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25

중산층, 중간계급, 소자본가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막대한 개념적 혼돈이 있다면, 그것은 '중간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과, '작은 규모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소득을 얻는 소자본가'가 모두 한 단어 안에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집값이 올라갈 거라는 헛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서민'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고 있다고 할 때, 그 '중산층'은 분명히 '소자본가'를 뜻한다. 반면 강남에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 수년간의 집값 상승을 통해 그 해만큼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번 사람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소자본가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중간'임을 표명하고자 하는 의사의 표현일 터이다. 이 양자를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개념적 혼돈에 맞닥뜨리게 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단을 읽어보자.

물론 이런 논의와 별도로, 과연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수준을 중간계급으로 볼 건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부가 여기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제공했다. 감세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정부는 "감세 효과의 53%가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에 돌아간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과표구간으로 연소득 8800만원, 실제 소득 1억 2000만원의 연봉을 '중산층'으로 설정했다. 여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자면 맞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는 중간계급에 속하지 못하면서도 중간계급 의식을 소유한 '서민들'이 참으로 많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감세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건 이를 반증한다.
(이택광, "중간계급", 2008년 9월 13일, WALLFLOWER)

과연 그럴까? 물론 이명박 정부가 설정한 바로 그 사람들만을 '중간계급'으로 보기로 했다, 이런 차원이라면 논의가 더 진행될 여지도 없다. 하지만 연소득 8800만원, 실제 소득 1억 2000만원의 연봉이 '중산층'으로 설정될 수 있고,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합치하는 일일까? '중산층'을 '소자본가'로 놓고 본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택하고 있는 화용론은 그것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는 중간 소득 계층이 감세로 이익을 보게 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안타깝지만 연봉 1억 2000만원이 '중산층'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 . . OECD에서는 빈곤층, 중산층, 상류층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 OECD는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계층을 중산층, 그 미만에 해당하는 계층을 빈곤층, 그 이상에 해당하는 계층을 상류층으로 구분하고 있다.

OECD의 이 구분법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우리나라 근로자들 중 소득 상위 20%는 상류층에, 중위 60%는 중산층에, 하위 20%는 빈곤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 . .

. . . 국세통계연보(2007)에 의하면 2006년 연말정산 대상 근로자(대기업 임원 등 포함) 1259.5만 명 중에서 상위 5.2%인 66.2만 명의 평균급여는 9482만 원이고, 그 과세표준은 5677만 원이다. 과세표준이란 총급여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제외한 과세대상 소득을 의미한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상위 5.2%의 근로소득 과세표준 평균이 5677만 원이므로, 과세표준 5677만 원에 해당하는 총급여를 받는 사람은 상위 2.6%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
(홍헌호, ""MB 정부, 스스로 일본 전철 따르나"", 2008년 9월 16일, 프레시안)

과세표준 5677만원에 해당하는 총급여를 받는 사람이 상위 2.6%에 해당한다면, 과세표준 8800만원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그보다 더 낮은 퍼센트를 점유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해 '중간계급'이라고 칭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상위 2.6퍼센트에 속하는 중산층이라는 말은 동그란 네모라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엄연히 소득상으로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한국인들의 '평등에의 요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담론적 회피 기동이다. '나는 상류층이지만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배알이 꼴려서, 내가 잘 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하면 맞아죽을까봐 겁이 나니까, '에이, 잘 살긴 뭘, 그냥 먹고는 살지'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나처럼 어중간하게 돈 있으면 그게 더 괴로워!'라고 역지랄을 하는 전법도 즐겨 사용되는 것 같다. 중요한 건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뭐라고 규정하건, 연봉이 과세표준으로 5677만원을 넘는다면 대한민국 상위 2.6%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칭하는 것과, 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을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중산층'이라 칭하던 현상을 같은 층위에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양자 모두 자신을 안전한 '중간'에 배치하고픈 일종의 회피 심리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그 허위위식을 비판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간계급의 경제적 붕괴를 도외시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OECD의 구분법에 따르면 한국에서 근로소득을 올리는 사람 중 중위 60%가 중산층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만큼의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리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과세표준을 적용해서 총 급여액이 1345.6만원 이상 4036만원 이하면 중산층이다. 이것은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을 분류할 때 적용될만한, 그런 종류의 계급 구별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제 기구에서 중산층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기준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서민'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중산층이고, 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계면쩍은 표정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상류층이다. 다만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데,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상류층의 일원으로 파악하면 그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동 사람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살면 고만고만한 '서민' 행세를 할 수도 있지만, 한남동의 저택 소유자들과 자신을 견주면 즉각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겪어본 강남 주민들은 자신의 '중산층 됨'을 한남동과의 비교에서 찾는다. 내 위에 누가 있으니까 나는 중산층이다, 이런 논리이다.

혹자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본 후, 내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경제적 중산층과 계급적 중산층을 혼동하는 견해라고 말이다. 계급적 중산층이라는 말보다는, '중산층'이라는 일종의 허위의식과 사회 소득 분포의 배분 비율로서의 중산층을 설정하는 편이 낫겠다. 아무튼 이런 주장에 대한 나의 반박은 이렇다. 우선 그 '중산층'의 허위의식부터가 단일하지 않다. 엄연히 상류층에 속하는 이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칭하는 '위로부터의 중산층'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칭하며 '아래로부터의 중산층'을 구성할 수도 있다(하지만 연간 총 급여가 1345.6만원도 안 되는 사람이 과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볼까).

이렇듯 적어도 한국 사회를 논함에 있어서, 내적으로 정교하게 설정되어 있지도 않은 '중산층'을 비판하기 위해, '경제적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KDI의 2008년도 추산에 따르면 중산층 비중은 2000년 61.9%에서 2007년 58%로 4%포인트 줄어들었다. 흔히 '서민 경기가 얼어붙었다'로 표현하는 그 현상은, 실상 중산층의 경제적 몰락이며 그것은 분명히 큰 문제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떳떳하게 '중산층'이라 말하는 소득 낮은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신 소득분위상으로는 부유층에 속하면서도 '그냥 먹고 산다'고 말하는 허위의 중산층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기사를 살펴보자.

간식배달업체인 ‘우리비’를 경영하는 윤광욱(38) 사장은 국내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통신망 회사인 두루넷의 공채 1기 출신이다. 두루넷이 코스닥에 상장했을 무렵 그는 대리급이었지만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이 적지 않아 한때는 평가액이 20억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회사가 부실해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손해를 보고 주식을 판 뒤 그는 조그만 중소 통신업체로 옮겼다. 그러나 이 회사도 1년 뒤 부도가 났다.

우 여곡절 끝에 집을 담보로 잡히고 간식 배달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원을 20명이나 채용하며 공격 경영에 나섰지만 1년여 만에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친척과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던 그는 한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회생의 계기를 잡았다. 지금은 연 매출 20억원 규모로 성장했고 그의 가정도 중산층으로 복귀했다.
("'양극화 해소' 외친 노 정부때 중산층 되레 줄어", 중앙일보, 2008년 7월 5일)

여기서 중앙일보는 "중산층으로 복귀했다"라는 절묘한 수사법을 통해, 두루넷 공채 1기 출신이며 평가액 20억 상당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그 당시에 '중산층'이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실제로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바로 이런 이유로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주장한다.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마치 중산층을 위한 것인 양 혼동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이 계층, 부유층의 사다리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다.

'한국인들은 자기가 중산층인 줄 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중산층'을 비아냥거리는 맥락을 띌 때, 결국 강남 상류층(중 밑바닥)들의 징징거림에 편승하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하지만 재벌 2세 나오는 드라마 보고 대사 따라한다고 해서 재벌 2세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강남에 거주하는 고소득층을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러하듯이) 중산층이라고 불러준다고 해서 강남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들이 진정 중산층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저 '강남 쁘띠'들의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해법은 '중간계급'과 '소자본가'를 명확하게 갈라서 생각하는 것이다(앞서도 말했지만 이 글에서 나는 '중간계급'을 OECD 기준으로 사고하고 있다). 강남의 따라지 상류층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지칭함으로써, 그들만을 위한 종부세 개편 등을 '중산층을 위하여'라고 부르는 기만적인 언어 사용을 막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산층'이라는 개념의 혼탁함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자기가 중산층이라는 허위의식에 빠져있는 사람들' 같은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소자본가'라는 뜻으로 풀어서 읽는다면 저 표현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OECD 기준으로 본다면,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소득이 중간인 사람들이 중산층이다. 따라서 소득이 중간인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보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것보다는, 엄연히 상위 5%, 2% 안에 속하면서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칭하며 '중산층을 위한 종부세 감세'를 요구하는 바로 그들의 지배 전략을 폭로하는 편이 더욱 올바른 일일 것이다. '중산층'에 대한 허위의식이 존재한다고 해서, 한국 사회 내 중산층의 존재 자체가 허위라고 보는 것은 그야말로 오류추리이다. 좌파정치가 지켜내야 할 '서민'들도 결국은 그 중산층 아닌가.

8800만원 버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 칭한 이명박 정부의 개념 분류법을 '옳은 소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오직 자신들만이 '중산층'으로 분류되기를 바라는 강남 거주자들의 언어적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버린 담론이다. 차라리 그들을 떳떳하게 '쁘띠'라고 부르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중산층'이라는 언어를 진정한 중산층의 것으로 수복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 12개:

  1. 대단히 훌륭한 글이네요! 특히 왜 몇 년 전부터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이상하게 전유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탁견입니다. 그러나 연봉이 많다고 해서 '소자본가'라고 명명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아카데미즘의 용어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계급 사회학 문헌들을 좀 더 참조해서 조금 더 적절한 용어를 채택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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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
    님아...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대충 '중산층'='쁘띠 부르주아'의 번역어구요. '중간층'은 '미들 클래스'의 번역어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중산층은 의사 변호사 그 정도...(얘들이 쁘띠지 부르주아는 아니잖아요? 부잣짐 딸내미랑 결혼하기 전에는.) 중간층은 그냥 사회의 딱 중간...


    2.
    근데 한국 사람들이 중산층이란 말을 사실상 중간층과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념적인 혼돈이 발생하죠. 이것들 중엔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할 부분도 있고 바꿔나가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대중적인 글을 쓸 때는 '중산층'이란 말을 '중간층' 정도의 의미로 사용할 수밖에 없죠. 안 그러면 의사소통이 안 될테니까요. 하지만 또 다른 어떤 글에서는 중산층이란 말의 원래 의미를 복원시킬 수도 있을 테구요. 그 글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따지고 비평을 해야죠. 왜 님이 완장차고 교통정리를 하려고 드나요?


    3.
    님이 인용한 학자가 얘기하는 OECD 기준 역시 '중간층'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말로 중산층=중간층 뭐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거기에 해당하는 것을 긁어온 거죠. 그의 발언은 이명박 정부의 개념규정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긴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중간층은 분명 붕괴 중이죠.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나 혼자 아는 문제라고 믿는 노정태 님은 있겠지만.


    4.
    게다가 이택광의 원문은 다른 측면에서 서민들의 허위의식을,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개념규정을 '풍자'하는 글이 아니었던가요? 풍자에 대고 정색을 하다가 계급론에 무지한게 들통나니까 여기선 아예 개념 규정을 다시 하자고 드네요. 무지한 건 좋은데, 제발 교과서를 무시하진 말잔 말입니다.


    5.
    강남 친구들이 자기들을 중산층으로 본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강남사람들은, 그 내부에서 자기가 남들보다 못 산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기네 동네가 한국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타 지역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죠. '강남 중산층'이니 '강남 쁘띠'니 하는 말은 그들이 스스로를 가리려고 사용했던 말이 아니라, 과거에 님이나 나같은 사람들이 강남의 계급적 위치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려고 사용했던 말이죠. 갑자기 왜 얘기가 거기로 튀나요?


    6.
    이 모든 것이 "내가 옳고 이택광이 틀렸고, 내가 지적한 문제를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 님의 아집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강만수의 진술이, 이 정권의 정책이 '서민'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누가 있을까요? 저렇게 대놓고 광고를 하는데. 단지 그걸 자기 혼자 발견해 냈다고 믿는 노정태 님이 있을 뿐이지요. 단어라는 건 이렇게도 쓰이고 저렇게도 쓰이지만 일상적인 쓰임이라는 것도 있고 학술적인 통례라는 것도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중첩되어 풍경을 형성하겠죠. 님은 그런 맥락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남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내 문제의식이 킹왕짱이고 그러려면 개념은 이렇게!"라고 손가락을 들고 있으니 이런 삑사리가 나는 겁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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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참, 단락 1 맨끝에 "차라리 '쁘띠'라고 부르자니 님아 지금 장난하나요?"를 첨가합니다. 처음에 이 글을 정독하고 든 생각이 바로 그거였고, 그거야말로 글쓴이의 지적 불성실함을 통박하는 대사였는데, 그만 빠뜨리고 말았네요. 이 블로그는 덧글이 수정도 삭제도 아니되어 별 수 없이 새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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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익명/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사용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담론적 갈등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담아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해주시니 흡족하군요.

    연봉이 높은 상황에서 '비싼 동네'에 살지 않는 사람은 없죠. 그런데 그런 곳에 살면서 자신의 자산을 통해 부의 증식을 노리면 그것은 소자본가의 행동 유형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는데,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 또한 이 글이 아카데미즘 차원에서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상의 논의는 더 공부한 후에 내놓아야 하겠지요.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한윤형/ 제 글을 어느 정도 잘 이해하셨군요. 그런데 대체 뭐가 불만입니까? 한윤형님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지점이 뭔지 감이 안 잡히는군요.

    '중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 것처럼 보이나, 바로 그 점을 악용하여 강남에 거주하는 쁘띠들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게 제 논지죠. "강남 친구들이 자기들을 중산층으로 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은 한윤형님의 경험의 폭이 넓지 않아서 아닐까요? 제가 겪어본 강남 친구들은 다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걸요.

    게다가 강남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이번 세제 개편은 중산층을 위한 것'이라는 강만수의 발언이 유의미해지는 거죠. 강남에 사는 상류층을 '중산층'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오류임을 적시하자, 이게 제 기본적인 논조입니다.

    "이택광의 원문은 다른 측면에서 서민들의 허위의식을,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개념규정을 '풍자'하는 글이 아니었던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죠. '진정한 의도'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개념규정이 풍자되었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간만에 옳은 일 했네'라고 비아냥을 들을 때, 그건 정말 그 일이 옳은 일이긴 하다는 뜻을 내포해야 성립하죠. 옳은 일을 하지 않던 자가 옳은 일을 했다, 이렇게. 따라서 이택광의 원문은 중간층과 중산층과 소자본가를 혼동하는 이명박 정부의 화법에 저항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강만수의 진술이 기만책이라는 걸 알고 있죠. 하지만 그 기만책 앞에서 '8800만원이면 중산층 규정으로 적절한 거 아냐?'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설정된 프레임 안에 뛰어드는 거라고 저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중간 소득 계층에게 돌려주고, 강남의 영세한 자본가들에게는 '쁘띠'라는 호칭을 다시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거고요.

    차라리 '쁘띠'라고 부르자고 말하는 건, 그러니까 장난 삼아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한윤형님에게 딱히 그럴 의사가 없기 때문인 것 같군요. 긴 리플 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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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난 강만수의 중산층 정의에 동의하는 편이야. 사실 중산층이라함은 "중"에 악센트가 있는게 아니라 "산"에 악센트가 있는거지... 즉, 자산가들 가운데 중간정도나 중간이하의 위치를 차지하는 집단. 그들이 아무리 중간 또는 중간이하라고는 하나 이미 자산가의 계층에 있는 이들이므로 서민층과는 엄연히 구분될 것이고.... 물론 고소득층과 중산층도 약간 다른 개념이지만 이건 좀 미뤄놓더라도 나는 중산층을 자산가로 보는 시각을 갖는게 합당하다고 봐. 자산가... 근로소득이 없거나 아주 적더라도 여가를 포함한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계층... 어떻든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이익과 서민층의 이익은 일치될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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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중산층으로 불리는 강남부자들에게 "쁘띠"라는 호칭을 붙여주려는 시도는 그 의의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거라고 보고, 차라리 중산층에서 "산"을 부각시켜 서민층과 대비시키는 식의 '중산층 제대로 이해시키기'의 전략을 구사하는게 어떨까 싶네. 이를테면 '상류층, 중산층 이익만 대변하고 서민층 외면하는 이명박식 감세정책' 뭐 일케 말이지. 중산층이라는 말은 이미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이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는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라고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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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 이해되지 못한 진술에 대한 첨언

    “차라리 '쁘띠'라고 부르자고 말하는 건, 그러니까 장난 삼아 하는 말은 아닙니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제가 그 무식함에 경악한 것이죠. 원래 중산층이 대충 쁘띠 부르주아의 번역어에 해당한다고 지난 리플에 제가 적시했죠. 쥐를 두고 “쥐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차라리 마우스라고 부르자!!”라고 하면 졸라 웃기지 않겠어요? 근데 님은 아직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도 모르네요.


    2. 팩트 정리.

    1) 원래 중산층과 중간층은 의미가 다른 단어다.

    2)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두 단어를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쓴다. 아니, 첫 번째 단어가 두 번째 단어를 대체함으로써, 첫 번째 단어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닌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3) 강만수 장관의 업적(?)은 자신들의 정책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됨을 그릇되게 강조하려다가 그만 중산층이란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폭로(?)해 버린 데에 있다.


    3. 팩트에 대한 주석

    2)에 대한 주석

    a) 아마 이 용어가 없는 건, 계급문제 자체를 은폐하려는 시도와 관련이 있겠죠. 부르주아-쁘띠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고 써야, 그러니까 유산계급-중산계급-무산계급이라고 써야 계급문제가 드러날텐데, 그냥 우리나라에선 상류층-중간층-하층민 이렇게 나가고 대다수가 중간층에 해당한다...라고 한후 이 중간층이란 단어를 슬쩍 중산층으로 바꾸는 거죠.

    b) 하지만 중간층이 건실했을 때엔, 이 용어의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으니까요. 문제는 20 대 80, 혹은 5 대 95로 재편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중간’이란 말은 하나의 동질성있는 계층을 말하기는 어렵고 그냥 말 그대로 그 사회의 평균소득을 올리는 개별자들의 집합...정도가 되어버렸다는 거죠. 이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고도성장 시기엔 중간층이 두꺼워지다가 탈공업화 이후 사회유동화가 진행되면서 중간층이 위 아래로 분산되는 현상은 고도산업화가 이루어진 국가에서 모두 관찰되는 것이죠. 대충 뉴리치, 보보스, 뉴푸어, 워킹푸어...뭐 이런 단어들이 다 이런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3)에 대한 주석

    a) “강만수가 제시한 계층이 정말로 중산층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며느리도 몰라.”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한국사회에서 “계급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충분히 연구되어 있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대략 따져보려고 해도 외국 사례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계급이론을 접근하여 발전시킨 미국 사회학자인 에릭 올린 라이트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5-90%는 생산수단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추정하는데, 이 비율이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을 포괄하는 계층입니다. 그 위가 중산층이라고 본다면 얼추 비슷하게 찍기는 했네요. 연봉 8천 8백만원은 상류층일 수도 있고 중산층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연봉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가진 자산을 통해 대략의 판가름을 낼 수 있겠죠.

    b) 그러므로 이 정도 간지라면, “강만수 장관의 업적(?)은 자신들의 정책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됨을 그릇되게 강조하려다가 그만 중산층이란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폭로(?)해 버린 데에 있다.”라고 비웃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진술입니다.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문제라면 과거 정부들은 소위 국민통합을 위해 ‘중산층’이란 단어를 ‘중간층’의 의미로 사용했는데, 이 정부는 몇몇에게 퍼주려고 그 전선에서 역주행하는 중이니까요.


    4. 비평의 전략

    이런 상황을 숙지한다면, 이 일련의 사건에서 이택광 님처럼 서민들의 허위의식과 이명박 정부의 아이러니한 개념규정을 풍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노정태 님처럼 강남 사람들이 자신들을 방어하는 기제라고 성토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노정태 님 반응이 일차적인 것이고 이택광 님의 얘기는 더 나아간 것이죠. 물론 일차적인 것이라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지점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다음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님이 다른 이들의 비평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으면서, 제멋대로 전선을 긋고, 그 전선을 토대로 자신의 일차적인 반응을 더욱 심오한 것으로, 남들의 지적인 비평을 단순한 것으로 매도하고, 자신의 주장을 따르는 것만이 올바른 것인 것처럼 남을 비판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거예요. 이건 노정태 님의 오랜 ‘악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전에는 님이 제시하는 논점이 흥미로운 것이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행동들을 참아주는 부분이 있었죠.

    하지만 근자엔 민주주의 2.0에 드나드는 과거의 노빠들과 비슷한 수준의 비평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비평은 중요하지 않거나, 중요한 문제를 짚지 못한 오류라고 난타질을 해대니 차마 봐주기 힘든 겁니다. 비평이란 것에도 전략도 있고 그 전략에는 타당한 전략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전략이 있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그것이 “군대를 왼쪽으로 돌릴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돌릴까?”라는 식의, 장수에게 주어진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님이 글을 쓸 때, 남들의 문제의식은 그대로 두고 자신의 문제의식만 천명해도 충분했을 겁니다. 가령 진중권의 "디 워"론과 김규항의 "디 워"론처럼 양립이 안 되는 견해라는 것도 있지만, 이 경우엔 그런 것도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무슨 자신이 전략회의 석상의 참모인마냥 이쪽으로 안 가면 문제가 안 풀린다고 남들에게 성질을 부리다가 무식을 폭로하고 말았죠.

    이 정도 친절하게 설명했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게 맞겠죠. 긴 리플 읽느라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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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길게 코멘트 하신 분들 참..
    글의 취지 파악도 못하시는 양반들이 엉뚱한데만 후비파다 가는구만요. 앞으론 지발 이런 쓸데없는 리플 길게다는 수고 고만하시길 부탁요. 내가 쥔장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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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엄한데 신경쓰느라 다시 읽어야겠네요. 젠장.
    저런 사람들은 꼭 논지를 흐트리고 돌아다닌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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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익명//

    주인장한테 해야 할 말을 제게 하셨네요. 주인장의 이 텍스트가 누군가를 까면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님의 의견도 꽤 그럴듯해 보였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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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개념의 혼동은 '계급'이라든가 '부르주아'라는 단어가 금기시되던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기가 제대로 된 번역을 막았던 셈이지요. (이러한 유산이 가져온 개념혼동은 비단 '중산층'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시민혁명'의 원어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따라서 이 개념혼동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혼동과 실제의 계급의식이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라는 어려운 문제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계급론의 문제, 적어도 '중간계급'을 둘러싼 고민과 연구의 축적을 좀더 의식하고 글을 쓰셨다면, 이명박 정부 초기라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님의 분석과 제언이 좀더 의미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같은 문제에 대한 앞선 고민들을 좀더 참조하라는 뜻인데, 이러한 지적은 한윤형님의 의견과도 조금 겹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택광님의 글에 대한 '오해'와 관련해서 한 마디 하자면, 글을 쓸 때 용어에 인용부호를 하는 의미, 그러니까 '명쾌한'이라든지, '서민들', 혹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용어를 왜 인용부호 안에 썼는지에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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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김대영/ 서민-중산층-부자 이런 식의 구분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면, 그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원문이 되는 middle class를 '중간계급'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 되지. 그게 내가 본문에서 지적하는 바야. 한국 사회의 상류 2% 안에 속하는 이들을 중'산'층도 아닌, '중간'계급으로 부르는 게 과연 말이 되는 걸까?

    뭐, 번역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우길 수야 있겠지만, '중간계급'이라는 역어를 사용하면 대영이형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산'에 대한 강조는 전부 무위로 돌아가버리지. '중간'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도드라져버리잖아.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이게 생긴 거지.

    대영이형이 말하는 담론적 전략이 뭔지 알겠는데, 문제는 그게 지금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면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야. '이명박 경제정책에 서민 실종'이라는 식의 담론은 현재 너무도 횡횡하고 있지만, 그게 실질적인 뭔가를 낳고 있지는 못하지. 지금껏 하고 있는 이야기를 번역어만 바꿔서 또 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아무튼 좋은 리플 감사.



    한윤형/ '쥐를 마우스라고 부르자'가 아니라, '에이즈'를 'HIV 감염'이라고 부르자고 하고 있는 겁니다. 반쯤은 이해를 하신 것도 같은데, 영 진도를 못 따라오네요. 그건 아마도 한윤형님이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두 단어를 사실상 같은 의미로 쓴다. 아니, 첫 번째 단어가 두 번째 단어를 대체함으로써, 첫 번째 단어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닌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같은 잘못된 전제에서 자신의 논의를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건 다른 글을 통해 반박하도록 하지요.


    익명/ 제 글이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문제의식이 시작된 지점부터 다시 서술하고 있으니 그 글도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익명/ 이택광님은 자신이 '잘~ 한다'라고 비아냥거렸으며, 즉 풍자를 했고, 제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 '풍자'가 풍자로서 지녀야 할 모종의 파괴력은 찾아볼 수 없는 냉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런 냉소는 담론을 진전시키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아요. '중간계급'이라는 멋들어진 번역어를 다시 이명박과 강만수의 손아귀에 가져다 바치면서 풍자는 무슨 놈의 풍자입니까.

    제가 참조하고 있는 논의가 없지 않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이 논쟁을 마무리짓는 글을 쓰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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