헌법적 통치 기구는 일단 만들어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자가 이렇게 좋은 걸 포기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자들도 그랬다. 반지의 악에 영혼이 잠식당하고 말았다. 맥락도 논리도 없이 ‘검찰 개혁’만 외치는 여당을 보면 ‘마이 프레셔스’라고 중얼대는 골룸을 보는 것만 같다.

인간, 요정, 난쟁이들은 절대반지의 유혹을 견뎌낼 수 없었다. 결국 절대반지를 파괴하고 세상을 구해낸 건 보잘것없는 호빗들이었다. 공수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탈환하고야 말 것이다. 지금은 21세기 헌정사의 가장 어두운 밤.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며 용기를 얻는다.

2020-12-06

혜민, 혹은 종교인의 (너)무소유에 대하여

젊고 세련되고 교양 있고 세속의 인간들과 잘 어울리는 승려. 조계종 뿐 아니라 사실 전 세계의 불교계가 원하는 아이콘의 모습이긴 했다. '무'소유가 아닌 '너무'소유를 보여주고 있는 혜민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문제는 그 소유가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종교 단체가 많은 부를 쌓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온갖 자선사업, 기부, 교육사업, 약자 돌봄 같은 가치를, 심지어 겉치례로도 동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

혜민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되는 논리 중 '무소유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도 참 이상하게 악용되고 있다. 그런 건 지나친 고행을 하거나, 굶어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학대하고 밥을 안 먹거나, 차 타고 와도 될걸 굳이 걸어와서 보는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극단적 행위자들에게나 할 소리다.

조계종에도 나름의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가진 종단인만큼, 승려의 재산 소유에 대해 이미 분명한 답을 내려놓았다. 당연히, 중은, 제 몫의 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

"조계종은 종단 법령인 ‘승려법’으로 소속 승려가 종단 공익이나 중생 구제 목적 외에 개인 명의로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서유근, "남산뷰·뉴욕뷰 ‘건물주 논란’ 혜민 스님 “크게 반성…중다운 삶 살겠다”", 조선일보, 2020년 12월 3일.

중이라고 해서 돈 벌면 안 되냐, 정당하게 책 써서 판 돈이면 괜찮지 않냐, 이런 소리를 하는 분들을 퍽 많이 접해서 요즘 놀라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중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은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후세계의 위안을 약속하며 현세의 재물과 지위를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공포를 이용하여,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종교다. 따라서 종교를 이용한 돈벌이를 정당하다고 해버리면 세상은 온갖 사이비 잡종교인으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정당하게 번 돈'을 인정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가, 잘못된 영역에서 엉뚱한 사람을 옹호하는 논리로 오용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검찰 문제 단상

나는 대깨문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진보, 심지어 윤석열에게 원한 품은 몇몇 보수 분들까지도 '검찰주의자'라는 말을 욕처럼 쓰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검사가 검찰주의자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떤 법조인을 검사로 만드는 건 그가 검찰에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있다면 당연히 검찰로서의 직업 윤리, 가치, 금기, 도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걸 늘 새기고 지키는 게 왜 욕먹을 일인가?

아,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수사하고 잡아넣어서? 그래서 '검찰주의자'가 나쁜 건가? 검찰총장이 우리편은 봐주고 저쪽편은 조져야 하는데 안 그래서 속상하다 이건가?

한국에서 원리원칙적인 자유주의자 해먹기 정말 힘들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도깨비방망이처럼 쓰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쪽수로 찍어누르는 게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다수가 의사결정권의 많은 부분을 갖되 그럼에도 소수를 존중해야 민주주의다.

게다가 법이란 근본적으로 '다수의 지배'가 성립하지 않고, 성립해서도 안 되는 분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해서 결백한 사람이 범인이 되지는 않는다. 증거와 법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사법 기관이다. 국가를 대신하여 범죄자를 소추하고 기소하여 감옥에 넣는 것이 검사의 일이다. 따라서 검사 역시 '다수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직종이다. 온 국민이 사랑하고 죄 없다고 박박 우겨도, 증거가 있고 해당하는 형법 규정이 있다면, 검사는 최대의 형량을 구형해야 한다.

이 난장판의 큰 부분은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교양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법조인들은 아예 그런 대중 교양 함양에 관심이 없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약간의 재주가 있는 법조인들은 그럴싸한 포우즈 취하고 깨시민 상대로 인기 끌 궁리 뿐이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무식해서 망할 것이다. 기층 민중이 아니라, 상위 중산층 레벨에 속하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악다구니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말이나 갖다붙이면서 더 무식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